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EPISODE.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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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익!
아무리 단단한 거인족의 외피라 해도, 태양의 온도까지 견뎌낼 수는 없었던바.
흑점 폭발과 가까운 온도의 창이 순식간이 그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고통을 느끼는 것보다 먼저 신경이 타들어 간다.
파고든 불길이 내부에서부터 폭산(爆散)하며 그 너머의 힘줄과 근육, 뼈 따위를 살라 먹었다.
태운다기보다는 녹여 버린다고 해야 마땅한 개념.
브리아레오스의 눈동자가 뒤집혔다.
─꾸륵……!?
파문처럼 확산하는 불길에, 그의 몸이 당장에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고.
피부 아래로 붉은색 불길이 선연하게 드러나는 순간!
콰아아아아아!
통제되지 않은 불길의 여파가 그대로 하늘을 향해 충천(衝天)했다.
홍천(紅天)이라.
불길의 색이 번져 나가며, 하늘이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반경 수십 킬로미터 일대의 하늘을 모조리 불길로 뒤덮어 버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일대의 구름을 모조리 증발시켜 버리기까지!
의미 그대로 하늘을 불태우는 광경이었다.
[허……, 허허…….]어지간한 8써클 마법을 압도적으로 뛰어넘는 위력에 니콜로가 헛웃음을 흘렸다.
[……신성(神性), 신기를 이용한 마법의 일종인 거야?]그보다 섬세한 감각을 지니고 있는 요정족 혼혈, 아멜리아 머윈이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저만한 공격에 피격했다면, 아무리 신화의 거인이라 해도 멀쩡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쿠구구궁-.
그들의 생각대로, 브리아레오스의 거구가 천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쾅!
한쪽 무릎이 바닥에 처박히기 무섭게 지표가 출렁이기 시작하고, 거구가 기우뚱하며 기울어졌다.
지표에 내리꽂히는 충격만으로 지축을 뒤틀고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질량.
[피, 피해야…….]딸인 이오의 몸을 보호하며 아레인이 중얼거리려는 찰나, 누군가의 음성이 끼어들었다.
[……저거 떨어지는 거 아닙니까?]누군가의 말마따나, 러셀의 신형이 추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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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에엑!!”
기울어지는 거신의 모습을 응시하며 러셀이 핏물을 게워냈다.
눈알이 시큰거리고 관자놀이에선 연신 불똥이 튀었다.
비어버린 써클에서 허기와 다를 바 없는 탈력감이 쉬지 않고 치밀어 올랐다.
브라흐마스트라는 분명 러셀이 가진 바 능력을 월등히 뛰어넘는 마법이었다.
막대한 마력을 부담하기 위해 부분적이나마 용인화를 사용했음은 물론, 캐스팅 시간을 단축하고자 뇌력을 한계까지 쥐어짰으니.
그 반동이 뒤늦게나마 몰려오고 있었다.
‘아…….’
중력의 영향을 저항 없이 온몸으로 받아, 실 끊어진 추처럼 몸이 추락하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입을 벌렸다.
브리아레오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미션을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으로…….]귓전으로 쉬지 않고 들려오는 알림음이 그 일을 대신해주고 있었으니까.
흐려지는 의식 속, 몇 번인가 눈을 깜빡이며 러셀이 하늘을 응시했다.
불길이 퍼져나가며 만들어진 붉은 하늘이 여전히 전방을 채우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홍천(紅川). 하늘은 마치 붉은 강이 넘실대는 것처럼도 보여, 러셀은 어지러움 속에 물속을 유영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불어온 강풍에 몸이 이리저리 뒤집힐 때마다, 놀란 얼굴로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이들의 면면이 눈에 들어왔다.
허나 저들은 알지 못할 테지.
제대로 완성된 브라흐마스트라의 진력(盡力)은 이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을.
자신이 소유하고 있을 뿐인.
제대로 발현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힘을 과연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명백히 ‘그렇지 않다.’였던 바.
다시 한번 붉은 하늘을 우러르며 러셀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언젠가는 꼭…….’
그 말의 끝으로 러셀의 의식이 툭-하고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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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이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며칠 가량의 시간이 더 지난 후였다.
‘윽…….’
깨어난 순간, 가슴 어림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낀 러셀이 절로 신음했다.
비어버렸던 써클의 마나는 상당히 회복되어 있었지만, 한계를 넘어 출력을 쏟아내었던 마나로드에는 여전히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었던 탓이다.
‘후우…….’
길게 숨을 내뱉으며, 오버로드와 위저드바디로 마나로드를 보듬은 러셀이 찬찬히 눈을 떴다.
자신이 누워있는 곳을 확인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천을 둘러 만든 암녹색의 천장이었다.
‘천막……, 막사인가?’
규모가 상당한 걸 보니 조사대가 쓰던 소형 텐트는 아닌 것 같고, 아마도 7군단이 이용하는 막사인 것 같았다.
‘내가 기절해 있는 동안, 폐허가 된 대수림을 빠져나와 7군단의 군영까지 왔다는 건…….’
최소한으로 잡아도 일주일 이상은 기절해 있었다고 봐야 하는 것이 옳았다.
‘어쩌면 열흘 이상일지도…….’
그렇게 생각하며 러셀이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무려 열흘이나 근육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렇지 않으면 그날 전투의 여파가 남아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윽-!’
손끝을 움직이는 순간, 짜르르한 근육통이 척추를 타고 단숨에 뇌리까지 치밀어 올랐다.
고작 손끝을 움직였을 뿐인데, 이 정도 고통이라니.
인상을 한껏 찌푸린 러셀이 천천히 감각을 확장시켰다.
근육과 관절 따위를 부드럽게 조절하며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죽겠군…….’
맥라이 휴스와의 전투 이후로 이만한 상처를 입은 것은 이번이 처음. 그때였다.
“으, 은인─!”
막사의 입구가 펄럭이며, 이오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댕그렁, 철벅!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더운물과, 깨끗한 수건 따위가 바닥을 나뒹굴고.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이오가 러셀을 향해 달려왔다.
“깨어나셨군요!”
“예. 여전히 몸이 좀 쓰리긴 하지만……일단은 깨어났습니다.”
“세상에. 의무관의 말로는 앞으로 닷새 정도는 더 기절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그의 말에 러셀이 멋쩍게 웃었다.
“회복력 하나는 상당히 좋은 편이라서요.”
아마도 마나로드와 위저드바디가 지니고 있는 힘 때문이겠지만, 어쨌건 간에.
“…….”
“…….”
서로 어색하게 시선을 교환하던 와중, 먼저 입을 연 것은 러셀이었다.
“……괜찮으시다면 물 한 잔만 주시겠습니까. 아무래도 목이 타서요.”
“앗, 예예!”
그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이오가 황급히 대답했다.
재빨리 한켠에 놓여 있던 주전자에서 물을 따랐다.
‘……나도 참, 왜 멍하니 있었던 거람.’
쪼르륵─.
찻잔에 물이 담기고, 이내 그것을 받아 들던 러셀이 비틀했다.
“윽.”
찻잔을 받아 드는 순간, 오른팔의 근육이 욱신거리며 뒤틀렸다.
댕그랑-.
철제 컵이 바닥에 떨어지며 나뒹굴고.
‘마나로드가 뒤틀린 자리인가?’
근섬유 위에 마나로드를 개척한 것이, 설마 이런 상황을 불러올 줄이야.
“괘, 괜찮으신가요?”
황급히 마른 수간을 가져와 쏟아진 물을 닦아주며 이오가 물었다.
“조금 저리긴 하지만 괜찮습니다.”
다만 문제는…….
‘이래서야 물을 마실 수가 없겠군.’
컵을 쥐는 것만으로도 근육이 욱신거리다니.
단순히 근육의 문제가 아니라 마나로드가 꼬인 것이라 풀기 위해선 몇 시간 정도가 필요할 텐데.
‘물은 그 후에 마셔야 하는 건가.’
고소를 짓고 있길 잠시간, 이오가 더듬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제, 제가 마시게 해드릴까요. 은인?”
“……예?”
조금도 예상치 못했던 말에 러셀이 반문하고, 삽시간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이오가 마구잡이로 손사래를 쳐댔다.
황급히 덧붙였다.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제가 컵을 잡고 물을 흘려 넣어 드리면…….”
무슨 말인가 했더니.
‘그런 의미였나.’
러셀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그럼…….”
러셀이 자세를 고쳐 앉자, 이오가 컵에 다시 물을 받아 러셀의 입안으로 흘려 넣어 주었다.
입술 끝에 닿은 컵이 괜히 덜덜 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마냥 착각이었을까.
그렇게 목을 축인 후, 한결 갈증이 가시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오 님은 괜찮으신 겁니까?”
“아, 네. 시간도 열흘 정도 흘렀고……저는 당시의 싸움에서 그렇게 큰 부상을 입진 않았으니까요.”
열흘, 처음 러셀이 계산했던 것과 크게 차이가 없는 시간이다.
“다른 분들도 꽤 빠른 속도로 몸을 회복하고 계세요. 아무래도 엔디미온 측에서 보내준 포션의 효과가 좋았나 봐요.”
그럴 테지.
그 속에는 에이단 아울의 특제 촉매제가 깃들어 있을 테니까.
“버밀리온 님은 뼈가 몇 개나 부러진 탓에 완전히 붙으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휴버트 님은 이제 거의 다 완치되었다고 해도 될 정도랍니다.”
“그렇군요…….”
사형들의 안녕까지 전해 들은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깨어났다는 이야기가 막사 밖으로 퍼져나가면, 두 사람 역시 자신을 보러 올 것이다.
그렇게 주변인들에 관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이어가길 얼마간.
“저…….”
잠시 망설이던 이오가 러셀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 은인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
“이걸 좀 봐주시겠어요?”
말을 하며 그녀가 자신의 옆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 옆에 감춰두었던 은색 뿔 한 쌍을 드러냈다.
전보다 두 배 이상 자라난, 거의 엄지 정도의 크기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사이즈.
“아!.”
그제야 전투 중, 이오가 은룡으로 화(化)했음을 떠올리며 러셀이 탄성했다.
“그날, 저는 은인을 구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로서 제 속에 깃들어 있던 어떤 용의 힘을 받아들이게 되었답니다.”
이오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당시 있었던 일을 짤막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은인과 제가 어떤 거대한 운명으로 엮이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어요. 물론 아직 그게 어떤 운명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착각이었을까.
이오에게서 시작된 어떤 떨림이 자신에게까지 흘러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느끼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두 사람의 영혼도 같은 운명으로 연결되었답니다.”
조금씩 떨림을 가라앉히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간다.
“그러니 혹시라도 알고 계신다면, 설명해 주시겠어요? 은인과 제가, 과연 어떤 운명으로 엮이게 된 것인지.”
“…….”
잠시간의 침묵.
러셀이 입을 연 것은 다시 수 분가량이 지난 후였다.
“저도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도, 이오 님께는 설명을 드려야겠죠.”
결정을 내린 러셀이 그간의 이야기를 찬찬히 설명하길 얼마간.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토끼처럼 놀란 눈을 하고 있던 그녀가 찬찬히 몇 개의 단어를 곱씹었다.
“그렇군요. 용제와 차세대 용. 은인과 저는 그런 관계로 엮이게 된 거군요.”
평범한 엘프가 아닌, 엘프이면서도 동시에 용인 삶.
그때의 말은 바로 이것을 의미했을 테지.
영혼의 연결이라는 것 역시 엄밀하게 말하면 대등한 관계가 아닌, 러셀에게 일방적으로 종속된 관계였고.
“괜찮으십니까?”
“……?”
“이러니저러니 해도, 제게 종속된 것 아닙니까. 그리고 용으로서의 힘이 이오 님께 무슨 영향을 끼칠지도…….”
러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오가 손바닥으로 러셀의 손등을 덮었다.
“그렇지 않답니다.”
평안한 눈동자로, 고개를 저었다.
“누가 뭐라고 하건 제가 이오인 건 바뀌지 않고, 게다가 그날 있었던 일 또한 제 선택이었으니까요.”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었던 힘을, 받아들인 것은 오롯이 자신의 선택이라.
게다가 러셀에게 말하지 못한 본심 역시 있었으니…….
‘어쩌면 저는 이렇게 되는 것을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답니다.’
비록 원하던 모습은 아니라지만, 타인들보다 훨씬 끈끈하게 이어진 관계.
뿐만 아니라-.
‘당신께 어떤 반려가 있건 간에, 은인의 곁을 가장 오랫동안 지킬 이는 바로 저일 테니까요.’
일만 년을 충분히 산다는 용의 수명을 감안한다면 분명 그러할 터.
자연스런 사고의 흐름에 이오가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어머.’
욕심이 그리 많지 않은 엘프족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이런 속내를 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어쩌면 이 역시 용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기분.
“그런데 이제 은인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은인은 여전히 은인이지만, 용제가 되셨으니…….”
그 기분에 이오가 살포시 웃었다.
“그렇다고 용제님이라고 부르는 건 주변에 너무 튀는 것 같기도 하고…….”
매력적인 보조개를 슬며시 드러내며 말했다.
“……주인님?”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