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EPISODE.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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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城)……?”
러셀이 중얼거렸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평원 위로 붉은 바위산과 기둥들이 어지럽게 솟아나 있던 곳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성이라니.
그 모습이 조금 투박하긴 했으나, 그것은 분명 흙을 쌓아 올리고 기둥과 바위산들을 연결해 만든 거대한 토성(土城)이었던 바.
십 미터가 넘는 성벽을 발견한 버밀리온이 중얼거렸다.
“니콜로님의 능력이로군.”
불이 붙은 주먹으로 자신을 가로막는 마물들의 머리통을 박살 내면서였다.
콰직!
섬뜩한 소리와 함께 마물의 두개골이 박살 나고, 뇌수가 바닥에 흩뿌려지는 것보다 빠르게 증발한다.
뒤이어 머리통이 날아가 스러지는 마물의 사체를 짓밟으며 러셀이 나지막이 감탄했다.
‘고작 하룻밤…….’
고작 하룻밤 만에 이만큼이나 거대한 토성을 축조해낼 줄이야.
높다란 성벽 위에서 엘프들이 쉬지 않고 화살을 쏴 갈기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일열 좌측 사백 미터 지점, 발사!”
쐐애액, 퍼버버벙!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에 일대의 마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키에엑, 캬아아아악!
“죽어라, 이놈들!”
“돌벼락 맛이 어떠냐!”
쐐애액, 쾅. 콰직!
페더족들이 하늘을 날며 커다란 바위를 옮겨 떨어뜨렸다.
드워프들 역시 그에 질세라 쇠도끼와 쇠망치를 휘둘러댔다.
“어딜 이놈들아!”
“으하하하. 아주 속이 시원하다!”
쾅, 콰적!
성벽을 타고 오르는 마물들의 골통을 마구잡이로 박살 냈다.
그 외에 하늘을 나는 비행형 마물들은 마법사들의 몫이라.
퍼버버벙!
불꽃놀이와도 같은 마법이 펼쳐지며 밤하늘이 총천연색으로 물들었다.
북쪽 지방 하늘에서나 발생한다는 극광(極光)과도 같이 아름다운 모습. 허나 이후 일어난 일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키에에에엑-!
마법에 직격당한 비행형 마물들이, 비행 능력을 상실하고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 것!
백여 미터 아래로의 낙하다. 아무리 강건한 외피를 지니고 있는 놈이라고 해도 무사하지는 못할 터.
게다가, 떨어져 내리는 마물들의 시체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질량 병기가 되었다.
꽈르르릉-!
마물이 추락한 지점의 대지가 움푹 패어 들었다.
구덩이가 생겨나고, 그 여파에 휘말린 마물들이 단말마를 내질렀다.
형해(形骸)도 찾을 수 없이 피떡이 되어갔다.
불과 하루 전, 난전을 벌이며 간신히 버텨내기만 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양상.
그럴 수밖에.
초인의 경지에 오른 대마도사는 전황을 뒤집기를 넘어, 전장의 양상 자체를 바꿔 버리기 충분한 힘을 지니고 있었으니.
그중에서도 대지를 자유롭게 부린다는 왕도 황탑주,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능력이었다.
러셀은 그제야 왜 이번 일의 적임자로서 니콜로가 선정되었는지, 그에 대해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초인(超人)급의 강자…….’
6써클과 7써클.
새삼 그 격차가 단순히 숫자 하나, 경지 하나의 차이가 아님을 실감하며 러셀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때, 높게 솟은 토성 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란이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토성을 향해 달려오는 자신들의 존재를 알아차렸기 때문일 터.
“발견했나 보군요.”
“그런 것 같군.”
러셀이 중얼거렸고, 버밀리온이 그에 동의하며 씩 웃었다.
직후.
쿠르르르릉-!
대지가 요동치기 시작하며 내달리던 그들의 좌우로, 높다란 돌벽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아마도 성벽을 축조한 것과 비슷한 종류의 마법일 테지.
쿠그그그그-.
빠른 속도로 생겨나기 시작한 돌벽이 직선으로 계속해 이어지며 성벽까지 맞닿는다.
순식간에 마물과 그들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탄생한 셈이라.
물론 경계선 안쪽에도 마물들이 일부 존재하긴 했지만, 그쯤이야!
플레어 피스트(Flare Fist)─!
플레어 캐논(Flare Canon)─!!
─────────────!!!!!!!!
러셀과 버밀리온.
두 사람의 마법이 순식간에 불을 뿜었다.
두 개의 마법이 서로 얽혀들며 호응하고, 거대한 불꽃의 파도가 공기를 밀어냈다.
돌벽의 안쪽, 지금부터 나아가야 할 거리를 일직선으로 불태우며 쏘아졌다.
소각(燒却).
그 불길에 직격당한 마물들이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고.
“후우우…….”
러셀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다음 마법을 운용했다. 높은 밤하늘로부터 찬 공기를 끌어와 지면에 흩뿌렸다.
화아아악-.
그렇게 하지 않았다간, 지글거리며 녹아내리고 있는 지표면으로 인해 요정족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 역시 있었으니까.
돌벽 안쪽의 마물들이 전소된 사실을 확인한 것일까.
쿠그그그그-.
성벽의 일부가 쩍 갈라졌다.
성문처럼 좌우로 열리며 그들이 들어올 수 있는 틈을 만들었고 그로부터 십 초하고 조금 더.
팟-.
첨진의 선두를 지키고 있던 버밀리온을 필두로 내달리던 무리가 성벽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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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우…….”
안으로 들어온 러셀이 길게 숨을 내쉬며 호흡을 골랐다.
이오는 물론, 이번에 구출해온 요정족 모두가 성벽을 통과하는 것을 확인한 후였다.
고개를 돌리자.
온통 땀범벅이 된 채,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올리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럴 만도 하지.’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지만, 몇 시간 동안 수백 명의 인원들에게 쉬지 않고 마법을 걸어주었으니.
가진 마력이 거의 다 바닥났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터.
첨진의 선두에서 쉬지 않고 길을 열어대던 버밀리온 역시 꽤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사정이야 올리브보다는 나았지만, 그 역시 상당히 지친 와중이었으므로.
“후우. 아무래도 돌아가면 유산소를 조금 늘려야겠구먼.”
“─!?”
결론이 영 이상한 쪽으로 귀결되긴 했지만…….
“고생했네.”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벽 위에서 지휘를 하고 있던 니콜로가 어느새 뒤쪽에 내려와 있었던 것.
뒤이어 그와 함께 내려와 요정족들의 상태를 살피던 아레인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동맹을 맺고 지원을 보내주신 것만 해도 큰 은혜인데, 이렇게 또 다른 은혜까지 입게 될 줄이야. 엔디미온의 귀빈들께는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그 모습이 이오와 꼭 닮았기에 러셀이 남몰래 헛웃음을 흘렸다.
‘이오님의 성격은……아무래도 유전인 것 같은데.’
이어 여전히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버밀리온과 올리브를 대신해 그녀에게 답했다.
“동맹으로써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 굳이 담아두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아레인이 무어라 말을 하는 것보다 빠르게, 화악-.
밝은 서광이 붉은 협곡을 따라 부드럽게 번지기 시작하고. 환하게 밝아오는 동쪽 하늘을 일견하며 어린 엘프족 하나가 희망차게 소리쳤다.
“해가 뜨고 있어요!”
그 말대로, 몰려들었던 마물들이 다시 물러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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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성벽 아래를 바라보며 휴버트가 침음했다.
해가 뜨면 물러갈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상당수의 마물들이 성벽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속에 모습을 숨기고 남아 있던 것이 그 이유였다.
물론 밤에 비해 움직임이 상당히 굼떠지긴 했지만…….
그 모습을 보며 버밀리온이 중얼거렸다.
“물러간 놈들이 무얼 하나 했더니, 이런 식으로 그늘에서 시간을 보냈던 모양이군.”
백탑주 역시 토끼 인형을 타고 붕붕 날아다니며 중얼거렸다.
“……낮이 되면 약해지고 물러가는 마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걸.”
억겁의 세월 동안 타르타로스 속에 봉인되어 있던 마물들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타르타로스의 어둠에 맞춰 자연스럽게 진화한 것이었지만. 엔디미온의 마법사들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러셀이 의견을 제시했다.
“일단은 토벌하는 게 어떻습니까?”
어차피 밤이 되면 많은 수의 마물들이 다시 몰려오겠지만, 그래도 토벌해 두어서 나쁠 것은 없었으니까.
게다가 몇몇 녀석들은 움직임이 굼떠진 와중에도 토성을 두드리거나 성벽을 타고 오르고 있기도 했고.
그 제안에 니콜로가 한숨을 쉬며 러셀의 말에 동의했다.
“해가 뜨면 조금 쉴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아무래도 휴식은 조금 뒤로 미뤄야겠네.”
고개를 끄덕이며 능숙하게 손을 움직였고, 이어 성벽 아래의 마물들을 향해 대지의 분노를 쏟아냈다.
쿠구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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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이어진 것은 매일 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해가 지면 마물과의 전투가 시작되고, 다시 해가 뜨면 휴식 시기가 찾아오는.
낮 밤이 완전히 바뀐 생활 패턴이 되어버렸지만, 그에 불만을 갖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차라리 제국 놈들과 싸우는 게 더 피곤한 일이야.”
“동의합니다. 그쪽은 밤이건 낮이건 쉬지 않고 물어뜯으러 들어오는 놈들이었으니까요.”
“지랄맞은 놈들이었지. 킁.”
일주일 정도 흘렀을 무렵에는, 버밀리온과 휴버트가 마법을 쏘아내는 와중에 지난 전쟁에 대한 담소를 주고받기까지.
그만큼 이 생활에 익숙해졌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러는 과정에서 고립되었다는 요정족에 관한 정보가 들어오면 구조대를 보내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물론 그들 전부를 살려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구조대가 도착하는 것보다 먼저 그들이 전멸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을 뿐더러-.’
복귀하는 과정에서도 조금씩 희생자가 발생하긴 했기에.
허나 그렇다 해도 상당수의 요정족들이 무사히 토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바.
‘구천 정도인가…….’
처음 이곳에 있던 요정족의 숫자가 오천 남짓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과장을 조금 보태 거의 두 배가량 늘어난 상황.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가운데, 마침내 5군단과 7군단이 붉은 협곡에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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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군단장, 빌리엄 루이지가 총사령관을 뵙습니다.”
“7군단장, 드웰 크루거가 총사령관을 뵙습니다─!”
각 군단의 지휘관이 일제히 부복하고, 그 모습을 보며 니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지 백작, 크루거 백작. 두 군단장 모두 오느라 고생 많았소.”
“백성과 나라를 지키는 일입니다.”
“군인으로서도 변경백으로서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러 왔을 뿐입니다.”
두 가문 모두 엔디미온의 오랜 군벌로서 잔뼈가 굵은 가문이기 때문일까.
실로 군인다운 그들의 대답에 흡족한 표정을 짓길 잠시간, 이내 니콜로가 그들을 자리에서 일으켰다.
“본래라면 오랜만의 재회에 대해 담소라도 나눠야 하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먼저 작전의 개요부터 설명하도록 하겠네.”
“예-!”
임시로 만들어진 막사 안쪽에서 두 군단장의 대답이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루이지 백작. 그대와 5군단의 주 임무는 마물들이 빠져나가지 못할 포위망을 형성하는 것일세.”
“현재는 생명체가 있는 곳만 골라 습격하고 있지만, 언제 놈들이 생각을 바꿔 아국(我國)의 영토를 침범할지 모르는 일.”
“그러니 최대한 포위망을 촘촘히 형성하고, 단 한 마리의 마물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준비해야 할 걸세.”
“크루거 백작. 5군단와 루이지 백작의 임무가 포위였다면 그대와 7군단의 임무는 섬멸일세.”
“엘프족과 함께 돌입해, 포위망 안쪽에 있는 마물들을 섬멸하는 것이 7군단의 주요 임무지.”
“일차적인 목표는 붉은 협곡에 있는 마물들을 섬멸하고, 놈들을 대수림 안쪽까지 몰아넣는 것.”
미리 준비해왔던 작전을 상세하게 설명해주길 잠시간.
이내 모든 설명을 마치며 니콜로가 시선을 움직였다.
“지금부터 사흘 뒤.”
넓게 펼쳐진 지도, 그 중 대수림이라고 표기된 지역을 응시하며 단호하게 말을 맺었다.
“전선이 안정화되는 것을 확인한 후에 본격적으로 작전을 실행하도록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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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군단.
물경 십만에 달하는 정병들이 내뿜는 군기(軍氣)가 뒤쪽에서부터 흘러드는 것이 느껴진다.
과연, 대륙에서도 두 손가락 안에 꼽는 열강의 군사력이라.
이만한 정병이라면 아무리 마물들의 수가 많다 해도 패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찝찝한 건지.’
로브자락을 스치는 바람결에 이유 모를 불안감이 섞여 있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가볍게 혀를 찼다.
고개를 들어 저 멀리, 협곡의 끝을 응시했다.
불안감이 섞인 바람은 바로 그곳에서부터 불어오고 있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