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EPISODE.111
.
.
워프 게이트를 이용해 왕도로 돌아온 러셀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왕실의 소환령이었다.
조금의 휴식이나 준비 시간조차 가지지 못한 급한 부름.
아마도, 직접적이진 않다곤 하나 전쟁을 앞두고 있는 만큼 러셀쯤 되는 초인급 전력을 놀려 둘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겠지.
그런 러셀을 스승인 다리아가 안내하고 있었다.
전에 만났을 때에 비해 조금 피로감이 짙어진 모습.
그럴 수밖에.
백탑주가 전장에 나가 있고, 니콜로가 보급선을 유지하며 헤밍웨이가 후발대를 구성하고 있는 지금─.
왕도의 마법적인 경비는 오롯이 그녀 혼자에게 맡겨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그런 와중에도 기존에 역임하고 있던 책무는 하나도 내려놓지 않은 상황이니, 육체적으로는 지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신적 피로감이 쌓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했다.
스스로 역시 그런 상황을 잘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왕성의 안쪽에 난 정원을 따라 걸으며 다리아가 중얼거렸다.
“사람은 햇빛을 보고 살아야 한다더니, 오랜만에 점심시간 무렵에 막내 제자 녀석과 산책을 하고 있으니 좋구나. 좋아.”
나름대로 분위기를 환기시켜 보고자 내뱉은 말이기도 했다.
엔디미온이 직접적으로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아니라곤 하나, 우방국이 공격을 당한 상황.
지금의 이 전쟁들은 언제든 도화선이 되어 제국과의 전면전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바.
때문인지 왕도뿐만 아니라 왕성 내에도 기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던 것이다.
오가며 목례를 올리는 기사들의 얼굴이 굳은 것은 물론 시녀ㆍ시종들의 말수가 평소보다 적게 느껴진 것 또한 착각만은 아닐 테지.
“그보다…….”
그와 같은 분위기를 살피고 있을 때 다리아가 말꼬리를 흐리며 돌연 몸을 돌렸다.
뒷걸음질로 가던 방향을 계속 쭉 나아가는 채였다.
“……아무래도 찾고자 하는 건 제대로 찾은 모양이로구나.”
8써클에 올랐기 때문인지, 예전부터 잘 드러나지 않던 러셀의 실력은 어렵지 않게 간파하던 그녀였다.
이번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러셀의 전신을 쓸어내리다 심장 어림으로 향하는 그녀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출발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잘 쳐줘야 7써클 중반 급이라고 할 수 있을 녀석의 마력량이 어느새 7써클 마스터 급까지 올라올 줄이야.”
아직 벽을 마주하지 못한 것은 그 기량(伎倆)이 부족해서일 뿐, 역량(力量)만큼은 7써클 마스터와 견주어도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 아닌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러셀이 그리 말하며 쓰게 웃었다. 그 말대로, 러셀은 지금껏 자신이 얻은 모든 것이 스스로의 노력에서 이루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운이 좋아 이계구원자의 후손으로 태어났고 또한 운이 좋아 용신왕이 남긴 것을 물려받았을 뿐.
그 과정에서 노력이 조금도 없었다고 하면 거짓이겠으나, 운이 좋았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 말하는 순간, 꽁!
“윽-!”
일순 눈앞에 별이 번쩍였다.
초인급 실력자조차 반응하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 게다가 한 점의 적의 또한 깃들지 않은 일격.
바로 다리아의, 스승의 꿀밤이었다.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소리를 하고 있구나.”
“예?”
교시(敎示)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깔끔한 라임. 아직 다리아의 훈계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질 좋은 광물을 얻었다 한들 그걸 명검으로 벼려내는 것은 온전히 장인의 노력과 그가 피워 올린 불꽃이듯, 지금 네가 가진 힘 역시 스스로의 노력이 아니고선 불가능했을 거란 이야기다.”
뒷걸음질을 멈추고 어느새 다가온 다리아가 러셀의 명치를 툭 하고 두드렸다.
“어깨 펴라. 이 녀석아. 너는 누가 뭐라 해도 이 다리아 스노우화이트가 인정하고 제자로 받아들인 놈이 아니더냐. 네가 난 놈이 아니라면 내 안목이 문제가 된다는 말이지.”
이어 스스로의 말이 퍽 재밌다는 듯 낄낄거리며 웃기까지.
자신의 생각을 읽고, 그것을 풀어주기 위한 스승의 말과 행동을 눈치채고 괜히 마음 한구석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작게 웃었다.
“스승님.”
“으응?”
러셀의 부름에 다리아가 고개를 갸웃하고, 그런 그녀에게 러셀이 담담히 대꾸했다.
“감사합니다.”
“갑자기 감사는 무슨, 실없는 녀석.”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던 것일까. 쑥스러워 붉어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다리아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
.
그로부터 불과 몇 분 후.
다리아와 러셀이 도착한 곳은 왕궁의 중심에 위치한 대회의장이었다.
각 부처의 고위 관료들은 물론 왕도 인근의 대영주들까지 들어설 수 있도록, 커다란 규모로 지어진 회의장.
왕도의 귀족으로 인정받고, 직위가 오름에 따라 몇 번이고 들락거린 적이 있는 회의장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회의장의 분위기가 평소보다 엄숙했다. 단순히 무거운 정도를 넘어 침울하기까지 한 분위기.
헤카테가 섭정의 자리에 올랐다곤 하나, 전쟁이란 큰 시련을 홀로 돌파해 나가기에는 아직 그녀의 경험이 부족하다고 판단되었던 것일까.
“왔는가.”
대회의장의 가장 상석에는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알려진 국왕 역시 자리하고 있었다.
헤카테는 그런 국왕의 바로 옆에 앉아 있었고.
“염탑주, 다리아 스노우화이트가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염탑 소속 마도사, 러셀 레이먼드가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스승에 이어 러셀 또한 법식과 예의에 맞춰 고개를 숙여 보이고, 이어 회의장의 분위기를 살피며 다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헌데 폐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전쟁 중이기에 분위기가 엄숙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어제 있었던 회의 자리보다 더 무거워진 분위기였다.
왕국의 핵심 전력이자 권력의 중추인 그녀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그 말인즉, 이는 염탑에서부터 회의장까지 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았다.
다리아의 물음에 국왕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과 몇 분 전, 키옐에서 보고 하나가 날아든 참이라네.”
비보(悲報)임이 분명한 소식이었다.
* * *
꽈릉-!
벽력성과 함께 지축이 뒤흔들렸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대지가 격렬하게 떨려대고, 그와 함께 거대한 충격파가 내리 찍힌 지점에서부터 뾰족한 바위 따위가 아무렇게나 솟아오른다.
워 해머(War Hammer).
엔디미온의 초인급 오러 수련자 중 한 사람인 아레크스 카일렌이 문자 그대로 육중한 전쟁 망치를 휘둘러 만들어낸 충격파였다.
아무리 불사성을 지닌 언데드들이라 해도 이만한 파괴력의 앞에선 그저 부나방에 불과할 터.
하지만…….
“후욱, 후욱-.”
지금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은 고작 언데드들 따위가 아니었다.
숙적, 브리타니아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초인.
그것도 하나가 아닌 무려 둘…….
“지긋지긋한 놈들!”
아레크스가 이를 뿌드득 갈아댔다.
그때마다 그의 입안에서 돌가루인지 모래인지, 혹은 깨어진 이의 파편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씹히며 빠드득거리는 소리를 만들어댄다.
성인 장정 넷을 겹쳐 놓은 것만 같은 거구는 이미 피로 물든 지 오래고, 곳곳의 살가죽과 털이 그을리며 고약한 냄새를 흘려댔다.
게다가, 무엇보다 큰 상처는 바로 왼쪽 어깨를 관통한 자상(刺傷)이었다.
‘고작 손가락만 한 상처 하나 입었을 뿐인데…… 어깨 전체를 움직이기 힘들다니.’
그럴 수밖에.
그의 어깨를 관통한 것은 평범한 날붙이가 아닌, 벼락의 창이었으니까.
아마도 남은 전류의 잔해가 지금도 신경과 관절을 좀 먹고 있을 터.
쿠그그그그그그-.
찬찬히 모래 먼지가 걷히며 박살난 언데드의 파편들 사이에서 두 명의 사내가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양손으로 각기 한 자루씩의 검을 움켜쥐고 있는 장년 사내와, 백발의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멋들어진 노인.
바로 제국 소속 오러 수련자 지아볼 니글과, 제국 마법계의 장로 중 하나라고 불리는 윌터 피그렛이 바로 그들이었다.
두 사람 모두 제국이 자랑하는 신예 초인의 일각이라.
“그만한 상처를 입고도 아직 이만한 여력이 남았는가. 과연, 엔디미온 놈들의 저력도 무시할 만한 것이 못 되는군.”
그런 윌터의 말을 지아볼이 받았다.
“그래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걸? 아마 길어야 삼십 분쯤?”
“흥.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면 방심하는 게 네 약점이라고 누누이 말했을 텐데.”
“아무렴.”
눈앞에 있는 아레크스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두 사람이 태평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럴 수밖에.
초인으로써 활동해온 시간과 경험은 아레크스 쪽이 월등했으나, 눈앞의 두 사람과는 상성이 그리 좋지 못했으므로.
‘쾌검을 구사하는 쌍검수에, 전격 마법을 주력으로 삼는 마법사라…….’
속도를 죽이는 것으로 위력을 선택한 자신과는 상성이 맞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한 사람이면 모를까, 그런 상대가 무려 둘.
‘일단은 후퇴를 해야겠지.’
그러기 위해선 일단 눈앞의 난적들을 뿌리쳐야 할 터.
오랜 경험으로 단박에 전장의 반도를 읽어낸 그가 자신의 전쟁 망치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잘 벼려진 투기가 일대를 위협적으로 짓뭉개고-.
─────────붕붕붕!!
그의 손에 들린 망치가 위협적으로 회전하기 시작한다.
일어난 회전에 대기가 딸려 들며 폭풍과도 같은 형상을 만들어내고, 인근의 바위와 모래 먼지가 거칠게 일어나며 시야를 가렸다.
순수한 물리력만으로 만들어냈다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러한 광경을 만들어 낼 수 있기에 초인(超人).
하지만 아레크스의 눈앞에 있는 두 사내 또한 초인의 경지에 발을 디딘 이들이었다.
“더 해볼 참인가?”
“끈질기게 굴기는!”
두 사내는 당황하는 대신 즉각 응수에 나섰다.
쌍검을 티(t)자형으로 엇갈리게 교차하며 예기를 끌어 올리고, 심장에서 펌프질해 올린 마력을 전격으로 뒤바꾸며 손가락에 덧씌웠다.
파지지지지짓-!
그 사이 아레크스가 만들어낸 폭풍이 극에 달하고, 회전에 회전을 더해 만들어낸 파괴력이 망치에 깃드는 순간!
콰가가가각!
지아볼이 쌍검을 휘둘렀다.
폭풍을 찢어 놓을 듯, 달려드는 쾌속무비한 참격!
날카로운 짐승의 송곳니가 사냥감의 목덜미를 물어뜯듯 두 참격이 폭풍의 일부를 찢어발기는 순간!
“지금!”
신호와 함께 윌터가 양손을 내리그었다.
손톱 끝에서 일어난 새파란 마력광이 허공중에 손톱자국을 아로새기고, 그 궤적을 따라 열 줄기의 벼락이 찢겨 나간 폭풍을 향해 짓쳐 든다.
다루기가 까다로워서 그렇지, 그 파괴력만큼은 화 속성 마법조차 한 손가락 접어주는 것이 전격 마법이라던가.
전격 마법 특유의 새파란 뇌광이 폭풍 너머의 아레크스에게까지 도달하고, 번쩍!
콰지지지지지짓-!
폭풍을 휘감으며 전격이 울부짖는 찰나.
“으아아아아아!”
아레크스가 곰처럼 포효했다.
전격 마법의 격통을 이겨내면서 원심력이 한껏 깃든 망치를 지면에 내리찍었다.
───────────!!!!!!!!!!
소리보다 먼저 지면이 터져 나가며 충격파가 부채꼴 형상으로 번져 나간다.
그 충격에 밀려 나간 대지가 파도와 같이 격류 치며 일대를 마구잡이로 휩쓸었다.
그야말로 대(大) 파괴의 이적!
모래 먼지와 돌가루가 조금 전보다 더욱 격하게 비산하며 일순 시야를 사렸다.
“큭, 시야를 가린 후 기습을 할 생각인가?”
“잔재주를!”
그 파괴에서 분분히 몸을 뺀 두 사람이 이어질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각자 태세를 마쳤고, 그런 두 사람의 귓가에 뿔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뿌우, 뿌우우우-.
군의 후퇴를 명하는 뿔피리 소리.
쿠구구구구구구구─────.
그로부터 잠시 후.
진동이 가라앉으며 모래 먼지 너머의 광경이 찬찬히 드러났다.
“퇴각, 퇴각하라!”
“전선을 물려라! 재정비한다!”
이리저리 언데드를 피해 물러서는 병사들, 그리고…….
“허!”
“내뺐군.”
내려찍어진 망치에 흉물스럽게 짓이겨진 대지에 더 이상 아레크스는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그의 상태도 멀쩡하지만은 않다는 걸 말해주듯 피 웅덩이만이 자리에 남아 벼락의 열기에 기화되고 있었을 뿐.
푸쉬쉬쉬쉭-.
.
.
“여기까지가 방금 들어온 보고의 첫 번째 항목이라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