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EPISODE.91
[드, 드래곤?]드래곤이 왜 이곳에?
마법의 조종(祖種)이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드래곤이었으나, 물질계의 역사에 있어 드래곤이 실제로 관측된 것은 까마득한 예전의 일이었다.
700년에 달하는 엔디미온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보다 더 먼 과거.
그런데 설마 이곳에서 드래곤을 보게 될 줄이야.
의문을 가득 담은 아멜리아의 외침이 통신망을 타고 전원을 향해 퍼져나가고, 뒤이어 아레인이 소리쳤다.
[설마……이오?]빛을 받아 찬란하게 반짝이는 용의 비늘이 은색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었던 것.
물론 확신은 없었다.
아무리 용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았다지만, 그것과 드래곤으로 화(化)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으니까.
애당초 그게 가능했다면, 드래곤이라는 신수가 지금처럼 희귀하지도 않았을 테고.
그런 어미의 외침에 이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는 대신, 천둥처럼 포효를 터뜨렸다.
콰우우우우우우-!!
지금 저 거체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이오가 아닌 이오의 속에 깃든 은룡의 잔재였으므로.
포효와 함께 바람과 철(鐵)을 관장하는 용이 두 쌍, 네 장의 날개를 방패처럼 겹치며 러셀의 앞을 틀어막았다.
여기서 말하는 철(鐵)이란 의미 그대로의 철(Fe)만이 아닌 물질계에 존재하는 광물 전체를 의미하는바.
쿠득, 쿠드득.
둔중한 소리가 울렸다.
은룡의 날개를 뒤덮은 비늘이, 갖은 종류 광물의 특성을 띠며 경화(硬化)되어가는 소리였다.
전성기-.
완전한 고룡(古龍)에 이른 은룡이었다면 비늘의 강도를 아다만티움, 그 이상까지도 끌어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은룡이 가진 힘은 전성기 시절의 그것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경질된 비늘의 강도(剛度) 역시 아다만티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허나 오랜 세월 타르타로스에 봉인되어 있으며 약해진 것은 브리아레오스 또한 마찬가지.
은룡과 거인.
마치 신화시대의 한 페이지를 재현해 놓은 것 같은 광경 속에서,
둔중한 해머로 두터운 방패를 찍듯. 거인의 일격이 은룡의 날개 위로 내리꽂혔다.
─────────────!
충격파가 쏟아지며 일대의 공기가 모조리 날아간다.
진동을 통해 굉음이 퍼져나갈 매질조차 사라지게 할 충격!
콰과과과과과과!
그보다 조금 늦게, 밀려났던 공기가 제자리를 되찾으며 광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거인이 입을 열었다.
오십 개에 달하는 입으로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드래곤, 역시 저놈은……!!
화악!
들불이 번져나가듯, 격노가 뇌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직후 브리아레오스가 다시 한번 팔의 형상을 변환시켰다.
쿠득, 콰드득!
하나로 집중되었던 백 개의 팔이, 거듭 나누어지며 도합 열 개의 팔로 화하고!
투쾅, 투쾅─!
은룡의 날개 위로 장대비처럼 권격이 쏟아졌다.
맹렬하게 그지없는 공세, 탄막과도 다를 바 없는 주먹질이라!
쿠쾅, 쾅, 콰앙!
맹공이 쏟아지고, 거체가 흔들리는 가운데 은룡이 입을 열었다.
[역발산(力拔山). 힘만으로 산을 뽑아 뒤흔들 거신이여. 몇천 년의 세월이 지났건만, 그 포악한 성격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군요.]─닥쳐라!
브리아레오스가 지지 않고 받아쳤다.
─그만한 힘을 가지고도 안정과 화합을 논하던 네 놈들이 이상한 것뿐, 힘을 가지고 태어난 자가 지배를 논하는 것이 뭐가 잘못이란 말이냐!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거인들이 토벌되었음을 아직도 깨닫지 못했을 줄이야…….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다시 한번 패배하게 될 겁니다.]그의 우둔함을 꾸짖으며 은룡이 입을 쩍 벌렸다.
화아악-!
일대의 바람이 입안으로 빨려들고, 용의 허파 깊은 곳까지 빨려 들어간 호흡은 더 이상 평범한 공기가 아니었다.
드래곤 브레스(Dragon Breath), 용의 권능이 깃든 은빛 숨결이 쏟아져 나온다.
콰아아아아아-!
오로지 용의 권능으로만 만들어 낼 수 있는 은빛의 숨결.
바람과 철이란, 양쪽 모두의 속성이 절묘하게 뒤섞인. 일반적인 물질계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숨결이었다.
비록 약해졌다곤 하나, 그 위력은 8써클 최고위 마법에 준할 정도!
쿠과과과과!
폭풍의 힘이 깃든 숨결에 브리아레오스의 신형이 몇 걸음 뒤로 밀려났다.
쿠드드득-!
그 궤적을 따라 발치 아래쪽으로 고랑이 깊게 파여 들었다.
거대한 덩치만큼이나 깊은, 차라리 협곡이라고 부르는 게 어울릴 규모의 고랑.
터무니없는 규모의 싸움이었다.
오십 개의 팔들을 겹쳐 은룡의 숨결을 막아낸 브리아레오스가 욕지기를 중얼거렸다.
─이 빌어먹을 암컷 도마뱀 따위가…….
초 근거리에서의 숨결.
숨결 속에 깃든 바람의 권능이 살을 깎아내고, 철의 권능이 신경계를 마비시키며 감각을 둔화시키는 것이 느껴졌다.
직격당한 자리에서부터 상처와 함께 뻐근한 감각이 점차 퍼져나갔다.
물론 당하고만 있을 그가 아니었지만.
─먼저 날개를 잡아 뜯고…….
밀려나던 몸이 균형을 잡기 무섭게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쿵.
지면이 무겁게 떨리고, 남은 쉰 개의 팔이 재차 엮여 들며 두 개의 팔로써 뭉쳐 든다.
쿠득, 콰드득-!
─그 후엔 산채로 심장을 도려내 씹어 먹어주마!
인간은 물론 물질계에 존재하던 모든 것을 먹이로 생각하던 거인이라.
포식자가 눈은 번들거리며 내뱉은 말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었으며 또한 맹세였다.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쉰 쌍의 눈동자가 일제히 흉험한 안광을 흩뿌렸다.
허나, 그는 스스로와의 맹세를 지키지 못했다.
그의 손이 은빛 날개에 닿는 것보다 먼저, 은룡의 전신이 환한 빛에 휩싸였던 것.
─뭣?
[이런…….]브리아레오스만큼이나 당황스런 목소리로 이오가 입을 달싹였다.
쏘아내던 브레스는 어느새 끝이 난 지 오래.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듯하네요.]이제 막 용의 힘이 제대로 깨어나기 시작한 시점에서, 용의 모습으로 돌아갔을 뿐만 아니라 강맹한 일격을 막아내고, 브레스로 반격을 가하기까지 했으니.
아직 여린 엘프의 육체로써는 그 힘을 견뎌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
지금의 상황은 그에 대한 반동이라 할 수 있었다.
파앗-.
용의 거체가 빛이 되어 사라지기 시작하고, 의식을 잃고 혼절한 엘프의 모습이 드러나는 가운데 이오의 목소리를 빌려 은룡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상관없답니다.]─?
[저는 제 역할을 다했으니까요.]그와 동시에 러셀의 영창이 마무리되었다.
[찰나마저 꿰뚫는 신살(神殺)의 힘이여. 지금 내 손에 임하라.]『브라흐마스트라』
(Brahmastra)
* * *
화아악-!
순식간에 말문이 멎었다.
한순간 끓어오른 대기가 일대를 무겁게 달구고, 피부를 따끔거리게 하는 열기에 버밀리온이 입술을 뻐끔거렸다.
[사, 사막……?]아무리 수십 킬로미터 일대가 파괴되었다 한들, 이곳은 대수림일진대.
이런 사막 같은 열기라니.
하늘을 밝게 비추는 태양이, 두 개가 된 듯한 존재감.
모두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와 같은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는 ‘그것’을 응시했다.
3m가량의 길이를 가진, 붉은색 장창으로부터 이 모든 열기가 전해지고 있었음이니.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던 니콜로가, 속으로 읊조렸다.
‘왜……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 같군.’
십오 분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반드시 헤카톤케이레스를 쓰러뜨릴 방법이 있다고 하던가?
그와 같은 자신감이 이해가 되는 마법이라.
도무지 6써클 마법사가 완성시켰다고는 볼 수 없는 대마법에, 두 명의 대마법사가 뭐에 홀린 듯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런 가운데, 러셀이 천천히 시선을 움직였다.
자신의 앞에 떠 있는 기다란 장창을 움켜쥐었다.
화륵-.
손이 닿는 부위에서부터 불꽃이 출렁인다.
고작 3m.
여느 장창과 다르지 않은 외견 속에 하늘과 땅 모두를 불태울 수 있는 거력이 깃들어 있었다.
주변에 일어난 아지랑이에 풍광이 일그러지는 모습이, 마치 공간이 휘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력(神力),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거력이 이 힘을 창의 형상으로 묶어두지 않았다면─.
‘반경 수백 킬로 내의 모든 생명체가 그대로 소사(燒死)했을지도 모르겠어.’
대수림 전체를 순식간에 황무지로 되돌려 버리는 것은 물론, 근 몇 년 동안 단 한 방울의 비조차 오지 않을 열사(熱砂)의 땅으로 바꾸어 버릴 힘.
본래라면 아무런 속성도 띠지 않아야 할 브라흐마스트라가 불꽃과 창의 형상으로 현현한 이유는 분명했다.
‘내게 익숙하기 때문에.’
만약 러셀의 장기가 얼음 마법이었고, 창이 아닌 검술을 익혔다면 그와 비슷한 형상으로 나타났을 테지.
이와 같은 신기(神器)에게 있어서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 것쯤은 일도 아닐 테니까.
“후우우…….”
부분적이나마 용인화를 사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마력이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 가운데 러셀과 눈이 마주친 브리아레오스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럴 수밖에.
브리흐마스트라는 그 옛날, 수없이 많은 거인을 집어삼키고 종국에는 거인왕의 심장마저도 꿰뚫었던 신기(神器)였으므로.
고작해야 군단장 따위가 그 압박을 견뎌낼 리가.
─크윽.
그것도 잠시, 이내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놈이 이를 악물었다.
뒤로 물러나려던 자신의 다리에 힘을 주며 버텼다.
─이, 이 내가, 겁을 먹었다고……?
본능 깊은 곳에서 끓어오른 공포심을 가리기 위해, 그가 발악하듯 내보인 수단은 바로 분노였다.
─그, 그럴 리가 없다. 나는 브리아레오스. 헤카톤케이레스의 막내이자 자랑스런 거인족의 군단장이란 말이다─!!
포효라기보단 절규에 가까운 고함. 그 속에서 브리아레오스의 눈동자가 좌우로 이리저리 굴렀다.
오십 개에 달하는 그의 뇌가, 태어난 이후 가장 격렬하게 회전하며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강한 힘이라도 맞지 않으면 그만!
규격을 벗어난 힘인 만큼 유지 할 수 있는 시간 또한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김현성.
이계구원자 본인이라면 몰라도 그 피를 물려받았을 뿐인 저 애송이에겐 그와 같은 힘을 유지할 만한 역량이 보이지 않았기에.
─고작해야 몇 초.
그 정도 시간만 버텨낸다면 이 자리에 자신을 쓰러뜨릴 수 있는 이는 없었던바!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꼭꼭 씹어 먹어주마.
대응 방식을 떠올림과 동시에 안정을 되찾은 그가 온 신경을 브리흐마스트라에 집중했고, 그 순간.
─────────────!!!!
하늘에 붉은 선이 생겼다.
브리흐마스트라가 쏘아진 궤적을 따라 공기가 밀려 나가는 것보다 빠르게 연소하고.
────투쾅!
뒤늦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신의 어깻죽지 위를 지나가는 궤적과, 그 자리에 잔상처럼 남은 열기.
주변으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을 확인하며 브리아레오스가 환희에 찬 외침을 토해냈다.
─으, 으하하! 피했……?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브리아레오스의 눈동자가 경악에 물들었다.
분명 십수 킬로미터 밖에 있어야 할 러셀이, 어느 순간 자신의 앞에 다가와 있었던 것.
─언제……!?
메모라이즈 해두었던 블링크를 일제히 사용하며 앞으로 날아든 러셀이 아공간을 열었다.
아라크네의 재봉기.
(Sewing Things Of Arachne).
전날 헤밍웨이로부터 받았던 또 하나의 신기를 꺼내 들며 남은 마력을 쥐어짰다.
꽈아아악!
마나 써클이 걸레처럼 비틀리며 비명을 내지르는 가운데, 재봉기의 끝이 번쩍이며 그 빛을 발한다.
끝에 걸린 날이 공간을 베어 가르고, 반대편의 바늘이 갈라진 허공을 뀄다.
화르르르륵-!
자르고 이어붙인 공간을 통해, 분명 빗나갔어야 할 브라흐마스트라가 다시 눈앞으로 돌아온다.
몇 수 앞을 내다보고 기물을 움직이며 포석을 까는 체스 경기 마냥.
처음부터 첫발이 빗나갈 것을 상정한 움직임.
단박에 그것을 움켜잡은 러셀이 허공중에 허리를 비틀었다.
브라흐마스트라(Brahmastra).
라만차(La Mancha), 거신 죽이기.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듯.
거신의 가슴팍을 파고든 붉은 궤적이, 하늘 끝까지 충천(衝天)했다.
문자 그대로 하늘을 불태웠다.
───────콰아아아!!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