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EPISODE.89
* * *
선공의 포문을 열어젖힌 것은 왕도 백탑의 탑주, 아멜리아 머윈이었다.
“……불어라. 불어서 내게 오라. 하늘과 땅 아래에 깃든 거대한 흐름이여.”
평소의 졸음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고속 영창.
캐스팅과 완성에 있어 누구보다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바람 마법이었다.
하물며 마법을 펼쳐내는 이는, 엔디미온에서도 바람 마법에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고 손꼽히는 이였던 바!
고오오오오오.
순식간에 완성된 마법에 대기가 울부짖는다.
이어 아멜리아 머윈이 자신의 손아귀 안쪽에서 완성된 마력을 대기 중에 때려 박았다.
이지러지고 뒤틀린 채 압축되어 있던 마력이 다섯 갈래로 분화되며 일대를 장악하고.
직후 거대한 바람의 폭풍이 일어났다.
콰과과과과과!
다섯 갈래에 달하는 폭풍이 지표와 수평으로 일대를 할퀴었다.
콰드드드득!
거대한 손가락이라도 된 듯 구부러지며 헤카톤케이레스의 거구를 움켜쥐었다.
콰과과과과─!
초속 80m 이상의 풍속을 내포한 소용돌이는 그 자체로도 압도적인 폭력성을 지닌 재해인즉.
평범한 생물이라면 휘말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갈려 나갈 만한 위력이었다.
설혹 산의 제왕이라 불리는 오우거나 드레이크라 할지라도 저만한 마법에 휘말린다면 멀쩡할 수는 없을 터.
그런 토네이도가 하나도 아닌 무려 다섯.
허나─.
─Krrrrrrr!!!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헤카톤케이레스의 모습은 멀쩡하기만 했다.
고작해야 아주 조금 쓸린 상처 정도만이 외부에 남은 게 다다.
“……칫.”
자신의 공격이 별다른 유효타를 입히지 못했음을 확인하며 백탑주가 볼멘소리를 내었다.
아무리 신화적 존재라 하더라도, 이 정도 마법이라면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순간!
우득, 우드득-.
신체의 일부라도 된 듯. 한쪽으로 쏠린 백 개의 팔이 꼬이고 뒤틀리며 거대한 주먹의 형상을 만들어내고!
─쾅!!
놈의 주먹이 천둥처럼 허공을 갈랐다. 방금 전까지 백탑주가 인형을 타고 허공을 비행하던 그 자리였다.
그 후에 일어난 것은 문자 그대로 대 파괴의 이적이었다.
─────────콰과과과과과!
소리보다 먼저 대기가 터져 나가며 공기가 밀려난다.
그렇게 밀려난 바람이 어지럽게 휘어지고 뒤틀어지며 거대한 와류를 만들어냈다.
콰과과과과!
그 끝에 휩쓸린 대수림의 일부가 통째로 뜯겨 나가듯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한때 대수림이었던……초토화된 무엇인가의 흔적이었을 뿐.
단순한 주먹질 한 번으로 일순간이나마 토네이도를 만들어낼 정도의 물리력이라니.
마음만 먹는다면 대수림 전체를 지도에서 사라지게 할 파괴력이었다.
‘저게 약해진 거라고……?’
러셀이 기함하며 혀를 내둘렀다. 그렇다면 전성기 시절에는 도대체 얼마나 강했다는 말인가.
얼마나 약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터.
“백탑주 님!”
같은 백탑 소속 올리브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간신히 균형을 바로 잡으며 백탑주가 대꾸했다.
“……괜찮, 아.”
말과는 달리 그리 괜찮지 못한 목소리.
그럴 수밖에. 주먹이 내질러지는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한순간 소닉붐이 터져 나왔으니.
거기에 휘말리며 허공을 몇 바퀴나 회전한 후였다.
아무리 7써클 마법사라 하더라도 멀쩡할 수 없는 충격이리라.
내장이 진탕되지 않았다면 다행, 그렇다 하더라도 머리가 크게 흔들렸을 테지.
저만한 공격을 연속으로 쏟아 낼 수 있다면, 이 자리에 있는 이들로는 결코 승산이 없다.
저 괴물 하나를 막기 위해서, 염탑주와 창탑주가 모두 움직여야 할 정도.
그렇게 생각한 순간.
─Grrrruuuuuuu.
우득, 콰득, 우드득-.
기괴한 소리가 울렸다.
마치 찰흙이라도 된 듯, 한쪽으로 쏠렸던 백 개의 팔이 제자리를 찾아가며 내는 소리였다.
그와 함께 녀석의 움직임이 한순간이나마 느려졌다.
‘반동?’
그럼 그렇지. 저런 무식한 주먹질을 연속으로 쏟아 낼 수 있을 리가!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바위처럼 단단한 음성과 함께, 일행의 최고 전력 중 하나.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마력이 대수림의 지면을 따라 파도처럼 뻗어나가고.
“대지여! 모래의 늪이 되어 무너져 내릴지어다!”
무저갱이 완전히 사라진 자리, 홀연히 나타난 대지를 향해 그가 명했다.
─Kua?
쑤우우우욱-!
그와 함께 순식간에 모래지옥으로 화한 대지가 헤카톤케이레스의 왼쪽 다리를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본래라면 전신을 빨아들일 생각으로 펼친 마법이건만-.
‘괴물같이도 거대한 덩치군.’
허나, 그것만으로도 순간적으로 놈의 발목을 붙잡고 기동력을 앗아가기에 충분했으니.
기우뚱-.
순식간에 정강이까지 빨려 들어간 녀석의 몸이 반쯤 기울어져 내렸다.
“지금일세!”
그와 함께 일제히, 지상에서부터 세 개의 광선이 솟구쳤다.
각기 붉고 푸른색을 지닌 광선들.
아니, 광선이 아니다. 그들 모두가 마법이었다.
그중 두 개의 붉은 광선은 휴버트와 버밀리온이 펼쳐낸 화염계 마법, 블레이즈 캐논이었다.
본래는 5써클 마법이지만, 수식을 개량해 그 위력과 화기를 6써클 수준까지 끌어올려 일점에 집중한 마법!
또 하나의 푸른 광선은, 앨런의 솜씨였다.
인근 호수의 물을 끌어오는 것과 동시에, 고속 고압으로 분사한 것.
두꺼운 강철조차 종잇장처럼 관통할 압력.
마찬가지로 같은 두께의 강철을 젤리처럼 녹여 버릴 고온의 불꽃이 순식간에 거인의 측면을 후려친다.
꽈르릉-!!
─Krrrrr-!!
균형추가 기울어지기 시작하던 녀석의 몸이 그대로 아래로 꼬꾸라졌다.
머리를 바닥에 처박기 직전, 녀석이 한쪽 팔과 다리로 몸을 지탱해냈다.
“허-!”
“괴물 같은 강건함이군요.”
그 광경에 휴버트와 앨런 페이지가 덩달아 혀를 내둘렀다.
7써클 바람계 마법에 이어, 거의 6써클에 달하는 마법 셋을 동시에 맞았는데도 멀쩡하다니.
버밀리온이 감탄한 부분은 그들과는 조금 달랐지만.
“아주 훌륭하게 단련한 근육이로군.”
“……미친놈.”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백탑주가 중얼거렸으며 이어 올리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풍이여! 내 친구들을 안전하게 데려다 주소서!”
그와 함께 하늘에서부터 도합 다섯의 인영이 뚝 떨어져 내렸다.
거대한 망치를 움켜쥔 난쟁이와, 창검(槍劍)을 든 기사 넷.
마법사들의 활약을 지켜만 보던 그들이, 올리브의 마법을 빌어 거인의 등에 내려선 것.
척, 척.
척, 척, 척-.
일제히 내려선 그들이 날붙이 가득 오러를 주입하더니 녀석의 등을 마구잡이로 헤집어댔다.
푹, 푹, 푸욱, 푹-!
7써클 마법조차 꿰뚫지 못한 외피였지만, 적어도 생채기쯤은 만들 수 있었기에.
놈의 입장에선 네 개의 작은 바늘이 등판을 계속해서 헤집고 있는 느낌일 테지.
게다가, 일행들의 공격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으니.
“어머니!”
이오와 아레인이 손을 맞잡았다.
엘프족 특유의 정령술을 이용해 인근에 자리한 대수림의 산천초목을 통째로 움직였다.
숲이, 아니 산이 일어선다.
대지에 누워있던 거인이 몸을 일으키듯, 숲의 정령이 몸을 일으켰다.
일대의 칡덩굴과 나무, 바위, 토양 따위가 마구잡이로 뒤섞여 혼연일체가 된 모습!
「숲의 대정령이여-!!」
이오와 아레인의 목소리가 대정령의 입을 빌려 동시에 터져 나왔다.
대정령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전날 보았던 숲의 정령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크기다.
헤카톤케이레스의 절반에 육박하는 숲의 정령이 굴강한 두 팔을 움직였다.
놈을 그대로 찍어 눌렀다.
쿠그그그그그-!
거인들의 줄다리기에 대수림이 크게 진동했다.
충격파가 쉬지 않고 일어나며 땅거죽이 터져 나갔다.
그야말로 괴수 대결전.
고작해야 2분도 채 되지 않는 전투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대가 완전히 파괴되기 시작하고.
줄다리기의 승자는 당연하게도 헤카톤케이레스였다.
숲의 정령들이 온전하지 못했던 것도 있거니와, 덩치도 두 배가량 차이가 났으므로.
─귀찮게 굴지 마라. 하등한 것들아!!!!!!!!!!!!!!!!!!!!!!!
깨어난 이후, 처음으로 녀석이 말을 쏟아냈다.
“……저거 말도 할 수 있는 거였어?”
놀라워하며 먹먹해진 귀를 두드리는 아멜리아 머윈을 뒤로하며 그대로 몸을 튕겼다.
쾅!
여전히 대지를 딛고 있는 다리를 이용해 다른 쪽 다리를 끌어 올림과 동시에, 몸을 크게 회전시킨 것.
벌레를 털어내기라도 하듯, 그 가벼운 행동에 숲의 대정령이 그대로 흩어지며 소멸했다.
쾅, 쾅, 쾅, 쾅, 꽈릉!
거인의 등에 타고 있던 다섯 명의 오러 수련자들 역시 수백 미터 이상을 날아가 처박혔다.
콰과과과과과!
그 흔적이 선명하게 대지 위로 아로새겨진다.
“쿨럭…….”
“괜찮으십니까?”
이어 피를 토해내는 한 기사를 향해 앨런이 다가가며 물었다.
“……늑골이 두어 개는 부러진 것 같은데.”
그의 입안을 향해 포션을 부어 넣었다.
아무리 포션이라 해도 완치가 되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임시방편 정도는 될 테니까.
이오와 아레인 역시 숲의 대정령이 역소환된 충격을 이겨내며 또다시 정령을 소환했다.
“부탁해요. 저들을 치료해주세요.”
치료 능력이 있는 물의 정령을 이용해 나가떨어진 오러 수련자들을 보듬었다.
‘단순한 몸 털기에 나가떨어지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
‘주먹이나 발길질에 직격당하기라도 했다간…….’
시체는 고사하고 뼛조각 하나 남기기 어려운 꼴로 변할 것이 분명했다.
그 사람의 시체를 찾는 것보다, 그 사람의 육편을 양분 삼아 자라난 대수림의 나무를 찾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너무도 선연해진 죽음에, 자리에 있는 모두가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몸을 일으킨 놈이 콧김을 내뿜었다.
좌우, 각기 오십 개씩.
백 개에 달하는 팔을 좌우로 활짝 벌리며, 오십 개에 달하는 입을 쩍 벌리며 위협적으로 소리쳤다.
─벌레 같은 것들. 그리도 내게 먹히고 싶은 것이라면, 좋다. 먹어주마.
─오십 조각으로 나눠 찢어 모든 입으로 음미할 것이고, 하나도 남김없이 내 뱃속에 처넣어주지.
그 순간이었다.
“이봐.”
쿠르르르르릉-.
하늘의 일부가 먹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며, 곳곳에서 시푸른 뇌광이 드리웠다.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규모의 뇌운(雷雲).
뇌운의 아래로 청년 하나가 붉은 로브를 펄럭이며 허공에 떠 있었다.
심상치 않은 기류에 로브자락과 검은 머리칼이 함께 나부낀다.
─흑……발?
그 광경이 거인의 기억 속에 있는 누군가와 겹쳐 보였던 것은 단순히 우연일까.
“뭔가 하나 까먹은 것 같지 않아?”
그러건 말건, 러셀은 제 할 말을 이어나갔다.
“마법사는 일곱인데 왜 마법은 여섯 개뿐이었을까?”
전투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흐른 시간은 약 3, 4분 남짓.
그 시간 동안 러셀이 단 한발의 공격조차 가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함이었으니.
‘브리아레오스……였던가.’
놈은 환영 속에서 보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생김새를 가진 거인이다.
게다가 군단장.
그 강함 역시 환영 속의 녀석들보다 훨씬 월등할 터.
그런 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이 일격으로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허나, 육체의 강건함을 알아보는 이정표 정도로는 삼을 수 있을 것인즉.
오십 쌍의 눈 위로, 뇌운과 푸른 전격이 비치는 것을 확인하며 코웃음과 함께 러셀이 마법을 발동시켰다.
클라우디 링(Cloudy Ring).
웨더 폼(Weather Form).
“─라이트닝 볼텍스.”
(Lightning Vortex).
그 순간, 하늘을 뒤덮었던 뇌운이 일제히 뇌격을 토해냈다.
수백, 수천에 달하는 번개가 아래를 향해 쏟아지며 하늘을 찢어발기고.
쿠르르르릉-.
그것들이 한자리에 몰려들었다.
피뢰침에 딸려 들어가는 번개처럼 한 곳으로 집중됨과 동시에 거대한 뇌전의 와류를 만들어낸다.
작은 번개들이 깔때기와 같이 모여들며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라!
콰르르르릉!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과 땅이 동시에 울부짖으며 압도적인 광량이 시야를 희롱한다.
‘가라-!’
파멸을 노래하는 푸른 소용돌이가, 거인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