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EPISODE.90
클라우디 링(Cloudy Ring).
웨더 폼(Weather Form).
그 속에 담긴 힘은 일대의 날씨를 통째로 뒤바꾸기 충분한 기후 조작의 힘이었다.
원한다면 한 발이 아닌, 수백 수천 발의 벼락을 떨어뜨려 일대를 초토화시켜 버릴 수 있을 정도.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
스스로에겐 아직 그 힘을 통제할 능력이 없음을 잘 알고 있을뿐더러…….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건 여러 발의 번개가 아니라, 하나로 집약된 강력한 번개니까.’
생성되는 뇌운(雷雲)의 범위를 줄이는 것으로 마나 소모를 대폭 줄인다.
그리고 만들어진 벼락을 한 점에 집중시켜 위력을 극대까지 끌어 올린 것.
그로 인해 펼쳐지는 라이트닝 볼텍스의 위력은 어지간한 7써클 마법을 한참 웃돌 정도라.
물론 단점 역시 있었다.
줄였다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의 마법치곤 상당한 양의 마력 소모.
게다가 너무도 강력한 힘을 지닌 탓에 통제가 어려워 명중률에 있어선 취약하기까지 하니.
결과적으로, 이를 감내했음에도 맞히지 못한다면 엄청난 리스크로 다가오리라.
허나…….
‘이 순간만큼은 예외지.’
상대는 태양을 가릴 정도의 거체를 가진 괴물. 저런 녀석을 빗맞힌다는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았다.
꽈르르르릉─!
광주(光柱).
벼락이 떨어진 자리에서부터 일어난 빛의 기둥이 하늘까지 치솟는다.
────────화아악!!
이어 반경 수백 미터 내에 존재하던 모든 나무가 깨끗하게 증발했다.
숯 더미는커녕 재조차 남기지 못할 정도의 고온.
폭심지로부터 시작된 충격파가 일대를 마구잡이로 뒤흔들었다.
폭심지 바깥쪽으로, 다시 수백 미터에 달하는 범위의 나무들이 뿌리째로 뽑혀져 나가며 바닥을 나뒹군다.
콰과과과과과과!
“허, 무슨 이런 위력이…….”
장대하게 솟구친 모래 먼지의 격류 속에서 니콜로가 혀를 내둘렀다.
자신 역시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비슷한 위력을 보일 수 있지만, 상대는 고작해야 이십 대 중반.
이제 막 6써클 마스터에 오른 인물이 아니던가.
탑주급과 초인급 사이의 격차는 어마어마할 터인데, 그럼에도 이 정도 위력이라니.
러셀에 관한 기억 몇 가지를 떠올린 아멜리아 머윈이 뒤늦게 덧붙였다.
“……아티펙트.”
러셀 레이먼드라는 사내가 왕궁의 비고에 들어간 적이 두 번이나 있다는 사실이 기억난 것이다.
허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아티펙트의 힘을 빌린 것은 어디까지나 뇌운의 형상까지만이었을 뿐.
수천 갈래의 벼락을 한 자리에 집약하고, 응축시켜 통제한 것은 오롯이 러셀 본인의 능력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까지 침착하지는 못했을 터.
“윽.”
“……코가.”
돌연 이오와 아레인이 코를 부여잡았다.
일대의 나무가 불타 증발하며 발생한 냄새인지, 그렇지 않으면 헤카톤케이레스의 살점이 녹아내리며 나는 냄새인지.
갑작스럽게 피어오른 악취에 엘프의 예민한 후각이 반응했던 것이다.
“그, 래도 이런 위력이라면…….”
아직 가라앉지 않은 소요를 진정시키며 앨런 페이지가 입을 열었다.
그답지 않게 더듬거리는 음성. 모두가 의식을 집중했다.
일대를 뒤덮은 모래 먼지 그 너머를 응시했다.
이걸로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 않으나, 마냥 멀쩡하지만은…….
“허─!”
“그걸 맞고도 두 다리로 서 있다니!”
그런 생각이 오만이라고 비웃기라도 하듯.
쿠구구구구구.
점차 가라앉는 흙먼지, 그 너머에서 거인(巨人)이 찬찬히 고개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
.
드러난 거인의 모습은 마냥 멀쩡하지만은 않았다. 강렬한 열기에 손상을 입은 피부에선 계속해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벼락이 떨어진 등판에는 이지러지는 듯한 상처가 새겨져 있었으니까.
벼락이 때리고 지나간 자리가, 피를 흘리는 것보다 먼저 익어 버린 흔적이라.
허나, 거인은 여전히 건재했다.
입은 상처 역시 거대한 덩치와 비교하면 그리 대수로운 편은 아니었고.
사람으로 손바닥 두 뼘쯤 되는 문신을 등에 새긴 정도라고 할까?
‘그걸 직격으로 맞고도 저 정도…….’
이번 공격을 하는데 사용한 마력량은 전체의 일 할이 조금 안 되는 정도.
수치상으로 계산하면 방금 전과 같은 공격을 열 번 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열 번을 반복해도 쓰러뜨릴 수 없다는 점이겠지.’
그야말로 신화시대의 괴물다운 위용. 그때였다.
녀석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난 것은.
꽈득, 꾸드득-.
무엇인가를 비틀고 쥐어짜는 듯 흉험한 소리와 함께 녀석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백 개에 달하는 팔을 찰흙처럼 움직여 네 부위로 보냈다.
그것들을 얽고 엮어 거대한 네 개의 팔로 바꿔내며 입을 열었다.
─흑발과 용의 힘이 깃든 마법.
“……?”
─너, 김현성과는 무슨 관계지?
‘김현성?’
러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뭐지? 아티펙트나, 그런 종류의 것인가?’
전혀 다른 언어체계로부터 탄생한 단어였다.
이 세계의 언어체계에만 익숙한 러셀이, 그 단어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
설혹 ‘김현성’이라는 단어가 누군가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해도 그것과 ‘이계구원자’를 연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모르는 건가.
그런 러셀의 반응에 녀석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뭐, 상관없지.
꾸드득-.
각기 스물다섯 개의 팔이 덩굴식물처럼 얽히며 만들어낸 거수(巨手)가 주먹의 형상으로 뒤바뀌고.
─괜히 짜증나는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 죽어라.
그와 동시에 대기가, 눈 앞에 펼쳐진 풍광이 훅 밀려났다.
─────────────!!
일순(一瞬).
고작해야 찰나를 몇 개 이어붙였을 정도로 짧은 시간.
‘─!?’
러셀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몸은 허공을 마구잡이로 회전하고 있었다.
귀가 먹먹하고, 안쪽에서부터 핏물이 왈칵 치솟아 오른다.
“웨엑-!”
그것을 한 사발 토해내며 러셀이 간신히 몸을 바로잡았다. 수백 미터를 날아가, 다 망가지고 박살난 나무 조각 위에 신형을 세웠다.
‘……무슨?’
뒤늦게 바람을 따라 앨런 페이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으십니까. 러셀 경!?]고개를 들자 흙과 바위로 이루어진 거대한 주먹 수 개와, 헤카톤케이레스가 서로 치고받는 것이 보였다.
쾅, 쾅, 쾅, ──쾅!
헤카톤케이레스가 일격 일격을 떨칠 때마다, 거대한 흙의 주먹이 속절없이 분쇄되어간다.
그때마다 니콜로는 연이어 마력을 쏟아부었다. 박살 난 개수만큼 새로운 흙의 주먹과 손을 만들어냈다.
다른 이들 역시 그런 니콜로를 보조하고 있었고.
그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린 러셀이 입안에 고인 핏물을 마저 뱉어냈다.
[퉤─.]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물었다.
[무슨……일이 있었던 겁니까?] [아멜리아 님을 노렸던 것과 같은 주먹질입니다. 아무래도 백 개를 하나로 합쳤을 때보단 위력이 약한 듯 보이지만, 전처럼 변화가 풀리거나 몸이 멈칫거리는 반동은 없는 모양이로군요.]조금 약해졌다곤 하지만, 아멜리아 머윈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그걸 얻어맞았으니.
‘목숨이 붙어 있는 게 용하다고 해야 하는 건가.’
[다행히 아멜리아 님과 니콜로 님께서 간신히 흘려 주셨습니다마는…….]여파만으로도 이 정도 충격.
주먹으로 호풍환우(呼風喚雨)를 부릴 수 있는 괴물이 있다면, 바로 저걸 말하는 것일 터.
직후 니콜로의 음성이 들려왔다. 마법을 쓰는 것만으로도 긴박한지, 간간이 끊어지는 음성.
[자네, 괜. 은가?]그래도 대충 의미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예.] [방금 전, 벼락. 마법. 다시, 한, 가. 한가?]방금 전과 같은 벼락 마법을 다시 한번 가능한가?-라는 물음이다.
[지금, 우리, 할 수 있는, 자네가, 상처 후벼. 는……뿐.]‘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네가 만들어 놓은 상처를 후벼 파는 것뿐.’
[그렇다, 면, 후벼팔 상처, 많이 만들, 좋……큭!]콰광!
폭음과 함께 맞서던 니콜로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그 탓에 캐스팅하던 마법이 취소되긴 했으나, 그의 목소리가 전보다 훨씬 명확하게 전달되었던바.
[할 수 있겠는가?] [할 수는 있지만,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상처를 후벼 판다는 작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만들어진 상처가 너무 얕다.
‘같은 자리를 정확하게 노린다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열 번을 반복한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내 수준으로 라이트닝 볼텍스를 정밀하게 통제해서 같은 과녁에 때려 박는 건 불가능해.’
[차라리 다른 방법을 쓰는 건 어떻겠습니까. 니콜로 님.] [다른 방법?] [예. 유효타를 넘어서, 어쩌면 놈의 숨통을 끊어 놓을지도 모르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저 괴물의 숨통을 끊어 놓을지도 모르는 방법이라고?
러셀의 말이 울려 퍼지기 무섭게, 같은 통신망을 공유하고 있던 일행 전원의 숨소리가 달라졌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대략적으로 15분, 아무리 빨리 캐스팅해도 13분 정도는…….] [음…….]전투가 막 시작되었을 때와는 달리,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한 거인이었다.
그런 거인을 상대로 15분가량을 버텨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Krrrrr.
무엇에 꽂힌 건지는 몰라도.
처음과는 달리 오십 쌍에 달하는 눈동자 중 무려 절반 이상이,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러셀 쪽을 노려보고 있기까지 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인원의 삼분지 일가량은 재기 불능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방법. 없어.]칼날 바람과, 폭풍의 수갑으로 놈의 발을 묶어두던 아멜리아 머윈이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 달리 방법이 없다. 게다가 이 중 유효타를 입힌 것은 오로지 러셀의 마법이었던 바.
[해보는 수밖에…….]잠깐 사이에 족히 몇 년은 늙어 버린 얼굴로 그가 중얼거렸다.
[다들 이야기는 들었을 터.]이어 통신망을 통해 전파했다.
[우리는 지금부터 15분간 시간을 번다. 저 거인 놈이 러셀 백작에게 다가서지 못하게 최선을 다하도록.]상황의 반전을 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일행 모두의 기대가 두 어깨 위에 실리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소모해서 바닥난 마력부터 보충한다.’
머릿속으로 쌓아 올린 계획을 한 장의 그림으로써 완성하기 위해선 자신이 지니고 있던 총량 이상의 마나가 필요했던바.
‘부분 용인화(龍人化).’
화아악-
심상치 않은 기세와 함께 광포한 마력이 러셀의 주변을 따라 파도처럼 흘러나왔다.
전날 이와 같은 현상을 겪어본 적 있던 앨런 페이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건 말건 마력을 보충한 러셀이 심상을 떠올렸다.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것을 꿰뚫을 신살(神殺)의 살(虄).
‘혹은 신살의 창.’
『브라흐마스트라(Brahmastra)』
달라진 러셀의 마력에 브리아레오스가 격노했다.
─네놈! 역시! 김현성과 그 빌어먹을 도마뱀 년의……?!
거신(巨身)의 포효가 산천초목을 뒤흔들었다.
──────콰아아아아아!!!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