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4
24화
EPISODE.12
“캬륵? 캭?”
불의 원을 문 삼아 모습을 드러낸 것, 그것은 꼭 도마뱀과 같이 생긴 무언가였다.
“샐러맨더?”
이오가 그 정령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러셀 역시 언제고 서적을 통해 본 적이 있는 이름.
‘샐러맨더라면…….’
도마뱀의 형상을 가진 불의 하급 정령 중 하나를 말하는 것이었다.
불의 정령답게, 붉은색 피부 위로 불길이 흘러드는 무늬를 가진 것이 특징.
“캬륵, 캭.”
하지만 그 외형이 러셀이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캬륵, 캬륵!‘
짧은 앞발을 바둥거리며 불꽃의 문을 빠져나온 녀석.
그런 녀석의 등에 작은 날개 한 쌍이 달려 있었던 것이다.
파닥, 파닥-.
“갸르륵.”
자신의 머리를 둥지 삼아 자리 잡은 녀석의 존재감을 느끼며, 러셀이 물었다.
“샐러맨더가 원래 날개가 달린 정령이었습니까?”
러셀의 물음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이오가 더듬거렸다.
“아, 아니에요. 은인. 평범한 샐러맨더에는 날개가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한창 날개 달린 샐러맨더에 정신이 빠져 있던 참이었다.
“그럼 이 정령은…….”
“돌연변이, 아마도 아주 특별한 개체일 거예요.”
“특별한 개체?”
“네. 정령 중에서도 극히 드문 녀석이에요. 개체에 따라선 같은 급의 정령보다 조금 더 강한 힘을 발휘하거나 특별한 힘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
카륵, 카륵-.
그때 녀석이 러셀의 머리 위에서 몸을 한 바퀴 빙글 돌렸다.
마치 재롱이라도 부리는 것 같았다.
‘음.’
그것이 퍽 마음에 들었던지라, 러셀이 빙긋 웃었다.
“특별히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라는 거군요.”
문제라는 말에 절대 그럴 리 없다는 듯 이오가 도리질을 쳤다.
“문제는커녕,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르는걸요.”
“……?”
“속설에 따르면 그 한계가 고정된 일반적인 정령들과는 달리, 특별한 개체들은 계약자의 성장과 함께 성장한다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그 말씀은 곧…….”
“아직은 하급 정령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만, 언제고 그 규격을 뛰어넘는 힘을 발휘할지도 모른다는 말이랍니다.”
“음.”
돌연변이라고 하여 인간의 기준으로만 생각해 혹시나 했는데, 문제는커녕 성장한다는 장점 역시 있다니.
다행이었다.
“그럼 이제 끝난 겁니까?”
“이제 이름을 지어주셔야 해요.”
“이름이라…….”
“이름은 계약이 잘 마무리되었음을 증명하는 증표임과 동시에 불러낸 정령과 소환자 사이에 유대감을 이어주는 매개체랍니다.”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이 특별한 샐러맨더와 러셀 사이가 계약이라는 교감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음.”
이름이라는 말에 러셀이 잠시 고민했다. 특별히 누군가에게 이름을 지어줘 본 적이 없는 터라 더욱 망설여졌다.
‘어떻게 한다.’
어느새 머리에서 내려온 녀석이 날개를 파닥거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비취색이 도는 초롱초롱한 눈동자에, 붉은색의 피부.
그리고 불꽃이 흘러드는 형상으로 흰색의 무늬가 곳곳에 새겨진 외형이라.
머리와 팔다리, 그리고 날개를 제외하면 통통한 소시지의 느낌도 조금 났다.
그렇게 한동안 녀석의 모습을 응시하던 러셀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베이컨?”
난데없이 튀어나온 가공육의 이름.
듣고 있던 다리아가 ‘맙소사’라고 중얼거리며 이마를 짚었다.
“헉!”
“캬륵, 캭캭!”
엘프인 이오는 깜짝 놀라며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샐러맨더 역시 작은 날개를 퍼덕거리며 항변했다.
육식을 하지 않는 엘프가 베이컨이라는 이름에 놀라는 것이야 그러려니 했지만, 샐러맨더까지 반발할 줄이야.
‘어지간히 이름이 마음에 안 드나 보네.’
아무래도 이름을 다시 지어줘야 할 것 같았다.
“음.”
그렇게 한동안 더 고민하던 러셀이 결국 내놓은 것은 ‘페퍼’라는 이름이었다.
“페퍼, 페퍼.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작고 앙증맞은 느낌의 이름이로구나.”
“네. 적어도 전의 이름보다는 훨씬 나아요.”
“갸르륵.”
이번에는 셋 모두 마음에 드는 듯, 저마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기에 러셀은 차마 진실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가공육을 닮은 모습에 베이컨이라는 이름을 가져왔듯, 이번에는 썰지 않은 통 페퍼로니에서 그 이름을 가지고 왔노라고.
게다가…….
‘이번에도 마음에 안 들어 하면 다음 이름은 살라미로 하려고 했는데.’
퍽 마음에 든다는 기색을 보이는 셋에게는 절대 말할 수 없는 진실.
[미션을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 [최하급 마석(식용)이 지급되었습니다] [상급 화염 속성 이해도가 미미하게 상승합니다.(0.03%)]알림과 함께 떠오르는 녹색창을 뒤로 하며 러셀이 손을 뻗었다.
허공을 날고 있던 날개 달린 샐러맨더. 페퍼를 손바닥 위로 올리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페퍼.”
그런 러셀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페퍼가 제 머리를 손목에 비벼댔다.
“가르르릉.”
* * *
해안과 점점 가까워지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
해안가를 따라 모여 있는, 시의 경비병들이 내는 목소리였다.
하기야 밤중에 해안 위에서 갑자기 불꽃이 피어오르는 일을 벌인 와중이었다.
경비대가 모여들지 않는다면 도리어 그게 이상한 일이겠지.
스르륵, 철컥.
이내 배가 해안가로 닿자, 닻을 내린 다리아가 단숨에 그 아래로 뛰어내렸다.
“저, 저!”
그 광경에 경비병 몇이 깜짝 놀라 소리친다.
대형 범선 갑판의 높이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 미터 이상. 바닥이 모래밭이라고 하지만, 떨어진다면 무사할 수 있을 만한 높이가 아니었다.
허나, 그것은 다리아의 정체에 대해 알지 못했기에 나온 반응이었을 뿐.
화악-.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부유마법을 펼치는 것으로 순식간에 충격을 날려 버린 다리아가 입을 열었다.
“염탑 소속 워 메이지, 실리아라고 합니다.”
말투는 물론이거니와 이름까지 바꾼 모습.
게다가 머리카락 역시 금발로 물들여 두었으니, 혹시라도 그녀를 알아볼 만한 이는 없으리라.
“오늘 말디바 시 근해에서 인신매매선이 쉬어간다는 첩보를 입수해, 이제 막 토벌을 마치고 돌아온 참이랍니다.”
말을 마치며 그녀가 염탑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플레어 로즈를 가볍게 두드린다.
효과는 확실했다.
“염탑의 워 메이지십니까!”
워 메이지들의 본산이라는 적탑, 그중에서도 염(炎)이라는 글자를 하사받은 왕국 유일의 마탑.
그 이름값은 죄가 없는 이들조차도 간혹 두려움에 떨게 만들 정도였으므로.
해안 경비대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의 한껏 공손해진 태도에, 러셀은 새삼스럽게 염탑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설마 엔디미온의, 그중에서도 우리 말디바의 근해에서 묵어가려는 간 큰 녀석들이 있을 줄이야!”
“이미 토벌이 끝난 후이니 그렇게 화를 낼 건 없어요. 그보다…….”
그가 과장된 표정으로 해적선을 노려봤고, 다리아가 손을 흔들었다.
“죄인들의 처리와, 해방된 이들의 뒤처리는 말디바 시에 맡겨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그가 자신의 가슴팍을 팡팡 두드렸다.
“놈들을 엄벌에 처하도록 시장님과 영주님께 탄원하는 것은 물론, 잡혀 있던 이들 역시 본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염탑의 이름까지 대었으니 일 처리가 허투루 진행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션을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 [보상으로 하급 마석(식용)과 최하급 마석(식용)이 지급되었습니다.]다리아 스노우화이트의 시험이라 이름 붙여졌던 미션이 끝마치는 알람이 떠오르고.
일련의 일들을 물 흐르듯 깔끔하게 처리한 그녀가 러셀과,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엘프들을 향해 신호했다.
“가자꾸나.”
러셀의 가슴팍에 새겨져 있는 것 역시 플레어 로즈, 그때 경비대장이 뒤따르던 엘프들을 일견하며 물었다.
“그런데 저들은…….”
“저들의 귀환은 우리 염탑에서 책임지도록 하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염탑을 언급하는 다리아의 모습에 경비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직후 수하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뭐 하는 거냐. 이놈들아! 어서 범죄자들과 피해자들을 인도받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경비대를 뒤로하며, 엘프들을 이끌고 걸음을 옮기는 다리아의 모습에 러셀이 혀끝으로 입술을 축였다.
‘염탑.’
5써클과 7써클을 이루는 것은 가문을 재건하기 위한 최소의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개국공신가라는 타이틀이 가져다주는 특례는 작위, 그 이상 어느 것도 보장해주지 않았으니까.
‘영지로 쓸 수 있는 봉토와 그 영지를 운영할 만한 재산 등…….’
그 외에도 가문을 재건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들의 수는 꽤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염탑의 존재가 러셀에게 꽤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전쟁이 나면 워 메이지로,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왕국 내의 무력집단으로 존재하는 적탑계열의 정점.’
다시 말해, 여러 마탑들 중 공을 세우기에 가장 적합한 마탑이 염탑이라는 말이었다.
게다가 굳이 큰 전쟁이 발발하지 않더라도, 이런저런 작은 국지전에 참전하는 경우 역시 왕왕 있었던바.
‘운이 좋으면, 아버지의 원수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여러모로 러셀의 목적과 부합하는 장점을 지닌 마탑이라는 의미.
과거에는 감히 바라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높은 곳에 위치하던 염탑이었기에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야.’
아카데미에서의 성적은 훌륭했고, 무엇보다.
염탑주인 다리아가 자신을 꽤 마음에 들어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물론 마냥 쉽지는 않겠지.’
그렇게 러셀이 염탑이 가지는 의미를 짚어보는 사이, 어느새 다리아의 걸음은 시내의 한 저택에 닿고 있었다.
“다 왔구나.”
커다란 대저택의 앞에 멈춰선 다리아가 말했다.
작은 영지의 영주성에도 비견될 만한 크기에 러셀이 절로 입을 벌렸다.
“여기가……탑주님의 본가이십니까?”
“본가는 무슨. 내가 태어나 자랐던 집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란다. 이곳은 내가 가끔 휴식을 취하러 돌아오는 별장 같은 곳이지.”
별장이 이 정도 크기라니.
새삼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일에 러셀이 입을 떡 벌렸다.
“파리 들어가겠다. 이 녀석아.”
그런 러셀의 입안으로 계피 사탕 하나를 쏙 넣어 주며, 다리아가 이오에게 말했다.
“안에 들어가서까지 그렇게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을 필요는 없다오. 이 저택에서 일하는 사역인들은 모두가 입이 무거우니까.”
다리아가 직접 뽑고 보증한 사역인들이었다.
믿어도 좋을 것이다.
“호위로 붙여줄 탑의 워 메이지들이 올 때까지 부디 푹 쉬었다 가시구려.”
“은인의 호의에 감사드려요. 저 이오를 비롯한 하얀 물푸레나무 부족은 오늘 두 은인의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이오의 대답을 뒤이어 다른 엘프들 역시 고개 숙여 함께 말한다.
“두 은인들께 감사드립니다.”
그 후 사역인들을 불러 먼저 엘프들을 안으로 들여보낸 다리아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이…….”
러셀과 두 눈을 마주치며.
“아니, 러셀.”
한껏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너만 괜찮다면 남은 방학기간 동안, 내 아래에서 마법을 배워보는 건 어떻겠느냐?”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