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0
20화
EPISODE.10
‘그러고 보니…….’
회귀 전, 다리아가 인신매매를 하던 해적선 하나를 박살 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게 이때쯤이었나 보군.’
인신매매선.
고작해야 해적들을 토벌하는 정도의 일이다.
만약 이곳 말디바 시가,
다리아의 고향이 아니었다면 탑주인 그녀가 직접 나설 일도 없었다.
또한 그녀가 지원을 요청한다면, 맨발로 달려올 만한 마법사들의 수는 기백이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 본인을 콕 집어서 도와 달라 말한 것이다.
‘이건 시험이야.’
무슨 생각으로 그녀가 자신을 시험하려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의도만큼은 명확했다.
새롭게 떠오른 미션창에 역시 그러한 사실이 잘 표기되어 있었다.
[미션]다리아 스노우화이트(염탑주)의 시험.
그녀를 도와 말디바 항에 정박한 인신매매선(해적)들을 토벌하고 그녀의 시험을 통과하세요.
[보상]하급 마석(식용), 최하급 마석(식용).
보상이 그리 대단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바보가 아니라면 알 수 있으리라.
이 미션은 겉으로 드러난 것 보다 숨겨진 보상이 크다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염탑주의 시험이야.’
그의 생각을 짐작이라도 한 듯 러셀과 눈이 마주친 다리아의 두 눈이 부드럽게 호선을 그린다.
“부족한 저라도 탑주님께 힘이 된다면, 얼마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맙구나. 아주 든든해.”
러셀이 수락하자 다리아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그 전에-.”
이어 그녀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딱-!
그러자 불길에 그을린 머리카락 끝이 잘려나가고, 곳곳에 묻어 있던 전투의 흔적이 빠르게 사라져간다.
물론 망가진 로브나 옷까지 복구해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뛰어난 클린(Clean)마법.
“아무래도 옷부터 새로 사야겠구나.”
.
.
“호오. 마법사치고는 드물게 옷 태가 제법 나는 편이로고.”
어두운 빛이 강하게 도는 로브와 그와 세트를 이루는 안쪽의 옷차림을 바라보며 다리아가 낄낄, 웃었다.
점원의 말에 따르면 검은색은 아니고 목탄색(차콜) 계열의 색이라고 하던가.
고급스러운 빛깔과 솜씨 좋은 재단사가 만든 듯한 외형에 몸 자체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 안감의 원단까지.
척 봐도 한두 푼 하는 것이 아닌, 고가의 옷이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던 시절에도 이만한 재질의 옷을 입어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정작 옷을 입고 있는 러셀의 얼굴은 불편하기만 했다.
“탑주님. 이렇게까지 해주지 않으셔도…….”
“괜찮다. 내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으니 선수금으로 이 정도쯤이야. 걱정하지 말거라.”
나 돈 많으니까.
자신의 지갑을 두드리며 호언장담을 하는 다리아의 모습에 러셀이 좌불안석인 표정을 지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염탑의 탑주가 돈이 없을 리가 있나, 거기다 문제는 금액만이 아닌데.
그러건 말건
“이보시게. 이 옷을 좀 계산해주시겠는가?”
다리아가 점원을 불렀다.
잽싸게 값을 지불해 계산을 마쳤다.
“아, 그리고 괜찮다면 붉은 실을 좀 빌려주시게.”
직후 점원에게 붉은 실뭉치까지 빌려온 그녀가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스르륵-.
그녀의 손끝을 따라 붉은 실이 풀려나오더니 이내 러셀의 새 옷, 가슴팍 위로 하나의 문양을 새기기 시작한다.
불꽃의 형상으로 타오르고 있는 붉은 장미.
염탑의 상징인 문양이었다.
“이걸……제게 왜?”
아직 염탑에 들어간 것도 아니었기에 한 질문.
물론 탑주가 직접 새겨준 것인 만큼, 염탑의 일원을 사칭했다느니 하는 일로 처벌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내 부탁을 받아 하는 일이잖느냐. 이번 일을 치르는 동안만큼은 너 역시도 염탑의 소속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스윽, 슥-.
불꽃의 장미를 완전히 세긴 그녀가 박수를 짝하고 쳤다.
마법을 이용해 실 끝을 깔끔하게 잘라내며 말을 이었다.
“혹여 나중에 우리 탑에 입탑 지원서를 쓰게 되거든, 꼭 경력에 오늘 있었던 일을 추가하는 걸 잊지 말고. 내 미리 담당자에게 언질해 두마.”
낄낄거리며 말하는 것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서자, 어느새 하늘에는 붉은 노을이 가득했다.
노을의 끝이 거뭇거뭇한 것으로 보아 밤이 찾아오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으리라.
“조금 있으면 밤이 오겠구나.”
다리아의 말대로라면 해적선이 정박하는 것은 오늘 밤.
“이제 슬슬 준비를 해야겠군요.”
“그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러셀을 항구로 안내했다.
“말디바 항에서 쉬어간다고는 하지만, 놈들도 뒤가 켕기는 게 있을 테니 대놓고 항구에 정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항구와 조금 거리가 떨어진 바다 위에 배를 정박시켜두고 쉬었다 가겠지.”
결국은 러셀과 다리아가 다른 수단을 이용해 그 배까지 다가가야 한다는 이야기라.
당연하게도 다리아는 이미 그 수단을 준비해 두었다.
“우리는 이걸 타고 이동할 거란다.”
“이건…….”
네다섯 사람 정도가 타기에 적당한 크기를 가진 쪽배였다.
문제는 바다의 풍랑을 헤쳐나가기엔 배의 크기가 지나치게 작았다는 점일까.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인신매매선이라면 거기에 잡혀 있는 이들 역시 꽤 많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배 어디에 그들을 태우고 돌아올 만한 자리가 있는 걸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러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는 손이 있었다.
다리아의 손이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잡혀 있는 이들을 태우고 돌아올 배라면, 놈들에게 뺏으면 그만이니까.”
“아-.”
비상시를 대비해 탈출용으로 쓰는 배가 여러 척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다리아는 그것들을 탈취해 사람들을 태울 생각이었고.
‘그게 아니라면 놈들의 배를 통째로 빼앗을 생각이실지도 모르지.’
그녀에게는 그쪽이 더 편할 테니까.
“자, 그럼 시작하자꾸나.”
쪽배에 러셀이 올라타자 다리아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 손끝을 따라 두 사람을 둘러싼 인근의 기류가 미묘하게 달라진다.
끼익, 끼이익-
사공도 없는데 저절로 노가 저어지며 배가 움직이고.
‘주변의 바람이 고요해졌다.’
일대에 일어난 변화를 통해 러셀은 다리아가 쓴 마법의 종류를 추측했다.
‘기척을 줄이고 소리를 차단하는 마법.’
촤아악, 철썩.
촤아아악, 철썩-.
그렇게 바다를 가로지르며 항구 옆으로 튀어나온 작은 산자락을 돌자.
곧이어 산의 그림자와 밤의 어둠을 틈타 바다 한가운데 정박하고 있는 거대한 범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저거군.’
제 놈들도 찔리는 것은 있는지, 불을 하나도 켜지 않고 조용히 정박해 있는 모습.
배를 발견한 다리아가 천천히 배를 몰았다.
범선의 옆으로 쪽배를 붙이며 말했다.
“먼저 내가 올라가 시선을 끌도록 하마. 아이야, 그 틈을 타 너는…….”
“아래로 내려가 잡혀 있는 사람들을 찾아 구출하면 되겠습니까?”
“잘 아는구나.”
소란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아래를 지키는 녀석들이 있을 테니 조심하거라.
말을 맺은 다리아의 몸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부유마법을 펼친 것이다.
동시에 그녀의 몸이 강렬한 화염에 휩싸였다.
화르르륵!
바다 한복판에서, 아닌 밤중에 태양이라도 떠오른 것만 같은 존재감!
갑판 위에 있던 해적들의 이목을 단숨에 잡아 끌기에 충분한 위용이었다.
“저, 저……!”
“습격이다! 습격이야!”
댕댕댕댕댕—!!
다리아를 발견한 해적들이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경종을 마구잡이로 울려대고.
그러건 말건, 다리아가 천천히 해적선 위로 올라섰다.
자신을 노려보는 해적 놈들을 마주하며 말했다.
“감히 내 고향에서 쉬어갈 생각을 하다니. 배짱도 좋은 놈들이로고. 어디 한 번 그 배짱만큼 실력도 가지고 있는지 볼까?”
“마침 여기 딱 좋은 게 있구나.”
그녀의 손아귀가 범선의 난간을 움켜쥐었다.
콰적, 우지끈-!
이어 나무로 된 난간이 완전히 박살 나며 그 조각이 다리아의 손아귀에 딸려 들어온다.
다리아가 그것들을 허공으로 던지며 마력을 불어 넣었다.
“가거라.”
탁, 타닥-.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나뭇조각.
그 나뭇조각에서부터 불길이 피어오르더니 이내 꾸물거리며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키는 1.2m 정도, 짜리몽땅한 키를 가진 불꽃의 난쟁이라!
그 수가 꼭 일곱.
다리아 스노우화이트.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타오르는 장작의 난쟁이들.
지난날 제국과의 전쟁에서 홀로 성 하나를 함락시킨 적이 있는 다리아의 오리지널리티 마법이 발현됐다.
물론 그때에 비하면 많이 약화시킨 버전이라 알아보는 이가 없긴 했지만.
“화라라라!”
“화르르르륵!”
불이 타오르는 의성어를 소리쳐 외치며, 일곱 난쟁이들이 마구잡이로 갑판 위를 뛰어다녔다.
“으, 으아악!”
“무슨 이런 괴물 같은 게!”
사방으로 불꽃을 흩뿌리며 뛰어다니는 난쟁이의 존재는 해적들에게 있어 악몽 그 자체였던 바.
“죽어!”
“이 빌어먹을 난쟁이 새끼들이!”
몇몇 해적들이 용기 있게 나서 난쟁이를 향해 칼이나 도끼 따위를 휘두르긴 했다.
물론 아무 소용도 없었지만.
화륵!
도끼에 맞아 둘로 갈라지기 무섭게, 불꽃으로 화하며 갈라진 몸을 다시 붙였던 것이다.
거기다-.
“으아아악!”
“뜨거워!”
“내 손이 익는다!”
강렬한 열기가 도낏자루나 칼날을 타고 흘러들어 도리어 공격을 가해온 해적들의 손바닥을 익혀 버리기까지.
챙그랑, 창, 깡!
뜨거움을 견디다 못한 해적 몇몇이 그 자리에 자신의 병기를 내팽개쳤다.
“화락 화락!”
이어 난쟁이 하나가 펄쩍 뛰어오르며 해적 하나를 끌어안는다.
난쟁이에서 시작된 거센 불길이 순식간에 번져 나가고!
“끄아아아악!”
그러자 외마디 비명과 함께 해적 하나가 단숨에 잿더미로 변해 쓰러졌다.
놀라운 점은, 그렇게 불길이 퍼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배 위로 옮겨붙은 불은 단 하나도 없었다.
괜히 불똥이 잘못 튀었다간, 만에 하나라도 잡힌 이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었으므로.
다리아의 마력 통제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광경.
“화락, 화락!”
한때 해적이었던 것, 을 뒤로 하며 난쟁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일곱 난쟁이들의 무대, 해적들의 악몽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 * *
“화려하게 날뛰시는 모양이신데…….”
쪽배에 선 채로 타이밍을 기다리던 러셀이 중얼거렸다.
굳이 마력의 준동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다리아가 갑판에 올라간 이후로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해적들의 비명과 욕지거리가 끊어지지 않고 쏟아지는 중이었으니까.
게다가 해가 졌음에도 불구하고 갑판 위에는 해라도 떠오르는 듯 붉게 타오르기까지.
그때였다.
촤르르륵-.
위쪽에서부터 밧줄 하나가 내려온 것은.
러셀을 안쪽으로 잠입시키기 위해 다리아가 내려준 밧줄이었다.
‘결국 나를 시험해보실 생각이시군.’
보아하니 혼자서 날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신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러셀이 밧줄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이어 다리아에게 해적들의 시선이 팔린 틈을 타, 배의 안쪽으로 숨어들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