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EPISODE.107
물이 뱃머리에 부딪히며 새하얀 포말(泡沫)이 일어나고, 파도가 거침없이 갈라진다.
지금 러셀과 무야호는 엔디미온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카인 상국으로 향하는 뱃길을 이용하는 와중이었다.
그리고…….
‘흠.’
항해 내내, 아니. 항해를 시작하기 전 제국의 땅을 가로지르면서도 러셀은 머릿속으로 한 가지 화두(話頭)를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타락룡(墮落龍)이라…….’
문자 그대로 타락한 용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했다.
강대한 힘을 지닌 대신, 물질계를 수호해야만 한다는……용종이 짊어진 숭고한 의무와 업을 벗어난 용.
일부 역사서에서는 그러한 성정의 용들을 일컬어 마룡(魔龍)이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웬걸.
러셀이 만났던 사내는 역사 속에 기록된 마룡들과는 그 결이 상당히 달라 보였다.
사특한 기운을 풀풀 내뿜고 있긴 했지만, 타락룡이라는 이명과는 달리 정신이 흐트러져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파괴 본능에 이성이 매몰당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용이 그런 식으로도 타락할 수 있는 건가?’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모든 용을 복종시킬 수 있을 만큼, 이 나를 주박에서 해제시킬 수 있을 만큼 강해져라. 어린 용제여.”
-의미심장한 그 말과 함께.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사내의 눈빛이었다.
무감각하고 무감정한 동공.
하지만 그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구원에 대한 한 줄기 바람이었던 바.
‘후.’
그 시선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러셀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본국으로 돌아가면 타락룡과 마룡에 대한 기록들을 다시 한번 조사해봐야겠어.’
벌써 스무날이 넘도록 지속해온 사내에 대한 상념은 거기까지.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상념을 털어 버린 러셀이 뻐근하던 목을 이리저리 풀었다.
“끙…….”
그때였다. 러셀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무야호가,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표정으로 몸을 이리저리 꿈틀댄 것은.
그런 그녀의 앞에 놓여 있는 것은 몇 개나 되는 빈 술병들. 하나 같이 라벨이 기록된 높은 도수가 눈에 띄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술을 몇 병이나 비워내고도 멀쩡한 모습이라니.
‘딱히 기운을 이용해 주독을 몰아내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는데…….’
이런 걸 술고래라고 해야 하는 건지.
“술이 부족하십니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는 그녀를 향해 묻자, 무야호가 고개를 흔들었다.
손톱을 일부 세워 자신의 목을 계속해 긁적이며 말했다.
“아니, 불편한 건 아닌데……며칠 전부터 목이 간지러워서…….”
“털갈이를 하시거나 씻을 때가 되신 건 아닙니까?”
“무, 무, 무슨 그런 무례하고 미친 소리를 하는 거냐. 수컷!”
러셀의 농담에 무야호가 뜨악하며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얼굴까지 붉게 달아오른 것이 적잖이 당황한 모양.
“모, 모, 목욕이라면 어젯밤에도, 오늘 아침에도 했단 말이다!”
그들이 예약한 선실은 꽤 값이 나가는 특실, 목욕할 수 있는 물이야 하루 종일 제공되는 곳이었기에.
“그럼 왜……?”
“그러게 말이다.”
러셀의 말에 무야호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네가 좀 봐주겠느냐. 수컷? 뭔가 까끌거리는 게 있는데, 내 목덜미를 내가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무야호가 말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젖혔다. 자신의 목덜미 측면을 드러내며 러셀을 향해 성큼 다가섰다.
화악-.
독한 알코올 냄새와 함께 과일주 특유의 달큰한 주향이 코끝으로 확 끼쳐오고.
‘윽!’
섞여든 체향에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황급히 시선을 움직였다.
방금 전까지 무야호가 긁어대던 목덜미를 확인했다.
“……?!”
일순 러셀의 숨소리가 달라지고, 그것을 느낀 무야호가 걱정스런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무, 무슨 일이냐. 수컷. 설마 피부병이라도……?”
“잠시만, 잠시만 가만히 있어 주시겠습니까. 무야호 님.”
그런 무야호를 진정시키며 러셀이 손을 뻗었다. 자신의 손으로 무야호의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겼다.
“수, 수컷?”
그 부드러운 손길에 무야호가 전보다 더욱 당황하며 말을 더듬어댄다.
주책없게 얼굴은 또 왜 화끈거리는 건지. 하지만 정작 그와 같은 행동을 해 보인 러셀의 눈빛은 진지하기 그지없었고.
러셀이 무야호의 목덜미를 따라 자라나고 있는 것의 정체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역시나…….’
딱-!
손가락을 튕기자 마력이 결정처럼 맺혀 들더니 손바닥만 한 거울 두 개가 허공중에 생겨난다.
저 써클 마법인 미러 이미지.
“무야호 님.”
거울의 반사각을 이용해 그녀가 긁어대던 부분을 비춰 보이며 러셀이 입을 열었다.
“이걸 좀 봐주시겠습니까?”
“이건……?”
반사된 거울을 이용해 자신의 목덜미를 확인하던 무야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비늘이 아니냐. 수컷?”
그녀의 말대로, 무야호의 목덜미를 따라 가지런하게 자라나고 있는 것은 암갈색을 띠는 비늘이었다.
마치 용인화를 사용했을 당시, 러셀의 눈 아래쪽으로 비늘이 나타났던 것과 비슷한 모습.
‘뒷목의 좌우, 두판상근(頭板狀筋) 쪽인가.’
다행히도 비늘이 나타난 곳은 저 두 곳뿐, 다른 곳에서 비늘의 흔적은 따로 보이지 않았다.
“어, 어째서 비늘이─. 나는 파충류 수인도 아닌데……?!”
목을 긁어대며 전신을 부르르 떠는 그녀의 모습에 러셀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오 님 때와는 또 다른 상황인데.’
은룡과 암룡.
각자 받아들인 용의 종이 다르기 때문인지, 그렇지 않으면 힘을 받아들였을 당시 본연의 강함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무래도…….’
─설명이 필요할 듯싶었다.
.
.
“그러니까…….”
설명이 모두 끝난 후. 무야호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슬슬 어루만졌다.
“수컷의 말대로라면 내가 용의 힘을 완전히 받아들였고, 이 힘이 완전히 개화하게 되면 수컷과는 주종관계로 엮이게 된다는 말이지?”
“예.”
“머리에 뿔이 날 수도 있고?”
“……예.”
러셀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지금이 될 줄은 몰랐지만, 언젠가는 털어놓았어야 할 이야기였다.
어쨌건 간에 속이 시원한 것도 사실. 그리고 한편으론 무야호에게 미안한 감정 역시 들었다. 그녀가 화를 내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들고.
그럴 만도 한 것이, 무야호의 입장에선 난데없이 자신과 주종관계로 얽히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자유로운 성정을 지닌 그녀였다.
이 사실에 불쾌감을 느끼고 삐뚤어진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을 테지.
하지만, 그런 러셀의 걱정과는 달리-.
“그거 꽤 마음에 드는구나. 수컷. 캬하하하하.”
무야호의 대답은 러셀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용의 힘이라니. 그런 걸 받아들여서 한층 더 강해질 수 있단 말이지.”
“예?”
“게다가 그 엘프 계집도 수컷과는 주종관계. 이걸로 뒤처지지 않고 대등한 위치가 되었군!”
삐뚤어지기는커녕 아주 흡족해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 그 표정에 의아함을 느낀 러셀이 되물었다.
“불쾌하거나, 그러시지는 않으십니까?”
“불쾌? 내가 왜?”
그리 중얼거린 무야호가 삼백안을 드러내며 눈을 날카롭게 떴다.
“아하. 네가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구나. 수컷. 네 성격이라면 그런 걸 신경 쓸 법도 하지.”
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러셀의 위아래를 쓸어보며 말했다.
“허나, 수컷.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있다.”
“……?”
“너는 지금껏 내가 교미하자는 이야기를 그저 농담처럼 생각해온 것 같더구나.”
“예?!”
갑작스런 교미 이야기. 러셀이 놀라건 말건 무야호는 자신이 할 말을 계속해서 늘어놓았다.
“늑대는 한 번 정한 짝을 평생 바꾸는 법이 없고, 나는 그 늑대의 왕, 펜릴의 피를 물려받은 수왕이지.”
그녀가 자신의 가슴팍을 탕탕 치며 덧붙였다.
“다시 말해 수컷, 내 마음속에서 너는 이미 하나밖에 없는 짝이란 말이다. 물론 주종관계가 아니긴 했지만……어쨌건 간에. 별로 다를 것도 없지 않느냐?”
어깨를 으쓱이는 무야호.
이걸 정론이라고 해야 할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 멋대로 해석한 결과라고 해야 할지.
러셀이 쓰게 웃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제게는 이미 미래를 약속한 상대가 있습니다. 하여…….”
“흥!”
러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야호가 콧방귀를 끼며 손바닥을 펼쳤다.
러셀의 말을 가로막으며 도리질했다.
“그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수컷.”
“……네?”
“이미 이야기는 다 끝나있으니 말이야.”
이야기가 끝나다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던 것인지.
“중요한 것은 누가 둘째가 되느냐인데…….”
의아해하는 러셀을 뒤로하며 무야호가 작게 읊조렸다.
“……그 앙큼한 엘프 계집에게는 절대로 질 수 없지. 암. 그렇고말고.”
주먹까지 말아 쥐고, 목소리를 낮춰 으르렁거리는 그녀의 두 눈은 투쟁심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 * *
별 탈 없이 엔디미온까지 들어온 두 사람이 헤어진 것은 왕도로 향하는 길목의 중간쯤이었다.
“음. 한동안 자리를 비웠으니, 나도 슬슬 돌아가 봐야지. 그럼, 다음에 보자고. 수컷.”
한쪽 눈을 찡긋이며 이별을 고하는 무야호를 뒤로하고, 왕도에 도착한 러셀을 기다린 것은 다리아의 호된 회초리였다.
쾅-!
아니, 회초리 치곤 상당히 거대하고 달짝지근하긴 했지만 어쨌든.
“……스승님?”
방금 전까지 자신이 서 있던 곳을 내려찍은 거대한 물체의 존재에 러셀이 떨떠름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얼마나 묵직한 물건이 내려찍은 것인지, 마룻바닥이 움푹 패어 들었을 정도.
“아무리 사탕이라지만, 저런 것에 맞으면 죽습니다.”
그 말대로, 러셀이 있던 자리를 내려찍은 것은 한눈에 봐도 거대하기 짝이 없는 롤리팝 사탕이었다.
아니, 무슨 사탕이 성인 장정보다도 큰 것인지.
“흥. 죽기는…….”
러셀의 말에 우습지도 않다는 듯 다리아가 콧방귀를 꼈다.
“어디 한 곳 부러지는 정도에서 그칠 테니 그리 걱정하지 말거라.”
러셀의 앓는 소리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다리아가 거듭 손끝을 움직였다.
화악-!
그와 함께 롤리팝 사탕이 전사의 손에 들린 거대한 쇠도끼마냥 젖혀지고!
“감히 거기가 어디라고……내 오늘 막내, 네 녀석의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서라도 당분간은 밖에 나돌아다니지 못하게 만들어야겠구나.”
걱정 어린 격노가 그를 향해 쏟아지려는 찰나, 따르르르릉-!
그녀의 책상 한켠에 놓여 있던 알람이 그를 구원했다.
마탑의 1층과 연결되어 있는, 급보를 전달하기 위해 마련된 탑주 직할 라인.
난데없는 알람에 입술을 우물거린 다리아가 한숨을 탁 내뱉었다.
“쯧, 운도 좋은 녀석. 잠시 기다리거라.”
가볍게 러셀을 흘겨본 후, 손을 뻗어 직할 라인을 집어 들고.
“으응. 전하께서 말인가?”
1층에서 들어온 소식을 전해 들으며 다리아가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러셀을 응시했다.
그리고 잠시 후, 딸깍.
“아무래도 막내, 네 녀석의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리려고 벼르고 있던 사람은 나뿐만이 아닌 것 같구나.”
알람을 내려놓은 다리아가 퍽 재밌다는 듯, 낄낄거리며 웃었다.
“왕도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늘, 어찌 이리 아시고 딱 알맞게 연락을 주신 겐지.”
아마도 네 녀석에 대한 소문에 온 집중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일 터.
그리 중얼거린 다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무실 한쪽에 걸어 두었던 붉은색 코트를 어깨 위로 두르며 말했다.
“채비하거라. 섭정 전하께서 너를 찾으신다.”
“섭정……전하요?”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