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EPISODE.85
* * *
일반적으로 협곡(峽谷)이라 함은 폭이 좁고 깊은 골짜기로 이루어진 지형을 의미했다.
허나, 붉은 협곡은 그런 지질학적인 정의와는 조금 다른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골짜기 수백 개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긴 했으나, 그 중간중간 평원과도 같이 넓은 땅 역시 존재했던 것.
그 위로 엔디미온의 마법사들이 쉬지 않고 대군 마법을 뿌려댔다.
꽈르릉-!
벼락이 떨어지는가 하면 거대한 화염 폭풍이 전장을 휩쓸었다.
화르르르륵-!
대기가 일제히 끓어오르며 폭풍에 휩쓸린 마물들이 뼛조각 하나 남기지 못하고 증발했다.
화아악-!
직후 어디선가 냉기가 몰아쳤다.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한 대지 위로 차가운 한기가 덧칠되었다.
얼음과 바람.
두 종류의 마력이 격렬하게 엉겨들며 블리자드(Blizzard)를 연상케 하는 현상을 일으켰던 것이다.
한순간에 뼛속까지 얼려 버릴 한기와, 혈액마저 모조리 증발시켜 버릴 열기.
서로 성질이 다른 기운이 쉬지 않고 마물들의 후방에서 갈마들었다.
캬아악, 카르륵!
설혹 강철이라 한들 쉬지 않고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하면 버텨내지 못하거늘, 하물며 마물들의 피륙 따위야.
쩍, 쩌적, 쩌저정!
몇몇 단단한 외피를 지닌 마물들이 대군 마법의 여파를 견뎌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렇게 떨어져 내린 대군 마법의 개수만 해도 십 수 개.
쿠르르르릉-!
쏟아져 나온 충격파에 거대한 바위산들이 쉬지 않고 무너져 내렸다. 그 잔해가 계속해 쏟아지며 마물들의 머리 위를 위협했다.
쿠그그그그긍-.
높게 일어나는 흙먼지 가운데, 바위 잔해에 깔린 마물들의 몸이 축하고 늘어지고.
키에에엑…….
터져 나온 핏물과 체액 따위가 일대를 축축하게 적셨다.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하였는가 하면, 전투가 끝난 후에는 일대의 지도를 다시 고쳐 써야 했을 정도.
작정하고 쏟아낸다면 몇 개 사단(師團) 정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워냈을 위력의 마법들이다.
허나 놀라운 점은 날뛰어대는 마물들의 기세와 수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이니.
“불꽃의 정령이여-!”
“들어와! 들어오라고! 칵 퉤-!”
점점 난전 상황이 가속화되기 시작하는 전장을 일견하며 러셀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더 이상의 대군 마법은 무리인가…….’
자칫 손을 잘못 썼다간 요정족들이 휘말릴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그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토벌대의 지휘관.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소리쳤다.
“그만! 전원, 이 순간부터 대군 마법의 사용을 금하겠다!”
지휘관의 자리 때문이었는지, 평소와는 미묘하게 달라진 어투.
“엔디미온의 강호(强豪)들이여, 지금부터는 난전을 준비하도록!”
마력이 가득 담긴 웅혼한 외침이 토벌대원들의 귓가로 퍼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최우선 목표는 마물들을 몰아내고 요정족─, 아군을 보호하는 것인즉!”
마력 전개 방식을 뒤바꾼 그가, 난전의 한복판을 향해 뛰어내렸다.
반 박자 늦게 그의 음성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전원 돌입하라!”
.
.
이후 시작된 난전(亂戰)은 숫자의 차이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압도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대륙에서도 단둘밖에 없는 열강의 한자리를 꿰차고 있는 엔디미온이었다.
그런 엔디미온에서도 손에 꼽히는 전력을 추려 보낸 것이 바로 이들이었고.
수만 많은 마물 따위가 상대가 될 리가 있나.
번쩍-!
달인급 오러 수련자의 검에서 날카로운 검기(劍氣)가 번득이는 순간!
서걱, 서거걱-!
그 끝에 걸린 마물 서넛의 몸이 순식간에 잘려 나갔다.
후두둑-!
떨어져 내린 내장이나 살 조각 따위가 바닥을 질펀하게 적셨다.
철벅-.
그 육편을 구둣발로 짓밟으며 탑주급 마도사들이 마법을 전개했다.
구둣발에서 시작된 불길이 주변을 살라 먹으며 덩치를 불려 나가더니, 내장 조각 따위를 매개로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다리아 스노우화이트.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장작의 난쟁이들.
화락, 화락, 화라락!
버밀리온과 휴버트, 그리고 러셀.
세 사형제가 마법을 전개하기 무섭게, 불꽃의 창을 움켜쥔 난쟁이들이 그 즉시 주변의 마물들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불을 옮겨붙이며 사방을 불살랐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몇 마리가 뒤엉키며 거대한 형상을 갖추기까지.
‘변형기, 장작의 거인왕-!’
화어어어어어어어어!!!!!
‘쇼크 볼트-!’
─파짓!
취이이이익-!
간단한 마법으로 자신의 뒤를 노리려던 검은색 오크의 미간을 꿰뚫은 러셀이 질린다는 듯 중얼거렸다.
“무슨 숫자가-.”
그만한 대군 마법을 쏟아 낸 것으로도 모자라, 난전을 벌이기 시작한 지 벌써 몇 시간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마물들의 수는 거의 줄어든 것 같질 않으니…….
바퀴벌레처럼 쉬지 않고 밀려드는 마물들의 모습에 징그러움은 물론 구역질마저 느끼며 러셀이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수의 마물들이 밀려나오는 것인지. 자연 발생이라고 여기기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상황.
투덜거리는 것과는 별개로 러셀의 손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심상과 함께 마력을 쌓아 올리고, 그것을 물질계에 구현해 낸다.
화망(火網)과 뇌망(雷網).
각기 좌우로 쏟아져 나온 벼락과 불꽃의 그물이 전권을 휩쓸고.
화륵, 파지지짓-!
거구(巨軀)의 마물들이 순식간에 숯덩이로 화해 쓰러지는 것을 확인하며 러셀이 준비해두었던 또 다른 마법을 발출했다.
쐐애액-!
수십 발에 달하는 파이어 볼트가 불화살처럼 밤하늘을 수놓는다 싶더니,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착탄지점에 있던 마물들의 미간과 심장 따위를 꿰뚫었다.
퍼버버벙!
‘허, 아무리 파이어 볼트가 저 써클의 마법이라지만…….’
‘저만한 숫자를 운용한다면 몇 발 정도는 목표를 빗나갈 법도 하건만.’
‘단 하나도 빗나가지 않다니.’
‘놀라울 만큼 정교한 마력 조작 능력이로군.’
마법사들만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마법에 문외한이라 할 수 있는 오러 수련자들마저 감탄할 만한 솜씨.
허나 정작 그런 재주를 펼쳐 보인 러셀은 자랑스러운 기색이라곤 조금도 없이, 인상을 찌푸렸을 뿐이다.
‘이래서야 끝도 없겠군.’
이대로라면 사흘 밤낮을 싸우더라도 끝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나 많은 마물들이 몰려드는데, 고작해야 여기까지밖에 밀리지 않았다니.’
요정족의 지휘부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을 떠나, 그게 가능한지 의문마저 들 정도다.
그때였다.
“해가! 해가 뜬다!”
한 손에 하나씩,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던 드워프 하나가 걸걸한 목소리로 소리친 것은.
그 외침에 많은 요정족들이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빛이 밝아오는 동쪽 하늘을 일견하며 기쁘게 소리쳤다.
“해가 뜨고 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라!”
“바람의 정령이여, 우리에게 힘을!”
지친 기색 가득하던 요정족들의 얼굴 위로 사기가 깃들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변화에 엔디미온 측의 인물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해 보였다.
“해가 뜨는 게 무슨 상관이라고 저리들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게 말일세. 사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휴버트와 버밀리온이 말을 주고받았다.
“마물이 언데드도 아니고 해가 뜬다고 변화가 있을 리가…….”
-두두두두!
그때였다.
미친 듯 앞으로 밀려들던 마물 중 몇 마리가 방향을 바꾼 것은.
“!?”
그것을 시작으로 상당수의 마물들이 몸을 틀었다.
밀려들던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몰려가며 짖어댔다.
밀물처럼 밀려들던 것과는 완전히 반대의 광경이라.
“……이거 도대체 무슨 일이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아멜리아 머윈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기는 니콜로 역시 마찬가지.
어리둥절해하는 그들을 뒤로하며 전장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 * *
화아악-!
바위산 너머에서 환한 햇살이 드리우기 무섭게, 햇빛과 어둠을 경계선으로 사방에서 몰려들던 마물들이 그 자취를 감췄다.
개중 움직임이 느린 몇몇 녀석들은 엔디미온과 요정족의 연합에 의해 손쉽게 정리되었고.
푹, 푹, 푹-.
그어어어어-!
몇 개나 되는 불꽃의 창이 제 등딱지를 파고들자, 거대한 거북 형상 괴수의 몸이 결국 비명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탁-.
놈의 등껍질에서 지면으로 뛰어내리며 러셀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데?’
같은 종의 마물이라면 해가 뜨기 전에도 상대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등껍질의 강도가 그때보다 훨씬 물러진 것 같았다.
밤중에 느꼈던 등껍질이 단단한 바위라면, 지금은 비에 젖은 진흙처럼 무르게 느껴졌던 것.
그렇게 남은 마물들을 마무리하고 돌아가자, 니콜로가 요정족의 대표로 보이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감사합니다. 엔디미온의 영웅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별 피해 없이 이번 밤도 넘길 수 있었습니다.”
먼저 이야기를 꺼낸 이는, 자신의 몸집만큼이나 거대한 활을 등 뒤에 장비한 여성형 엘프였다.
한 발의 화살로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내던 모습 때문에 기억하고 있는 이였다.
겉으로 드러난 나이는 20대 후반처럼 보이지만, 엘프족의 수명을 고려해보면 족히 수백 살은 되었을 터.
‘대표로 나서서 이야기한다는 건 최소한 엘프족의 장로, 혹은 마스터 급의 실력자라는 건데…….’
다른 엘프들에 비해 조금은 밝은 머리 색이 인상적인 엘프였다.
엘프를 시작으로 드워프와 페더족의 대표 역시 앞으로 나서며 한 마디씩을 보탰다.
“우리 드워프들이 키는 작지만, 결코 은혜는 잊는 법이 없지. 정말로 고맙소.”
“우리 페더족은 일족의 깃털이 모조리 빠지는 날까지, 오늘의 은혜를 기억할 거요.”
일행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그들의 모습에 니콜로가 손사래를 쳤다.
“우리는 동맹을 돕는 당연한 행동을 했을 뿐입니다, 그보다…….”
말꼬리를 흐리며 몸을 돌렸다. 마물들이 시체가 가득한 대지, 그 너머.
놈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방향을 일견하며 물었다.
“설명을 조금 들을 수 있겠습니까?”
엔디미온의 다른 이들 역시 같은 시선이라, 그들은 여전히 지금의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
.
.
짧은 설명의 시간 후에.
“어떻게 된 일인지, 마물들이 밤이 되면 더욱 강력해져서 밀려들고 해가 뜨면 다시 빠져나간다는 말인가…….”
평범한 마물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 니콜로의 중얼거림에 대표로 나선 엘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도 그 연유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요.”
오래도록 타르타로스에 봉인되어 있었기에 그리 진화한 것이지만, 대수림의 요정족들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음. 그렇다면 마물들이 약해지는 낮을 노려 반격을 가했다면…….”
주변을 둘러보던 기사 중 한 명이 중얼거렸고, 러셀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었을 겁니다.”
“……?”
눈에 보이는 요정족의 수는 오천 남짓. 그중 싸울 수 있는 전사의 숫자는 절반조차 되지 않는다.
“수가 워낙 적어 공격을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칠 뿐만 아니라, 낮에는 부상자들을 돌보고 전선을 새로 정비해야 했을 테니까요.”
“과연, 그렇군…….”
한차례 주변을 둘러본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부상자의 수가 적지 않았다.
낮 시간은 온전히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해야 했을 테지.
“그 말씀대로랍니다.”
대표로 나섰던 엘프가 그 말을 긍정했다.
“그나마 저지선이 유지되고 있는 것 또한, 놈들이 지니고 있는 생명체를 향한 공격성 때문이랍니다.”
“……생명체를 향한 공격성?”
늘어지는 목소리로 반문하는 아멜리아 머윈을 향해 엘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마물이 아닌 모든 생물을 증오하기라도 하는 것인지……놈들은 주변으로 퍼져나가기보다는, 집요하게 인근의 요정족들만을 습격하고 있답니다.”
하기야 요정족 모두가 동맹을 맺었다곤 하나, 마물들을 상대로 저지선을 형성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마물들이 아직 엔디미온까지 닿지 않고 있는 것은 그 이유밖에 없을 테지.
이만한 숫자로 놈들을 대수림까지 다시 밀어낸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닐 터.
“결국은 5군단과 7군단이 도착할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다는 거군.”
니콜로가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고. 그때, 엘프족 대표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러셀을 향해 다가오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런데……그쪽의 인간 분은 혹시 러셀 레이먼드 님이신가요?”
“저를 아십니까?”
고개를 갸웃하는 러셀을 향해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이오에게 몇 번이나 말을 전해 들었으니까요.”
“……?”
“아, 그러고 보니 엔디미온의 영웅들께 인사가 늦었군요. 저는 아레인. 하얀 물푸레나무 부족의 수장이자, 대수림에 거주하는 엘프족의 므뇌르(Meneur) 중 하나.”
자신의 가슴팍에 손바닥을 가져대며 말을 맺었다.
“개인적으론 이오의 어미 되는 이랍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