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EPISODE.97
바로 다음 순간, ─!!
러셀이 빠르게 헤카테를 밀쳤다.
일순, 퍽 소리가 날 만큼 빠른 손놀림.
“이게 무─!?”
놀란 헤카테가 뭐라 항변하는 것보다 먼저, 번쩍!
한줄기 뇌격이 러셀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일반적인 뇌격과는 다른, 검은빛의 뇌격!
만약 러셀이 밀치지 않았다면 헤카테 본인 역시 저 뇌격 속에 함께 집어삼켜졌을 터.
꽈르르르릉!
“──────큽!”
비명조차 제대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온몸의 신경계가 끝에서부터 타들어 가는 것만 같은 고통에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어간다.
더욱이 문제는 러셀의 상태가 지금 막 7써클에 올라선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막 써클이 그 테두리를 희미하게 드러낸 상황에서, 저와 같은 마력 공격을 직격으로 맞았으니.
여섯, 아니. 일곱 개의 써클이 일제히 뒤틀리며 비명을 질러댄다.
짧은 순간, 헤카테를 뇌격 밖으로 밀쳐낼 수 있었던 까닭은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은 용인화의 초감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
“그륵…….”
솟구치는 핏물을 되삼키며 러셀이 이를 악물었다.
미처 삼키지 못한 핏물이 역류라도 하듯, 악문 잇새로 줄줄 흘러나온다.
러셀이 고개를 들었다.
자신에게 뇌격을 떨어뜨린 존재를 두 눈으로 응시했다.
‘─저건……!’
몸에 두르고 있는 것은 뇌격과 똑같은 검은색의 로브에, 전신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은 온갖 종류의 불길함이라.
게다가 자신의 몸을 집어삼킨 뇌격에서도 역시 기분 나쁜 흑마력의 냄새가 풀풀 풍기고 있었다.
쿠르릉-.
찰나가 영겁처럼 느껴지던 뇌격이 끝나고, 모습을 드러낸 로브 사내가 블레인을 향해 뇌까렸다.
“강렬한 마력 충돌이 느껴져서 와봤더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고전하고 있었군?”
로브에 가려져 얼굴이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어쩐지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한 음성.
그 음성에 모욕이라도 받은 듯 블레인의 볼살이 부들부들 떨렸다.
“입을 다무는 게 좋을 게다. 히프노스. 그렇지 않다면 근본도 없는 네 세 치 혀가 흉물스럽게 잘려 바닥을 나뒹굴게 될 테니…….”
“히프노스라면…….”
이야기를 듣던 헤카테의 눈이 격정적으로 떨렸다.
그녀 역시 히프노스라는 이름을 보고서에서 받아 읽어본 적이 있었으니까.
전날 러셀이 참가했던 유적의 발굴, 그 발굴의 습격과 관련되었던 보고서였다.
“아무리 왕좌가 탐났다지만, 이 나라의 대공이라는 자가 사교놈들과 손을 잡았단 말인가!”
헤카테의 격노한 음성이 울려 퍼진다. 그러건 말건 블레인이 싸늘한 눈초리로 히프노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히프노스. 너야말로 지금까지 무얼 하고 있었던 거냐?”
본격적으로 역모가 시작된 것은 약 열두 시간도 전의 일이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다니.
다른 속내를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니냐. 그렇게 물어오는 블레인의 눈에 히프노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어 머리에 두르고 있던 로브와 한쪽 팔을 걷어 올리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이런 꼴이라서…….”
그러자 몸의 절반가량을 좀먹고 있는, 이지러지는 듯한 화상이 드러난다.
붉게 달아오르고, 진물이 흘러나오는 역한 화상에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 중 몇이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건……?”
“창탑주, 그 영감까지는 그러려니 했지만 염탑주. 그 빌어먹을 계집의 감이 보통 예리한 것이 아니라서 말이오. 쐐기돌을 박으려다 걸려서 그만 이런 꼴이 되어 버렸지.”
“봉마의……쐐기돌?”
스승의 이야기에 숨을 헐떡거리던 러셀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히프노스가 차가운 눈길로 러셀과 블레인을 돌아봤다.
“말해주지 않았던 거요?”
“그럴 리가.”
블레인이 고개를 저었다.
다시금 러셀을 응시하며 말했다.
“말하지 않았더냐. 천둥벌거숭이 같은 네 스승, 다리아 그 계집은 지금쯤 공허와 어둠의 경계에서 헤매고 있을 것이라고.”
공허와 어둠의 경계.
봉마의 쐐기돌.
스승인 다리아 스노우화이트에게 역도 놈들이 무슨 일을 벌였다는 것 정도는 추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하니 사교도까지 끼어있었을 줄은.
“그러고 보니 이야기를 나누는 건 두 번째지만, 이렇게 직접 얼굴을 맞대는 건 처음이로군. 이런 건 구면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초면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그때였다.
사교도 사내, 히프노스의 입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흘러나온 것은.
“……?”
의아해하는 러셀을 향해 그가 화상에 절반가량이 일그러진 얼굴로 씩 웃었다.
화악-!
이어 그의 눈이 붉은색의 흉흉한 안광을 토해내고.
“아비와 아들. 레이먼드를 두 번이나 죽인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어.”
쩍 벌어진 입을 통해 한줄기 음성이 흘러나왔다.
한 번 들어본 적이 있는 음성이었다.
지난날, 사막에서 세 명의 사교도와 어보미네이션을 처리했을 때 들었던 바로 그 음성.
뒷덜미에 힘이 꽉 들어가며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가는 가운데, 히프노스가 블레인을 향해 제멋대로 중얼거렸다.
“내가 그때 말했을 텐데. 애비를 죽이는 김에, 그 자식도 같이 죽여 두는 편이 좋을 거라고 말이야.”
러셀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사교도만이 아니라, 설마 블레인마저도 아버지의 죽음에 연관되어 있었단 말인가?
“설마……?”
전대 레이먼드 백작.
러셀의 아버지는 5써클 마법사였지만, 그 어떤 마탑에도 소속된 적이 없는 이였다.
다시 말해, 굳이 블레인과 척을 질 만한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에 너도 관여되어 있단 말이냐. 블레인──────!”
격노를 토해내는 러셀의 몸이 한 차례 크게 휘청거렸다. 그럴 수밖에.
사실 러셀의 몸은 이미 오래전에 한계에 다다른 지 오래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다리로 버티고 서 있는 것은, 그 한계마저 초월한 정신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러셀의 외침에 블레인이 심드렁한 어조로 대꾸했다.
“네 녀석의 애비는,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아버렸으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당장은 아군이라 할 수 있는 히프노스의 등장 때문이었는지.
승기를 확신한 듯 블레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이미 다 죽어가는 꼴의 놈에게 말해주지 못할 이유도 없지, 대충 그런 여유마저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알지 말아야 할, 웨에엑-!”
의문을 표하는 와중에도 혈액이 역류하고, 핏물을 한 바가지 게워내자 강렬한 현기증이 밀려들었다.
이어 러셀이 한쪽 무릎을 바닥에 처박으며 한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큭…….”
“다 죽어가면서도 버티고 있는 꼴이 꽤 안쓰러우니 이야기해주마. 네 아비가 죽은 이유는 대공 전하의 계획과, 우리와 사교도 간의 관계를 알아챘기 때문이다.”
히프노스가 첨언했다.
“감이 좋은 건지. 그렇지 않으면 운이 나빴던 건지. 설마하니 5써클 마법사 나부랭이에게 거래 장면을 들키게 될 줄은, 쯧.”
“그래서 아버지를…….”
“아, 작은 오해가 있다만……엄밀하게 말하면 네 애비를 죽인 건 내가 아니야.”
블레인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나는 그렇게 되도록 판을 짰을 뿐, 네 아비를 죽인 건 어디까지나 제국과 사교도들이었으니 말이야. 화풀이를 하려거든 사람을 잘못 찾았어.”
판을 짰다는 것 자체가,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저리 말하는 꼴이라니.
명백한 조롱의 의도가 담긴 음성.
다음 순간.
“그러고 보니 네놈은 그년의 제자였지.”
히프노스의 입가가 짜악 찢어졌다. 붉은 눈이 흉험한 광망을 토해내며 빛을 발하고, 그에 따라 화상으로 이지러진 얼굴이 더욱 흉측하게 일그러진다.
“스승의 빚을 대신 갚는 것도, 제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일 터.”
화아악-.
검고 사특한 바람이 그의 주변을 따라 요동치기 시작한다.
세상에 있는 온갖 종류의 질병과 전염병을 끌어모았다는 7써클 흑마법.
역병 돌풍(Pandemic Gust)의 전조였다. 평소 마력이 충분할 때라면 모를까.
“약조하지. 쉽게 죽지는 못할 거야.”
지금처럼 약해진 상황에서 저 바람에 집어삼켜 진다면 그 결과는 뻔했다.
“나병으로 몸이 썩어들어가고, 온몸에 수포가 올라오면서 진물이 흘러넘치는 고통, 그 후에는……리치로 만들어 평생을 고통 속에서 부려 주마.”
“큭…….”
헤카테만은. 적어도 그녀만은 피신시켜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러셀이 남은 써클을 쥐어짰다.
꽈드드득-.
걸레마냥 비틀어지며 일곱 개의 원이 비명을 질러댄다.
간신히 끌어 올린 한 줌의 마력, 그를 이용해 헤카테를 뒤로 보낼 바람을 불러오려는 순간-.
“내 새끼를…….”
우릉우릉-.
“네놈들 손에 두 번이나 잃을 성싶으냐!!”
한줄기 음성이, 왕궁 전체를 뒤흔들었다.
거대한 불꽃이 구름마냥 기네비어 궁 전체를 뒤덮었다.
화르르르륵-!!
.
.
전조도 없이 나타난 불꽃 구름의 열기가 사방을 찍어 누른다.
폭력적이기까지 한 마력의 존재감에 블레인과 히프노스가 경호성을 토했다.
“허억!”
그중 가장 크게 경악한 것은 바로 히프노스였다.
“그, 그럴 리가! 한낱 인간의 몸으로, 일부라곤 하나 타르타로스에서 탈출할 수 있을 리가……?!”
한때 거인족의 군단장인 브리아레오스와 그의 군단을 봉인했던 타르타로스.
그 타르타로스의 뚜껑을 덮고 있던 것이 바로 봉마의 쐐기돌이다.
그 수가 하나에 불과했다곤 하나, 설마하니 인간의 몸으로 그 봉인을 찢고 나올 줄이야.
평범한 인간이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설혹 8써클에 다다른 대마법사라고 해도 그것은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 봉인을 뚫고 나왔다는 말인즉!
“설마!”
히프노스의 경악성이 전보다 높게 고조되고.
“설마 인간의 몸으로 초월을 엿봤다는 말이냐!”
그 일이 가능한 것은, 초월자이거나 혹은 그 초월을 엿본 이밖에 없었다.
“일어나라.”
한줄기 음성과 함께 하늘에서부터 불꽃의 비가 떨어져 내렸다.
화락, 화락, 화라락!
떨어져 내린 불꽃이 도합 칠백일흔일곱 마리의 난쟁이로 화하고.
난쟁이들이 왕궁 곳곳, 사방으로 산개하는 가운데 불꽃 구름을 망토처럼 휘감으며 백발의 여인 하나가 찬찬히 아래로 내려섰다.
“조금 늦었습니다. 왕녀 전하.”
척-.
“오래 기다리게 했구나. 막내야.”
“스……승님.”
장난기가 없는 것은 물론, 평소보다 십 수 년가량 늙어 보이긴 했으나 자리에 내려선 이는 분명 자신의 스승인 다리아 스노우화이트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콰과과과과과과-!
하늘을 뒤덮었던 불꽃 구름에 호응하기라도 하듯, 왕궁의 한쪽.
국왕, 알폰소 라트모스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곳에서 거대한 물보라가 솟구쳤다.
쏴아아아아-!
땅속을 흐르던 지하수가 일제히 솟구치며 거대한 해일의 형상으로 화한다.
“창탑주! 그치마저도 탈출했단 말인가!?”
단숨에 역전된 전세.
벼락이라도 맞은 듯 발작적으로 소리치는 블레인을 향해 다리아가 오만하게 턱 끝을 치켜들었다.
“내가 좀 도움을 줬지.”
자력으로 봉마의 쐐기돌을 빠져나온 다리아와는 달리-.
“안에서라면 모를까. 나 정도 되는 마법사가 밖에서 도와주면 빠져나오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라서 말이오. 선배…….”
-헤밍웨이는 그녀의 도움을 받아 탈출했던 것.
“아니. 이 빌어먹을 역적 놈아!”
말을 맺은 그녀가 저벅.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내게 그날의 기억을 다시 보여준 대가를 치를 준비는 되었겠지?”
격노에 호응하듯, 일대의 불꽃이 사납게 요동쳤다.
화르르륵!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