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11
211화
EPISODE.106
늙은 목소리, 암룡이 러셀을 데리고 간 곳은 둥지 한켠에 마련된 응접실이었다.
‘설마 둥지 안쪽에 이런 공간이 있을 줄이야.’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의 높이는 약 3미터. 그 사이에는 고풍스런 모습으로 디자인된 원형의 테이블과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고, 천장에는 한눈에 봐도 값비싸 보이는 샹들리에가 이리저리 빛을 산란하며 번쩍였다.
‘오는 길에 보아하니 응접실 말고도 몇 개의 방이 더 있던 것 같던데…….’
지금까지 보아왔던, 용들의 둥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
암룡, 혹은 지룡 계열 용들의 둥지가 특별한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용들 개개인의 성격에 따라 둥지가 달라지는 것인지.
러셀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끼이익.
문이 열리며 누군가 응접실의 안으로 들어왔다.
곱게 쓸어넘겨 쪽진 황색의 머리칼과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 인간형으로 화(化)한 암룡이었다.
“홀홀홀.”
확실히 개인 취향이라는 것이 있는지, 화려하기 짝이 없는 옷차림이 눈에 띄었다.
꽤 오래전의 양식인 것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입고 있는 드레스는 새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곳곳에 장식된 아름다운 프릴과 보석이라니.
게다가 목에는 주먹만 한 다이아 목걸이를 차고, 손가락에는 두툼한 토파즈가 박힌 반지를 하기까지.
“제가 작은 주인을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시게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요.”
말과 함께 부우웅. 탁.
방금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다기들이 허공을 날아와 탁자 위에 놓이고.
달그락, 달그락-.
마법을 이용해 손도 대지 않고 차를 우려내며 암룡이 말했다.
“수면기에 들기 전……꽤 오래전에 사두었던 차인데, 보존 마법을 걸어둔 덕분인지 상태가 양호하더군요.”
물이 끓어오르며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독특한 차향이 코끝을 화하게 만들었다.
“드셔보시지요.”
호박색 찻물, 후릅-.
아무 생각이 없이 목을 축이던 러셀이 깜짝 놀라 눈을 홉떴다.
“이건-!”
“오래전, 신대의 인간들 몇이 즐겨 마시던 차랍니다. 신목(神木), 유그드라실의 상층부에만 자생하는 이끼를 말려 만든 것으로 정신을 맑게 하고 장복하면 마나를 정순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는 것이지요. 홀홀홀.”
다만 가격이 같은 부피의 금보다 열 배 이상 비쌌던지라, 신대의 이들 중에서도 이를 마실 수 있는 이는 몇 안 되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마나를 정순하게 해주는 차라니…….’
마력의 순도에 따라 낼 수 있는 폭발력이 달라지는 마법사나 오러 수련자들에게 있어선 무가지보(無價之寶)와 다를 바 없는 보물이라는 이야기.
“그렇게 귀한 보물을 이렇게 쉽게 마셔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러셀의 중얼거림에 노부인의 외견을 한 암룡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제게 남은 것은 이게 마지막이랍니다. 게다가 이 늙은이에게 남은 시간 역시 그리 길지는 않으니까요. 홀홀.”
그리 말한 그녀가 찻물로 입술을 축인 후 러셀을 향해 가볍게 고개 숙였다.
“조금 늦었지만, 작은 주인께 인사드리겠습니다. 지룡의 계소를 잇는 아종. 암룡(巖龍), ‘오펠라 루’라고 합니다. 부디 오펠라라고 불러주시길. 홀홀홀.”
“러셀, 러셀 레이먼드입니다.”
“홀홀, 러셀 레이먼드. 그것이 작은 주인의 이름이시군요.”
러셀의 이름을 기억하려는 듯, 작게 읊조리길 몇 번인가.
달그락-.
“이 늙은이 생각에 작은 주인께서 궁금하신 것이 아주 많을 거라 사료되옵니다만. 홀홀.”
오펠라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 오랜 시간이 남아 있진 않지만, 이 늙은이가 작은 주인의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 드릴 수 있다면 좋겠군요.”
홀홀홀.
그녀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라는 듯, 턱짓해 보인다.
그 물음에 러셀이 엄지와 검지의 끝을 가볍게 비볐다.
‘무엇을 물어야 할까.’
지금까지 두 번인가 용들을 마주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과 제대로 대화를 나눌 만한 기회는 없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도 부족했기 때문.
“용제는…….”
한동안 질문을 고르던 러셀이 결정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용제는 어떤 존재이고, 왜 제가 용제가 된 것입니까.”
“가장 본질적인 질문 중 하나로군요. 홀홀홀.”
반 호흡가량, 한 차례 숨을 고른 그녀가 한층 깊어진 눈빛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용제란…….”
용제란 문자 그대로 모든 용들의 지배자이자 종(種)의 주인 되는 존재였다.
“또한 모든 용들의 근원이기도 하지요.”
“근원 말입니까?”
“예. 용제께서 존재하지 않으시다면, 용들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 말의 의미를 더듬던 러셀이 생각나는 바가 있다는 듯, 흠칫하며 되물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용들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이유가 설마─!?”
러셀의 물음에 오펠라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큰 주인이시자, 선대의 용제. 용신왕께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랍니다. 홀홀…….”
“용신왕.”
용신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러셀이 이야기에 더욱 집중했다.
오펠라의 설명에 의하면, 용신왕은 억겁의 세월을 살아가는 존재였다.
그런 용신왕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중간계를 어지럽히는 자들과의 연이은 전투에서 얻은 상처 때문이었고.
“거인, 마족, 악신, 사교의 초월자 등……그분과 함께 참 많은 존재들과 싸워왔었지요.”
그때의 전투를 회상하기라도 하는 듯 그녀의 눈동자가 절로 깊게 가라앉았다.
그것도 잠시, 이내 빠르게 신색을 회복한 오펠라가 또렷한 눈동자로 러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작은 주인께서 새로운 용제가 되신 이유는, 당신께서 바로 그분의 마지막 남은 후손 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는 그분과 이계구원자의 후손이라고 해야겠지만요.”
“이계구원자…….”
“다른 세상에서 넘어와, 우리들의 왕과 함께 이 세상을 구한 반려를 칭하는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의 흑발은 이계구원자의 그것과 꼭 닮았군요.”
그제야 흩어져 있던 퍼즐들이 하나둘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왜 어머니의 유품이던 반지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던 용의 심장에 반응했는지까지도.
‘어머니께서……이계구원자의 후손이셨던 거야.’
그 사실을 당신께서 알고 있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면 2세대의 용들이란……저와 마찬가지로 용의 인자를 진하게 물려받은 이들 중, 다음 대(代)의 용으로 각성한 이들을 말하는 겁니까?”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은룡화 되어가고 있는 이오나, 정령계에서 화룡화 되어가고 있을 페퍼를 떠올리며 내뱉은 물음이었다.
“바로 그렇답니다.”
러셀의 물음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 역시도, 제 힘을 이어받아 다음 대의 용이 될 아이를 조금 전에 결정한 와중이랍니다. 홀홀홀.”
“조금 전이라면……?”
되물어 오는 러셀의 모습에 오펠라가 시선을 움직였다.
저 먼 곳, 둥지의 바깥쪽에 있을 누군가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저 바깥쪽에, 화룡의 피를 이어받은 여아가 있더군요. 비록 지룡은 아니라지만 그 또한 분명한 용의 인자. 홀홀홀. 강인한 실력을 지니고 있는 만큼 제 힘 역시 잘 받아들일 수 있을 테지요.”
.
.
그 후로도 러셀과 오펠라는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용신왕께서는 이계구원자가 종종 말하는 게임(Game)이라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지셨답니다.’
‘그중 어떤 행동이나 노력을 하면 그에 대한 명확한 보상이 주어지는 구조를 굉장히 좋아하셨죠. 홀홀홀.’
─왜 용신왕의 힘이 미션과 보상이라는 구조를 통해 자신에게 전달되게 되었는지 정도일까?
그렇게 사소한 질의를 나누길 십 수 분, 처음 끓였던 찻물이 미지근하게 식어갈 무렵이었다.
“으음…….”
이야기를 하다 말고, 돌연 가슴 언저리를 붙잡으며 오펠라가 침음했다.
“괜찮으십니까?”
“예. 저는 괜찮습니다만……아무래도 이 늙은이에게 남은 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듯합니다.”
“그 말씀은…….”
은룡이 그랬던 것처럼, 오펠라 역시 자연의 품으로 환원될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작은 주인을 만나 뵙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연명시키고자 긴 수면기에 들어 있었을 뿐, 애초부터 이리되는 것이 순리였습니다. 홀홀홀.”
그리 말한 그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만 그 전에, 개인적으로 작은 주인께 전해드려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게요?”
“저를 따라오시지요.”
가슴 언저리를 몇 번인가 두드리고, 신색을 정리한 그녀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벅, 저벅-.
응접실을 빠져나간 그녀의 걸음이 향한 곳은, 둥지 안쪽에 위치한 거대한 석문의 앞이었다.
그 앞에 멈춰선 그녀가 문을 향해 손을 뻗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작은 주인께서 보시기에 제 둥지가 지금껏 보아왔던 다른 용들의 둥지와는 퍽 다르지요?”
“아, 예…….”
“그럴 수밖에요. 저는 지룡의 아종. 온갖 진귀한 것들을 품고 있는 땅의 힘을 지닌 용이랍니다.”
그리 말한 오펠라가 눈앞의 석문을 힘껏 밀었다.
“소설이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용들이, 금은보화를 탐내는 이유 또한 바로 저희 지룡들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이지요. 홀홀홀.”
쿠그그그긍-.
육중한 소리와 함께 석문이 양쪽으로 열리고, 직후 안쪽에서부터 환한 빛이 쏟아져 나온다.
화아악-!
총천연색 보석광의 향연이 일순, 눈앞을 어지럽혔다.
“윽…….”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으며 눈앞을 가렸던 러셀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작은 언덕마냥 쌓아 올려져 시야를 가리고 있는 금괴의 더미는 일부분일 뿐.
그 너머로도 몇 개나 되는 금괴의 산이 잔뜩 쌓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뿐만 아니라 안쪽 곳곳에 갖은 종류의 보석들이 바닥을 굴러다니기까지.
아니, 보석류만이 아니다.
‘저쪽은 그림과 조각품인가…….’
대충 눈대중으로 헤아림 해보아도 엔디미온의 몇 년 치 예산에 육박할 정도였다.
놀라는 러셀의 귓가로 오펠라의 음성이 흘러들었다.
“홀홀홀. 이 늙은 용이 젊었던 시절부터 일평생 동안 수집해온 것들이랍니다.”
한껏 자랑스러워하는 목소리.
“탐욕 많은 용답게 오랜 세월 애지중지 해온 것들이건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녀가 미련은 없다는 듯 그에게 말했다.
“부디 작은 주인께서 받아 주시겠습니까?”
“이 많은 것들을 제가 받아도 될지…….”
러셀이 말꼬리를 흐리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대지로 환원되는 마당에 이 많은 것들을 끌어안고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홀홀홀. 부디 늙은 용의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하고 받아 주시기…….”
말을 하다 말고 그녀가 콧잔등을 찌푸렸다.
“이런. 홀홀홀. 아무래도 제게 허락된 시간이 모두 끝난 모양이로군요.”
화아악-.
그와 함께 강렬한 마력의 폭풍이 휘몰아치며 오펠라의 노구가 발끝에서부터 찬찬히 모래로 변해 흩어지기 시작한다.
“가능하다면 끝까지 모시고 싶었으나,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니……제 힘을 이어받은 아이가 작은 주인을 잘 보필 할 수 있기를. 이 늙은 용은 부디 바라보겠습니다. 홀홀홀.”
말이 끝났을 즈음에는 그녀의 하반신 전부가 모래로 화해 있었고, 일순.
“이런, 그러고 보니 말씀드리는 것이 늦었군요. 홀홀홀.”
마지막으로 전할 말이 떠올랐다는 듯,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작은 주인이시여, 북쪽으로…….”
“……!?”
[미션]북쪽의 동토.
저 먼 북쪽, 얼어붙은 대지에서 두 개의 만월이 뜨는 가장 큰 거울을 찾으세요.
[보상]???
이윽고 오펠라의 말이 모두 끝났을 때, 그녀의 신형은 이미 모래로 변해 사라진 지 오래라.
다만,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모래만이 바닥을 따라 어딘가를 향해 흘러가고 있을 따름이었다.
스르륵-.
마치 자신의 힘을 이어받을 누군가에게로 향하는 것처럼.
스르르륵-.
.
.
“에퉤퉤퉤! 모래!”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