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45
245화
EPISODE.123
“와아아!”
“돌입해, 돌입!”
“막아, 막으란 말이다!”
“그 전에, 이 개 같은 불꽃 새끼들 좀 어떻게 해봐!”
돌파하려는 자와 막아내려는 자가 쉬지 않고 부딪히며 곳곳에서 쇳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채재재쟁, 따다다다당-!
장교들이 악바리를 써대고, 기사들의 검과 검이 부딪히며 불똥이 차오른다.
그 사이에서 충돌하는 수백에 달하는 병사들의 창과 창이 충돌하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파도가 서로 부딪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라.
“으아아악!”
“죽어어어어엇!”
곳곳에서 악에 받친 외침과 함께 비명성이 피어오르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엔디미온의 병력들이 점차 성문을 비집고 안쪽으로 들어왔다.
땅따먹기라도 하듯, 성채의 곳곳을 점령해 나가기 시작했다.
느리지만 분명한 속도. 물에 물감이 퍼지듯, 성채는 조금씩 엔디미온 군기(軍旗)의 색으로 물들어 간다.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난공불락이라 불리던 트리벤 성채라 해도 점령할 수 있을 터.
그 광경을 바라보던 러셀이 눈을 가늘게 떴다.
‘문제는 아군의 피해로군.’
단순히 성채 하나를 점령하고 끝날 전쟁이 아닌 이상, 아군의 전력을 최대한 보존하는 편이 주효했으므로.
물론 아군의 병력이 몇 배 이상 많기는 했다. 하지만 성채 안으로 들어와서 싸워야 하는 이상 그 수는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대한 단기간에 전투를 끝내기 위해선…….’
러셀의 두 눈이 빠른 속도로 전장을 훑었다.
이내 그의 눈동자에 병사들 사이에서 소리 지르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비치는 순간!
쐐애애액─!
러셀이 섬전처럼 몸을 날렸다.
쾅-
벼락처럼 놈의 앞에 내려섰다.
성인 장정의 머리 높이까지 솟아오른 먼지구름.
그 사이로 드러나는 러셀의 모습에 메이헴 백작이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네, 네놈은…….”
휘오오오-.
거친 바람 소리, 음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피어오른 먼지구름 위로 수십 개의 와류가 생겨났다.
이어 와류의 형태가 뾰족한 화살과 같이 변하고, 러셀이 손끝을 튕기는 즉시 그것이 쏜살처럼 메이헴 백작을 향해 날아들었다.
쐐애애애액-!
평범한 화살과는 달리 단 한 발도 빗나가지 않을 마법의 화살들이 제각기 기기묘묘한 궤적을 그리며 메이헴 백작을 향해 쏘아 든다.
“헛, 설마……, 네놈!”
그제야 러셀의 생각을 이해한 메이헴 백작이 이를 악물었다.
화아아악-.
“네놈의 술수에 쉽게 당해줄 성싶으냐!”
이어 그의 검 위로 희미하게 푸른 빛이 어리기 시작한다.
완전한 검기(劍氣)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분명한 오러의 발현!
따다다당-!
바람의 화살과 검이 충돌하며 오래된 종을 때리는 소리가 쉴새 없이 터져 나온다.
트리벤 성채의 성주, 그 작위를 허투루 따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만큼 숙련된 실전 검술.
하지만-.
‘크윽…….’
러셀이 쏘아내는 화살은 주변에 바람만 있다면 얼마든지 충당할 수 있었던바.
쐐애애액, 따다다다당!
쏟아지는 화살의 수가 너무 많았다.
핏, 피비빗-.
화살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를 따라 피부가 갈라지며 핏물이 흘러내리고, 검을 움켜쥐고 있던 메이헴 백작의 손발이 어지러워지는 찰나.
화악-!
화끈한 열기가 바람의 화살을 가르며 튀어나왔다.
‘버닝 블레이드(Burning Blade).’
손끝에서 피어오른 열기를 검의 형태로 변환시켜 출수시킨 마법.
서걱, ──────화르르륵!
날카로운 절삭음에 무언가가 타오르는 소리가 꼬리처럼 따라붙고-.
“……그륵!”
직후 메이헴 백작의 눈에 비친 세상이 뒤집어졌다.
허공을 날아오르는 부유감.
급작스럽게 찾아든 지독한 오한.
반고리관이 흔들리고, 몸의 감각이 통째로 이지러지며 생겨나는 멀미.
그 속에 보인 것은 바닥을 향해 스러지고 있는 목을 잃어버린 자신의 몸뚱이였으니─.
‘내, 내 몸이 왜 저기에……?’
미처 그 의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도 전에, 어디선가 날아든 우악스런 손길에 그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콱!
.
.
전장으로 향하며 틈틈이 읽어본 전술 교본에 따르면, 적의 사기를 꺾어 놓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적을 찍어 누르기.
대장전에서 승리하기 등등…….
물론 대부분 전술에 대해 무지한 자라도 알 수 있는 간단한 것들이었지만,
어쨌든 간에, 적장의 수급을 취하는 것 역시 그 방법 중 하나였다.
서걱, ──────화르르륵!
잘려 나간 메이헴 백작의 머리통. 채 감지도 못하고 눈을 부릅뜬 그것이 허공을 날아오르고, 손을 뻗은 러셀이 그것을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다.
“서, 성주님이…….”
“성주님께서…….”
전투가 일어난 일대를 주변으로 절망이 파문마냥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러셀이 원했던 바로 그 감정, 그렇다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이 감정을 전장 전체, 성채 전체로 퍼뜨리는 거겠지.’
상념을 갈무리한 러셀이 그대로 몸을 날렸다.
파밧-.
민첩하기 그지없는 몸놀림으로 성채 내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타고 올랐다.
“저, 저-!”
뒤늦게 그 모습을 발견한 장교들 몇이 화살을 쏘아댔으나 러셀의 몸은 이미 첨탑 꼭대기에 도달한 후라.
투두두둑-!
아래에서 쏘아진 화살이 베리어에 막혀들고, 첨탑 꼭대기에 올라선 러셀이 그 위에 꽂혀 있던 제국군의 군기(軍旗)를 움켜잡았다.
꽉!
한손에는 군기(軍旗)를 한 손에는 메이헴 백작의 머리를 움켜쥔 러셀이 소리쳤다.
“성주이던 메이헴 백작은 이미 그 명을 달리한바!”
우릉 우릉-!
마력이 깃든 목소리가 벼락성이라도 된 듯 성채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우고.
“투항하라!”
화르륵-!
러셀의 손에서 시작된 불길이 순식간에 제국군의 군기를 살라 먹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하늘을 향해 충천했고-.
화아아악-!
솟구쳐 오른 불길이 엔디미온 왕가의 모습을 이루며 하늘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
화르르르륵-.
“투항하는 자─!!”
때아닌 노을이라도 찾아온 듯, 온통 붉어진 하늘 아래에서 러셀이 다시 한번 포효했다.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
.
러셀이 트리벤 성채를 점령했다는 소식은 국경을 넘어 엔디미온의 왕도에까지 전해졌다.
“난공불락의 요새를 단 하루, 단 한 번의 전투로 뚫어내었다라…….”
그 믿을 수 없는 소식에 보고를 전해 받은 국왕이 저도 모르게 혀를 가볍게 내둘렀다.
허나 안타까운 점은 이 소식을 마냥 기뻐할 수 없다는 점일까.
그 이유는 전장 곳곳에서 들려온 소식들 때문이었다.
“일흔두 곳에서 접전이 이루어졌고, 그중 마흔일곱 곳에서 아군이 제국의 방어를 뚫고 제국 내로 진입했습니다. 그 외 열다섯 곳의 전장은 현재 소강상태, 나머지는 여전히 접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폐하.”
국방대신의 보고에 국왕의 얼굴이 미미하게 일그러졌다.
사실상 육 할이 넘는 전투에서 승리한 상황이었다.
마음 놓고 이 승전보에 반색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문제는…….
“너무 쉽지 않은가.”
이번 전쟁이 너무 쉽다는 점이었다.
“제국과의 전쟁이 이토록 쉬웠던 적이 있었던가?”
수백 년간 열 번이 넘는 전쟁을 반복해온 두 열강이었다.
앞선 전쟁들이 이번만큼 쉬웠다면 제국은 진즉 엔디미온의 손에 무너져 내렸으리라.
“또한 놈들이 자랑하던 초인과, 수없이 많던 언데드들마저 어디로 갔는지 아직 전장에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으니…….”
말꼬리를 흐린 그가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남은 헤밍웨이를 마주하며 물었다.
“제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첩보에는 따로 적힌 내용이 없던가?”
“예. 폐하.”
국왕의 물음에 그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국경 인근에 배치되어있던 언데드들을 후방으로 물렸다는 보고는 있었사오나, 그 외의 내용에 관한 보고는 없었습니다.”
“흠…….”
“으음.”
창탑주의 보고가 끝나기 무섭게 곳곳에서 침음성이 들려왔다.
전투에서의 승리와 혁혁한 전공에 기뻐하기에는 적의 움직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결국 국왕, 알폰소 라트모스는 한숨을 내쉬며 이리 말할 수밖에.
“그들의 공을 치하하는 공문을 내려보냄과 동시에 해당 안건을 하달, 부디 조심하라는 경고도 함께 보내도록 하시게.”
마냥 홀가분하지만은 않은, 어쩐지 찜찜하기까지 한 승리였으나 어쨌든 승리는 승리.
대륙의 두 열강, 엔디미온과 브리타니아의 전쟁은 그렇게 개막을 고하고 있었다.
* * *
트리벤 성채를 점령하고 몇 시간 뒤.
급하게 설치한 막사의 안쪽에서 러셀은 수북하게 쌓인 마법 스크롤을 확인하고 있었다.
지난날 암룡의 거처에서 가지고 온 마법 스크롤들, 그중에서도 8써클 마법이 기록된 물건들이었다.
마력만큼은 8써클 마스터가 부럽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지만, 실제로 그 실력은 8써클 초입 정도에 불과했기에.
‘새롭게 올라선 경지에 적응하기 위해선, 부지런히 노력해야겠지.’
스크롤에 기록된 마법을 독파하며 8써클이라는 경지에 대한 이해도를 끌어올리고 있는 이유 역시 바로 그 때문이었고.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흠흠.”
인기척 소리가 나더니, 막사의 바깥쪽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십시오.”
러셀의 허락이 떨어지자 천막을 젖히고 들어온 도노반 남작이 군례를 올린다.
척-.
“참모 도노반, 대공 전하께 보고를 올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러셀은 그 군례를 받았다.
“먼저 보고드릴 것은 사상자입니다. 아군 측의 사상자는 총 칠백예순일곱으로 그중 사망자가 이백하고도 일곱, 부상자는 각기 중상과 경상으로 나누어…….”
트리벤 성채를 점령하면서 사상자가 칠백여 명 정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일이 분명하다.
허나-.
‘목숨에 경중을 둘 수는 없겠지.’
한차례 쓰게 웃은 러셀이 도노반 남작에게 물었다.
“수습한 사망자들의 시신과 정도 이상의 중상자들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본래라면 일부 부대와 함께 이곳에 남기는 것이 정석입니다. 그렇게 하면 후속 부대가 와 조치를 취할 테니까요. 허나…….”
설혹 이미 사망한 이라 한들, 그 시신만이라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하기 위해 만든 엔디미온 나름의 시스템.
거기까지 말한 도노반 남작이 말꼬리를 흐리며 덧붙였다.
“이번의 경우에는 후속 부대가 올 때까지 본대 역시 이곳에 남는 것이 옳다고 사료됩니다.”
“투항한 적들 때문입니까?”
“예. 전하.”
보고서에 따르면 투항한 적의 숫자는 약 삼천. 이는 트리벤 성채의 제국군 중 반절에 가까운 숫자였으며.
그 외의 이들은 모두가 러셀의 마법이나 전투에 희생되었거나, 투항하지 않아 참수된 상황이었다.
“삼천이라…….”
후속 부대가 올 때까지 그들을 감시하기 위해선 적어도 오천 이상의 숫자를 이곳에 남겨야 할 터.
그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후속 부대가 당도할 때까지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고 전열을 가다듬는 편이 나았다.
“후속 부대의 도착 예정은 언제입니까?”
“사흘 뒤입니다.”
사흘, 일분일초가 중요한 것이 전쟁에서의 시간이었지만 트리벤 성채를 하루 만에 점령한 덕에 그 정도 시간은 충분히 낼 수 있을 듯했다.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남작님의 의견에 따르도록 하죠.”
그렇게 보고가 끝나고, 자리에 홀로 남은 러셀이 의자 뒤편으로 몸을 기댔다.
‘흠…….’
트리벤 성채에 있던 제국군의 수는 육천가량. 아무리 지리적 이점을 지니고 있다 해도, 몇만이 넘는 엔디미온의 군세를 막아내기에는 중과부적(衆寡不敵)인 수라.
‘제국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
그렇다고 홀로 군단을 상대 할 수 있다는 초인(超人)을 배치해둔 것도 아니었고.
도무지 의중을 알 수 없는 생각에 인상을 찌푸리길 몇 차례.
러셀이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고민해봐야, 당장에 답을 내릴 수는 없는 문제야.’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을 테지.
‘앞으로 사흘.’
자신에게 남은 여유 기간을 가늠해 보며, 러셀이 자신의 앞에 놓여 있던 스크롤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Hell Fire]불에 타오르듯, 선명하고 붉은 글씨가 러셀의 눈에 들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