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EPISODE.88
마치 세계의 일부가 뜯겨 나간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혹은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괴물이 아가리를 쩍 벌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헙-!”
“흡!”
그 흉험한 광경에 요정족들이 일제히 입을 틀어막았다.
“세상에…….”
“아름다운 대수림이 어찌 저런 모습으로…….”
아레인이 경악하며 중얼거렸고, 얼마 전 합류한 또 다른 므뇌르가 그 말을 받았다.
살아온 세월이 월등한 듯, 아레인보다 훨씬 노쇠한 모습의 므뇌르였다.
이어 드워프족의 대표, 에이트리가 딱딱하게 굳은 안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허. 평생 바위와 철만 만지며 살아온 우리지만, 숲이 저런 꼴이 되는 건 태어나서 처음 보는군.”
그 말대로 영상에서 드러난 대수림 중앙부의 풍경은 세상 그 어디에서도 본적 없이 이질적이면서도 흉험했다.
화면 너머에서도 무저갱 안쪽의 불길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
어쩌면.
‘내가 느꼈던 불길함이 바로 저것 때문일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며 러셀이 인상을 찌푸렸고,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분명 끔찍한 광경이긴 했으나 그는 마법사. 놀라는 것보다 먼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말을 꺼내는 것이 어울리는 이였으므로.
“아무래도 저 무저갱을 연상케 하는 구덩이가, 그것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라면…….”
자리에 모인 마법사들의 눈빛에 이채가 스쳐가기 무섭게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사태의 원인,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 근원.”
앞서 말한 바 있듯, 지금 밖으로 쏟아져 나온 마물의 개체 수는 명백히 대수림 안에 존재하던 마물의 수를 벗어나 있었으므로.
게다가 대수림 내에 서식하지 않는 종 역시 다수 있었고.
하지만 그 모든 개체가 저 무저갱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면 상황이 납득되었다.
“확실히, 크기만 놓고 보자면 마물 십 수만 마리쯤은 어렵지 않게 수용할 수 있겠군.”
“마물에 이어서 일어난 갑작스러운 변화, 가능성은 큽니다.”
버밀리온과 앨런이 한마디씩 주고받았다.
잠에 취한 듯 나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조사대, 필요.”
왕도 백탑의 탑주, 아멜리아 머윈이었다.
그렇게 마법사들이 한마디씩을 주고받는 사이 이내 소요를 가라앉힌 요정족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도무지 지금 오가는 대화의 내용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였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먼저 이오가 입을 열었다.
“저……은인.”
러셀의 로브자락을 꼭 붙잡으며 물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신 건지를 여쭈어도 될까요.”
“아─.”
그제야 요정족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며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부터 반 호흡 뒤, 모든 요정족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된 것을 확인하며 찬찬히 설명을 시작했다.
“실은…….”
요점만 설명하면 길게 이어질 이유가 조금도 없는 이야기.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가 끝나고,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자리에 있는 두 므뇌르는 더 이상 놀란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다만, 의미심장한 눈빛을 서로 주고받았을 뿐.
“어쩌면…….”
짧은 한숨 뒤에, 아레인이 입을 열었다.
“저것은 대수림의 오래된 탄생 설화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대수림의 탄생 설화 말입니까?”
그 이야기라면 러셀 역시 익히 알고 있었다.
‘그 옛날-.’
신들의 이야기가 거의 막을 내려갈 무렵, 대지모신(大地母神)이자 생명의 어머니라 불리는 가이아(Gaia)가 직접 가호를 내려 녹음이 우거지게 만들고 대수림을 자라나게 했다던가.
진실인지 아닌지도 명확하지 않은, 오래된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 이야기와 저 무저갱이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지.
그런 러셀의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이오가 그를 향해 물었다.
“은인께서는 왜 땅의 어머니께서 이곳에 가호를 내리고, 숲을 우거지게 만드셨는지를 알고 계신가요?”
“그건…….”
이는 동화책이나 역사책에는 쓰여 있지 않은 이야기라. 말문이 막힌다.
대답은 전혀 다른 곳, 니콜로에게서 흘러나왔다.
“이곳에 있는 무엇인가를 숨기기 위해서. 맞습니까?”
마도고고학이라면 땅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황탑의 장기이기도 했으니까.
“……바로 그렇답니다.”
“므뇌르께서는 지금 저 무저갱이, 가이아께서 세상에서 숨기고자 하셨던 무언가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거군요.”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 의문을 제시한 것은 러셀이었다.
“그렇다고 보기에는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십 수만 마리의 마물들.
이는 분명 꽤 재앙적인 일이 맞았다. 하지만, 굳이 대지모신까지 나서야 할 일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하물며 당시는 신화의 끝물. 그랜드 마스터는 물론 초월자들 역시 대지를 거닐고 있던 당시가 아닌가.
그런 시기에 고작해야 십 수만 마리의 마물들이 두려워 봉인하고, 그 봉인을 숨겨 놓다니.
“사제의 말은…….”
휴버트의 떨리는 음성을 뒤로하며 러셀이 반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가이아께서 숨기고자 하셨던 건 어쩌면 마물의 군세 따위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충격적이기까지 한 한마디.
그 말에 좌중의 분위기가 찬물이라도 뿌린 듯 가라앉았다.
아마도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터. 그런 가운데 니콜로가 무겁게 한마디를 뱉었다.
“─백탑주의 말대로, 조사대가 필요하겠구려.”
.
.
조사대의 인원이 결정 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애당초 원인이 된 무엇인가가 있을 것을 상정하고, 처음부터 조사대를 꾸릴 계획으로 파견된 인원들이었기에.
다만, 한 가지.
예상치 못했던 점이 있다면─.
‘─스케일이 신화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줄은 몰랐다는 거지만.’
러셀이 쓰게 웃는 사이, 니콜로가 입을 열었다.
“당초의 계획대로 왕도 소속의 인원들은 모두 조사대에 포함시키도록 하겠네.”
니콜로와 아멜리아 머윈.
두 사람의 초인(超人)을 포함하여 총 열한 명의 마도사와 달인급 오러 수련자들로 구성된 조사대였다.
조사대가 이렇게 소수로 구성된 이유는 간단했다.
저 불길한 안개에 독성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군단 전체를 저곳으로 몰아넣을 필요는 없었으므로.
수가 늘어나면 번거롭기만 할 뿐이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믿을 만한 실력자로 구성된 소수의 인원들로 조사대를 꾸리는 것이 나았다.
“그럼, 크루거 백작.”
니콜로의 부름에 7군단의 사령관, 크루거 백작이 호탕하게 웃었다.
자신의 가슴팍을 쾅쾅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총사령관님. 5군단과 7군단이 내외(內外), 양쪽에서 포위하고 섬멸에 나서면 아마 마물 놈들은 정신도 차리지 못할 겁니다.”
“호언대로, 바깥쪽에서의 역할을 잘해줄 거라 믿네.”
엔디미온 측의 인원 편성은 그것으로 끝.
할 일을 마친 일원들이 요정들을 돌아보았고 그들 중 셋이 앞으로 나섰다.
아레인과 이오, 그리고 적갈색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털북숭이 드워프였다.
그 털이 얼마나 길게 자라났던 것인지, 수북한 털에서 팔다리가 삐져나와 있는 우스꽝스런 모양새라.
허나 그 몸에서 느껴지는 기척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검기(劍氣)를 사용하는 오러 수련자와 비등한 수준인가…….’
마법사로 비교하자면 5써클 초입에 막 들어선 정도. 달인급에는 미치지 못하는 실력이다.
허나 어느 곳에서도 무시 받지 않을 맹자(猛者)인 것은 분명했던바.
“킁.”
쿵─.
대지가 가볍게 진동하고, 공성(攻城)용으로나 쓰일 법한, 본인의 몸보다 거대한 망치를 내려놓으며 그가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기요르요. 부족한 몸이나마 조사대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소.”
드워프답게 무거우면서도 투박한 자기소개라. 앞으로 나선 세 사람과 마주하며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족에는 므뇌르가 한 사람 더 있으니, 아레인님이 조사대에 참여한다고 해도 문제 될 것은 없지.’
그에 비해 드워프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가장 강자라고 할 수 있는 에이트리가 조사대에 합류해 버리면 드워프들을 이끌 만한 이가 달리 없었던 것.
‘페더족이나 페어리들은……, 눈에 띌 만한 강자가 없는 종족이고.’
꽤나 합리적인 인원 선별.
그렇게 인원이 모두 결정된 후, 도합 열넷의 조사대가 신형을 옮겼다.
어둠이 가득한 숲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허, 이리도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숲이라니.”
“생명 활동이 완전히 정지한 것도 아닐 텐데, 신기한 일이로군.”
마법사들의 호기심 담긴 말이 두런두런 이어지고, 안개 너머 끝이 보이지 않는 수림이 전방을 향해 펼쳐졌다.
대수림(大樹林).
문자 그대로 대(大)라고 불릴 정도의 수림이었다. 그 면적만 하더라도 수만 제곱킬로미터(km2) 이상.
그 중심에 도달하기 위해선 족히 수백 킬로에 달하는 거리를 돌파해야 했던바.
“슬슬 휴식을 준비하도록 하지.”
어둠이 깔리는 것을 확인한 니콜로가 손을 들었다. 말과 함께 일행들을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읏차.”
“그럼 텐트는 내가 치도록 하고, 요리는 사제가 하겠는가?”
그와 함께 순식간에 야영 준비가 이루어진다.
몇 개나 되는 텐트가 뚝딱할 사이에 지어졌고, 동시에 스튜가 보글보글 끓었다.
이오와 아레인을 배려하여 육포 대신 콩을 듬뿍 넣어 단백질을 채운 스튜였다.
“……맛있네요.”
러셀이 만든 스튜 맛을 보며 이오가 동그랗게 눈을 떴다.
별다른 재료를 넣은 것 같지도 않은데 야채의 채수와 콩기름이 우러난 스튜 맛이 꽤 별미였던 것.
“한 그릇 더 드릴까요?”
순식간에 비어버린 그녀의 그릇을 보며 러셀이 물었고,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이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은인…….”
어쩐지 그녀의 목소리가 작아진 것만 같았던 것은 착각일까. 그녀의 그릇 위로 스튜를 한 국자 더 떠주며 러셀이 물었다.
“그런데 아레인님은 지금 뭘 하고 계신 겁니까?”
어느새 한 그릇을 비워낸 후, 조용히 눈을 감고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는 아레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
마력의 흐름이 일렁이는 것은 느껴지는데 그 방식이 너무 독특하고 이질적이었다.
‘마법이라기보다는, 내가 정령계의 문을 열 때 쓰는 것과 느낌이 비슷한데…….’
그렇다고 또 완전히 같지는 않으니.
“아. 지금 어머니께선 숲과 소통하고 계신답니다. 정확하게는 숲의 정령들과 대화하려는 중이신 것 같은데…….”
“숲의 정령이라…….”
상당히 생소한 정령에 러셀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다른 마법사들 역시 정령에 관해 호기심이 드는 것인지 귀를 쫑긋하고 있는 모양.
본인도 꽤 궁금했던지라 내친김에 러셀이 그에 관해 질문했다.
“음.”
잠시의 침음 후 설명이 이어진다.
“사대 원소 외에도 여러 정령들이 있는 건 은인께서도 잘 알고 계실 거예요.”
“네. 물론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벼락이나 얼음, 혹은 빛과 어둠의 정령 같은 것이었으므로.
“숲의 정령도 그중 하나랍니다. 다만, 일반적인 정령과는 조금 달라요.”
“조금 다르다? 어떤 식으로 다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으음.”
고민 끝에 이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단 직접 보여 주는 게 나을 것이라 생각한 듯 그녀 주변의 마력이 꿈틀거리기 시작하고.
“허-?”
이어 벌어진 광경에 두 사람의 대화를 훔쳐 듣던 휴버트가 놀라 눈을 치켜떴다.
다른 마법사들 역시 마찬가지. 얼마나 놀랐는지 앨런은 들고 있던 숟가락마저 떨어뜨렸다.
‘이건…….’
러셀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주변의 칡뿌리와 나뭇잎 같은 것들이 모여들더니, 이어 하나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한다.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앙증맞은, 드워프의 절반도 채 되지 않을 사이즈의 무엇인가.
‘뿌리와 잎으로 이루어진 인형이라고 해야 하나……?’
모양도 둥글둥글한 것이 생긴 것이 꽤 귀여웠다.
러셀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녀석이 찬찬히 개안했다.
러셀과 두 눈을 맞추며 입술을 달싹였다.
「어떤가요. 은인?」
“이, 이오 님?!”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