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EPISODE.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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뺘악, 뺘악-!
즐거운 울음소리와 함께 우다다다 하는 괴성이 들려왔다.
팔찌의 모습에서 벗어나, 헤츨링의 모습으로 돌아온 샤벳이 흙집의 안쪽을 마구잡이로 뛰어다니고 누비며 나는 소리였다.
갸르르르륵─!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자세를 한껏 웅크린 페퍼가 사냥에 나서는 짐승마냥 샤벳을 노려보다가 확-뛰어올랐다.
흙집의 안쪽을 뛰어다니는 샤벳을 덮쳤고, 졸지에 아래에 눌려진 샤벳이 배를 드러내며 장난스럽게 울었다.
뺘악, 뺘아아악!
그러자 슬그머니 발을 빼는 페퍼.
눌리는 힘이 사라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샤벳이 다시 집안을 우다다다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언뜻 보기엔 어린 두 남매가 놀이를 즐기는 소란스런 모습.
러셀이 기운을 차림에 따라 두 어린 용들 역시 덩달아 기운을 차린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뒤로 한 채, 러셀은 침상에 앉아 자신의 손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흠…….”
정확하게는 손등에 아로새겨진 문양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해야 옳을 테지만.
색이 다른 네 개의 원이 서로 교집합을 이루고 있는, 정령왕들이 직접 새겨준 문양.
그것을 잠시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양을 새겨주며 정령왕들이 했던 말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이 문양은 당신과 저희가 이어져 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랍니다.
─뭐래. 계약이 아니야. 단순한 연결일 뿐이지. 그러니까…….
─……이 문양이 있으면 언제든 필요한 순간 우리들을 물질계로 불러낼 수 있다오.
─야, 내가 말하고 있잖아!
─하지만 신중해야 할 것이오. 문양의 힘을 빌려 우리들을 불러낼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니.
─아니, 내가 말을 하고 있……!
─정령계를 구원해준 은인께 저희가 드리는 나름의 보답이랍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설명을-!!
암피트리테의 짜증 어린 외침이 지금도 배경음처럼 귓가를 맴도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간에.
정령왕의 화신.
비록 화신체(化身體)라 하더라도 8써클 마스터급의 힘을 지니고 있는 존재가 바로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물질계에 현현시킬 수 있는 문양이라…….’
단 한 번이라 하더라도 이 문양의 가치는 무가지보와도 다르지 않을 것인즉.
‘신중하게 사용해야겠군.’
그리 생각한 러셀이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상념을 거두는 것과 동시에 손등 위에 새겨져 있던 문양이 희미해지며 자취를 감춘다.
의식하지 않으면 굳이 드러나지 않는 문양의 특징이었다.
그렇게 문양을 비가시(非可視) 상태로 전환한 러셀이 어깨와 손목을 비롯해 관절과 근육 이곳저곳을 가볍게 풀었다.
뚝, 뚜두둑-.
그때마다 가벼운 뼛소리가 울려 퍼진다. 의식불명에서 깨어난 지 고작해야 몇 시간.
몸을 완전히 다 회복한 건 아니었지만…….
‘언제까지 정령계에 죽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정령계의 문제가 물질계에 영향을 미쳤던 것도 중요했지만, 물질계에는 물질계 나름의 문제가 남아 있었으므로.
‘전쟁(戰爭)…….’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켠을 갑갑하고 묵직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단어였다.
학자들 중 일부는 인류의 역사가 전쟁과 함께 발달하고 진화해왔다고 하는 이들 역시 있었지만-.
‘무슨 명분과 이유를 가져다 대더라도 그 위에서 구르고 있는 것이 피의 수레바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
한낱 인간으로 태어난 그가 바랄 수 있는 것이라곤 부디 그 피의 수레바퀴가 아국이 아닌 적국을 향해 구르도록 바라고 노력하는 것뿐일 터.
물론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상자 역시 적지 않게 발생할 터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흔들리지 않았다.
전쟁이란 본래 그런 것이었고, 앞으로 짓밟게 될 목숨의 무게를 짊어지는 것이야 ‘워 메이지(War Mage)’의 길을 선택했을 때부터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으므로.
게다가-.
‘이번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전쟁은…… 일반적인 전쟁과는 그 결이 조금 달라.’
흑탑을 용인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언데드로 이루어진 대군을 운용하는 것이 바로 제국이었다.
개중에는 오랜 시간이 흘러 썩고 낡은 시체 역시 있었지만, 언데드화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들 역시 존재했다.
그리고, 그 시체들을 어디서 구한 것인지는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을 테지.
영지와 인근 마을 몇 개를 통째로 언데드 제작소로 바꾸어 버린 광경을 그가 직접 보았었기에.
어떻게든 수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전쟁으로 흘리는 피보다, 더욱 많은 피가 흐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관절이나 근육 등, 최상의 컨디션을 되찾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셀이 굳이 움직이려는 이유 역시 바로 그 때문이었고.
‘후.’
생각의 정리를 마친 러셀이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침상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를 묻지 않았다는 점이 문득 떠오른 러셀이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옆에 앉아 있던 이오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오 님. 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누워 있었던 겁니까?”
근육과 관절이 조금 뻐근하게 느껴질 정도라면 대충 보름가량……, 러셀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이오가 답변했다.
“한 달, 한 달 정도를 누워계셨어요.”
한 달.
예상했던 것보다 곱절은 긴 시간.
러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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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짧은 시간은 아니었으나, 마냥 길다고 만은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작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조금 예외였다.
제국과의 전면전이 언제 발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한 달이라는 시간은 충분히 길다고 할 수 있었으므로.
보름만 해도 길다고 느꼈거늘, 그 두 배라니.
어쩌면 전쟁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마스터급 이상의 전력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아군의 전력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던 바.
목덜미를 스치는 한 줄기 불안감에 러셀이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지금 당장 돌아가야겠습니다.”
“네?”
갑작스런 러셀의 말에 이오가 의문을 표했으나, 딱히 반론은 하지 않았다.
신체의 컨디션이 조금 저하되어 있다곤 하나, 그뿐.
러셀이 정령계에서 얻은 힘을 모두 수습한 이상 더는 정령계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으므로.
사흘가량의 시간이 필요했던 전과는 달리, 돌아가는 일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별다른 준비 없이, 정령왕들이 문을 열어 주는 것만으로 출구가 마련되었으므로.
화아악-.
공간이 통째로 일그러지며 정령계와 물질계를 잇는 문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문만 통과하면 바로 물질계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
데메텔이 말했고 암피트리테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며칠 정도는 더 머물러도 상관없는데 말이야.”
아쉬움이 남는다는 어조였다.
툴툴거렸던 지금까지의 어투와는 달리, 정령왕의 한 사람으로서 그녀 역시 러셀에게는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말씀은 감사하지만, 물질계 쪽에도 일이 생겼을지 몰라서 말입니다.”
“음, 바쁜 사람을 굳이 붙잡아 둘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아그니가 고개를 끄덕였고 제피로스가 첨언했다.
“급한 일이 해결되면 종종 놀러 오시오. 어린 용제여. 그대에겐 우리 세계로 통하는 통행증이 있으니, 정령계는 언제나 그대를 환영할 것이오.”
“감사합니다.”
정령왕들과의 마지막 인사는 거기까지.
러셀과 이오가 떠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일까. 물질계로 향하는 문(Warp Gate)앞에는 각양각색의 정령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가장 흔한 사대 원소의 정령부터 시작하여, 드문드문 보이는 그 외의 속성을 지닌 정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정령계의 은인이 돌아가는 광경을 바라보기 위함이었다.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들의 시선을 뒤로하며 러셀과 이오가 몸을 틀었다. 물질계로 향하는 포탈 안쪽으로 몸을 던졌다.
화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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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로 드리웠던 붉은 노을이 어느새 절반가량 사라지고, 그 위로 밤의 어둠이 짙어지기 시작할 무렵.
“음…….”
요정족들이 임시로 마련해준 거처 안쪽에서 창을 통해 하늘을 내다보던 앨런 페이지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아닌 겁니까.”
어쩐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
그렇게 몇 번이나 거처의 안쪽을 서성이던 그가 문을 박차고 나선 것은 그로부터 약 십 분 정도가 더 지난 후였다.
거처를 나서고 몇 분.
엘프족의 영역에 당도한 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엘프족 중에서도 장신을 자랑하는 남성 엘프 하나가 그를 향해 다가온다.
“앨런 경.”
그의 이름은 히그네우.
모종의 이유로 자리를 비운 아레인과 이오를 대신하여 엘프족을 이끌고 있는 이였다.
젊어 보이는 외견과는 달리, 수백 살이 훌쩍 넘은 나이라고 하던가.
“히그네우 공.”
몇 번이나 마주친 구면인 덕에, 그를 알아본 앨런이 입을 열었지만 히그네우는 조용히 고개를 저을 따름이었다.
그런 그의 행동에 앨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습니다. 역시 오늘도 전하께서는…….”
엘프족과 별다른 인연이 없던 그가, 이곳에서 머무르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국왕으로부터 러셀을 데려오라는 명을 받았기 때문. 하지만 정작 그 당사자인 러셀은 정령계에서 아직 돌아오지도 않은 상황이니…….
물론 그라고 해서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정령계에서 일어난, 어떤 존재와의 전투로 인해 큰 부상을 입고 정령계 내에서 몸을 회복 중이라던-.
‘도대체 어떤 부상을 입었기에…….’
벌써 한 달째, 정령계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러셀 님은 저희 엘프족에게도 은인. 은인께서 돌아오신다면 앨런 경에게도 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히그네우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거처로 발을 돌리려던 찰나였다.
화아악-.
일순 강렬한 마력의 파동이 일었다.
“─?!”
6써클 마스터에 도달해, 7써클을 바라보는 실력을 지닌 그가 결코 놓칠 리가 없는 파동.
“정령의 향기가 갑자기 진해졌습니다.”
“그 말씀은……?”
앨런의 추측이 옳다는 듯 히그네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무래도 은인께서 돌아오신 것 같군요.”
두 사람의 걸음이 너나 할 것 없이 숲의 안쪽, 마력과 정령의 파동이 흘러나오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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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악-.
마력과 함께 공간이 일그러지며, 저로 다른 두 세계를 잇는 문이 생겨난다.
“저건…….”
“정령계의 문이잖아?”
“드디어 은인과 이오 님이 돌아오시는 건가?”
마을 한복판에 생겨난 문의 존재에 모여든 엘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다음 순간.
화악!
마력의 파동이 정점에 달하며 그 너머에서 한 쌍의 남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흑발에 적안. 그리고 백발에 백안.
당연하게도 남녀의 정체는 바로 러셀과 이오였던 바.
“으으…….”
문을 통과하며 발생한 어지럼증에 이오가 몸을 비틀거렸고,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리던 러셀의 눈에 낯익은 얼굴 하나가 비쳤다.
떴는지 감았는지 알 수 없는 실눈과 잿빛의 머리카락.
‘앨런 경!’
엘프족과 별다른 인연이 없는 그가 이곳에 있다는 말인즉-!
‘설마?!’
목덜미를 간지럽히던 불안감이 짙어지고 있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