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26
226화
EPISODE.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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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멸망시키기라도 할 듯 날뛰는 벼락과는 달리, 처음 러셀의 손등을 뒤덮었던 불꽃은 아주 미약하기만 했다.
풍전등화(風前燈火).
거대한 벼락의 폭풍 앞에, 당장에라도 꺼질 듯 위태롭던 불꽃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용의 포효와도 같은 기묘한 울음소리가 들려온 후였다.
갸오오오오-!
그것을 시작으로 거칠게 일어난 불꽃이 러셀의 전신을 뒤덮기 시작한다.
날개마냥 펼쳐진 불꽃이 용의 형상을 거치며 전신을 휘돌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윌터는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허, 결국에는-!’
다만, 그 짧은 시간에 자신의 마법을 여기까지 훔쳐낸 러셀의 재능에 감탄을 토했을 뿐.
자신의 벼락에 대항하기에 러셀의 불길은 너무 보잘것없었으므로.
하지만, 이는 러셀이 뒤집어쓴 불길의 정체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내린 판단이었다.
만약 러셀의 전신을 뒤덮은 그것이 평범한 불꽃이 아닌, 용의 권능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았을 테지.
화르르르륵-!
그 사실을 증명하듯, 한껏 압축된 불길이 점차 그 영역을 확산해 나가며 벼락을 살라 먹기 시작한다.
찰나가 영원이라도 된 듯, 두 마법사의 집중력이 극한까지 압축된 가운데에서도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더딘 속도.
하지만 러셀의 불꽃은 분명 조금씩이나마 윌터의 벼락을 살라 먹으며 힘의 균형을 무너트려 나가고 있었음이니.
화르르르륵-.
이는 뇌격 계통 마법을 화염 계통 마법의 상위로 보는 마법계의 일반적인 인식에서도 완전히 벗어나 있는 일이었다.
그럴 수밖에.
지금 러셀의 온몸을 뒤덮은 불꽃은 평범한 화염계 마법이 아닌, 페퍼의 권능을 러셀이 마법이라는 틀로써 재현해낸 모습이었으므로.
마법의 조종이라 알려진 것과 별개로, 용은 다수의 권능을 지닌 존재다.
작게는 덩치에 비해 작은 날개로 하늘을 날 수 있는 비행 능력부터 시작하여,
크게는 숨결 속에 8써클 마법에 준하는 위력을 담아낼 수 있는 브레스에 이르기까지.
2세대의 용, 정령화룡으로 각성한 페퍼의 불꽃이 지닌 권능은 그중에서도 특별했다.
‘포식화(捕食火)-.’
문자 그대로 마법을 살라 먹는, 그로써 자신의 덩치를 더욱 부풀리는[飽食] 불꽃[火]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법을 포식 가능한 불꽃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대단한 능력이라고 하나, 페퍼가 아직 어린 용인 만큼 그 한계가 명확했던 것이다.
이 한계라는 것이 자라나며 점점 확장되기는 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포식할 수 있는 최대치라는 건 존재할 테고.’
어쨌건 확실한 것은, 지금 페퍼의 힘으로써는 윌터의 마법을 모두 살라 먹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까운 말이었던 바.
‘그렇다면…….’
러셀의 두 눈이 이채를 발했다.
‘흘려낸다.’
페퍼의 불꽃을 조작하며 러셀이 떠올린 것은 한 마리의 연어였다.
연어란, 아무리 거센 급류와 폭포가 존재하더라도 그 모든 관문을 뛰어넘어 목적지에 도달하는 존재였기에.
한낱 어류이지만 벽을 넘는.
격파(激波)를 격파(擊破)하는 파격(破格)이라.
러셀은 그런 연어의 파격적인 이미지를 연상하기 시작했다.
이미지에 마력이 덧씌워지며 러셀을 뒤덮은 불꽃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사방을 뒤덮으며 쏟아지는 플라즈마의 격류 속에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스스스슷-!
그것은 와류(渦流)였다.
아주 작게 일어난 소용돌이가 점차 회전과 함께 플라즈마를 살라 먹으며 그 덩치를 부풀려 나가기 시작한다.
콰과과과과과-!
이걸로도 부족하다면-.
‘남은 힘은 흘려낼 수밖에!’
지면을 지지고 지나간 플라즈마의 열기에 대지가 작열하며 녹아내렸다.
화산이 폭발한 후 사방에서 마그마가 쏟아지는 것과도 흡사한 광경.
한껏 달아오른 대지와, 끓어오르는 대기는 몸의 수분은 물론 핏물마저 증발시키는 것만 같은 착각을 자아내고-.
와류의 형태가 불꽃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마상용 랜스(Lance)를 그려내는 순간!
붉은 불꽃이 푸른 전격의 사이를 관통했다. 한 마리의 연어가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듯, 벼락의 격류를 갈랐다.
그 너머에 있는 윌터의 복부를 관통했다.
꽈르르르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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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빛이 쉬지 않고 명멸하며 장내를 휘감는다.
러셀의 마법에 관통당하고, 중심이 되던 술자의 마력이 흐트러짐에 따라 쏟아지던 벼락 역시 물살처럼 사방으로 흩뿌려지게 된 것이다.
꽈르르릉-!
대지가 무너져 내리며 깊게 구덩이가 파인다.
모래 먼지가 치밀어 오르는 것보다 빠르게 증발하며 대지가 검게 타 죽어 갔다.
언데드 수천 마리가 제대로 된 비명 한 번 내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소멸했다.
여파만으로 1km가 넘는 대지를 응회구(凝灰口)마냥 패여 들게 만들며 죽음의 당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본래의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구덩이 속에 두 발로 대지를 딛고 서 있는 것은 오로지 러셀뿐이었다.
충격파를 어느 정도 흘려내는 데 성공한 것인지, 러셀의 발이 닿은 부분은 그나마 멀쩡한 모습.
그런 러셀의 반대편에 윌터가 있었다.
복부를 관통한 불꽃의 창에 하반신이 다 타 버린 것인지, 신체의 절반이 사라진 채였다.
남아 있는 상반신 역시 마냥 멀쩡하지는 않았다. 수인을 맺던 오른손은 팔꿈치 아래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고, 흉부의 상당 부분이 숯마냥 검게 타 있는 상태.
놀라운 점은 그와 같은 상태에서도 숨이 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몇 번을 거듭 죽었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목숨을 연명하고 있다는 것은 그 또한 인간의 벽을 벗어난 영역에 있다는 반증일 터.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의식조차 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하던 일마저 쉽지 않은 가운데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퍼석, 퍼석-.
검게 타 숯 검댕과 같이 된 것이 구둣발에 짓밟혀 박살 나는 소리.
간신히 시선을 움직이자 붉은 눈의 청년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역시 마냥 멀쩡하지만은 않은 듯, 입가엔 혈흔이 비치고 걸음걸이가 비치적거리는 모습.
느린 걸음으로 윌터의 앞까지 다가온 러셀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처음 전투를 시작하기 전부터 묻고 싶었지만 미처 묻지 못했던 질문.
이 상황이 되어서야 러셀은 비로소 그 질문을 꺼내 들 수 있었던 것이다.
“어째서입니까.”
“……?”
“어째서 사교도와 손을 잡은 겁니까.”
제국이 흑탑을 정식으로 인정한다 했을 때, 제국의 마법사들의 상당수가 그 사실에 반발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러셀이 읽은 보고서의 내용대로였다면 윌터 역시 그 사람 중 하나였고.
비록 황권에 찍어 눌러졌다고 한들, 이런 식으로 언데드 무리와 함께 전장에서 모습을 드러낼 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마주하게 될 줄이야. 게다가-.
“어째서 사교의 마법을 사용한 겁니까.”
마지막 순간, 윌터가 보였던, 마법의 위력을 극대화시킨 방법. 그것은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제약을 걸어 위력을 높이는, 기아스(Geis)와는 분명히 다르다.
기아스가 제약을 대가로 기량을 상승시키는, 저울과 저울추였다면 윌터가 사용했던 방법은-.
‘끌어온 힘에 저울추는 물론 그것을 받치고 있던 저울까지 박살 나 버리는…….’
생명을 제물로 바쳐 힘을 끌어내는, 사교도들이나 사용할 방법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윌터가 사교도들만큼 타락했다는 말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가 사용한 것은 타인이 아닌 자신의 생명력이었으므로.
러셀의 물음에 윌터가 스스로에게 자문했다.
‘글쎄. 왜였을까…….’
죽음이 가까워졌기 때문인지, 이렇게 되고서야 비로소 많은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기 때문인지, 혹은 잡념이 사라진 후에야 똑바로 볼 수 있게 된 것인지.
미몽에 잠겨 흐릿하기만 하던 눈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선명해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선명해진 눈을 따라 붉은 눈을 지닌 청년이 자신을 내려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올곧으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눈을 지니고 있는 청년이로군.’
왜 조금 전에는 저 올곧은 눈이 보이지 않았던 걸까. 그 이유에 대한 답을 내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마도 내 추악한 이기심이, 스스로의 눈을 가렸기 때문이겠지.’
자신 역시도 한때는 저런 눈을 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아, 올곧았다는 건 빼야겠군.’
젊은 날의 자신은 자신감이 넘쳤을지언정, 제 재능에 취해 독선적인 면모 또한 있었으므로.
그 재능 때문이었을까. 그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국가급 전력이라는 초인(超人)의 경지에까지 발을 들이밀 수 있었다.
문제가 발생했던 것은 그때부터였다.
초인의 경지에 오른 후, 그 이상으로 나아갈 방법이 윌터에겐 더 이상 보이지 않았던 것.
뛰어난 재능 탓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벽이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그였다.
그런 그가 마주한 첫 번째 벽이 초인으로써의 벽이었으니, 그 벽이 얼마나 거대하게 느껴졌을는지.
그런 와중에 ‘그자’를 보았다.
요요한 시선으로 모두를 굽어보며 고고히 아래를 찍어 누르던 자를.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 같은 감각.
‘그 힘에 매료되었던 거겠지.’
그자의 패도적인 영혼은 자신의 앞에 존재하는 벽마저도 파괴시켜 줄 것 같았으니까.
‘결론적으론 그른 선택이었지만…….’
상념을 마무리 지은 그가 왈칵하고 핏물을 토해냈다.
“쿨럭-!”
꼼짝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쏟아진 핏물이 얼굴과 턱을 따라 흘러내리며 앞섶을 적신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을 뿐, 죽음이 머지않은 상황.
윌터가 입을 열었다.
“……미혹이 드리운 눈에는 심연이 더욱 거대하고 어두워 보였던 탓이겠지.”
남은 힘을 쥐어짜고 또 쥐어짜서 꺼낸 말.
“심연?”
깊고 짙은 어둠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심연이 5황자……지금의 황제와 손을 잡은 사교도들을 말하는 것일까?
의문이 고개를 치켜들었고, 윌터가 다시 한번 힘을 쥐어짰다.
“제, 국을……어쩌면 대륙을 좀먹을지도 모르는 어둠은 분명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쿨럭, 어……두울 게야.”
적국의 마법사라곤 하나 그래도 나름 순수했던 시절-.
‘잠시나마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준 후배에게 충고 정도는 할 수 있을 터…….’
사신의 낫이 목을 겨누고 있는 듯 차갑고 날 선 감각. 죽음이 목전에 다다라 있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윌터가 마지막 힘을 그러모았다.
“부디, 어떤 이유로든 어, 둠에 삼켜지지 않, 도록 조심 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가냘프게 이어지던 숨이 끊어지고.
그가 마지막으로 내뱉었던 말이 허공중으로 흩어지는 가운데 알림이 들려왔다.
[미션을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아무래도, 아레크스와 지아볼의 싸움 역시 그 승패가 결정 지어진 듯했다.
그 방식이, 어떤 식으로건 간에.
쯧-. 러셀은 혀를 차며 윌터의 눈을 감겨주고는, 아레크스에게 향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