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27
227화
EPISODE.114
초인(超人).
그중에서도 두 명의 오러 수련자가 만들어낸 전투의 광경은 대마법사들의 그것과는 결이 상당히 달랐다.
여파가 미친 범위 자체는 마법사들의 전투에 비해 한정적이었을지언정…….
‘상당히 처참해.’
대마법사들의 싸움을 넓다고 표현한다면, 오러 수련자들의 싸움은…….
‘깊다.’
그것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마땅한 단어를 찾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쿠그그그그그-.
싸움의 여파로 지축이 뒤틀리기라도 한 것인지, 여진(餘震)을 연상시키는 진동이 불규칙적으로 번갈아들고.
여전히 모래 먼지가 피어오르는 구덩이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의 전투로 성난 마력을 채 가다듬지 못했기 때문인지, 러셀이 다가선 것을 눈치챈 모양.
“신성공.”
아레크스의 목소리.
불어온 바람에 주변을 자욱하게 채웠던 모래 먼지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그것을 장막마냥 가르며 그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쪽은 어떻게 되었소?”
마냥 쉽지만은 않은 전투였던 듯, 여기저기 길게 베인 상처가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흘러나온 핏물에 전신이 축축하게 젖어 있는 상황.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입은 상처 중 목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만한 치명상은 없다는 점 정도였다.
퐁-.
그런 그에게, 아공간을 열어 뚜껑을 딴 포션 몇 병을 건넸다.
“……뭘 이런 걸 다. 껄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웃으며 포션을 받아 든 것이 필요하긴 했던 모양.
“고맙소.”
제 몸에 포션을 뿌리며 인사를 하는 그에게 러셀이 대답했다.
“일단……이기긴 했습니다.”
“일단?”
말 그대로 일단이었다.
가진 패도 모두 사용하지 않았고, 예상했던 것보다 쉽게 이기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지막 순간, 불현듯 찾아온 깨달음 덕이었으므로.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지니고 있는 패들 중 몇 장을 더 노출해야만 했을 터였다.
‘게다가-.’
얼떨떨한 감정을 느끼며 러셀이 손아귀를 쥐락펴락했다.
그야말로 창졸지간에, 또 무의식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때문인지, 지금 러셀의 손끝과 의식에는 당시 느꼈던 감각이 흐릿한 잔향이 되어 남아 있었고.
나아가야 할 길을 어렴풋이 본 것 같지만, 제대로 된 방향을 잡고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해선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했던바.
“흠. 뭐 사정이 있는 모양이구려.”
복잡해 보이는 러셀의 표정에 어깨를 으쓱한 아레크스가 한숨을 탁 쉬며 말했다.
“그래도 나보단 낫구려. 이쪽은 놓쳐 버렸거늘.”
허탈한 목소리.
“……?”
의아해하는 러셀을 향해 그가 제 머리를 벅벅 긁으며 간단히 설명했다.
“공과 그 벼락쟁이 작자의 싸움이 마무리되는 순간, 불리함을 느낀 것인지 그대로 줄행랑을 쳐버려서 말이오.”
여기서 말하는 벼락쟁이란 윌터를 말하는 것이 분명했고, 도망친 이유야 불 보듯 뻔했다.
“아마도 이 대 일의 싸움이 되는 걸 우려한 탓이겠지.”
부상을 완치하지 못한 아레크스 한 사람을 상대로도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한 놈이다.
그런 와중에 러셀까지 가세한다면 그건 자신의 패배가 될 것이 명확했던바.
“약삭빠르기는……쯧.”
자신의 부주의로 놈을 놓친 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한차례 혀를 찬 그가 러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보다 고맙소. 신성공. 공이 아니었다면 어쩔 뻔했는지…….”
“아닙니다.”
러셀이 고개를 저었다. 만약 며칠이라도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면 초반의 불리한 싸움조차 일어나지 않았을 테지.
그런 러셀의 말을 아레크스가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공이 아니었다면 바닥에 누워있는 건 저 벼락쟁이가 아니라 분명 나였을 터.”
두어 차례 가슴을 쾅쾅 두드린 그가 고개를 숙였다.
“나, 아레크스 카일렌은 오늘 공의 도움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이는 카일렌 가(家)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도록 하지.”
비록 왕도가 아닌 지방에 위치하고 있다곤 하나, 카일렌 가는 엔디미온 내에서도 알아주는 무가(武家)였다.
그것도 중(重)병기를 사용하는 무가. 아레크스는 그런 카일렌 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가문의 이름을 걸고 약속한 것이다. 그 무게가 가벼울 리가 없었다.
러셀 역시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고, 쓰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이려는 찰나.
캬아아-!
그어어어─!
사방에서 사기 가득한 울음소리들이 들려왔다.
각기 두 쌍, 네 명의 초인들이 벌이는 전투의 여파로 언데드들이 증발해버린 자리.
그 자리를 메꾸기 위해, 여전히 살아남은 언데드들이 밀물마냥 밀려들고 있었다.
.
.
수백, 수천……아니, 어쩌면 그 이상.
끝이 보이지 않고 몰려드는 언데드 무리들의 모습이 마치 검은 파도나, 대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 불길한 광경에 질린 표정을 하며 러셀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만한 숫자의 언데드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이 들어갔을지…….’
단순히 무덤을 파헤치거나, 오래전에 죽은 이의 시신을 이용해 언데드를 만들어낸 것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전날 제국에서 보았던 행태를 생각하면, 그렇지만은 않겠지.’
물론 러셀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전날의 경험 때문만이 아니었다.
세월의 흐름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인지,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언데드들의 대부분이 신체의 일부가 부족하거나 어긋나 있는 것이 그 특징.
그에 비해 지금 눈앞을 가득 채운 언데드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부족하거나 어긋난 존재도 있지만…….’
몸 곳곳에 썩어들어가고 있는 살점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녀석들 역시 상당수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제조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을 이들이라.
어금니를 꽉 깨물며 러셀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윌터와의 싸움에서 소모된 정신력은 ‘솔로몬의 왕관’을 통해 이미 회복된 지 오래라.
부글부글, 방금 전 전투의 여열이 채 식지 않아서일까, 빠르게 달아오른 마력이 발끝을 통해 방사되며 지표 아래에서 마그마가 끓어 넘치고.
붉은 용암이 파도치며 일대를 거칠게 쓸어내렸다.
그어어어, 그으어-!
그에 휩쓸린 언데드들이 점차 녹아 사라졌다. 화기(火氣)란, 언데드들에게 있어선 상극과도 마찬가지인 속성.
물론 마그마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예로부터 민간신앙에서 불이란, 상서로운 동시에 위로가 되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위령제에서도 불이 빠지지 않는 것이었고. 다시 말해 지금 일어난 마그마의 격류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꽃은 러셀 나름대로의 위령제라고도 할 수 있었던바.
‘부디 편히 쉬시길…….’
그런 마음을 담은 마그마가 다시 한번 파도치며 언데드들을 집어삼켰다.
콰아아아아아-.
.
.
그 후의 일은 순조롭기만 했다.
수가 많다곤 하나 언데드 대군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이 스켈레톤이나 구울 따위의 하급 언데드들이었으니까.
제국 측에서 내세웠던 초인급 전력이 사라진 지금, 놈들을 몰아내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홀로 전장 하나를 뒤집어 버릴 수 있는 대마법사가 합류한 후임에야.
고작 며칠의 휴식으로 그날 있었던 전투의 부상을 모두 추슬렀다는 듯, 러셀은 곧장 다음 전장으로 향했던 것이다.
물론 러셀이 단순히 대군 마법을 이용해 언데드들을 몰아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만한 숫자의 언데드를 통제하기 위해선 분명 멀지 않은 곳에 술자들이 존재하고 있을 터.
한껏 확장 시킨 마력 감지를 통해 사특한 마나의 흐름을 잡아내고, 그를 통해 놈들을 제어하던 사교도를 잡아내기도 했던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꽈르릉-!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든 선명한 뇌격이 숲의 어둠을 휘장처럼 두르며 모습을 숨기고 있던 사교도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다.
나뭇가지는 물론, 높게 자라난 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빗나가지 않은 정교한 조준과 마력 조작!
“─!!”
직격당한 사교도가 비명 한 번 내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절명하며 쓰러졌다.
‘이걸로 다섯인가.’
키옐에 합류한 이후 잡아낸 숫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번 전투에서만, 반경 수십 킬로 내에서만 잡아낸 사교도의 숫자였지.
‘수준이 대단한 건 아니지만…….’
일대에서만 무려 다섯이었다.
이는 회귀 후 러셀이 만난 사교도의 숫자에도 필적할 수라.
만약 이걸 키옐의 전장 전체로, 거기서 더 나아가 나제 연맹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전투까지 확장한다면?
‘그렇게 되면 진짜 문제는 제국의 내부인가.’
외부로 나와 있는 사교도의 숫자만 해도 이 정도였다.
그렇다면 제국의 내부는 사교도의 온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
“후-.”
어쩐지 눈앞이 막막해지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적국으로써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고한 백성들까지 피해를 입기를 바랐던 것은 아니었기에. 어쩐지 입맛이 썼다.
* * *
높게 솟은 대리석 기둥이 천장을 떠받들고, 기둥과 기둥 사이 벽에는 한눈에 봐도 고가품이 분명한 예술품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게다가 슬쩍 흘러내린 침구 역시 보통의 것은 아니었고.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방이라.
이곳이 바로 브리타니아의 전 황제……현재 태황제로 불리고 있는 이의 거처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제국을 호령했던 전 황제가 침상 위에 누워있는 것이 보인다.
젊은 날 느껴지던 패도적이고 추상같은 기도는 간데없고, 남은 것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에게서나 느껴질 법한 죽음의 향취뿐.
그럴 수밖에.
지금 태황제의 몸은 알 수 없는 병마에 의해 좀 먹히고 있었으니까. 제국의 고명한 의술사들은 물론 마법사들마저 고개를 흔들었던 병이다.
몇몇 마법사들이 그나마 견해를 내놓기를, 몸이 아닌 영혼을 좀 먹는 병이라고 하던가?
그런 태황제를 비스듬히 내려 보는 시선 하나가 있었다.
금발에 녹안, 백옥처럼 새하얀 피부까지.
조금 서늘하고 퇴폐적인 면모가 없잖아 있었으나, 젊은 날의 태황제를 꼭 빼닮은 외모의…….
청년의 이름은 에드가 콘라드 4세.
불과 얼마 전, 새롭게 황위에 오른 현 황제가 바로 그의 정체였다.
다만 놀라운 점은 태황제를 바라보는 콘라드 4세의 시선이 지나칠 정도로 싸늘하다는 점이었다.
비록 병마로 인해 노쇠해졌다곤 하나 자신의 아버지 아니거늘…….
뿐만 아니라 입꼬리가 기괴하게 뒤틀어져 올라가기까지. 그 순간이었다.
똑똑-.
바깥쪽에서 간단한 노크 소리가 들려온 것은.
“폐하. 흐……흑탑의 탑주. 타……타나토스 경께서 드셨습니다.”
히프노스(Hypnos)가 깨어나지 못할 잠이라면 타나토스(Thanatos)는 의인화된 죽음. 흑탑주라는 직책엔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이름일 테지.
“들라 하라.”
콘라드 4세의 명이 떨어지고, 구그그그긍-.
문이 열리며 이내 흑탑주, 타나토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다만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뒤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괴한이 악취로 가득한 누더기를 뒤집어쓴 채 뒤를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히, 히익……!”
걸을 때마다 누더기 사이로 걸어 나오는 죽음의 향취에 시종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친다.
그 광경이 재밌다는 듯 타나토스가 키득키득 웃었다.
쿠그그그긍-.
오래지 않아 문이 닫히고, 장내가 외부와 단절되는 것을 확인한 타나토스가 고개를 숙였다.
“미천한 종, 타나토스가 주인님을 뵙습니다.”
단순히 황제를 대한다고 보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태도와 어조.
아직 타나토스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주인님께서 명하셨던 물건이 비로소 오늘 완성되었습니다.”
“말했던 물건이라면…….”
말꼬리를 흐리는 그를 향해, 타나토스가 씩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어 괴한에게 뒤집어씌워져 있던 누더기를 확-! 하고 벗기며 대꾸했다.
“암탑주(巖塔主), 로드릭 암스트롱을 소재로 한 아크 리치입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