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2
22화
EPISODE.11
지독한 혈향이 코끝을 찔러댄다.
이오를 비롯한 엘프들이 맡은 피 냄새는 여기서 시작된 것이겠지.
처참한 광경.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구역질을 하며 겁을 먹었을지도 몰랐다.
영웅심이 투철한 이였다면 살육의 현장을 보고 정의감에 불탔을지도 모르고.
허나.
‘그런 나약함이나 알량한 영웅심을 가지기엔 내가 살아온 삶이 그리 녹록지 않지.’
수라장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어도 진창을 걸어온 삶이었기에.
겁을 먹거나 정의감을 불태우는 대신.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일단 안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까지 손을 대지는 않았어.’
죽인 것은, 아래층에서 탈출해 위로 올라온 이들뿐.
눈앞의 참상에 겁을 많이 먹기는 했지만.
여전히 위층의 감옥에는 사람들이 갇혀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후 이어진 것은 적에 대한 판별이라.
‘이 자…….’
여타의 해적들과는 분명히 다른 기세가 피부 위로 느껴졌다.
‘강해.’
뒤따라온 두 명의 수하들은 아무래도 좋을 수준이었지만, 앞에 선 풀 플레이트 메일의.
기사 복장을 한 사내는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에 러셀이 물었다.
“당신이 선장인가?”
“내가 선장이냐고?”
러셀의 물음에 사내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이어 손에 쥐고 있던 플람베르그(Flamberg)의 칼끝으로 통로의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탁, 탁.
그때마다 파도를 닮은 검신이 위협적으로 흔들렸다.
“그럴 리가. 아까 말하지 않았나, 형님이 있다고.”
그 형님이라는 자가 선장.
“나는 이 배의 부선장, 단. 단 클리크다. 선장인 돈 클리크 형님의 동생이지.”
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뒤에 서 있던 두 명의 수하들이 첨언했다.
“흐흐. 돈 선장과 단 부선장은 한 영지의 기사단장과 부기사단장을 했던 몸이시다. 물론 그 생활이 지루해져 영주의 목을 베고 뛰쳐나왔지만.”
“네 놈 같은 애송이 마법사가 상대할 수 있는 분이 아니란 말이지.”
확실히, 제법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검기(劍氣) 사용의 유무까지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검에 마나를 담을 수는 있을 것 같은 기세.
게다가.
‘상황이 안 좋아.’
마법사들의 싸움은 거리를 잡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
일자로 길게 뻗은 좁은 통로는 그리 유리한 환경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이놈을 아래로 내려보냈다간 지금까지보다 더 큰 참사가 벌어질 테니까.’
엘프들 역시 아직 약 기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러셀은 전신을 긴장시키며 전투 대세에 돌입했다.
이어 미션창이 떠올랐다
[미션]어려운 싸움.
검사와 벌이는 첫 실전입니다. 환경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적을 쓰러뜨리세요.
[보상]최하급 마석(식용)
보나마나 눈앞의 적을 쓰러뜨리라는 내용일 것이다.
러셀은 미션의 내용을 주의 깊게 읽는 대신 시선을 떼지 않으며 굳은 낯빛으로 물었다.
“기사까지 했던 사람이 왜 이런 일을 하는 거지?”
꽤 진지한 표정으로 내던진 질문.
장갑 끝으로 콧구멍을 후벼대던 단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내뱉는다.
“흥, 기사의 명예가 돈을 벌어다 준다더냐?”
코에서 나온 이물질을 자신의 갑옷, 그 가슴팍에 대충 문지르기까지.
“아 물론 돈을 벌어다 주기는 하지. 이렇게 큰돈은 아니지만.”
명예나 긍지는커녕 기사로서의 격식조차 찾아볼 수 없는 대수롭지 않은 대답이라.
하지만, 러셀 역시 제대로 된 대답을 바라고 질문을 한 것은 아니다.
‘지금!’
러셀의 양손에서 쏘아진 전격이 허공을 가로지른다.
총 일곱 발에 달하는 라이트닝 볼트.
파짓!
철로 이루어진 검과 갑주를 노린 일격이었다.
갑옷에 명중하건 검으로 받아 내건 간에 감전을 피할 수 없는 공격.
‘그대로 감전시켜 주지.’
하지만.
“같잖은 수작을 부리기는!”
콰드득!
플람베르그가 바닥을 훑는다 싶더니, 단박에 복도의 나뭇조각이 튀어 오르며 라이트닝 볼트의 진로를 가로막는다.
파직, 파지직!
한때 복도였던 나무 파편과 충돌한 라이트닝 볼트들이 그대로 힘을 잃으며 사그라들고, 연이어 그가 검을 휘둘렀다.
파도 같은 검신으로 남은 두 개의 라이트닝 볼트를 받아낸다.
파지지직!
검신을 타고 흘러든 전격이 검의 손잡이, 그립(Grip) 부분에서 무언가에 막힌 듯 흩어졌다.
“절연체?”
연격을 준비하던 러셀이 멈칫했다.
“아쉬워서 어쩌나. 애송이 마법사 양반?”
단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히죽거렸다.
아무래도 그립 부분에 절연체를 덧대 전격마법에 대한 방비를 한 듯했다.
‘마법사와 붙어 본 적이 있는 거야.’
그렇다고 장기인 화염마법을 캐스팅할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복도에 옮겨붙은 불이 사방으로 옮겨붙겠지.’
불씨 하나, 불티 하나에까지 흘러든 마력을 통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다리아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아직 러셀에게 그 정도로 정밀하게 마력을 컨트롤 할 능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나. 우리 애송이 마법사님?”
이죽거리는 녀석의 검이 웅웅 울어댄다.
검명(劍鳴).
검기는 아니지만, 검 속에 마나를 불어 넣는 소드 유저들만이 가능한 기예라.
러셀의 얼굴에 더욱 긴장감이 어렸다.
‘환경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장기인 화염 속성 마법을 배제하고 소드 유저를 쓰러뜨려야 한다니.’
게다가 전격마법에 대한 대비책 역시 있는 상대.
‘최악이네.’
차라리 넓은 개활지였다면 자신에게 유리했을지도 몰랐다.
거리를 두고, 장기인 화염마법을 수십 발 쏟아 넣어 화력전으로 몰고 가면 꽤 쉬운 싸움이 되었을 테니까.
허나.
‘이런 상황에서 그런 투정을 하는 건, 어린애 같은 일이겠지.’
한숨을 내쉬며 러셀이 써클을 회전시켰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놈을 쓰러뜨릴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런 러셀을 향해 단이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흐흐. 우리 배에 올라탄 걸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주마. 애송이!”
* * *
“화……락!?”
마구잡이로 날뛰어대던 불꽃의 난쟁이 한 마리가 의문성을 내뱉는다.
직후 어디선가 나타난 검에 의해 녀석의 몸이 반 토막 나버리고.
“화…….”
제대로 된 비명도 내뱉지 못하며 난쟁이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소멸했다.
움켜쥔 검의 주변으로 실 날 같은 빛의 띠가 도는 것이 검기(劍氣)를 발현시킬 수 있는 익스퍼드 급의 오러 수련자라.
그 모습에 다리아가 중얼거렸다.
“제법 쓸 만한 실력이로고. 보아하니 네 녀석이 선장이겠구나.”
그 말에 모습을 드러낸 애꾸눈의 사내가, 검기가 희미하게 도는 검을 흔들어 대며 소리쳤다.
“그래, 내가 바로 이 배의 선장. 돈 클리크다!”
커다란 바스타드 소드를 한 손으로 휘두르는 완력에 2m는 될법한 거대한 체구까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선장의 등장에 혼란에 빠져 있던 해적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서, 선장님이다!”
“익스퍼드! 우린 이제 살았어!”
단박에 기세가 살아났다.
“이 빌어먹을 년, 사지를 찢어주마!”
“선장님이 왔으니, 이제 네년도 끝이다!”
다리아를 향한 증오가 들끓어 오르며 살기가 사납게 요동쳤다.
허나, 정작 그 살기를 받아내고 있는 다리아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그래. 확실히 실력이 제법이긴 하다만, 그 실력을 가지고 하는 일이 해적과 인신매매라니. 아해야. 네 녀석은 길을 잘못 들어도 단단히 잘못 들었구나.”
한껏 여유를 부리는 듯 보이는 그녀의 말에, 자신을 돈 클리크라 소개한 선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같잖은 여유를 부리는구나.”
“같잖은 여유?”
“설마 네년이 소환한 괴물이 방금 내 손에 사라지는 걸 보지 못했다고 할 생각은 아니겠지?”
나머지 여섯 마리도 순식간에 회 쳐 버리겠다는 듯 바스타드 소드를 크게 휘두르는 그의 모습에 다리아가 고개를 갸웃한다.
“으응? 사라졌다고?”
과연 그럴까?
하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뻗었다.
가리키는 것은 돈의 뒤쪽, 난쟁이가 사라지고 타오르던 장작이 떨어진 자리였다.
“그럴 리가. 다시 한번 잘 보시게.”
“-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리자, 장작 위로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다시 한번 난쟁이가 몸을 일으킨다.
그 수가 하나가 아닌 둘.
“화락 화락?”
“화락?”
전과는 달리 손에는 불꽃으로 이루어진 기다란 검까지 들고 있는 모습.
“이, 이게……?”
분명 베어냈을 터인 난쟁이가 다시 살아나는 광경에 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목을 쳤었어야지.”
언제고 읽은 소설 속의 대사를 떠올리며 다리아가 낄낄 웃었다.
물론 목을 쳤어도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악인을 조롱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라.
“그럼 2차전도 열심히 해보시게. 선장.”
화르륵-!
“화락, 화락!”
나머지 여섯 마리의 난쟁이들 역시 불꽃의 창이나 검 따위를 움켜쥐며 돈에게 다가오고.
“아, 그러고 보니 말해주는 것을 깜빡했네만…….”
그런 그에게 사망 선고라도 하듯 다리아가 고했다.
“그 난쟁이는 777마리까지 소환할 수 있다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낄낄거리는 웃음이 갑판 위로 퍼져나간다.
그 모습에 언제고 들었던 소문을 떠올린 돈이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7, 777의 작은 불꽃 악마. 다, 당신은 설마……?”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일곱 난쟁이가 덮쳐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 어느새 두 자릿수로 늘어난 난쟁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화락, 화락!”
“화라라라라락!”
“으아아아악!”
단박에 불꽃에 휩싸이는 그의 모습을 뒤로하며, 다리아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으니, 슬슬 우리 꼬마의 실력을 확인하러 가 볼까나?”
밤 산책이라도 나온 듯, 여전히 여유롭기만 했다.
.
.
쩌저적, 쾅!
쏟아진 연격에 마나를 이용해 펼친 쉴드가 박살 나고, 그 틈 사이로 단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퍼억!
통렬한 타격음과 함께, 주먹에 적중당한 러셀의 몸이 부웅 하고 허공으로 떠오른다.
“커억!”
위저드 바디를 이용해 몸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뼈가 부러졌을 법한 충격!
러셀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쿵- 철벅, 철벅!
살덩이와 핏물이 낭자한 복도의 한편을 나뒹굴었다.
격전을 치르다 보니, 어느새 두 사람의 위치가 바뀌게 된 것이다.
“쿨럭, 쿨럭.”
피 웅덩이에서 몸을 일으키며 러셀이 잔기침을 토해냈다.
그런 그를 향해 단이 으르렁거렸다.
“잔재주는 다 끝났느냐. 애송아.”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한 듯 보이는 말과는 달리, 그 역시도 마냥 멀쩡하지만은 않았다.
입고 있는 갑옷은 곳곳이 찌그러져 있었고, 손에 쥐고 있던 플람베르그는 그 끝이 사선으로 부러져 있었으니까.
게다가 매직미사일이 스쳐 지나간 부분은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진 데다 핏물 역시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갑옷을 벗겨본다면 곳곳에 멍과 타박상이 가득하리라.
“쿨럭.”
물론 러셀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나이의 마법사, 게다가 환경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고전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일까.
“애새끼가, 귀찮게 굴기는. 퉤.”
핏기 섞인 침을 뱉으며 그가 노기 섞인 어조로 중얼거렸다.
“다 끝났으면……, 이제 죽여주마.”
쾅!
말을 마치기 무섭게 그가 바닥을 박찼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러셀을 향해 육탄돌격을 가해온다.
이어지는 것은 일도양단의 기세를 담은 사선 베기!
쐐애애액!
플람베르그의 검신이 마력을 휘감고 쇄도하는 찰나.
쾅, 쾅, 쾅!
러셀이 만들어낸 세 겹의 쉴드가, 칼날의 궤적을 비틀었다.
철벅, 푸욱!
불과 몇 센티 차이로 러셀을 스쳐간 칼날이 피 웅덩이 너머 복도의 바닥에 처박혔다.
“또 잔재주를!”
끝낼 생각으로 날린 일격이 막혔기 때문인지.
단이 짜증 섞인 노호성을 토해냈다.
다음 순간.
“걸렸어.”
단의 그림자 아래에서 러셀이 고개를 들었다.
한쪽 입꼬리만을 끌어 올리며 서늘하게 웃었다.
“뭐?”
“걸렸다고, 멍청아.”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자신과 단의 발아래, 두 사람이 밟고 있는 피 웅덩이.
“블링크.”
러셀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 순간을 위해 줄곧 캐스팅 해두고 사용하지 않았던 한 수!
직후, 단만이 덩그러니 남은 피 웅덩이 위로.
“라이트닝 볼트.”
푸른 뇌광이 쏟아졌다.
파지지지짓!
“끄아아아아아아아-!!”
[미션을 완수하셨습니다.] [최하급 마석(식용)이 지급됩니다.]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