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EPISODE.92
“풉─!”
조금도 예상치 못했던 대답에 호흡이 흐트러졌다.
쿨럭 쿨럭─.
마른기침이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폐부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이 신경계를 타고 치밀어 올랐다.
“윽, 쿨럭.”
인상을 찌푸리며 잔기침을 쏟아내길 몇 번인가.
“괘, 괜찮으신가요?”
당황한 이오가 빠르게 러셀을 부축했다.
용의 인자가 상당히 깨어났다곤 하나, 여전히 엘프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순진무구한 눈동자.
별 의미를 두지 않은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면전에서 ‘주인님’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남자인 이상 누구라도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될 터.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인지, 머릿속으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짚었다.
‘어휴.’
고개를 도리질 치며 말을 정정했다.
“주인님이라는 말도 너무 과한 것 같군요.”
용제와 용.
엄밀히 보면 주종관계이긴 했다.
허나, 미모의 엘프에게서 주인님이라 불리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불필요한 오해가 일어날 여지가 있었던바.
‘그때마다 해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음…….”
러셀의 말에 검지 끝으로 턱을 받치던 이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뭐가 좋을까요?”
“흠.”
함께 고민하던 러셀이 이내 제안했다.
“그냥 러셀은 어떻습니까?”
생각해보니 멀쩡한 이름을 두고, 굳이 다른 호칭을 고민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만날 때마다 ‘은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었고.
“러셀 님, 러셀 님, 러셀 님 …….”
굳이 님을 붙일 필요가 없긴 했지만. 이오가 새로운 호칭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고작해야 호칭 하나 바꿨을 뿐이지만, 전보다 거리감이 확연히 줄어든 것이 느껴졌다.
가까워진 이 거리감이 퍽 마음에 들었던지라, 이오가 생긋 웃었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게요. 러셀 님.”
.
.
이오가 돌아간 후에도, 러셀은 한동안 바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가 깨어났다는 소식에, 당시 조사대에 있었던 이들 대부분이 한 번씩은 찾아와 인사를 건넸던 것.
그럴 수밖에.
그도 그럴 것이,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 중, 러셀에게 구명(救命)의 은혜를 입지 않은 이는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사제. 괜찮은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왔네만, 생각보다 문제로군.”
“……?”
“몸이 다 나을 때까지 정양을 해야 한다니. 근손실이 상당하겠어.”
휴버트와 버밀리온.
두 사형제는 물론 앨런 페이지와 오러 수련자들에 이어, 드워프, 아레인 등등…….
마지막으로 아멜리아 머윈과 올리브의 방문까지 받은 후에야 러셀은 비로소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후우…….”
자세를 바로잡고, 길게 숨을 내쉰 그가 아공간을 열었다.
‘이런 점에선 확실히 편하네.’
일반적으로 아공간이란, 마력을 소모해 열어야 하는 고등 마법의 일종이었다.
지금처럼 마나로드가 꼬여 있는 상황에서 아공간을 열기 위해선 어느 정도 고통을 감내할 필요가 있었던 것.
허나, 그런 여타의 아공간과는 달리 러셀의 아공간은 조금 특별했다. 미션의 보상으로 받은 공간인 만큼, 이렇다 할 마력의 소모 없이 의념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아공간을 열 수 있었으니까.
러셀이 그곳에서 꺼낸 것은, 여분으로 가지고 있던 포션 중 하나였다.
퐁-.
밀봉되어 있던 마개가 열리고, 포션의 향이 막사 가득 퍼져나간다.
‘딸기향…….’
촉진제를 넣으면 향과 맛이 이렇게 바뀌는 것은 어디까지나 에이단의 개인적인 취향이라던가.
언제고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실소하길 잠시간, 돌연 뇌리에 어떤 말 하나가 스쳤다.
‘거동하기까지 열흘, 완전히 쾌유하기까지는 포션의 힘을 빌려도 한 달 정도는 걸릴 거라고 하던가?’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던 군의관의 판단이었다.
마도의학(魔道醫學)에도 어느 정도 조예가 있는 군의관이었던 만큼, 평범한 마법사였다면 그 기간이 얼추 들어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러셀에게는 남들과는 다른 힘이 한 가지 존재하고 있었던바.
‘오버로드와 위저드바디.’
포션을 입에 털어 넣은 러셀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화아악-!
천천히 써클을 회전시켰다.
‘써클 주변의 마나로드도 꼬여 있는 만큼, 천천히. 조심하면서…….’
오래된 기계장치 톱니바퀴에, 기름칠을 하고 녹을 벗겨내듯 섬세한 움직임.
츠츠츠츳-.
그렇게 흘러나온 마력이 일차적으로 써클 주변의 마나로드를 가볍게 어루만지고, 간신히 물꼬가 트였음을 확인하며 러셀이 일부 마력의 머리를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방금 들이킨 포션의 약력과 만나게 했다.
‘외상보다는, 내상(內傷)에 조금 더 효과를 미칠 수 있도록.’
화아악-.
마력과 약효가 뒤섞이며 전신을 휘돌기 시작한다.
포션의 약효가 전신의 마나로드를 보듬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되는군.’
본래라면 내외(內外)를 가리지 않고 퍼져나가 회복을 도왔을 포션의 약효였다.
허나, 지금 우선시해야 할 것은 외부의 상처보다는 내부의 상처였던 바.
러셀은 포션의 약효를 마력과 뒤섞이게 하면서, 그 힘을 온전히 내부에만 미치게 한 것이었다.
‘거기에 오버로드와 위저드바디가 가지고 있는 회복력까지 더해지게 되면…….’
마력이 흘러간 자리를 따라 꼬였던 마나로드가 조금씩 풀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포션의 약효가 이지러지고 상처 난 부분의 회복을 돕고, 화아아악-.
그렇게 수 시간. 전보다 한결 몸이 개운해졌음을 느끼며 러셀이 찬찬히 눈을 떴다.
냉정하게 자신의 상태를 진단했다.
‘대충 1할을 조금 넘는 정도인가…….’
이 속도라면, 길어도 일주일 안에는 침상을 털고 일어날 수 있을 테지.
처음 군의관이 진단했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
‘그럼 이번에는…….’
그때였다.
천막의 입구가 펄럭이며 바깥쪽에서 장신의 누군가가 들어온 것은.
스륵.
한쪽 눈을 가린 안대에 대륙인 치고는 가무잡잡한 피부와 가사(袈裟)같은 형태의 로브까지.
마치 동방의 승(僧)과 같은 외견을 한 사내, 왕도황탑주. 니콜로 마키아벨리였다.
한쪽 눈이 우묵하게 가라앉은 것이, 어쩐지 조금 퀭해 보이는 안색.
“……내가 집중을 방해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괜찮습니다. 방금 막 끝난 참이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네만. 아 그대로 앉아 있게. 몸도 좋지 않은 사람이 굳이 일어날 필요는 없을 테지.”
고개를 끄덕이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려던 러셀을 만류했다.
“그리고 인사를 해야 할 쪽은 자네가 아니라 내 쪽일 터.”
빠르게 고개를 숙이며 덧붙였다.
“감사하네.”
앞서 많은 이들에게도 각기 다른 방법으로 고맙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들은 바 있었다.
하지만, 니콜로의 음성은 어쩐지 그 무게감이 조금 달랐다. 다른 이들의 그것에 비해 훨씬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지는 음성.
“자네가 아니었다면, 많은 이들이 그 자리에서 뼈를 묻었을 테지. 어쩌면 인원들 전부가 전멸했을지도 모르고.”
‘아─.’
그 무게감의 의미를 깨달은 러셀이 속으로 탄식했다.
‘그때의 상황에, 총지휘관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고 계신 건가.’
모든 지휘 권한이 자신에게 있었고, 일행 중 손에 꼽히는 강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방도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책임감.
그 두 가지 감정이 지금 니콜로의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었지.’
맥라이 휴스와 전투를 벌인 후, 휴버트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며 러셀이 말을 이었다.
“제게 쓸 만한 방법이 있었던 것뿐,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
“저 혼자였다면 절대로 그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했을 겁니다.”
약 십삼 분가량.
마법을 캐스팅하기 위해 무방비해지는 그 시간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놈이 아니었기에.
만약 다른 이들이 목숨을 걸고 시간을 끌어 주며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았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을 터.
“니콜로 님도 그들 중 한 분이시지 않습니까.”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나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그리고 몇 년 전이긴 하지만, 니콜로 님께서도 저를 구해주지 않으셨습니까.”
이번에도 역시 맥라이 휴스와 연관된 일이었다. 만약 뒤늦게나마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분명 자신은 그곳에서 뼈를 묻었을 터.
“정 마음이 쓰이신다면, 그때 입은 은혜를 조금 늦게 갚았다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고작 몇 마디 말로, 그가 어깨 위의 짐을 완전히 덜어낼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그런가…….”
하지만, 전혀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었던 듯, 그가 찬찬히 턱 끝을 주억였다.
“그렇게 말해준다니. 고맙네.”
조금 전보다는 한결 나아진 표정.
“그보다, 몸은 좀 어떤가? 군의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달 정도는 정양이 필요할 거라고 하던데.”
“음.”
러셀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얼마나 걸릴진 모르겠지만, 몸은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와중입니다.”
일주일 정도면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해봐야, 어지간해선 믿지 않을 것이었기에.
차라리 직접 보여주는 것이 나을 테지.
“그렇군.”
고개를 주억이던 그가 돌연 떠올랐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런, 잠시 인사만 하고 나갈 생각이었거늘. 몸도 좋지 못한 친구를 너무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어.”
그럼 이만 쉬도록 하게-,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리던 그가 막사의 입구에서 러셀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몸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하게. 내가 구해다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구해다 주겠네.”
그렇게 니콜로가 돌아간 후.
다시 혼자가 된 러셀이 손끝을 움직여 아공간을 열었다.
니콜로가 들어오기 전, 하려던 일을 다시 이어가기 위함이었다.
그곳에서 러셀이 꺼내든 것은, 금빛으로 반짝이는 가면이었다.
‘깨끗한 정신의 가면.’
브리아레오스를 쓰러뜨리고 받은 보상이었다.
툭-.
손끝으로 가면을 움켜쥐자 그 용도가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었다.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은 정신을 유지 할 수 있도록 보조해주고, 정신계열 마법과 정신오염에 대한 내성을 부여하는 건가?’
저주는 물론 환각이나 환영에 역시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정신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다른 계열로 구현되는 환영 마법까지는 막을 수 없었지만-.
‘그렇다 해도 효용은 충분해.’
대(對) 마법사 전(戰)에 있어, 맑은 정신과 판단력을 유지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취할 수 있는 장점이 상당했으므로.
게다가, 정신 내성을 높여주는 힘은 저주를 주로 사용하는 흑마법사들을 상대할 때, 숨겨둔 조커 카드로써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쓸 만한 수단을 얻었군.’
그렇게 생각한 러셀이 다시 아공간 속에 손을 넣었다.
‘어디…….’
전날, 끈을 이용해 엮어 두었던 다른 두 개의 가면을 꺼냈다.
한 번에 세 개의 가면 모두를 착용할 순 없으니, 이런 식으로 엮어 둔다면 언제든 악세서리처럼 착용할 수 있을 터.
새로 얻은 가면을 엮기 위해 그것들을 나란히 늘어놓은 순간.
우우우웅-.
울림과 함께 세 개의 가면이 서로 공명이라도 하듯, 잘게 진동하기 시작하고.
화아악-!
허공으로 떠오른 황금가면이 휘황찬란한 빛에 휩싸이기 무섭게. 알람이 들려왔다.
[세 개의 가면이, 한 자리에 모여 진정한 모습을 되찾습니다.] [솔로몬의 왕관(Crown Of Solomon)을 완성하셨습니다.]그 옛날, 신화의 시대.
마도제국을 건국했다는 마법사왕(魔法師王), 솔로몬. 그의 유물 중 하나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화아악!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