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EPISODE.96
“─뭐?”
화악, 발칙하면서도 망측한 상상에 얼굴이 달아오르길 일순간.
이내 한없이 진지하기만 한 러셀과 눈빛을 마주하며 헤카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나. 그대여.”
자신을 구하기 위해 7써클 마스터와의 전투를 선택한 사내였다. 또한, 제 스스로 선택한 남자이기도 했다.
그런 러셀을 믿지 않는다면, 또 누굴 믿는단 말인가.
헤카테의 대꾸에 러셀이 블레인을 향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읊조렸다.
“그럼……그 목걸이를 제게 주실 수 있을까요?”
다행히도 블레인은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미 승기를 확신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의 대화에 흥미를 가졌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굳이 무게를 두자면, 전자일 테지.’
러셀의 손에 제국의 대검호(大劍豪) 중 하나, 맥라이 휴스가 낭패를 본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라.
허나 같은 초인이라 해도 그 사이에는 격차가 있었던바.
설혹 맥라이 휴스가 다시 살아난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블레인 역시 그를 쓰러뜨릴 자신이 있었기에.
러셀의 물음에 헤카테가 손을 움직였다.
잘그락.
자신의 목에 매여진 목걸이를 가볍게 움켜쥐며 물었다.
“이 목걸이를?”
“예.”
단순히 연인 간의 증표, 다른 목걸이라면 얼마든지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닌 이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이 아니던가.
왕궁 내에서의 소문을 듣지 못한 것도 아닐 텐데, 그런 목걸이를 달라니.
‘후. 참으로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사내로다.’
그리 말하며 헤카테가 쓰게 웃었다.
‘목숨의 중함과 어머니의 유품. 둘 중 한 가지를 고른다면 당연히 전자일 테지.’
고민은 깊었지만, 그리 길지는 않았다. 애당초 고민을 길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그대가 그리 말하는 데에는 필경 이유가 있을 터.”
결단을 내린 그녀가 망설임 없이 목걸이를 끌렀다.
절그럭-.
러셀의 손에 자신의 목걸이를 쥐여 주었고.
“믿어줘서 고마워요. 헤카테.”
그녀의 믿음에 작게 웃으며 러셀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흐음. 레이먼드 백작. 자네도 참 낭만파로군.”
블레인이 조롱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뭔가 수가 있어 보이기에 기다려 주려고 했더니, 결국 하는 것이 연인에게 저승길 선물을 받는 것이라니…….”
잔뜩 실망한 음성이 이어진다. 그럴 수밖에.
조금의 마력조차 느껴지지 않는 이 목걸이는, 블레인에게 있어 그저 액세서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므로.
허나, 목걸이를 움켜쥐는 순간 러셀에겐 분명한 알림이 들려오고 있었으니…….
[‘왕녀의 보물 목걸이’를 확보, 미션을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 [보상으로 중급 마석(식용)x2을 지급합니다.] [마력을 불어 넣을 시, ‘왕녀의 보물 목걸이’가 진정한 모습을 드러냅니다.]“정말 그렇게 생각하시오?”
“─?”
블레인의 눈썹이 꿈틀하는 것보다 먼저, 러셀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화아악-.
써클에서부터 시작된 마나가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손끝을 통해 목걸이 안쪽으로 흘러든다.
그와 함께 녹색의 빛이 목걸이를 뒤덮었다.
“무슨?!”
평범한 목걸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마력에 반응할 줄이야.
설마하니 저 목걸이에 자신이 모르는 힘이 숨겨져 있었던 걸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대로 둘 수는 없지.’
직후 이어진 블레인의 대처는 지극히 노련한 워 메이지다웠다.
놀라는 것보다 먼저 반사적으로 손을 움직이고 있었고, 생각을 마무리한 시점에선 이미 마법을 출수했던 것.
화르륵!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낸 두 자루의 라그나 블레이드가, 허공을 살라 먹으며 짓쳐든다.
────쐐애액!
공기가 타오르는 것보다 빠르게 밀려나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삐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늦었어-!’
솔로몬의 왕관을 통해 한껏 확장된 인지력 속에서, 달려드는 라그나 블레이드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졌다.
익숙한 알람이 들려왔다.
[용린(龍鱗)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습니다.] [용린(龍鱗)을 흡수하시겠습니까?]‘용린?’
뿔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용린은 예상치 못한 결과.
‘하지만 상관없어.’
희박한 도박수, 그 위로 승률을 조금이라도 더할 수 있다면 설혹 뿔이 아닌 비늘이라 해도─!
결정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손아귀에서 시작된 녹색의 격류가 팔은 물론 러셀의 전신을 뒤덮기 시작하고.
콰득, 콰드드득!
‘큭-!’
피부 아래쪽에서 뭔가 새로운 것이 자라나는 듯 격통이 느껴진다!
[용린을 흡수하셨습니다.]용린(龍鱗).
문자 그대로 용의의 몸을 보호하고 있던 단단한 비늘이자 갑주.
성체가 된 용이 지닌 비늘의 강도는 검기는 물론, 어지간한 마법 또한 대부분 막아 낼 수 있을 정도라던가.
[용린의 힘으로 육체가 강화됨에 따라, 용인화의 유지 시간이 상승합니다.] [용린의 힘으로 육체가 강화됨에 따라, 용인화의 반동이 일부 감소합니다.]단순히 마력량과 속성 이해도가 상승하는 것이 아닌, 생각지도 못한 소득.
‘이거라면…….’
일 할에도 미치지 못하던 승기를 배 이상 끌어 올릴 수 있을 터.
이 모든 행위들이 찰나의 시간에 이뤄지고, 어느새 자신의 턱 끝까지 치밀어 있는 불꽃의 검을 마주하며 러셀이 사납게 웃었다.
“용인화(龍人化).”
.
.
콰과과과!
충돌이 일어난 지점에서부터 모래 먼지가 자욱하게 치솟았다.
허나 블레인의 표정은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흠.‘
어쩐지 모래 먼지가 치솟은 지점이, 자신이 목표로 삼았던 지점보다 조금 뒤처럼 느껴졌던 것.
게다가, 주변의 마나가 심상치 않았다. 이토록이나 폭급하게 날뛰어대는 마나라니.
거대한 자연 현상을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듯한 감각에 블레인의 볼이 씰룩하고 움직였다.
근육과 축 처진 주름의 움직임에 맞춰, 검버섯이 흉물스럽게 움직인다.
이변을 감지한 블레인이 쏘아냈던 라그나 블레이드를 회수하려 했다.
하지만-.
‘허?’
회수가 되지 않았다.
라그나 블레이드를 불러들이기 위해 마력을 움직이고 의념을 전달했거늘, 모래 먼지 속에 가리어진 불꽃의 검은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법이 파괴되거나, 해제된 것도 아닐 진데.
마치 칼끝이 단단한 바위에 틀어박혀 있는 것만 같은 이질감.
화아악!
불어온 바람에 치솟았던 모래 먼지가 씻겨 나간다.
그 속에서 드러난 것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비늘?’
녹색의 비늘이 자르나니 돋아난 손아귀가 불꽃의 검을 우악스럽게 움켜쥐고 있었다.
회수가 되지 않았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고.
‘허, 그걸 잡아냈단 말인가?’
라그나 블레이드의 온도는 지표 아래 마그마와도 견줄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무슨 마법인지는 모르겠다만 그걸 맨손으로 잡아낼 줄이야!
꽈득, 화르륵!
사나운 소리.
손아귀의 악력에 따라 라그나 블레이드의 형상이 흉물스럽게 뒤틀리기 시작하고.
검이 비명이라도 지르듯, 불길이 사방으로 튀었다.
푸쉬이익!
맨손으로 마법을 잡아낸 것으로도 모자라, 뒤틀어 짜버리기까지!
더욱이 뒤이어 드러난 러셀의 모습에 블레인이 흠칫 놀라며 중얼거렸다.
“반, 반인반룡(半人半龍)?”
왼쪽 눈 아래와 손끝에서부터 팔꿈치까지 자라난 녹색의 비늘. 게다가 머리 양쪽으로 자라난 각양각색의 뿔들까지.
파충류의 그것과 같은,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과 호박색 홍채.
그 포식자와도 같은 눈동자에 눈이 마주친 블레인이 저도 모르게 흠칫, 손끝을 떨었다.
일순, 드래곤 피어에 압도된 까닭이다.
“무, 무슨…….”
그 이질적인 모습에 놀란 것은 블레인만이 아니다.
폭급하다 못해 폭력적이기까지 한 존재감에 전장이 일순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모두의 시선이 러셀에게 집중된 가운데, 가장 가까이에서 변화를 목도한 헤카테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용의 혈통…….”
러셀이 용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전날 다리아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그 광경을 목격하게 될 줄이야.
찬물이 쏟아지기라도 한 듯 무거운 침묵이 감돌고, 가래 낀 음성 하나가 그 침묵을 깨뜨렸다.
블레인이었다.
“끌끌. 격세유전이라. 설마 이런 곳에서 용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를 보게 될 줄이야.”
격세유전이니 용의 혈통이니.
확실한 건 하나도 없지만, 제멋대로 오해하고 착각해주는 꼴이라니.
“맥라이 휴스, 그 망나니가 왜 애송이에게 고전했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구먼. 끌끌끌.”
드래곤 피어의 영향으로 심신이 흐트러졌던 것도 잠시. 노련한 마법사답게 블레인이 소요를 가라앉혔다.
“이 세계에 용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게 된 지도 어언 수백 년. 그런 와중에 용의 피를 이은 아이라. 이거 귀하군.”
인간이 아닌 쓸만한 실험체를 찾아냈다는 듯한 광기.
“윽…….”
그 광기 어린 시선에 헤카테가 저도 모르게 가슴을 부여잡는 찰나, 척.
러셀이 손을 뻗었다.
비늘이 가지런히 돋아난 팔로 헤카테를 막아섬과 동시에 그녀에게로 흘러들던 기운을 차단했다.
“물러서세요. 헤카테.”
용의 울음과 같은, 그르렁거림이 섞여 있는 목소리다.
하지만 그 속에는 전과 다르지 않은 따스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렇기에 헤카테가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뒤로 천천히 물러섰다.
‘후.’
헤카테가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아무리 용인화에 이른 육체라 해도, 맨손으로 라그나 블레이드를 쥐어짜는 것은 조금 무리였을까.
손아귀 안쪽에서 얼얼한 통증이 전해졌다.
추측하건대, 아마도 용린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기에는-.
‘아직 내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겠지.’
자신의 용인화가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러셀이 내심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파짓, 파지짓-.
두 사람의 마력이 맞닿은 지점에서부터 불꽃이 튀어 오르며 공간이 일그러진다.
비록 마력 대결일 뿐이라곤 하나 자신과 대치하며 조금도 밀리지 않는 모습에 블레인이 혀를 내둘렀다.
‘허. 이것이 용의 인자를 이어받은 놈의 마력인가…….’
저 힘을 연구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다면.
‘나는 그 다리아조차 뛰어넘을 수 있다!’
오랫동안 바라왔던 꿈을 현실로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 여기서, 너를 만난 것을 아주 감사하게 생각해야겠구나. 아해야.’
블레인이 그런 생각을 이어나가는 사이, 러셀은 냉정하게 자신의 상황을 관조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능력에 있어선 내가 위겠지만, 마법적인 깨달음이나 이해는 저쪽이 확연히 위다.’
기세마저 저쪽으로 넘어가게 된다면 상황은 더할 나위 없이 악화될 것이 분명한즉.
‘오버 히트-.’
스승인 다리아 스노우화이트에게 이어받은 오리지널리티 마법. 지금은 용린 특유의 방어력을 조금 깎아내더라도 화력을 올릴 때였다.
거세지는 심장박동, 체내의 열기가 상승하며 심장이 뜨거운 핏물을 전신으로 전달한다.
일어난 열기에 몸을 뒤덮었던 핏물이 빠른 속도로 증발하며 붉은 증기가 피어올랐다.
화아악-
순식간에 쌓아 올린 마법이 러셀의 손끝을 따라 불을 뿜었다.
폴링썬(Falling Sun).
콰아아아아-!
평소보다 훨씬 작아진 크기의, 사람 머리통만 한 태양.
이는 힘이 약해진 것이 아닌, 러셀이 강제적으로 대군 마법을 대인 마법으로 탈바꿈시킴에 따라 그 열기가 한없이 응축된 것이었으니!
일대의 공기가 밀려나는 것보다 빠르게 연소하고, 작은 공 크기의 태양이 블레인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것과 동시에 러셀이 준비했던 두 번째 마법을 출수했다.
게이볼그(Gae Bulg).
12중첩(十二重疊).
라만차(La Mancha), 거신 죽이기.
후예사일(后羿射日)!
동방에는 화살로써 태양을 쏘아 떨어뜨린 신이 있다던가. 그 신화의 한 장면을 재현해내듯, 한 자루 창으로 태양을 꿰어낼지니!
────────꽈르릉!
폭발과 함께 태양의 열기를 휘감은 불꽃의 창이 섬전처럼 블레인을 향해 내달렸다.
러셀과 블레인.
두 사람의 2차전이 시작되었음을 고하기에, 더없이 알맞은 초탄이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