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37
237화
EPISODE.119
─쾅!
스스로를 탄환으로 바꾸어 쏘아내며 일어나는 폭음, 무엇인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뒤를 쫓으며 귓가를 울렸다.
푸화악-!
악신의 중심부를 관통하고 하늘 높이 떠오른 러셀의 신형이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브라흐마스트라의 반동으로 온몸이 삐그덕거렸다.
폐부 깊은 곳까지 들이닥친 열기, 내장이 익다 못해 녹아 버릴 것 같은 고통이 쉬지 않고 뇌리를 향해 치밀어 오른다.
‘끅…….’
그런 상황에서 러셀은 생각했다.
‘벌써……몇 번째지?’
그와 함께 상념이 뚝 끊어지는 순간, 러셀의 의식은 다시 처음의 순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쾅!
스스로를 마법의 탄환으로 바꾸어 쏘아냈던 바로 그 순간으로…….
벌써 수백, 수천 번.
그 이상을 이어진 반복이었다. 도무지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는 제자리걸음, 마치 무한 나선 속에 갇힌 것만 같다.
제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이만큼 같은 상황이 무수히 반복된다면 현실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게 될 터.
문제는─.
‘어떻게 해야 이 무한 나선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
푸화악-.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군.’
─쾅!
물론 러셀이라고 해서 아무런 노력조차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것 역시 있었으므로.
같은 상황이 반복해서 펼쳐지기에─.
‘……무엇이 부족했는지, 몇 번이고 돌이켜 복기할 수 있다.’
몸을 좀먹어오는 반동의 고통 따위는 충분히 감내할 만했다.
어차피 의식이 끊어지는 순간부터 몸은 완전히 회복되어 새것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허나, 수천 번이 넘는 횟수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완벽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기계장치와는 같을 수 없는 법.
그러다 보니 무엇인가를 얻어 내겠다던 생각 역시 자연스럽게 무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러셀의 머릿속에 남은 것은, 과연 이 환상 속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뿐.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을 따름이었다.
계속해서…….
.
.
그렇게 내리 시간이 흘러가고.
얼마쯤 흘렀을까.
어느 순간부터 러셀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무한히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일체의 잡념이 사라진다.
두 눈과 마음으로 담아내는 것은, 하늘로 쏘아지는 탄환과 마법으로 화하는 객관화된 자기 자신의 모습뿐.
그 과정이 다시금 수천 번 이상 반복되며, 러셀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 순간.
철컥!
무엇인가가 맞물리는 소리가 러셀의 내면 깊은 곳에서 울려 퍼졌다.
기계장치의 톱니바퀴가 들어맞듯 꼭 알맞은 소리.
직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가 일변했다.
쩍, 쩌저저저적─!!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산산조각이 나며 깨져 나갔다.
깨진 거울 파편 마냥 하나의 세계가 무너지고, 그 바깥쪽에서 새로운 세계가 태어나기 시작한다.
‘이건……?’
창세기를 맞이하는 것만 같은 광경에 혼탁하던 동공 위로 눈빛이 돌아왔다.
일곱 개에 달하는 써클이 일제히 회전하고, 그 위로 또 하나의 원이 덧씌워지려는 찰나!
‘─!?’
러셀의 의식이 수면 위로 치솟아 올랐다.
화악!
.
.
“쿨럭─.”
마른기침과 함께 목 안쪽을 꽉 틀어막고 있던 울혈이 바깥쪽으로 튀어나왔다.
입 안 가득 차오르는 비릿한 혈향(血香).
‘죽겠군…….’
가슴 앞섶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혀를 찼다.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을 침상에 누워서 보낸 건지.
손가락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으로 천천히 감각을 되살리며 러셀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때였다.
누군가 축축하게 젖은 가슴 앞섶을 닦아주고, 이어 입안으로 물을 흘려 보내준 것은.
덕분에 입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비릿한 피맛과 함께 갈증이 씻겨 내려간다.
그 힘을 빌려 감각을 되찾은 러셀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끙.”
천천히 눈을 뜨자 한 손에는 물컵을, 다른 한 손에는 피에 젖은 헝겊을 들고 걱정스런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오의 모습이 보였다.
“괜찮으신가요. 러셀 님?”
아마도 자신에게 물을 흘려보내주었던 것이 그녀였던 모양.
“감사합니다. 이오 님.”
“감사는요.”
러셀의 인사에 배시시 웃은 그녀가 다시 한번 걱정스런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보다 몸은…….”
“음…….”
잠시간의 침음, 직후 자신의 몸 상태를 빠르게 점검한 러셀이 대충 어깨를 으쓱였다.
“걱정하시는 것보다는 괜찮은 듯합니다.”
울혈을 토해내긴 했지만, 덕분에 답답함은 많이 사라진 상황이었다.
얼마나 누워있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육체야 며칠 정도만 시간을 들이면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8써클.’
심장 어림을 휘돌고 있는 여덟 번째 써클의 존재감이란. 놀라운 점은 바로 그 8써클 속에 깃들어 있는 마력의 양이었다.
그 겉껍질 정도가 생긴 수준이 아닌, 압도적이기까지 한 마력이 여덟 번째 원을 가득 채우며 회전하고 있었으므로.
마력의 양만 놓고 보자면 이제 막 8써클에 올라선 비기너가 아닌, 8써클 마스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최상급 마석을 몇 개 먹는다고 하여 채워질 만한 마력량이 아니었다.
삽으로 퍼먹는다고 하더라도 몇 번은 반복해서 먹어야 했을 양.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양의 마력이…….’
그런 러셀의 의문을 해소시켜 준 것은 바로 눈앞에 떠오른 알림들이었다.
[불의 화신(化身), 아그니의 힘을 받아들이셨습니다. 화(火) 속성 이해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물의 화신(化身), 암피트리테의 힘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수(水) 속성 이해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대지의 화신(化身), 데메텔의…….] [바람의 화신(化身), 제피로스의…….]등등…….
그 후로도 길게 이어지는 알림들. 그를 통해 러셀은 이후 일어난 일의 전모를 대략적으로나마 유추할 수 있었다.
‘내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 화신들이 힘을 보태준 건가.’
그 덕인지 지니고 있던 사대 원소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최상급의 끝자락에 달했을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그렇게 켜켜이 쌓인 알림의 마지막에 위치한 내용이다.
[미션을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 [용인화의 제약과 부담이 대폭 완화됩니다.] [용화(龍化)가 가능해집니다. 용인의 모습을 뛰어넘어 완전한 용의 모습으로 화할 수 있습니다.] [전체가 아닌 신체의 일부만을 용화시키는 것 역시 가능합니다.]‘용화라고!?’
문자 그대로 용의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말일 터.
단어가 가진 파급력에 놀라는 것도 잠시, 이내 러셀의 눈이 냉정하게 가라앉았다.
‘물론 용화라고 해서 마냥 좋을 리는 없어.’
용인화 때와 마찬가지로 용화를 사용한 후의 반동이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설혹 부담이 없다 한들 용화가 단순히 강하기만 한 힘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기도 했다.
‘아무리 예리한 보검이라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이상 스스로를 해칠 수 있는 법이지.’
평생을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온 그였다.
그런 러셀에게 용화로써 생겨날 꼬리와 날개는 평소 지니지 않고 있던 신체 부위가 갑작스럽게 돋아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쉽게 다룰 수 있을 리가 없어.’
변화된 육체에 적응하기까지 상당한 노력과 연습이 필요할 것이 분명했다.
용화가 지닌 힘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로 할 테지.
‘그렇다고 해서 노력을 안 해볼 생각인 건 아니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비장의 패가 한 장 더 생긴 셈인 건 분명했으니까.
“─러셀……님?”
그런 러셀을 상념에서 깨운 것은, 바로 앞에서 들려온 이오의 목소리였다.
한동안 그가 말이 없자, 걱정스런 마음이 든 그녀가 고개를 숙여 러셀과 시선을 맞추었던 것이다.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있으신가요?”
각기 양 손바닥으로 자신과 러셀의 이마를 짚어보기까지.
“아, 아뇨. 괜찮습니다. 그보다 거리가 조금…….”
그제야 상념에서 깨어난 러셀이 헛기침을 하며 눈동자를 움직였다.
숨결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것은 덤이라.
“아. 이, 이런……그, 그게 아니고……!”
그제야 자신의 행동을 깨달은 이오가 양손을 휘저었다.
황급히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고, 돌연 누군가의 음성이 들렸다.
“분위기가 아주 좋아 보이는데?”
암피트리테를 비롯한 네 명의 정령왕들이 흙집의 입구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애로운 미소 위로 번져 있는 한 줄기 장난의 기운.
“강력한 파동 때문에 깨어난 줄 알고 와본 건데, 이럴 줄 알았으면 오지 말고 자리를 비켜 줄 걸 그랬어요.”
데메텔이 쿡쿡거리며 웃었다.
제피로스와 아그니 역시 껄껄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장난이 과하세요.”
이오가 홍당무처럼 붉어진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근 한 달이라는 시간을 정령계에서 보내다 보니 정령왕들과도 꽤 친해진 모양.
게다가 이오는 러셀에게 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러셀에게는 미래를 약속한 이가 있었으니까.
그런 이오의 모습에 정령왕들이 웃음을 이어나가길 얼마간, 잠시 후 데메텔이 러셀을 찬찬히 살펴보며 말했다.
“다행히도 무사히 깨어났을 뿐만 아니라 힘 역시 잘 수습한 것 같군요.”
“네 분 정령왕들께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도움은요. 정령계를 구원해준 은인께 당연한 일을 한 것뿐. 감사의 인사를 하려거든 옆에 있는 은룡에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
의아해하는 그에게 데메텔이 눈웃음과 함께 말했다.
“그대가 의식이 없는 시간 동안, 그대의 곁을 지켜온 것이 바로 그 은룡이랍니다.”
“아무렴. 제대로 잠도 자지 않고 얼마나 지극히 모시는지, 참.”
암피트리테가 입술을 삐죽였다.
두 정령왕의 설명에 러셀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을 돌봐준 것이 그녀인 줄은 알았다.
헌데, 그렇게까지 지극정성이었을 줄이야.
정령왕들의 이야기가 사실이냐는 듯 러셀이 이오를 돌아봤다.
“으, 으우…….”
이오의 눈동자는 러셀 쪽을 제외한 사방팔방으로 구를 따름이라.
하지만 이미 붉어질 대로 붉어진 이오의 얼굴이 답을 말하고 있었다.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을 테지.
“감사합니다. 이오 님.”
한층 진심을 담아 내뱉은 러셀의 말에 이오가 고개를 푹 숙이며 입술을 달싹였다.
“뭐, 뭘요……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걸요.”
마지막에는 쥐구멍에라도 기어들어가듯 한껏 작아진 목소리.
그때 분위기를 환기시킨 것이 바로 암피트리테였다.
짝-.
돌연 박수를 친 그녀가 흙집의 안으로 들어왔다.
당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자. 우리 불청객들은 해야 할 일을 어서 마무리하고 자리를 비켜 주자고.”
“해야 할 일……?”
단순히 자신이 깨어난 것을 확인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러셀의 물음에 암피트리테의 얼굴 위로 의미심장한 웃음이 번져나갔다.
“화신이라곤 하지만 우리는 명색이 정령왕의 분체라구.”
네 몸을 회복시키는 것쯤이야 당연히 했어야 하는 일이고-, 그렇게 말한 암피트리테가 다른 세 정령왕들과 함께 러셀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령계를 구해준 은인에게 보답을 빼놓을 순 없잖아?”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