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
EPISODE.93
“─왔는가.”
지휘부 막사로 들어가자, 먼저 온 인원들이 자리를 지키며 앉아 있었다.
엘프나 드워프, 페더족과 페어리들까지 보이던 평소와는 달리, 오로지 엔디미온의 인원들만이 자리한 지휘부.
그들 사이에선 무거운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아직 제대로 된 내용을 듣지 못했을 뿐
이들 중 왕가의 문양이 수놓아진 붉은 깃발을 보지 못한 이는 없었기에.
러셀을 비롯한 네 명의 마도사가 자리에 착석하고, 그로부터 잠깐 후.
몇몇 인원들이 뒤이어 들어오고, 모든 이들이 참석한 것을 확인하며 니콜로가 입을 열었다.
“비스마르크 대공. 그자가 결국 숨겨왔던 야욕을 드러내었네.”
앞뒤.
거추장스러운 말을 모조리 생략하고 돌입한 본론.
충격적이기까지 한 한마디에 잔잔하던 수면 위로 떨어진 돌멩이 마냥, 막사 내로 소요가 퍼져나가고.
“야욕을 드러냈다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비스마르크 대공이 어떤 야욕을 품고 있는지를 모르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지금까지 대놓고 드러내지만 않았을 뿐, 수면 아래에서 그 욕망을 몇 번이고 드러냈던 그였으니까.
“앤티골과 카르고, 두 개의 적탑을 중심으로 도합 다섯 개의 마탑이 그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네. 그리고…….”
앤티골 적탑.
전날 악연으로 엮인 적 있는 블레인 트릴로지가 탑주로 있는 마탑이다.
그리고 그는…….
‘스승님께 염탑주 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해 원한을 품고 있는 자였지.’
카르고 적탑은, 그런 블레인의 제자가 탑주로 있는 곳이었고.
‘그 외에도 대공과 뜻을 함께하는 마탑이 무려 셋─.’
오래도록 숨을 죽이고 있었던 만큼 단단히 준비를 해온 것이겠지.
마스터 급 전력이 역모에 가담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다분히 위협적이거늘.
‘뿐만 아니라 탑주 급 전력이 최소한 넷은 더…….’
아직 끝나지 않은 니콜로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게다가, 13군단과 21군단이 대공에 동조하며 현재 왕도를 공격 중이라고 하더군. 물론 정보가 전해진 시점에선 12군단과 왕도수비군, 가을달성의 기사들이 연합해 그 공격을 막고 있는 중이라고 하네만…….”
니콜로가 말끝을 흐렸다.
13군단과 21군단.
둘 모두 5군단이나 7군단처럼 병력이 많은 군단은 아니다.
두 군단의 병력을 모두 합산하더라도 그 숫자는 3만 내외.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잠깐, 21군단이라면……?!”
누군가 기함하듯 소리친 말에 니콜로가 입술을 우물거리더니 한 글자씩 씹어 뱉었다.
“적색 늑대, 오거스터 울프. 그 작자가 군단장으로 있는 곳이지.”
“그 오만불손한 자가 기어코!”
오거스터 울프가 역모에 관여했단 소식에 몇몇 기사들이 결국 노기를 숨기지 못하고 드러냈다.
그럴 수밖에.
아무리 초인(超人)의 경지에 오른 실력자라곤 하나, 용병 시절부터 바닥을 전전하며 올라선 그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기에.
출신을 떠나, 그는 품성이나 인간성 자체에 결여가 있는 이였다.
‘제국에 맥라이 휴스가 있다면, 엔디미온에는 오거스터 울프가 있다……고 했지.’
언제고 들었던 그에 관한 소문을 떠올리며,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
이어 문득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스승님이나 창탑주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염탑주(炎塔主), 다리아 스노우화이트.
창탑주(蒼塔主), 헤밍웨이 멜빌.
두 사람의 대마도사는 제국에서도 꺼리는, 명실상부 왕실 최강의 전력이었다.
그렇기에 대공 또한 지금에 이르러서야 그 야욕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러셀의 물음에 아멜리아 머윈이 대꾸했다.
설혹 자신들의 계획에 두 명의 초인을 끌어들였다 한들, 저 두 사람을 넘지 않고서는 역모를 성공시킬 수 있을 리가 없다.
“……행방불명.”
“……?”
“……언니랑 영감. 두 사람 모두 행방불명이야.”
“두 분 모두 말입니까?”
“허, 그럴 리가…….”
앨런 페이지와 휴버트가 즉각적으로 반응했고, 아멜리아 머윈이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녀 역시 쉽게 믿을 수 없단 표정이었다.
“……아마도 대공 측에서. 뭔가, 수를 쓴 거야.”
지금으로선 그리 생각하는 것이 정론. 문제는 그 수가 무엇이냐는 점이다.
그때였다.
“지금 당장 7군단을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7군단장이 분기탱천(憤氣撑天)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 이 역도의 무리들을─!!”
그런 그를 니콜로가 만류했다.
“진정하게.”
“……허나!”
“군단장의 마음은 이해하네만, 지금 당장 7군단을 움직인다고 해도 왕도에 도착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걸세.”
그리고 지금 필요한 것은 7군단과 같이 많은 숫자의 병력이 아니었다.
물론 병력이 늘어나면 도움이 되기야 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 진짜로 필요한 것은 대공 측의 강자를 저지할 실력자들이었던 바.
“가능한 한 빠르게 왕도에 도달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지로군요.”
워프 게이트를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왕도의 게이트는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자들도 외부에 있는 실력자들을 가장 거슬려 할 테니까.’
분명 왕도에 있는 게이트에 어떤 식으로든 수를 써놨을 것이 분명했다.
설혹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위험부담이 너무 컸고.
‘게이트를 이용하는 도중 강제적으로 간섭을 받게 된다면─!!’
신체의 일부가 절단되는 것쯤은 그리 큰 문제도 아니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내장만 다른 곳에 전송되거나, 공간의 틈새에 완전히 갇혀 버릴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었다.
“최고 속도로 붉은 협곡을 주파한다면…….”
“거기서 왕도 인근의 마탑까지 게이트로 이동…….”
“다시 왕도까지…….”
최소한으로 따져도 열 시간가량은 필요했다.
이마저도 전투에 쓸 최소한의 힘과 체력만을 남겨두고 이동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이런저런 상황들을 가정하면, 그보다 두 시간 정도는 더 필요할 터.
“……국왕 폐하, 그리고 왕녀 전하. 지켜야 해.”
저들의 목적이 역모(逆謀)이고, 목표가 옥좌(玉座)인 이상 왕족을 그대로 둘 리 없었으니까.
수도를 지켜내더라도 그 두 사람을 잃는다면 패배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
“폐하께는 길리언 펄슨 경이 붙어 있겠지만, 왕녀 전하가 걱정이로군.”
믿음직한 로얄 나이츠들이 붙어 있겠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일정 수 이상의 탑주 급 강자와 초인 급 인원이 그쪽으로 향한다면─.
모두가 대답 대신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레이먼드 백작은 왕실의 부마.’
‘왕녀 전하의 약혼자였지.’
몇몇은 슬그머니 러셀의 눈치를 보기도 했다. 그 순간, 니콜로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미적이고 있을 여유는 없겠군. 그럼 당장 움직이도록 하지.”
이어 7군단장을 돌아보며 명했다.
“7군단장.”
“예. 총사령.”
“자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금 7군단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는 걸로 아네. 이 역시 나라를 위한 일이니, 충실히 해주시게.”
지금 7군단이 해야 할 일이란, 5군단과 힘을 합쳐 붉은 협곡에 남은 마물 무리를 토벌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니콜로의 말에 7군단장이 고개를 떨구며 마지못해 대꾸했다.
이어 니콜로가 막사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순간, 러셀이 입을 열었다.
그의 걸음을 붙잡았다.
“황탑주님.”
“……무슨 일인가. 레이먼드 백작?”
“괜찮다면, 제가 먼저 왕도로 복귀해도 되겠습니까?”
“그게 무슨……?”
한순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 니콜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어 아멜리아 머윈이 러셀의 곁으로 날아오며 물었다.
“지금 당장, 복귀 방법. 있는 거야?”
“예.”
자신 있게 답변하는 러셀의 왼손 소지 끝에서, 사파이어 반지 하나가 새파란 빛을 발했다.
.
.
에로스와 프쉬케의 반지.
이는 전날 러셀이 미션을 통해 얻은 한 쌍의 반지이자 아티펙트였다.
사랑의 신 에로스(Eros)의 이름이 붙은 것에는 푸른 사파이어가.
그의 연인이었던 프쉬케의 이름이 붙은 것에는 붉은 가넷이 장식되어있는 것이 그 특징이라.
두 개의 반지가 한 쌍을 이뤄 완성되는 이 반지의 효과는 실로 간단했다.
‘상대방이 어디에 있건, 에로스의 반지를 가지고 있는 쪽이 프쉬케의 반지를 가진 쪽에게 공간이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었지.’
그리 대단한 능력은 아니었지만, 신의 이름이 붙은 반지였다.
사실상 신기(神器)라고 해도 무방한 수준. 어지간한 공간 간섭은 통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러셀의 설명에 아멜리아 머윈이 그와 니콜로를 번갈아 바라봤다.
“……마음은 이해. 하지만 너보단 우리 중 한 사람이 가는 편이─.”
“죄송합니다.”
“……?”
“이 반지를 사용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저뿐입니다.”
러셀이라고 모르겠는가.
자신이 직접 가는 것 보다, 눈앞의 두 사람이 가는 것이 훨씬 낫다는 사실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반지의 주인이 한 번 설정된 이상, 다른 이에게 양도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소유주에게 귀속되는 종류의 아티펙트인가…….”
그렇게 읊조리며 니콜로가 러셀의 눈을 응시했다.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리아 님께서 행방불명이 되어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하네만, 우선순위는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다리아 스노우화이트.
그녀는 러셀에게 있어 스승인 동시에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해 주었던 이였다.
그런 그녀가 행방불명 된 것이다.
걱정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일 터.
‘스승님이 놈들에게 당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만약 그랬다면 역도 놈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염탑주, 다리아 스노우화이트를 쓰러뜨렸단 사실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아군의 사기를 깎아놓기 위해 나섰을 테니까.
‘아마도 모종의 방법을 이용해 발을 붙들어 두고 있는 것이 고작일 거야.’
그렇기에, 스승을 걱정하는 마음을 한쪽으로 미뤄 둘 수 있었다.
흔들림 없는 음성과 눈동자.
“음.”
니콜로가 짧게 침음했다.
자신이 직접 가지 못하는 것은 아쉬웠지만, 강자가 하나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레이먼드 백작쯤 되는 이가 당장 왕도로 복귀할 수 있다면…….’
충분히 반길만한 일일 터.
뿐만 아니라 레이먼드 백작의 실력은 통상적인 6써클 마스터보다 뛰어난 편이지 않던가.
계산을 마친 그가 고개를 끄덕였고.
“알겠네.”
바위처럼 단단한 손바닥으로 러셀의 어깨를 짚었다.
“……앞서 말했듯 국왕 폐하의 곁에는 길리언 펄슨 경이 있을 테니, 자네에게는 왕녀 전하의 안전을 부탁하겠네.”
“예.”
총지휘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러셀이 반지에 마력을 주입했다.
화아악-.
사파이어에서 흘러나온 푸른빛이 순식간에 러셀의 전신을 감싸고─.
미션 창이 떠올랐다.
[미션]왕녀, 헤카테 라트모스의 안전.
반란이 완전히 제압될 때까지 왕녀. 헤카테 라트모스의 안전을 확보하세요.
[보상]…………………….
‘윽.’
순식간에 차오른 환한 빛무리에 미션창의 일부가 흐릿해짐과 동시에 니콜로의 음성이 멀어지고.
“우리들이 도착할 때까지…….”
화아악!
마침내 푸른빛이 모두 사그라들었을 때, 러셀은 더 이상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모래 위에 남아 있는 발자국만이, 러셀이 그 자리에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