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39
239화
EPISODE.120
콰아아아아-!
음속을 아득히 초월한 비행 속도에 대기가 빠른 속도로 밀려나며 돌풍이 일어났다.
사납게 일어난 제트기류가 꼬리처럼 길게 늘어지고, 갸르르륵.
두 쌍의 날개를 지닌 붉은 용이 하늘을 가르는 가운데 그 등에 탄 사내 중 하나가 소리쳤다.
“전쟁? 제국이 기습을 가해왔단 말입니까?”
흑발에 붉은 눈을 지닌, 대륙에선 다소 희귀한 외모의 청년이었다.
그 외침에 붉은 용의 뒤쪽에 앉아 있던 잿빛 머리를 가진 실눈 사내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두 청년 모두 초고속 비행으로 인해 불어닥친 강풍에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
그럴 수밖에.
두 사내는 바로 러셀과 앨런 페이지였으므로.
8써클 마스터급의 마력량을 지니고 있는 러셀과, 6써클을 넘어 7써클을 넘보고 있는 앨런이었다.
그런 두 사람에게 이 정도의 강풍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고개를 끄덕인 앨런이 다시금 입을 열었고─.
“제국이 기습을 가해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삼 주 전……자정이 지난 늦은 밤 무렵이었습니다.”
─이내 그의 이야기는, 제국의 기습이 처음 시작된 순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
.
성채(城砦) 라비톤은 엔디미온의 동쪽령 국경 인근에 세워진 작은 성채였다.
제국군의 수상한 움직임을 감시하는 동시에, 전쟁이 일어날 경우 앞으로 치고 나가기 위한 전초기지의 목적으로써 세워진 성채.
때문일까.
작은 성채인 만큼 그 거주민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 중 대다수는 훈련된 병사나 장교들이었다.
그 외 민간인들의 수는 손에 꼽을 만큼 적다고 할 수 있다.
휘오오오오-.
불어온 바람이 성벽의 위로 치솟으며 귀곡성과도 같은 소리를 만들어낸다.
자정이 넘은 시각.
그 소리에 번을 서던 병사 하나가 창대를 꽉 움켜쥐었다.
전초기지의 목적으로 세워진 만큼 이곳에 머무르는 병사들에게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감도는 것은 당연한 일일 터.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그 분위기가 조금 심해졌다.
단순한 긴장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병사들 사이에서 스산함마저 감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제국과의 전면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는 와중이었으니, 선임병이라 하더라도 쉬이 긴장을 놓지 못할 수밖에.
그때였다.
저벅, 저벅-.
번을 서고 있던 성벽, 그곳으로 이어지는 계단 아래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린 것은.
힐긋, 시선을 옮기자 횃불과 함께 성벽을 올라오고 있는 인원들이 보였다.
근무 교대를 위해 다음 순번의 이들이 올라오고 있었던 것.
“으, 추워라…….”
가장 선두에서 몸을 부르르 떨며, 후임병들을 이끌고 올라오는 사내는 바로 자신과 같은 선임병 중 하나였다.
“춥기는 무슨, 얼른 올라오게. 나도 들어가서 따뜻한 차나 한 잔 하고 자야겠으니.”
“거참, 고작해야 몇 분 더 서 있는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투덜거리며 올라온 사내가 먼저 근무를 서고 있던 사내의 옆에 가서 섰다.
품속에서 연초를 꺼내 불을 붙인 후, 다른 한 개비를 옆의 사내에게 건네주며 물었다.
“후……, 그래서 뭐. 근무 중 특이 사항은 없었고?”
“아직까지는 없었네만, 분위기는 스산한데 이렇게까지 조용하니 오히려 걱정이 되는군.”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먼저 담배를 문 사내가 길게 연기를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게 말일세. 저 개 같은 제국 놈들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탓에 1급 경계령이 내려진 것만 벌써 며칠째가 아니던가. 거기다 언데드라니. 빌어 처먹을 새끼들.”
어느 부대에서나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대화에, 엔디미온 특유의 제국에 대한 적개심이 더해진 투덜거림.
“쳐들어오기만 해보라지. 당장 이 창으로 머리통을…….”
“아, 왜 말을 하다 말고 멈추는가. 박살 내면 박살 내는 거지.”
“저, 저기…….”
그 순간, 이야기를 하던 선임병의 입에서 물고 있던 담배가 툭하고 떨어졌다.
그 모습에 대충 담뱃불을 끄고 숙소로 복귀하려던 다른 선임병이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곳곳에서 위협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댕댕댕댕댕, 댕댕댕-!
“적습, 적습이다!”
“푸른 귀화! 언데드가 몰려온다!”
아직 동이 트지 않아 짙게 깔린 어둠 속, 지평선 저 너머에서 푸른 귀화가 파도처럼 성채를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타다다다닥-!
.
.
“그날 공격당한 지역이 성채와 영지 도합 아홉입니다. 그중 셋은 거의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으며…….”
공격을 받았다는 아홉 지역 중,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곳이 어딘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터.
‘병력의 수가 적은 성채, 혹은 변경의 영지 중 하나였겠지.’
후자일 경우 민간의 피해 역시 적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러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
그러는 사이에도 앨런은 계속해서 보고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기습 공격에 대한 보고가 들어오는 즉시 병력을 파견하여 응전, 현재 점령당했던 아홉 개 지역 중 네 개의 지역을 되찾아온 상황입니다. 그 후 지금까지도 크고 작은 전투가 보고되고 있으며 아직 제국 측 초인들이 움직였다는 정보는 없습니다.”
자신들이 직접 전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초인들을 움직이지 않다니.
홀로 전장을 갈아엎고, 전황을 뒤집어 버리는 초인들의 힘을 모르는 것이 아닐 텐데.
‘제국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놈들의 생각에 러셀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어 질문했다.
“왕도에서는……폐하께서는 어찌 결정하셨습니까?”
“응전에 나설 병력을 파견한 직후, 제국과의 전쟁을 위해 병력들을 집결시키셨습니다. 집결된 병력에는 엘프족과 수인족 역시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엘프족의 므뇌르인 아레인이 자리를 비운 이유 역시 바로 그 때문이었다.
엘프족과 수인족.
두 종족에게 거주할 곳을 제공하는 대가로 맺은 협정의 내용 중에 이러한 것들 역시 포함되어 있었기에.
‘무야호 님도 포함되어 있겠군.’
왕국 최고의 마법사가 다리아라면, 엔디미온 최강의 오러 수련자는 무야호라고 할 수 있을 터.
그만한 전력을 놀리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문제는 그 거칠고 자유분방한 성미를 컨트롤할 수 있느냐겠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앨런의 음성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날로부터 삼 주 간, 모든 준비를 끝내고 열병식을 한 후 제국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시겠다고…….”
“열병식?”
“예. 그러니까 바로 오늘…….”
“─?!”
* * *
제국의 새(新) 황제, 콘라드 4세의 어전은 높게 솟은 대리석 기둥이 천장을 떠받들고, 곳곳에는 한눈에 봐도 고가임이 분명한 예술품들이 장식된 곳이었다.
놀라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전의 곳곳에선 알 수 없는 스산함이 감돌고 있다는 점이었다.
황궁 내에 일하는 이들 사이에선 어쩐지 어전에만 들어갔다 오면 오한을 느끼거나 악몽을 꾼다는 이들 역시 종종 있었고.
그런 불안한 기운과 소문이 감도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콘라드 4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조금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듯, 어전에 앉은 채 입을 열었다.
“타나토스.”
“예. 주인님.”
그 부름에 어전 한켠의 어둠이 뭉쳐 들더니 이내 사람의 형상으로 화(化)한다.
2미터는 넘을 듯한 장신에 뒤집어쓴 로브 사이로 불길한 안광을 뿜어내는 사내, 타나토스였다.
“얼마 전 엔디미온을 향해 군을 움직였다고 들었다만, 그 후의 일은 어떻게 되었지?”
콘라드 4세의 물음에 한차례 고개를 숙여 보인 타나토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고드리겠습니다. 주인님.”
앨런이 러셀에게 했던 보고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제국과 왕국의 입장만이 서로 반대가 된 보고라.
“열병식까지 준비하며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다라…….”
말꼬리를 늘어뜨린 그가 눈앞에 놓여 있던 체스 말을 집어 들었다.
“비로소 제대로 된 전쟁을 시작할 수 있겠군.”
달그락-.
일반적인 체스 말과는 달리, 말라붙은 핏물처럼 불길한 색을 지닌 진홍색의 말.
그것을 한 차례 손안에서 돌려 보인 콘라드 4세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키득거리던 그의 웃음소리가 돌연 뚝 하고 그친다.
무서우리만큼 급진적인 감정변화.
카드득-!
섬짓한 소리와 함께 손아귀에 들려 있던 체스 말이 박살나며 그 파편 일부가 떨어져 내리고.
후두둑-.
이내 그의 시선이 체스판 옆에 놓여 있던 대륙의 전도로 향했다.
대륙을 양분하고 있다시피 한 두 열강, 엔디미온과 브리타니아.
그중 한 곳을 향해 박살 난 체스 말의 가루를 흩뿌리며 중얼거렸다.
“제국의 영토가 온전히 피로 뒤덮일 전쟁을 말이야…….”
놀랍게도, 피처럼 붉은 가루가 뒤덮은 곳은 엔디미온이 아닌 제국의 영토 위였던 바…….
그 광경이 퍽 재미있다는 듯, 콘라드 4세는 다시금 키득키득 웃어 보일 따름이라.
러셀이 정령계에서 돌아오기 불과 며칠 전, 제국의 어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 * *
“폐하.”
국방대신의 음성에 시녀의 도움을 받아 열병식 준비를 하고 있던 국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이어 왕실의 상징이 수놓아진 망토를 등에 두르며 걱정 어린 기색으로 물었다.
“그……대공으로부터 소식은 아직 없는가?”
“예.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폐하.”
“으음…….”
국방대신의 대답에 국왕, 알폰소 라트모스가 침음을 흘렸다.
약 한 달 전, 엘프족의 므뇌르인 아레인으로부터 전해진 연락을 떠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도대체 얼마나 중한 상태기에 한 달이나 흘렀거늘, 아직도 정령계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그 때문에 자신의 딸인 헤카테 역시 내색하지만 않았을 뿐, 걱정으로 잠을 설치는 와중이지 않던가.
‘부디 무사히만 돌아오게.’
그런 생각을 하며 국왕은 밖으로 나섰다.
미리 준비된 단상 위로 올라섰다.
그러자 그 아래를 가득 채우고 있는 왕국 정병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대충 보기에도 수만이 넘을 듯한 숫자. 놀라운 점은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소집된 병력 중에서도 극히 일부라는 점이었다.
이보다 몇 배는 되는 전력이 왕도 바깥쪽에 집결해 있었고, 각 지방에서 집결하고 있는 수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열 배 이상까지도 늘어나게 될 터.
“국왕 폐하 납시오!”
와아아아아아-!
터져 나오는 환호성을 뒤로하며 국왕이 손을 들어 올렸다.
척-.
“잔인한 제국의 무리가 그간의 평화를 깨뜨리고 아국의 영토를…….”
환호성을 제지하며 엄숙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여 위대한 엔디미온의 국왕, 나 알폰소 라트모스는 그들의 혼과 넋을 위로하고자 제국에게 죄를 물을 것인즉.”
쿵!
그가 거칠게 발을 굴렀다. 비록 마스터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젊어서부터 오러를 단련한 그다.
묵직한 기운의 파동이 단상 위로 퍼져나가고.
“염탑주, 다리아 스노우화이트는 왕명을 받아 제1군 사령이자, 총사령의 자리에 임명한다!”
성난 국왕의 음성에 다리아가 먼저 나서 무릎을 꿇었다.
“염탑주 다리아 스노우화이트. 국왕 폐하의 명을 받듭니다.”
사대 속성의 마법 중에서도 가장 파괴적이라는 불과 벼락, 그 정점에 달한 염탑주.
그런 그녀가 전면에 나선 것이다.
“가을달성 성주, 길리언 펄슨을 2군의 사령관으로……!”
3군 사령관, 아레크스 카일렌.
4군 사령관, 니콜로 마키아벨리.
순서대로 각 군의 사령관이 호명되고, 마지막 5군 사령관의 순서를 앞에 남겨둔 채 국왕이 잠시 말을 멈췄다.
5군은 수왕이라 불리는 무야호가 포함된 군단이었다.
지닌바 무력만을 놓고 보자면 그녀가 사령관이 되어야 옳을 터다.
허나 자유분방한 성격이 그 자리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여 그녀를 통제할 수 있는 그를 5군의 사령관으로 임명할 생각이었거늘…….’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임시로나마 보급을 담당할 예정이던 백탑주, 아멜리아 머윈을 사령으로 둘 수밖에.
“5군의 사령관은…….”
그렇게 생각하며 국왕이 입을 열려는 순간, 쐐애애애애액!
하늘을 가르며 붉은 벼락 하나가 단상의 앞에 내리꽂혔다.
“웨, 웬 놈이냐!”
호위병들이 놀라며 검집에 손을 올리려는 찰나.
척!
무시무시한 속도와는 달리 안정적이기 그지없는 착지로 내려선 사내가 검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왕국의 대공, 러셀 레이먼드. 지금 막 당도하였나이다. 폐하.”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