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
EPISODE.109
러셀의 목적지인 아렌델은 엔디미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토의 대부분이 얼음으로 뒤덮인 국가였다.
그렇기에 달리 부르기를 동토왕국(凍土王國) 아렌델.
‘아니, 엄밀히 말해서 국경을 맞대고 있다고 하기는 무리겠지.’
그도 그럴 것이 엔디미온과 아렌델의 사이에는 나디아 사막이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지난번, 러셀이 지룡의 흔적을 찾아 방문했던 바로 그 사막이었다.
그렇게 온통 달궈진 모래로 가득한, 열사의 사막을 돌파한 후에야 아렌델의 국토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얼음 왕국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넓게 펼쳐진 평원이었다.
‘국토의 7할가량이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곤 하지만, 사막과 맞닿아 있는 부분만큼은 제외라고 했었지.’
그리고 아렌델의 인구 대부분은 그 얼지 않은 땅에 모여 살고 있다는 내용까지.
회귀 전, 몇 년간 프리랜서 생활을 해온 러셀이라지만 아렌델에 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언제고 책에서 본 정보를 떠올리며 러셀이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를 벗었다.
화악-.
그러자, 흑발이던 평소와는 달리 백금발로 반짝이는 머리칼이 그 모습을 드러난다.
아렌델이 제국만큼 검문에 있어 주의를 요하는 국가는 아니었지만, 흑발에 적안은 어디를 가든 눈에 뜨일 만한 특징이었기에.
엔디미온의 영토를 벗어나는 만큼 반지 속에 내장된 마법을 이용해 위장을 한 것이었다.
‘적당히 동토인과 비슷한 외견을 하고 있으면, 돌아다니기도 더 편하겠지.’
그렇게 아렌델의 국경을 무사히 통과하고, 러셀이 고개를 들어 북쪽을 바라봤다.
러셀이 최종목적지로 삼은 곳은 국민 대부분이 살고 있는 아렌델의 남쪽령을 벗어나, 그리고도 한참 더 위로 가야 나오는 북쪽의 동토.
그중에서도 ‘칼리만’이라는 이름을 가진 호수였다. 물이 맑은 것으로 꼽자면 아렌델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라던가.
러셀이 그곳을 방문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렌델의 북쪽에 위치한 호수들 중에서도, 가장 넓은 크기를 지닌 호수니까.’
[미션]북쪽의 동토.
저 먼 북쪽, 얼어붙은 대지에서 두 개의 만월이 뜨는 가장 큰 거울을 찾으세요.
두 개의 만월과, 가장 큰 거울.
미션의 문구가 꽤나 시적이긴 했으나, 러셀이 집중한 부분은 바로 저 두 단어였다.
실제로 많은 시구 속에서 맑은 호수의 물은 거울이라고도 표현되곤 했으므로.
‘아마도 두 개의 만월이란, 하늘에 뜬 달과 호수 위에 뜬 달을 말하는 걸 테지.’
그렇게 목적지를 정하고, 사람들이 사는 곳을 빠르게 벗어난 러셀은 얼음이 짙게 깔린 영역에 도착하는 즉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화르르르륵-.
자신의 머리 위로 불꽃의 원을 만들어내며 정령계 너머에서 페퍼를 불러냈다.
갸르륵!
울음소리와 함께 페퍼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척!
갸륵!
자신의 발바닥이 눈으로 뒤덮인 바닥에 닿는 것과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갸륵, 갸륵!
이어 차가운 감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앞발을 탁탁 치며 열기를 끌어 올려 일대의 눈들을 녹여 버리기까지.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러셀이 녀석을 불렀고─.
“페퍼.”
갸륵!
연결된 사념을 통해 듣지도 않고 러셀의 다음 말을 파악한 페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만 믿으라는 듯 작은 앞발로 가슴을 탕탕 치길 몇 번인가, 화르륵!
갸르르르르-.
거대한 불꽃이 일어나며 그 속에서 용의 형상으로 화한 페퍼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러셀 한 사람을 태우고 나는 것쯤은 문제도 아닌 덩치에, 음속을 넘어선 속도까지.
그리고 잠시 후, 쐐애액-!
붉은 섬광 한줄기가, 아렌델의 하늘을 북쪽으로 가로질렀다.
.
.
화악-!
날갯짓과 함께 바람이 거세게 일어났다. 그 힘을 이용해 속도를 줄이며 페퍼가 천천히 아래쪽으로 하강을 시작한다.
페퍼를 타고 이동한 지, 꼭 이틀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 넓은 북쪽 땅을 이틀 만에 돌파하다니. 다른 이들이 들었다면 놀랄 만한 이야기였겠지만 러셀에겐 그렇지 않았다.
‘예상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어.’
초음속의 비행을 이용해 하루 만에 돌파를 해 버릴 생각이었는데, 하루하고도 몇 시간 정도가 더 걸렸던 것.
그와 같이 시간이 소비된 이유는 페퍼에게 있었다.
고속 비행이 가능하긴 했지만, 아직 익숙지 않은 탓 인지 비행이 장거리 화(化) 됨에 따라 페퍼가 많이 지쳤던 것이다.
때문에 페퍼가 지칠 때마다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다 보니,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결론적으로 잘 된 셈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이틀이 늦춰진 덕분에, 보름달이 뜨는 시기에 딱 맞춰서 도착할 수 있었으니까.
만약 예정했던 대로 도착했다면, 호수 인근에서 보름달이 뜰 때까지 시간을 보냈어야 할 테지.
그리 생각한 러셀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갸륵-.
어느새 작은 고양이 정도 크기로 변모한 페퍼는 그의 머리를 둥지 삼아 몸을 둥글게 말고 자리를 잡은 지 오래.
러셀과 페퍼가 내려선 곳은 칼리만 호 인근에 위치한 높은 설산의 꼭대기였다.
칼리만 호는 가까이서 보면 바다로 착각할 만큼의 넓이를 가진 호수였던 바.
그 호수를 한눈에 내려 보기 위해선 이곳이 가장 적당한 장소였다.
화아아악-.
산꼭대기 특유의 날 선 칼바람이 불어온다. 전신에 쉴드를 두르며 바람을 빗겨낸 러셀이 넓은 호수와 하늘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해가 지려면 두 시간 정도 남았나?’
거기서 만월이 뜨기까지는 또 조금 시간이 걸릴 터. 그나마 다행인 점은 오늘 날씨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점이었다.
만약 날씨가 좋지 않았다면, 해서 만월을 보지 못했다면 꼬박 다음 만월 때를 기다려야 했을 텐데.
‘그럼,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시간을 좀 죽이고 있어 볼까?’
주변의 지형과 하늘을 확인하길 잠시간, 마법을 이용해 눈 속에 굴을 판 러셀이 임시 거처를 마련하기 무섭게 그 안으로 들어갔다.
파앗-.
라이트 마법으로 빛을 밝히고 아공간을 열어 그 속에 보관하고 있던 마법 스크롤 몇 장을 꺼내 들었다.
전날 암룡의 거처에서 얻어온 마법 스크롤 중, 지금은 실전된 마법이 기록된 것들의 일부였다.
작은 라이트 마법에 의지해 그것들을 살펴보던 러셀의 두 눈이 순식간에 깊게 가라앉았다.
‘이미 사용한 마력의 잔재를 이용해 다시 한번 마법의 불씨를 되살리고, 그로써 화력을 중첩시키는 방식이라…….’
거의 영 점 몇 초의 차이도 주지 않는 동일한 마법의 이 연격. 하지만 그 본질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왜 이 마법이 실전되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마나의 정순함은 물론, 써클을 벗어난 수준의 마력 통제 능력까지 필요로 하다니.’
현시대의, 평범한 7써클 마법사들로서는 결코 재현해 낼 수 없는 마법이었다.
정순함과 통제 능력.
‘두 가지를 고려해봤을 때, 현시대에 존재하는 여타의 마법사들 중, 이 마법을 발현할 수 있는 이는 스승님. 한 분뿐이겠지.’
사용할 수 없다고 치부될 만큼, 발현하기에 까다롭기 그지없는 마법이니 사장되고 잊히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
‘음……되겠는데?’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은 이 마법을 발현할 수 있었다.
‘스승님만큼 뛰어난 기량이나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마력 통제 능력만큼은 어지간한 7써클 마법사들의 수준을 벗어난 그였으니까.
게다가, 마력의 정순함만 놓고 비교하자면 다리아의 그것보다 훨씬 순도 높기도 했고.
러셀이 슬쩍 시선을 움직여 마법의 이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인드라의 격노(Fury of Indra).’
같은 7써클 뇌격계 마법인 케라우노스와 견주어도, 배 이상의 비교 우위에 있는 마법이다.
그런 만큼 복원하고 익히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복구하는데 성공하기만 하면, 비장의 한 수로도 활용할 수 있을 테지.’
비록 헬 파이어만큼은 아니라지만, 이 역시도 충분히 뛰어난 마법이었기에.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새 러셀의 무릎 위로 내려와 휴식을 취하던 페퍼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갸르으으으윽!
이어 이리저리 팔다리를 움직이며 기지개를 펴기까지.
그 소리에 집중에서 깨어난 러셀이 황급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확인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하늘 위로 여전히 둥근 보름달이 떠 있는 것이 보이고.
굴속에서 빠져나온 러셀이 칼리만 호를 확인했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보름달과, 그 보름달을 그대로 비추고 있는 호수라니.
도도하게 떨어져 내린 월광이 호수의 수면에 비치며 사방으로 반사되고.
화아악-.
일순, 온 세상이 달빛으로 가득 찬 듯한 착각마저 이는 가운데 러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지금부터 뭘 해야 하는 거지?’
분명 아름다운 광경이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이 광경에서 용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으므로.
‘설마 이곳이 아니라, 다른 장소인 건가?’
‘여기가 맞다면 분명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게 있다는 말인데.’
짧은 시간 동안 몇 개의 생각이 빠르게 교차하는 가운데, 러셀의 두 눈이 매섭게 빛났다.
혹시라도 놓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수면을 바라보고 있던 러셀의 눈동자를 따라 희미한 이채가 번져나간다.
‘실제 광경과……물에 비친 광경이 달라?’
거울처럼 그대로 상을 반사하는 호수라면 완전히 일치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물길에 일어난 파문으로 상이 일그러진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물에 비친 빙벽의 일부 모습이 완전히 달라.’
칼리안 호수의 북쪽으로 높게 자라난 빙벽, 그중 일부가 호수에 비춰지는 것과 실제 모습에서 차이가 있었던 것.
이상 현상을 확인하는 즉시, 러셀이 비행 마법을 펼쳤다.
화아악-.
수면 위를 가로지르며 차이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이건…….’
그러자 서로 다른 형상이 비춰지는 수면 위에서 희미한 마력의 흔적이 배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너무도 희미했기에, 설산 위에 있을 때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패턴 형태의 마력인가?’
이런 종류의 마력 패턴을 걸어 놓는 경우는 대부분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뭔가를 숨기기 위해서.’
그 말인즉, 이 마력 패턴 너머에 뭔가가 숨겨져 있다는 말이었던 바.
마력의 흐름을 읽어들이는 것과 동시에 러셀이 빠른 속도로 역산을 개시했다.
이어 자신의 마력을 흘려보내 기존의 패턴을 해체해 나갔다.
마력의 흐름이 희미한데다, 패턴이 꽤 복잡하긴 했지만……다행히도, 러셀의 섬세한 마력 통제 능력이라면 충분히 해제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패턴을 해제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5분가량.
직후 발치의 물이 한 방향으로 거세게 회전하기 시작한다.
쏴아아아아-!
수면이 거칠게 일그러지며 생겨난 것은 물속으로 이어지는 소용돌이와 그 속으로 뻗어나간 기다란 통로라.
마치 소용돌이로 이루어진 통로가 만들어진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저건?’
-수중동굴의 입구가 드러나고 있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