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EPISODE.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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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닷새만 주십시오.”
달튼의 약속을 받아낸 두 남녀가 떠나고 난 후, 장내에는 고요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안드레아스 달튼이 누구던가.
그는 아카인 상국의 암흑가를 사분하고 있는 네 개 조직 중 역오망성의 다섯 별 중 하나였다.
지금에서야 나이가 들어 카지노의 지배인으로 앉아 있다곤 하나, 불과 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암흑가에서 그를 부르는 별호가 투견(鬪犬)이었을 정도.
거슬리면 싸움을 건다, 싸움이 걸리면 일단 물어뜯는다. 그리고, 놔주지 않는다.
그와 같은 습성을 지닌 그가 투견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런 그가 싸움 한 번 벌여보지 않고 발을 뺀 것이다.
투견이라는 별명보다는 꼬리를 만 개에게나 어울릴 것 같은 모습.
무겁던 침묵을 깨뜨린 것은 칼을 빼든 채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던 수하 중 하나였다.
“다, 달튼 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암흑가에서 실력만큼이나 중요하게 치는 것이 바로 평판이었다.
만약 그 달튼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물러났다는 소문이 퍼지게 된다면?
‘우리 조직은 앞으로 어디 가서 제대로 얼굴을 들고 다니지도 못할 거야.’
‘다른 세 조직 놈들이 우리 쪽으로 오줌을 싸 갈겨도 할 말이 없겠어.’
무슨 일이 벌어질지야 불 보듯 뻔했다.
“그, 그렇습니다. 감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한 녀석의 물꼬가 트였기 때문일까. 녀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의견을 쏟아내기 시작하고.
개중 하나가 시퍼런 시미터를 고쳐 잡으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쫓아가서 잡아 올까요?”
그 말에 잠자코 있던 달튼이 경악하며 펄쩍 뛰었다.
“미친 소리!”
쨍그랑, 철벅!
얼마나 대경하며 일어났던 것인지, 무릎을 책상에 찧는 바람에 그 위에 놓여 있던 위스키가 쏟아졌을 정도.
흘러내린 술이 바지를 적시는 것도 모르며 달튼이 볼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지 마라. 그러지 마. 저자들은 폭풍이야…….”
많은 이들이 달튼의 투견(鬪犬)적인 면모를 보고 암흑가에 어울린다고 하지만, 그가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싸움개와 같은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외에도 굳이 이유를 꼽자면 두 가지. 첫 번째는 감이었다.
감히 그의 실력으로는 러셀과 무야호의 경지를 티끌만큼도 눈치챌 수 없었지만, 암흑가를 헤쳐 나오며 비이상적으로 발달한 감이 그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저들을 건들지 말라고.
그냥 보내주라고.
‘그리고 두 번째는…….’
우습게도 실력이었다. 암흑가의 거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나, 한때 그의 실력은 달인(達人)급 오러 수련자.
검기(劍氣)를 사용할 수 있는, 어느 국가를 가든 기사단장 이상의 실력자였던 그였다.
물론 지금은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한 탓에 실력이 전만 못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런데-.
‘전혀 종잡을 수도 없는 수준.’
바로 눈앞에서 목숨이 경각에 달하는 상황에 도달했는데, 상대방의 실력을 들여다 보기는 커녕 심연을 마주한 것만 같은 아찔함만을 느끼다니.
‘30대? 40대?’
여자는 20대 중후반처럼 보였고, 남자는 그쯤으로 보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 백발에 가까운 백금발 때문에 정확한 나이를 짐작하는 것이 어려웠기에.
아니, 애당초 저 정도 강자를 외모만 보고 나이를 묻는 것은 무리겠지.
저 먼 이국 열강의 강자 중 한 사람은 여든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흔처럼 해 보이고 다닌다는 소문도 있었으니까.
“폭풍이 왔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그렇기에 그는 그저 떨며 다시 한번 읊조렸다.
“그냥 지나갈 때까지 납작 엎드려 있는 것뿐이야…….”
어딘가 넋이라도 나간 듯, 멍해 보이는 모습. 때문에 그는 알지 못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수하 중 하나가, 뱀과 같이 간교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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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게지.”
카지노의 펜트하우스를 내려오며, 한 사내가 중얼거렸다.
뱀처럼 간교한 눈동자에, 벗겨진 머리 위로 붉은 쌍두사 문신(赤雙頭蛇文)을 새긴 사내였다.
굳이 따지자면 카지노에 몇 명 있는, 실력 있고 야망 있는 젊은 피 중 하나. 그중에서도 끊임없이 달튼의 자리를 넘보고 있던 자였다.
“천하의 투견도 나이가 먹으면서 이빨이 삭고 무는 힘이 약해진 게야.”
고작해야 연놈 둘에게 겁을 먹다니. 사내의 중얼거림에 그 뒤를 따르던 이들 중 하나가 반문했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이번 기회를 잘 이용한다면 달튼의 무능을 무대 위의 화두로 끌어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물며 그 대부분이 자신의 손아귀 안쪽에서 이루어진다면?
‘다섯별이 네 별로 줄어들긴 하겠지만, 카지노의 지배인 자리쯤이야 내가 먹을 수 있겠지.’
실로 암흑가의 인물다운 손익계산.
“날 따르는 녀석들로만 해서, 애들 좀 불러 모아 봐.”
빠르게 계산을 마친 그가 두 눈을 빛내며 목소리를 무겁게 깔았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닷새? 나흘 뒤 저녁, 우리가 놈들을 쳐 죽인다.”
-일단 달튼이 퇴물이 되었다는 것부터 증명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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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하하. 인간 세상이란 참으로 신기한 것이 많은 곳이구나. 수컷.”
딴, 따라란-.
노래가 흘러나오는 오르골의 태엽을 이리저리 감아대며 무야호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무려 삼십 분 동안 길바닥에 주저앉아 사달라고 떼를 쓴 끝에 얻어낸 것이었다.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나와 볼 것을 그랬어.”
호쾌하고 거침없는 성격과는 달리 다분히 잔잔하고 편안한 음색이라.
푸른 들판과 호숫가를 연상시키는 오르골의 음률에 러셀이 피식하고 웃었다.
‘가끔 급발진하는 경향이 있으시지만……심성은 순박하신 탓이겠지.’
이어 거듭 오르골의 태엽을 감으려는 무야호를 향해 짤막하게 경고했다.
“무야호 님.”
“알고 있다 수컷.”
그 말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야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고개는 돌리지 않고 가벼운 곁눈질을 사방에 몇 번.
“담벼락 뒤쪽에 둘, 오른쪽 지붕 위에 셋, 왼쪽 사층 창가에 하나, 아닌 척 뒤따르면서 솜사탕을 사 먹는 놈이 또 하나. 그 외에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무야호가 볼을 불퉁하게 부풀렸다.
“저런 막 생겨 먹은 얼굴로 솜사탕을 사 먹는 꼴을 보아하니 불쾌하구나. 죽일까 수컷?”
말도 안 되는 무야호의 핑계에 러셀이 저도 모르게 실소했다.
생긴 것에 따라서 솜사탕도 함부로 사 먹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물론 그깟 이유로 죽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건 간에.
“일단은 조금 더 기다려보죠. 그렇지 않아도 놈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와중이고…….”
“……?”
“여기는 보는 눈이 너무 많으니까요.”
“아하!”
러셀의 속내를 알아차렸다는 듯 무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순식간에 의견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천천히 티 나지 않게 걸음을 옮겼다.
낮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노을이 짙게 깔리고 있는 시각.
시내의 안쪽이라면 모를까, 바깥쪽으로 벗어난다면 보는 눈 따위야 금방 줄어들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도시의 외곽으로 향함에 따라 사람들의 수가 빠른 속도로 줄어가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놈들의 행동이 더욱 대담무쌍해졌다. 은밀하게 따라오는 것도 그만두고,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며 뒤를 쫓기 시작한 것.
‘서른여섯, 일곱……마흔.’
계속 늘어나기 시작한 숫자를 체크하며 한적한 등산로를 따라 걸음을 옮기던 두 사람이 발을 멈춰 선 곳은 산의 중턱 무렵.
꽤 넓은 공터가 펼쳐져 있는 곳에서였다.
“무덤 자리로 정한 곳이 여기인가?”
미행은 관둔 지 오래라는 듯 적쌍두사문 사내가 몇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 모습에 무야호가 반색했다.
“오. 아까 그 치대다 만 빵 반죽 같은 얼굴로 솜사탕을 사 먹던 놈이로구나!”
“뭐, 뭣?!”
예상치 못한 신랄한(?) 말솜씨에 적잖이 당황하길 얼마간, 무야호가 빠르게 이어 붙였다.
“그렇잖아도 네 녀석은 꼭 혼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캬하하하하!”
“이년이 미친 것도 아니고 의미 모를 소리만 지껄여 대는구나! 제발 죽여 달라고 애원할 때까지 괴롭힌 후에 헐값에 팔아주마!”
“오! 나를 죽여 달라고 애원하게 할 실력이 있단 말이지! 네가 그리 대단한 수컷처럼은 보이지 않는데!”
호탕하게 받아치는 무야호의 모습에 러셀이 쓰게 웃을 따름이었다.
‘그 의미가 아닐 텐데…….’
‘교미’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던 이치고 저런 부분에선 무지하단 말이지.
“죽여-!”
“캬하하하-!”
두 남녀가 내지르는 고함이 충돌하려는 찰나.
“무야호 님.”
어디선가 흘러든 목소리 하나가 두 사람의 음성을 멈춰 세웠다.
주위를 둘러싼 채 달려 나오려던 사내들의 걸음 역시 무엇인가에 막히기라도 한 듯, 턱 멈춰서고.
‘왜, 왜?’
그 이유를 깨닫는 것보다 먼저 러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혹시 모르니까 소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가능한 조용히 부탁드립니다.”
“가……능한 조용히?”
자신의 인생에 조용히는 없다는 듯 떨떠름하게 되물어오는 무야호를 향해 러셀이 단호한 표정으로 턱 끝을 주억였다.
“예. 조용히.”
그러자 무야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고, 주먹을 반쯤 말아 쥐었다.
퐁-.
꽤 귀여운 소리와 함께 보슬보슬한 털이 주먹을 뒤덮으며 동물의 그것처럼 변한다.
늑대……개과 동물 특유의 검고 도톰한 발바닥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위로 파창!
날카로운 발톱 하나가 솟아올랐다.
꽤 앙증맞게 솟아오른 단 하나의 발톱.
자신의 발톱과 적들을 번갈아 바라보던 무야호가 거듭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조용히,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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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초상이라도 난 것만 같은 분위기 속, 달튼은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앞에 앉은 두 남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두 남녀는 바로 러셀과 무야호였다.
“위장 신분은?”
짤막하고 냉소적인 물음.
“여, 여, 여기 있습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두 개의 신분패(牌)를 올려놓은 그가 뒤이어 서류 몇 장을 황급히 옆에 놓았다.
“나, 남자는 서른둘. 여자는 스물일곱. 북방계 동토인 중 2년 전 실종된 부부의 신분입니다. 이쪽에는 딱히 일가친척도 없는 모양이고 이주를 온 후에 실종된 이들입니다. 서, 서류를 보시면 알겠지만 문제가 될 만한 것은…….”
“딱히 없어 보이는군.”
“예.”
달튼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대금은 어제 있었던 일로 치르면 되는 거겠지?”
“어, 어제 있었던 일이라면…….”
“조직 내에 있던 반대 파벌을 외부인의 손으로 제거했으니 손도 대지 않고 코도 푼 격 아닌가?”
핵심을 관통하는 러셀의 말에 달튼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창백하게 질렸다.
자신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녀석이 나설 것을 알면서도 굳이 막지 않았다.
그런데 설마하니 거기까지 꿰뚫고 있을 줄은…….
“그, 그게…….”
“설마 반대 파벌을 일거에 정리한 수고가 신분증의 대금으로 부족하다는 말은 아닐 테고…….”
암흑가의 녀석들을 상대할 때는 결코 얕보여서는 안 된다. 강자는 항시 강자로서 군림해야 이런 녀석들이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 법.
러셀의 능숙한 대처에 달튼이 눈물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습니다!”
카지노에서 돈을 두둑하게 땄을 뿐만 아니라 공짜로 위조 신분증을 얻기까지.
‘탕진하러 왔다가, 오히려 잔뜩 벌어가는 격이군.’
어쩐지 제국에 들어가기 전의 전조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