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EPISODE.111
갸륵-.
삐유, 삐유우-.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놀고 있는 페퍼와 샤벳을 일견하며 러셀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저 녀석을 어쩐다…….’
데리고 가는 것이야 어렵지 않겠지만, 항상 데리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전투나, 혹은 그에 준하는 일이 일어났을 때도 품에 안고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런 러셀의 생각을 읽은 것일까.
삐유-!
페퍼와 장난을 치던 샤벳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땅딸막한 네 다리로 열심히 뛰어 다가와선 작은 입을 쩍하고 벌렸다.
이어 러셀의 손을 덥석 물기까지.
“─!?”
난데없는 행동에 놀라기는 했으나 아프지는 않았다. 딱히 해를 끼칠 생각은 없는 듯 손을 물면서도 이빨을 세우지는 않았던 것.
그 순간이었다.
[유아기 상태의 빙룡, 샤벳이 결빙화(結氷化)를 사용합니다.]알림과 함께 샤벳의 몸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러셀의 손목을 따라 기다란 팔찌 하나가 생겨난 것은.
얼음을 깎아 만든 듯, 한기를 방출하고 있는 팔찌였다.
삐유-.
연이어 팔찌로부터 샤벳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한 의미는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이렇게 하면 자신을 쫓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놀라운 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결빙화된 빙룡의 가호가 깃듭니다.] [물과 얼음 속성 마법의 위력과 캐스팅 속도가 상당히 상승합니다.] [어린 빙룡의 힘이 깃든 결정입니다. 그 속에는 용의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마력을 주입하면 강도와 경도가 모두 상승합니다.]팔찌에서 흘러나온 한기가 마력에 녹아들더니 러셀의 체내로 흘러든 것이다.
‘이런 능력이…….’
용이 신비한 생물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런 능력도 있을 줄이야.
다른 용들에게선 단 한 번도 찾아본 적이 없는 능력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오로지 빙룡만이 지니고 있는 능력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샤벳이 가지고 있는 고유 능력일 터.
“다른 모습으로도 바꿀 수 있을까?”
삐유?
러셀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하듯, 얼음 팔찌가 덜그럭거렸다.
‘글쎄…….’
잠시 고민하던 러셀이 대꾸했다.
‘이를테면 창 같은?’
그 순간 쩍, 쩌저적─.
한기와 함께 얼음이 기다랗게 뻗어나가더니 팔찌가 기다란 고드름과 같은 형상으로 변하기에 이르렀다.
쩍, 쩌적-.
처음 팔찌가 될 때와 비하면 다분히 느린 속도였다.
삐유, 삐이이이이…….
창의 형태로 변한 샤벳이 지친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러셀이 알아들을 리가 없는 울음, 샤벳의 말을 통역해준 것은 페퍼였다.
갸륵, 갸르륵, 갸르르륵!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지만, 손짓 발짓, 꼬리짓까지 동원해가며 열심히 설명해대는 모습이란…….
그런 모습이 용치고는 조금 귀엽다고 감상한 러셀이었다.
‘팔찌를 제외한 나머지 형태는 익숙하지 않게 느껴져서 힘들다는 건가.’
이해를 마친 러셀이 샤벳에게 말했다.
“원래대로 돌아와도 좋아.”
삐유우…….
쩍, 쩌저적-.
다시금 창이 얼음 팔찌의 형상으로 돌아온다.
‘아무래도 팔찌 이외의 형태는 연습이 좀 필요한 모양이야.’
실전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바꾸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했다.
‘익숙하지 않은 게 문제라면 지금부터 조금씩 연습을 시키면 될 터.’
어쨌거나 샤벳을 데리고 다니는 것에 대한 문제는 해결된 상황이었기에 러셀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수중 동굴을 벗어나기 위해 걸음을 움직였다.
.
.
그 후로 러셀의 귀국길은 평안하기만 했다.
들어올 때는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수중 동굴의 여러 관문들 역시 나갈 때에는 눈 녹듯 사라져 있었으니까.
쐐애애애액-.
페퍼를 이용한 초고속 비행으로 단시일 내에 아렌델을 벗어난 러셀이 그 길로 나디아 사막을 이용했다.
마찬가지로 페퍼를 이용해 사막의 한복판을 횡단하면서였다.
정신적으로 어리다곤 하나 화룡의 힘을 지니고 있는 페퍼다.
그 힘과 기운은 사막의 여러 잡스러운 몬스터들이 감히 접근할 만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던바.
캬아아아아아-!
포효를 터뜨리는 것과 동시에 떼를 이루며 먹잇감을 찾던 비행형 몬스터들이 사방으로 흩어져간다.
‘드래곤 피어.’
용으로서의 기세뿐만 아니라 비행시간 또한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용의 힘에 차차 적응해 가고 있는 모양.
뜨거운 나디아 사막의 열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팔찌의 형태로 변해 있는 샤벳이 중간중간 한기를 내뿜기는 했지만 어쨌건 간에…….
러셀의 평온한 귀국길이 깨진 것은 엔디미온의 국경에 다다를 무렵이었다.
‘저건…….’
저써클 마법, 매의 시각을 사용해야 비로소 보일 정도로 먼 곳에 위치한 국경.
그 국경의 성벽을 따라 사람들이 길게 늘어져 줄을 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뭔가 이상한데?’
엔디미온은 대륙에 단 둘밖에 없는 열강 중 하나. 그렇기에 입국 심사가 꽤 깐깐한 편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저렇게 줄이 길게 늘어질 만큼 심사가 깐깐한 편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그런데 저런 광경이라니.
수백 명, 그 이상이 성벽을 따라 줄지어 있는 광경을 확인하며 러셀이 미간을 찌푸렸다.
‘입국 심사의 질을 높여야 할 사항이라면…….’
몇 가지 생각을 늘어놓던 러셀이 페퍼의 등에서 뛰어 내렸다.
갸륵-.
기다렸다는 듯 페퍼가 소형화하기 무섭게, 척-.
땅에 충돌하기 직전 비행 마법을 사용, 구둣발이 나디아 사막의 모래를 사뿐히 지르밟았다.
착지를 마친 러셀이 아직은 꽤 떨어진 곳에 있는 성벽을 향해 걸어갔다.
‘아무래도 페퍼를 타고 다가서면 시선이 너무 많이 끌리게 될 테니까.’
가까이서 확인한 인파의 줄은 멀리서 봤을 때보다도 조금 더 길어 보였다.
게다가 입국을 기다리는 이들과 그들을 심사하는 병사들 사이에선 이유 모를 긴장감 역시 감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평소와는 달리, 꽤 급이 높은 기사로 보이는 이들까지 심사장에 여럿 나와 병사들을 감독하고 있었고.
‘이래서야 한참 걸리겠군.’
그들을 향해 다가가자, 러셀을 발견한 기사 하나가 눈에 쌍심지를 켜며 위협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봐, 너는 뭔데 줄을 안 서고…….”
아니, 말하려 했다.
그 전에 러셀이 마탑에서 만든 신분패를 내보이며 그의 말을 끊어 버렸지만.
“왕국의 공작, 신성공. 러셀 레이먼드다.”
그와 함께 반지에 걸려 있던 위장 마법이 사라지며 러셀의 눈과 머리칼이 제 색을 되찾는다.
“신, 성……공?”
어디선가 들어본 것만 같은 호칭에 말꼬리를 늘이길 잠시간.
이내 머리칼과 눈의 색을 확인한 그가 한껏 창백해진 표현으로 군례를 붙였다.
척척-!
“와, 왕국의 자랑! 신성공 각하를 뵙습니다!”
사방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커다란 군례.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피곤한 표정으로 손을 휘저었다.
“과분한 군례는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그만두도록 하지. 그보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물어야 할 질문을 했다.
“왜 이런 상황이 펼쳐진 것인지를 조금 설명해줬으면 좋겠는데.”
.
.
왕국을 통틀어 단 하나밖에 없는 공작이자, 섭정의 약혼자.
사실상 부마도위(駙馬都尉)의 자리가 내정된 자인 동시에 엔디미온이 배출한 최고의 천재.
그런 러셀은 어딜 가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때문일까.
국경의 성벽에 러셀이 나타났다는 소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그 이유로 지금 러셀의 앞에서 상황을 설명하는 이의 직책 역시 달라져 있었다.
“그러니까, 제국의 황위 계승권 전쟁이 끝나고 5황자…….”
상황을 정리하던 러셀이 단어 선택을 정정했다.
“새로 등극한 황제가 흑탑의 존재를 정식으로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직후 나제 연맹과 키옐을 공격하기 시작했단 말입니까?”
“예. 어디서 그렇게 많은 시체를 끌어모은 것인지, 언데드로 이루어진 대군을 동원해 두 나라를 동시에 급습했다고 합니다.”
러셀의 정리에 걸음을 맞추던 중년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첨언했다.
사내의 뒤를 한 무리의 기사들이 뒤따르고 있었는데, 그의 정체는 바로 인근의 국경을 총괄하는 변경백으로 러셀을 대하는 태도가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그럴 수밖에.
변경백이라 함은 다스리는 변경 일대에선 왕과도 다를 바 없는 존재라지만, 러셀에 비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과도 다르지 않았기에.
‘사교도 놈들의 배후에 제국의 고위층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그게 5황자였을 줄이야.’
상상 이상으로 제국의 심부 깊은 곳까지 침투해있는 어둠의 존재에 러셀이 아랫입술을 작게 깨물었다.
왕국의 오랜 적이라 할 수 있는 제국이 어떻게 망가지든 간에 상관할 바는 아니다.
허나 사교도 놈들의 손에 어지럽혀진다면 문제는 달랐으니까.
‘놈들은 시체와 피, 그리고 죽음을 숭배하는 놈들이야.’
놈들이 개입되어있는 문제에는 필연적으로 그 셋의 문제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실제로 지금도 언데드 대군이 키옐과 나제 연맹을 공격 중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필 공격당한 나라가 키옐과 나제 연맹이라.’
러셀이 콧잔등을 씰룩였다.
브리타니아는 제국이라곤 하나 특유의 패도적인 성향으로 인해 단 하나의 우방국조차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그에 비해 엔디미온은 여러 든든한 우방국을 지닌 나라.
그런 우방국들 중에서도 키옐과 나제 연맹은 꽤 특별한 편이었다.
‘기존에 존재하던 중립국들 중, 가장 먼저 엔디미온과 협정을 맺은 나라니까.’
다시 말해 제국의 입장에선 한 번도 같은 편이었던 적이 없지만, 그래도 등을 돌린 존재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는 말이라.
‘이 상황에서 그 두 나라가 가장 먼저 습격당한 것을 과연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는 아직 중립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을 향한 경고일지도 몰랐다.
함부로 자신들에게 이를 드러내 보이지 말라는, 그런 경고.
물론 그 경고를 보고만 있을 엔디미온이 아니었지만.
“아국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 상황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두 국가를 돕기 위해 지원군을 파견한 상황입니다.”
“지원군?”
“예. 현재 나제 연맹에는 황탑주께서 마법전단과 병사들을 이끌고 나가 계시고 마찬가지로 키옐에는 워 해머, 아레크스 경께서 나가 계십니다.”
아레크스 카일렌.
워 해머(War Hammer)라는 이명을 지닌 그는 엔디미온의 지방을 담당하던 초인급 전력 중 하나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거대한 망치를 자유롭게 다루는 초인.
그가 휘두르는 망치는 지축을 뒤흔들고 단신으로 암벽을 쪼갤 정도라고 하던가.
초인들 간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서열에선 중하위권으로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으나, 언데드들을 상대하기에는 차고 넘치는 강자.
변경백이 설명을 이어 붙였다.
“또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왕도에선 창탑주님과 길리언 경이 추가적으로 지원군을 편성 중이라고 합니……마침 도착했군요.”
멀지 않은 곳에 우뚝 솟은 상아탑을 일견하며 말을 바꾸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탑에 미리 전령을 보내두었으니, 예열하는 절차 없이 바로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세세한 부분까지 미리 신경을 써둔 것은 변경백 나름의 배려라고 할 수 있을 테지.
“감사합니다.”
“아, 아닙니다.”
러셀의 인사에 그가 황망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잠시나마 왕국의 자랑이신 신성공 각하를 모실 수 있었으니, 오히려 제 쪽이 영광이지요.”
딱히 아부를 하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진심이 드러나는 얼굴을 보아하니 꽤나 담백한 성정을 가진 사내가 분명했던바.
그에 대한 평가를 뒤로하며 러셀이 우뚝 솟은 마탑을 바라봤다.
보다 자세한 사정은 왕도에 도착하면 들을 수 있을 터였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