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EPISODE.100
“음, 그러니까…….”
사람 셋이 들어가도 충분히 넉넉한 마차 안, 그곳에 앉은 채 이야기를 듣던 무야호가 자신의 볼을 긁적거렸다.
러셀의 이야기에 따르면 지금부터 수인족들이 거주하게 될 곳은, 엔디미온 내에 위치한 아베트 산림(山林)이라는 곳이라고 했다.
남북으로 1400킬로미터. 동서로도 수백 킬로미터가 넘는 범위를 지닌 아주 넓은 산림이라고 하던가.
비록 대수림(大樹林) 정도의 크기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엔디미온의 남부에 자리한 산림 중에선 손에 꼽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그런 만큼 2만 명 정도 되는 수인족들을 수용하는 것쯤이야, 그리 대수로운 일도 아닐 테지.
물론 무야호가 주목한 것은 그 부분이 아니었다.
“귀쟁이를 비롯한 요정족 녀석들이랑 산림을 같이 사용해야 한다는 거지?”
“예. 본래는 예정에 없던 사항이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러셀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뚱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 내밀었다.
“조금 불편한데.”
“같은 산림을 함께 쓰는 것이 말입니까?”
“아니. 산림을 함께 쓰는 거야 그러려니 하는데, 그 녀석들…….”
“……?”
고개를 갸웃하는 러셀을 향해 잠시 망설이던 무야호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 재미가 없잖아?”
“재미요?”
“그래. 물론 요정족들 중에서도 상당한 힘을 지닌 녀석들이 있긴 하겠지만, 워낙 조용조용하고 평화롭기로 유명한 녀석들이라……딱히 흥이 동하지는 않는단 말이지.”
옆집의 이웃이 조용하고 평화로워서 재미가 없다니.
인간으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특이 기호에 헛웃음을 흘리길 잠시간, 무야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쩔 수 있나. 땅을 빌려 쓰는 입장에서 이런 불평을 늘어놓을 수도 없는 거고. 대신…….”
무야호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러셀을 담아냈다.
“종종 찾아가 대련 신청 정도는 해도 되겠지?”
“저를 말입니까?”
“그래.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이상하게 너랑 한판 벌이는게 제일 즐겁더라고.”
이것 역시 용의 인자에 영향을 받은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한편으로 미뤄두며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무야호 님의 지루함이 해소된다면, 종종 어울려 드리겠습니다.”
게다가 이곳은 쿠릴이 아닌 엔디미온. 자신 이상의 강자들이 몇이나 존재하는 곳이었다.
상황에 따라선 자신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을 해도 되겠지.
‘길리언 경은 분명 반겨라 하실 거고……, 스승님을 비롯한 다른 탑주 분들께도 한 번 여쭤봐야겠군.’
“좋아!”
러셀의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짝짝 쳤다.
돌연 좀 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는 듯,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말했다.
“그보다, 거인(巨人)이라. 내가 쿠릴에 있는 사이에 그런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이주 시기를 조금 앞당길 걸 그랬어.”
요정족과 함께 산림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을 설명하며, 거인족에 관한 이야기를 풀었더니 그 부분이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
‘이쪽의 입장에선 죽을 뻔한 위기의 상황이었는데…….’
도리어 투기를 불태우는 그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앨런을 향해, 러셀은 고개를 흔들어 보일 따름이었다.
.
.
무야호를 비롯한 수인족들이 아베트 산림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약 보름 정도의 시간이 더 흐른 후였다.
무려 2만 명에 달하는 수인족의 이주. 하지만 보름 동안 딱히 우려할 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수인족들은 철저하게 무야호의 통제하에서만 움직였던 것이다.
아마도 인간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무리 생활을 하던 습성이 뿌리 깊게 남아 있기 때문일 터.
‘이 부분도 연구해볼 가치가 있겠는걸?’
지극히 마법사다운 생각을 가지며 아베트 산림으로 다가가자, 일단의 무리가 그들을 마중 나오는 것이 보였다.
“……왔어?”
제 팔다리보다 긴 로브를 잠옷처럼 뒤집어쓴 채, 커다란 토끼 위에 올라타 허공을 비행하고 있는 이.
왕도 백탑의 탑주, 아멜리아 머윈이었다.
“먼저 도착해 계셨군요.”
“그래봐야 하루.”
그때였다. 러셀의 옆에 있던 무야호가 앞으로 튀어 나가며 아멜리아 머윈을 향해 코끝을 킁킁인 것은.
“오. 이 어린 모습을 한 암컷에게선 상당히 강한 냄새가 나는데?”
아멜리아 머윈이 가진, 강자 특유의 기척이 그녀의 투쟁심을 자극한 모양.
“뭐야. 무례해.”
좋게 말해 허물없고, 나쁘게 말해 무례하게도 보이는 그녀의 태도에 아멜리아 머윈이 아미를 곱게 찌푸렸다.
그때였다.
“그분들이 바로 저희들의 새로운 이웃이 되실 분이로군요.”
산림의 안쪽에서 물기를 머금은 듯 촉촉한 음성이 들려온 것은. 그 음성에 호응이라도 하듯 불어온 바람에 일대의 나무들이 가지를 손마냥 흔들어댄다.
실로 절묘한 우연의 일치와도 같은 광경. 하지만, 그것은 우연의 일치 따위가 아니었다.
“아레인 님.”
모습을 드러낸 이는 엘프족의 수장 중 하나이자, 요정족을 대표하는 므뇌르(Meneur).
아레인이었으므로.
므뇌르란, 현존하는 엘프 중 가장 하이엘프에 가까운 힘을 지닌 이들이었다.
그들이 등장하는 것만으로 숲이 반겨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
“오랜만에 뵈어요. 러셀 님.”
그런 그녀의 옆에서 이오가 꾸벅 고개 숙였다.
바람에 흩날리는 은발이 전보다 선명해졌음은 물론이요 관자놀이 양옆으로 자라난 뿔 역시 조금 더 커지기까지.
아마도 조금씩 용의 힘에 동화되고 있다는 것일 테지. 두 엘프의 등장에 무야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오! 귀쟁이들 중에서도 굉장한 녀석들이 있잖아?”
엘프는 평화로운 종족이라느니, 재미가 없다느니 떠들어 대놓고는.
정작 엘프족의 강자를 마주하자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한가득 선물 받은 아이와 같은 표정이라니.
그때, 코끝을 쫑긋거리던 그녀가 러셀과 이오를 번갈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수컷, 이 귀쟁이 암컷에게서 너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데……?”
본능적으로 용의 인자를 감지한 것인가-하고 생각하기도 전에 이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붉게 달아오른 음성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비, 비슷한 느낌이라뇨. 저 같은 게 감히…….”
그 태도에 경계의 기색이라도 띠듯, 무야호의 꼬리가 빳빳하게 일어섰다.
“오. 너도 수컷을 노리고 있단 말이지─?”
의미심장한 음성. 수컷……그러니까 러셀에게 인간족 약혼자가 있다는 것쯤은 네일슨 제독에게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 인간 약혼자가 왕족이라는 것 역시도. 허나, 인간의 수명은 길어야 100년.
하지만 젊은 나이에 초인(超人)이 된 러셀은 그 젊음을 유지하며 그보다 오랜 나이까지 살 수 있었던바.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쯤이야 아무런 문제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발칙한 경쟁자가 있을 줄이야.’
자신의 삼백안을 가볍게 뜨며 고개를 숙인 무야호가 이오의 귓가에 속삭였다.
“쉽게 넘겨줄 것 같아?”
자신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경고가 담긴 음성. 수왕으로서의 격이 그 음성 속에 깃든다.
평범한 암컷이라면 이것만으로도 겁을 먹고 물러날 테지.
‘물론, 그 인간의 왕족이라는 여인에게는 쓸 수 없겠지만…….’
왕족인 그녀에게 수인족은 은혜를 입은 상황이었고, 그렇게 했다간 러셀의 상황이 곤란해질 테니까.
하지만 웬걸.
이어진 이오의 반응은 무야호의 예상을 완전히 넘어선 종류의 것이었다.
“러셀 님은…….”
“……?”
이오의 혈통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은 물질계 최상위 종족 중 하나인 용의 힘이었던 바.
그중 하나인 은룡의 힘이 조금씩 개방되며, 거의 초인(超人) 수준의 힘을 지니게 된 그녀였기 때문일까.
수왕의 기세를 아무렇지 않게 이겨낸 그녀가 눈을 똑바로 뜨며 반박했다.
“러셀 님은 물건이 아니에요.”
“으엉─?”
무야호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두 여인의 때아닌 캣파이트(Catfight)가 시작되려는 찰나.
짝!
박수 소리가 그들을 갈라놓았다.
“일단은 설명부터 하겠습니다.”
러셀이었다. 좌중의 시선을 단번에 끌어모은 그가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더니, 산림의 초입에 있는 커다란 밤나무 앞에 가 서며 말했다.
“요정족과 수인족, 두 종족이 이 산림에서 함께 거주하는 것은 맞지만 모든 영역을 함께 쓰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른 두 종족을 섞어 두었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으니까.
“해서 이 밤나무를 중심으로 북쪽은 엘프족이, 남쪽은 수인족이 사용하는 걸로 생각을 해봤는데 두 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물론 강제는 아니었다.
러셀의 물음에 아레인이 먼저 대꾸했다.
“살아갈 땅을 빌려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따름이랍니다.”
엔디미온 측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 말이었다. 무야호 역시 불만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뭐, 좋아.”
사소한 문제가 발생할 뻔했지만, 어쨌건 간에.
요정과 수인.
두 종족의 엔디미온 이주가 대충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
.
그로부터 며칠간 아베트 산림의 곳곳에서 부산스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요정과 수인, 두 종족이 각자 살아갈 터전을 만드는 소리였다.
숲의 북쪽에서는 엘프들이 나무를 엮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에 비해 남쪽에서는 뚝딱뚝딱, 서걱서걱, 무언가를 베고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가능한 숲에 어울려 사는 엘프족과 달리, 수인족은 인간과 비슷한 양식의 집을 짓고 사는 종족.
그런 만큼 숲에 있는 목재들을 이용해 건축물을 쌓아 올리고 자신들 만의 도로를 조금씩 닦아나갔던 것이다.
2만 명이나 되는 수인족이 거주할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만큼 소비되는 자원의 수도 적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산림을 크게 훼손할 정도는 아니겠지.’
비록 남쪽에 한정되었다곤 하나, 아베트 산림의 크기는 상당했으므로.
양 종족의 대표가 다시 밤나무 앞에 모인 것은, 그로부터 열흘 정도가 더 지난 후였다.
막 이주해와 바쁜 이 시기에 양 종족의 대표가 다시 모인 이유는 간단했다.
‘엔디미온의 왕도로 가기 위해서.’
아레인의 경우에는 살아갈 땅을 빌려준 점에 대해 감사를 표하러 가야 했고, 무야호는 수인족이 완전히 엔디미온에 정착함에 따라 형식적으로나마 작위를 받아둘 필요가 있었으니까.
“좋아. 그럼 출발해볼까?”
가야 할 인원이 모두 도착했음을 확인하며 무야호가 당연하다는 듯 러셀의 오른편에 가 슬쩍 섰다.
그 모습에 아레인을 마중 나왔던 이오가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무언가 생각을 하듯 눈을 감길 잠시간, 아레인의 곁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저, 어머니.”
“왜 그러니. 이오?”
“괜찮다면 저도 어머니와 동행해도 될까요?”
본래 이오의 동행은 예정되어 있지 않은 일이었던 바.
러셀과 이오, 그리고 무야호의 얼굴을 몇 번인가 번갈아 가며 바라본 아레인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나를 이어 엘프족의 므뇌르가 될 아이니, 이번 기회에 함께 나서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이어 자신을 향해 ‘그래도 괜찮을까요?’하고 되물어오는 아레인의 모습에 러셀이 시선을 움직였다.
아멜리아 머윈을 바라봤다. 자신이야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지만, 어쨌건 간에 이번 이주의 총책임자는 그녀였기에.
“한 사람. 늘어나는 것뿐. 문제. 없어.”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하품을 하며 아멜리아 머윈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렇다고 하시네요.”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오가 러셀의 왼편에 가 섰다.
“그럼, 이번에도 잘 부탁드려요. 러셀 님.”
“예. 저도…….”
고개를 끄덕이는 러셀의 너머로 보이는 늑대의 눈빛과 이오의 시선이 충돌하며 불똥이 튀어 올랐다.
‘이 앙증맞은 귀쟁이 암컷이?’
‘품위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늑대 수인!’
고압적으로 내려다보는 무야호의 눈빛을, 이오는 눈웃음으로 받아쳤다.
러셀은, 갑자기 드는 오한에 그저 별일 없이 엔디미온에 도착하기를 바랐다.
엔디미온에는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까맣게 잊은 채.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