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EPISODE.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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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주저앉은 채 어깨를 흔들며 주변을 구경하던 무야호가 돌연 몸을 크게 움직였다.
“캬우웅…….”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내뱉는다.
러셀이 안개 안으로 들어간 지 벌써 몇 시간 째. 그 시간 동안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노라니 좀이 쑤셨던 것.
그렇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닐 수도 없었다.
안개가 뒤덮고 있는 부분을 제외하면, 바위 평지 자체는 그리 넓은 편이 아니었으므로.
게다가 날은 또 왜 이렇게 좋은 것인지.
봉우리 아래쪽으로는 거대한 운해(雲海)가 강줄기 마냥 도도하게 흘러가고, 불어온 바람에 그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고도가 높은 만큼 추울 법도 하건만, 경지에 오른 그녀에게 있어 이 정도 추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
게다가 고도가 높아진 만큼 태양이 가까워진 것인지, 햇살이 선명하기까지 했으니.
‘낮잠이나 좀 잘까…….’
바위 사이로 피어오른 토끼풀을 꺾어 꽃반지를 만드는 것도 처음 한두 번만 재밌지.
벌써 수십 개가 넘어가는 꽃반지를 만들다 보니 지루함이 찾아왔던 것.
결정을 내리고 행동으로 개시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만들고 있던 꽃반지를 내려놓으며 무야호가 벌렁 드러누웠다.
그리고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도롱, 도로롱…….
가늘게 코 고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스스스슷-.
한 줌의 모래가 바닥을 기어 그녀를 향해 다가온 것은 그로부터 약 십 분 정도가 더 흐른 후의 일이었다.
스르르르륵-.
부드럽게 바닥을 미끄러진 모래가 순식간에 그녀의 입안으로 들어가고-.
“컥!”
신음과 함께 무야호가 자리를 벌떡 박차며 일어났다.
“에퉤퉤퉤, 모래!”
입안의 수분을 모두 빼앗아가는 듯 텁텁하면서도 서걱거리는 식감.
자리에서 일어난 무야호가 몇 번이고 헛구역질을 해보았지만, 이미 모래 중 상당수는 목을 타고 넘어간 지 오래라.
“미친 것도 아니고 잠꼬대로 모래를 씹어 삼켰다고……?”
난데없는 봉변에 무야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모래 속에 담긴 기운을 흡수하는 즉시 뭔가 변화라도 일어났다면 심상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것도 아니었으니…….
이오 때와 마찬가지로.
모래 속에 깃들어 있던 암룡(巖龍)의 힘은, 때가 될 때까지 그녀의 몸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을 것이었다.
“으…….”
그렇기에, 아무것도 모르고 입 안에 남은 찝찝한 기색을 떨쳐 내기 위해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던 무야호가 돌연 의문을 토해냈다.
“어?”
무심코 돌아본 봉우리, 그곳을 휘감고 있던 안개가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다.
화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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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펠라가 모래로 화해 사라진 후.
러셀은 그녀가 남긴 보물창고를 돌아보는 와중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가 남긴 창고 속의 보물들을 아공간에 쓸어 담고 있었다고 해야겠지만.
‘평범한 금화라고 생각했는데…….’
잘그락-.
금화를 주워 담던 러셀이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설마 토로이 금화일 줄이야.’
토로이는 그 옛날 번성했다던 고대 국가 중 하나였다.
그 옛날, 해신 중 하나인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 해일에 뒤덮여 수장되었다는 고대 국가.
그 토로이의 특징 중 하나가, 금을 다루는 기술이 매우 섬세했다는 것이었다.
때문인지 토로이에서 생산된 금화는 수천 년이 흐른 지금도 수집가들 사이에선 비싼 값에 거래되곤 했다.
그런 토로이의 금화가 평범한 금화들 사이에 드문드문 섞여 있는 것이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빈치, 마켈렌, 오푸스…….’
미술계에선 지금도 이름이 자주 회자되곤 하는 저명한 예술가들의 작품 또한 드문드문 섞여 있었으니.
그중 몇몇은 세간에 알려지지도 않았는지, 처음 보는 작품들이 많았다. 러셀로서도 작품 구석마다 있는 그들의 서명이 아니었다면 쉬이 확신하지 못했을 터.
‘엔디미온의 예산의 몇 배 정도는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예상을 벗어나는 물건들이 계속 튀어나온다면, 그 배까지 될지도.
게다가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따로 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금은보화에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는 마법사.
그의 관심을 끄는 물건은 따로 있었으므로.
‘마법 스크롤…….’
그것도 평범한 마법 스크롤이 아니었다.
‘무려 7, 8써클의 마법들이 담겨 있는 스크롤이라니.’
그 보관 상태 역시 상당히 양호했다.
개중 오랜 시간이 흘러 손상된 것은 약 1할가량.
남은 9할 정도는 마력을 불어 넣고 시동어를 읊기만 한다면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을 수준이었으니까.
뿐만 아니라 보관되어 있는 마법 스크롤 중에는 모종의 이유로 실전되어 더 이상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은 종류의 마법들 역시 있었다.
‘블리즈번 학파의 헬 파이어(Hell Fire).’
8써클 마법, 헬 파이어 역시 바로 그중 하나였다.
실제로 다리아가 부족한 불꽃의 위력을 보충하기 위해 무스펠하임의 불씨를 빌려오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막대한 양의 마력을 대가로 말이지.’
그런 헬 파이어 마법이 기록된 스크롤이 무려 두 장. 둘 모두 보관상태가 양호하니, 어쩌면 헬 파이어를 복원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헬 파이어 뿐만 아니라 다른 마법들도…….’
설혹 실패한다 하더라도 잊혀진 마법의 단편을 엿보고, 그 과정에서 마법적 소양과 성취 역시 진일보시킬 수 있을 터.
전혀 예상치 못한 소득에 러셀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그렇게 창고에 있던 물건을 아공간 속에 집어넣는데 걸린 시간만 하더라도 족히 수 시간.
팅-.
하나 남은 금화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러셀이 혀를 내둘렀다.
‘7써클에 오르면서 아공간의 크기가 크게 성장하지 않았다면……다 들어가지도 않았겠어.’
그 후로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둥지 속에 마련된 몇 개의 방을 더 둘러보았지만 딱히 특별하다 싶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잠을 자기 위해 마련된 커다란 굴이나, 평범한 식재료 따위를 보관하고 있는 곳 정도가 전부였을 뿐.
“끝인가.”
구석에 남은 방까지 알뜰살뜰하게 확인을 마친 러셀이 작게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미궁을 돌파하고 이곳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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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륵-.
출구를 이용해 밖으로 나서자, 알 수 없는 이물감이 몸을 통과하는 것이 느껴진다.
“음.”
이물감 사이를 전부 빠져나온 후, 고개를 돌리자 보인 것은 완전히 막다른 길에 다다른 동굴의 벽면이었다.
‘마법을 이용해 둥지의 출입구를 숨긴 건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손을 뻗어 보았지만, 평범한 동굴의 벽이었다.
아마도 자신의 모든 기능을 다했기에 둥지로 들어가는 입구가 봉인된 듯했다.
그렇게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아래로 향하자, 무야호가 러셀을 발견하며 손을 흔들었다.
“왔구나. 수컷! 네가 말한 대로 이곳에서 잘 기다리고 있었다. 캬하하하!”
칭찬이라도 바라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희미하게 웃으며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셨습니다.”
시선을 움직여 그녀의 전신을 가볍게 살피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오펠라가 말했던 여아가 무야호가 확실한 만큼,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런 러셀의 생각과는 달리 무야호의 몸에 별다른 변화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흐음……혹시 기다리시는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까?”
“특별한 일? 글쎄…….”
무야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잠꼬대를 하다 모래를 조금 퍼먹은 것 말고는……잘 모르겠는데?”
잠꼬대라고 하는 것을 보니 기다리다 지쳐 잠시 잠이 들었던 모양.
‘모래를 먹었다고 하는 걸 보면, 오펠라 님의 힘이 무야호 님께 들어간 건 확실한데…….’
아마도 변화가 나타나기까지 이오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조금 필요한 모양.
“왜 그러느냐. 수컷?”
“아무것도 아닙니-?!”
되물어오는 그녀를 향해 러셀이 고개를 저으려는 찰나!
“─!!”
순간 느껴진 강렬한 시선에 러셀이 몸을 틀었다.
“수컷!”
무야호가 하늘을 향해 경호성을 터뜨렸다.
“그때 그 시선이다!”
“그 시선이라면…….”
무엇을 말하는지야 뻔했다. 아마도 세 구의 데스 나이트를 쓰러뜨린 날, 느꼈다던 시선이라는 말일 테지.
펄럭-.
날갯짓 소리가 울려 퍼지며 커다란 그림자가 하늘 위로 드리우고, 모습을 드러낸 날개의 주인을 확인하며 러셀이 눈을 크게 치켜떴다.
“너는…….”
호리호리한 체격에 흑발과 세로로 길게 찢어진 호박색 눈동자, 그에 대비되는 창백하기 그지없는 피부까지.
몇 년 전, 히드라와의 전투 직후에 만난 적 있는 사내였다.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마의 양쪽으로 자라난 사슴의 그것과 같은 묵색 뿔과, 그와 같은 색의 날개를 매달고 있다는 점일까.
마치 용인화를 펼친 자신과도 흡사한 모습.
펄럭-.
날갯짓 소리가 다시 한번 울렸다.
서서히 하강을 시작하는 사내의 모습에 무야호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경계의 기색을 늦추지 않으며 무야호가 질문했다.
“네놈. 누구냐…….”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축축하게 흘러내린다.
동시에 그녀가 지닌 야성이 맹렬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눈앞의 사내는 자신이 전력을 다한다 하더라도 이길 수 있다 확신할 수 없는 존재라고.
다리아 이후로 이런 상대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
‘역시 대륙은 넓단 말이지.’
뚜둑, 뚜두둑-.
말아쥔 주먹 사이로 뼛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진다. 반지의 형태로 잠들어 있는 거창(巨槍)만 꺼내 든다면 그야말로 만전 상태라.
그러건 말건, 척-.
바닥에 내려선 사내를 향해 러셀이 입술을 달싹였다.
“당신……역시 용이었군요.”
전날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사내는 러셀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하는 대신, 또렷한 눈동자로 러셀을 노려보며 말했다.
“전에 만났을 때보단 확실히 강해지긴 했군. 하지만…….”
“……?”
“하지만 아직 부족해.”
팟-!
말이 끝나는 것과 무섭게 사내의 모습이 제자리에서 꺼진 듯 사라진다.
직후 사내의 신형이 다시 나타난 곳은 바로 러셀의 코앞이었다.
“뭣?”
그 모습에 무야호가 당혹성을 토했다. 분명 만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일순간이나마 자신의 눈을 벗어날 만큼 빠른 속도라니.
화악-!
그 속도로 인해 뒤늦게 후폭풍이 매섭게 들이닥치고.
그 속에서 휘청이며 자신을 향해 달려들려는 무야호를 뒤로하며 흑발의 사내가 손을 뻗었다.
콱!
위협적이긴 했으나 살의는 느껴지지 않는, 자신의 멱살을 움켜쥐는 손길에 러셀이 미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어째서 용에게서 사기(死氣)가…….’
가까이 다가선 흑발의 사내에게서, 사교도들이나 내뿜을 법한 진한 사기가 느껴졌던 것.
“네가 진정 용제라면…….”
그러건 말건 러셀과 눈을 맞춘 사내가 으르렁거리며 뇌까렸다.
“모든 용의 주인 될 자라면 단 하나의 용조차 버려서는 안 될 테지.”
“그게 무슨……?”
러셀의 의문을 흘리려는 찰나, 탁.
사내가 움켜쥐었던 러셀의 멱살을 내려놓았다.
“더 강해져라…….”
이어 처음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묵빛 피막의 날개를 펄럭이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모든 용을 복종시킬 수 있을 만큼, 이 나를 주박에서 해제시킬 수 있을 만큼 강해져라. 어린 용제여.”
높게 날아오른 사내의 신형이 빠른 속도로 점이 되어 사라지고.
“비록 지금은 적이나, 언젠가는 주인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나, 타락룡(墮落龍)……질리언 리제스터는 간절히 바라노라.”
이내 사내가 남겨놓은 마지막 음성만이, 허공중에 쓸쓸히 흩어져 갈 따름이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