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EPISODE.90
* * *
거인(Titan)족 군단장, 브리아레오스.
그가 자신의 군단과 함께 타르타로스에 봉인된 것은, 티타노마키아(Titanomachia)의 초중반 무렵이었다.
전쟁의 불씨가 이제 막 대륙을 뒤덮어가기 시작할 즈음.
그렇기에 그는 신기(神器), 브라흐마스트라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용제와 이계구원자의 힘을 이어받은 ‘러셀’의 존재는 반드시 말살해야 하는 대적과도 마찬가지였다.
─너희 버러지 놈들은 억겁의 세월이 지나도 달라지는 것이 없구나.
러셀을 보호하듯, 자신을 가로막은 놈들을 향한 노기를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잔꾀를 부리려 하다니.
브리아레오스의 거대한 대퇴부가, 굴강하게 부풀어 올랐다. 마침내 녀석이 발끝으로 지면을 박차는 순간, 쾅!
음속을 돌파한 움직임 따위는 없었다. 애당초, 광풍을 만들어내는 백 개의 팔을 제외하면, 브리아레오스의 움직임은 그리 빠른 편이 아니었으니까.
허나, 그 거체가 만들어내는 물리력만으로도 녀석의 움직임은 충분히 위협적이었으니.
콰과과과과과과과-!
지축이 뒤틀리며 지면이 터져나갔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대지가 마구잡이로 흔들리고.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수백 미터, 그 이상을 뛰어넘은 브리아레오스의 신형이 순식간에 러셀을 향해 짓쳐들었다.
쿠과과과!
저런 도약력이라면, 수 킬로를 돌파하는 데에도 고작 몇 걸음이면 충분할 터!
‘큭-!’
그 광경에 황급히 캐스팅을 취소한 러셀이 몸을 날렸다.
브리아레오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몇 킬로미터가량을 재빠르게 물러났다.
그리고 그 순간, 음성이 들려왔다.
[……집중, 해.]아멜리아 머윈의 음성.
[……안 돼. 거인, 넌. 못가.]누구보다 빠르게 완성한 바람 마법이 거인의 두 발과 네 다리를 붙든다!
콰드드드득-!
가느다란 실 여러 가닥을 꼬아 굴강한 동아줄을 만들 듯, 바람의 흐름을 엮어 채찍을 만들어낸 것.
도합 일곱 줄의 채찍이 촉수처럼 움직이며 그의 발목과 전신을 휘감았다.
촤라라라락-!
마지막 남은 채찍 하나가 짐승의 목줄처럼 브리아레오스의 목을 휘감는다.
평범한 바람이 아닌, 대기 중의 산소와 수소를 엮어 만들어낸 폭풍의 사슬.
─이, 되다 만 잡종 요정 계집이!
브리아레오스가 포효했고 녀석이 멈춰선 아주 잠깐의 틈.
그 틈을 놓치지 않는 마법사가 둘 있었다.
[지금이……야!]아멜리아 머윈의 신호와 함께 강렬한 불길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치솟았다.
솟구쳐 오른 불길이 수소, 산소와 만나며 강렬한 폭발을 만들어낸다.
펑────────!! 화르르르륵!
장대한 빛의 산란(散亂).
콰과과─!
그보다 반 호흡 후, 폭심지로부터 강풍을 동반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쏟아졌다.
귀를 먹먹케 하는 굉음.
장대하게 일어난 폭연이 장막처럼 일대를 뒤덮고.
폭발로 입은 피해는 그리 대수롭지 않았지만,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린 폭연 탓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가지가지 하는구나.
하지만 그의 발을 묶어두기 위한 마법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쿠그그그그그-.
그가 내달리며 만들어 낸 모래 먼지가 마력과 만나 심상치 않은 궤도를 그려내며 움직였다.
[불어라. 모든 것을 짓밟는 모래 폭풍이여!]이어 지면에서부터 일어난 거대한 모래 폭풍이 삽시간에 폭연을 뒤덮는다!
자연계에서 가장 장엄한 규모의 광물 이동 현상!
쿠과과과과과과!
저 먼 사막에서 발생하는 모래 폭풍(Dust Storm)은 그 평균 무게가 2억 톤에 달할 정도라던가!
니콜로가 일으킨 모래 폭풍은 그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았다.
일단 지형 자체가 사막만큼 많은 모래를 끌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으므로.
그렇기에 마법을 개량했다.
넓은 범위를 뒤덮는 대신, 모든 힘을 일점에 집중시켜 위력을 끌어 올린 것.
그렇게 완성된 모래 폭풍이 사막의 그것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는 위력을 내보이며 날뛰기 시작한다.
쿠과과과과과과!
사납게 들이닥친 모래 폭풍의 무게가 브리아레오스를 짓눌렀다. 그와 함께 몰려온 바람이 그의 전신을 후려치고.
쿠과과과과과과과!
─하잘것없는 방해를!
포효와 함께 모래 폭풍이 크게 출렁였다.
안쪽에서 발생한 거력이 모래 폭풍을 찢어발기기 위해 마구잡이로 날뛰어댄다.
아마도 아멜리아와 러셀을 날려 버렸던 바로 그 공격일 터.
[큭, 더는…….]니콜로가 이를 악물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흘러든 냉기가 모래 폭풍의 아래로 깔리기 시작한다.
쩍, 쩌저적-.
갑작스럽게 겨울이 찾아오듯 거인 주변 일대가 동토(凍土)로 화하고.
지표를 따라 올라온 냉기가 순식간에 브리아레오스의 한쪽 발목을 뒤덮었다.
직후 놈을 짓누르고 있던 모래 폭풍이 소멸하는 것과 동시에 앨런이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입니다!] [으하하하하! 표적이 거대하니 아주 맞추기가 좋구나!]드워프 특유의 호탕한 음성이 귓전을 울리고, 얼어붙은 발걸음.
움직임이 고정된 찰나의 시간,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날카로운 검기(劍氣)가 날아들었다.
달인급 오러 수련자들의 공세라.
비록 비검술을 익힌 것은 아니었지만, 단순히 검기를 날릴 뿐인 기예라면 그들 역시 충분히 가능했기에.
스팟-.
검기(劍氣)에 베여 나간 브리아레오스의 피부 위로 작은 생채기가 연달아 생겨났다.
고작해야 따끔할 뿐인, 핏물조차 새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작고 얕은 상처.
[숲의 정령-!] [우리의 친구여, 부디 내게 저자를 붙잡을 힘을!]땅속을 기어 다니며 뿌리내렸던 수백, 수천의 칡 줄기들이 일제히 솟구쳤다.
이어 그의 전신을 칭칭 감기 시작한다. 물론 그들 역시 알고 있었다.
이런 짓을 해봐야, 녀석의 발을 묶어둘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수 초뿐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수 초가 쌓이면 십수 초가 되고, 십수 초가 모여 분이 되며 마침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테니.
기력과 마력.
둘 모두가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왕도 마탑주라 불리는 7써클 대마법사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벌써 몇 발 째 대군 마법을 쏟아내고 있는 그들이었으니, 아무리 마력이 많다 하더라도 버텨낼 수 없을 터.
비어가는 써클로부터 강렬한 탈력감이 찾아든다.
[큭─!]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니콜로가 침음을 흘렸다.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아멜리아나 아레인 역시 마찬가지.
아멜리아가 타고 다니던 토끼 인형은 충격파에 갈가리 찢겨 나간 지 오래다.
비행 마법을 사용해 허공을 부유하던 그녀가 연신 인상을 찌푸렸다.
[흣…….]입가를 훔치는 아레인의 소매 춤을 따라 검은 핏물이 묻어난다.
몇 번이고 충격파에 노출된 탓에, 내장이 진탕되며 올라온 울혈이었다.
일행 중 최강자라고 불리는 그들이 이 정도였으니, 다른 이들의 상태야 말할 필요도 없을 테지.
[괜찮으십니까. 사형…….]울혈을 토해내며 묻는 휴버트를 향해 버밀리온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왼팔은 부러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크게 부풀어 올라있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왼팔 근력 운동은……당분간 무리겠군. 근손실이 아주 제대로 오겠어. 늑골도 몇 개 부러진 것 같으니 흉부도 제외해야 할 거고…….]이런 상황에서도 저런 모습이라니. 사람이 참 한결같다고 해야 할지.
부들거리는 손끝으로 간신히 수인을 맺고, 써클을 쥐어짜며 휴버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두 사람의 사이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끼어든다.
[시간은……얼마나 지났습니까.]앨런 페이지였다.
평소답지 않게 마구잡이로 헝클어진 머리칼, 턱 끝까지 치밀어 오른 호흡 탓에 어깨가 계속해서 들썩거렸다.
게다가 그의 앞섶은 코와 입에서 흘러나온 핏물에 축축하게 젖어있기까지.
[대충 십 분 정도 지난 듯하네만…….] [앞으로 최소한 3분은 더 버텨야 하는 셈이로군요.]평소라면 몰라도, 찰나가 영원처럼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3분이란 시간은 억겁과도 다르지 않았다.
더욱 큰 문제는 그들의 연계가 위태롭기 그지없다는 점이다.
만약 그들 사이에서 아주 작은 어긋남이라도 발생한다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갈 것인즉─!
[큭……!]─크하하하핫! 말했잖느냐. 부질없는 짓일 뿐이라고, 이 버러지들아!
누군가의 침음과 함께 발생한 아주 잠시의 틈, 브리아레오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광포하게 효포(哮咆)하며 러셀을 향해 짓쳐 들었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와도 같은 질주, 콰득, 우드득!
흉험한 뼛소리와 함께 백 개에 달하는 녀석의 팔이 다시 한번 근섬유 마냥 꼬여들며 거대한 주먹을 만들어내고.
찰나의 순간, 거대한 팔과 허리가 화살과 같이 뒤로 젖혀진다!
그야말로 거신의 일격(Giant Blow)─!!
전투가 개시된 직후, 아멜리아 머윈을 날려 버렸던 바로 그 공격의 재현이었다.
[아, 안 돼!] [막─아!!] [러셀 경!] [사제─!]통신망 위에서 모두의 절규가 겹쳐지는 순간.
──────────.
이오를 둘러싼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다.
* * *
─────츠츳츳.
이명이 들린다.
세상이 정지하기라도 한 듯, 주변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그런 가운데 러셀을 향해 짓쳐드는 거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은인-!’
막아야 한다.
노예선에서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그가 나를 구해주고 지켜 주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그를 지켜 주고 싶었다.
일념(一念).
오로지 그 생각만이 이오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내게 힘이 있다면…….’
온 힘을 다해서라도 저 거인의 일격을 막아낼 수만 있다면!
‘숲이여, 부디 내게 힘을……!’
시간이 느려진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이오가 이를 악물었다.
발악이라도 하듯, 온몸의 힘을 쥐어짰다. 가뭄이라도 오듯, 몸 안의 생명력이 쩍쩍 말라가는 것이 느껴진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인의 주먹을 막아내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힘이었다.
일진광풍(一陣狂風)을 만들어내고, 킬로미터 단위의 지표를 뜯어내 버리는 일격을 막아내기 위해선 그 이상의 힘이 필요로 한 것인즉.
‘제발……내게 힘을!’
숫제 절규와도 다르지 않은 서원(誓願).
그 갈망에 응답하는 이가─, 힘이 있었다.
.
.
‘힘이 필요한가요?’
‘아…….’
자신을 향해 말을 걸어오는 존재의 모습을 확인하며 이오의 두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거울이라도 마주한 듯, 자신과 꼭 닮은 외모.
차이가 있다면 말을 걸어온 쪽의 머리칼과 눈의 색이 자신보다 더욱 은빛에 가까웠다는 점이었고-.
‘뿔…….’
그녀의 머리 양쪽을 따라 자라난 것은 자신의 그것보다 훨씬 거대한 은색의 뿔이라는 점이다.
고작해야 엄지손가락 첫 마디 정도의 크기인 자신과는 달리, 그녀의 뿔은 마치 산양의 그것이라도 된 듯 거대했기에.
그런 이오를 향해 말을 걸듯, 여인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이미 원하는 힘을 가지고 있답니다. 다만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죠.’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당신도 알고 계시잖아요. 당신이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지.’
‘용……의 힘.’
격세유전을 통해 어머니인 아레인보다 짙은 용의 피를 타고 난 그녀였으므로.
‘하지만 그 힘은…….’
각성하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나도 더딘 힘이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그런데 이미 힘을 가지고 있다니.
‘말했잖아요. 당신은 아직 그 힘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라고.’
이오의 생각을 읽은 듯, 그녀와 꼭 닮은 여자가 키득 하며 웃는다.
‘당신의 몸속에 깃든 용의 힘은, 혈통이 아닌 제가 당신에게 남긴 힘이랍니다. 이 힘을 온전히 당신의 것으로 하기 위해선 힘뿐만 아니라, 그에 얽힌 거대한 운명 역시 받아들여야 하구요.’
‘운명…….’
단어가 가진 묘한 무게감과 울림에 이오가 몇 번이고 그 말을 읊조렸다.
‘이 운명을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답니다. 평범한 엘프가 아닌, 엘프이면서도 동시에 용인 존재로서의 삶. 당신은 그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나요?’
그것이 어떤 삶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운명이라는 단어까지 쓰인 이상 마냥 평범하지는 않을 터.
본래라면 그 운명에 대해 물어야 옳을 테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오는 그에 대해 묻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올리며 전혀 다른 것을 질문했다.
‘그 힘을─.’
‘……?’
‘그 힘을 받아들이면 은인을……, 러셀 님을 구할 수 있나요?’
이오의 물음에 여인이 부드럽게 웃었다. 대답은 그것으로 충분.
‘그렇다면…….’
결심을 내린 이오가 주먹을 꽉 말아 쥐며, 결연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 힘을 받아들이겠어요.’
그 속에 깃든, 거대한 운명까지도.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좋아요.’
-여인의 몸을 따라 은빛 휘광(輝光)이 쏟아졌다.
‘이제 막 개화하기 시작한 힘이라 본래라면 무리겠지만, 이번 한 번은 특별히 제가 도와드리죠.’
츠츠츠츳-.
빛과 함께 여인의 음성이 이오의 몸속으로 흘러들고, 이어 그녀가 이오의 입을 빌려 말했다.
“본래라면 저 또한 그분을 섬겼어야 하는 몸이니까.”
.
.
화아악!
느리게 흐르던 시간의 흐름이 제자리를 찾았다.
[사─제!!]귀를 먹먹케 하는 절규.
그 절규가 채 끝나는 것보다 빠르게, 콰우우우우우우!
포효가 들려왔다.
별안간 나타난 은빛의 거대한 용(龍)이 두 쌍의 날개를 방패처럼 겹치며 러셀의 앞을 틀어막았다.
───────────!!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