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47
247화
EPISODE.124
별안간 나타났던 용의 형상으로 인해, 군영의 내부에선 이런저런 소문이 나도는 와중이었다.
오래전 자취를 감췄던 용종(龍種)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용의 형상이 새로운 마법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선과 질문들이 러셀에게 향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하지만 정작 소문의 당사자인 러셀은 그에 대해 아무런 답변조차 내놓지 않은 채, 쓴웃음을 지을 따름이었다.
‘대답을 해주고 싶어도, 아는 게 없으니─.’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날 이후로 러셀의 내면에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었다.
[???]물론 아직 그 변화가 무엇인지는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한 상황이지만.
어쩐지 자신을 바라보는 참모진들의 시선이 묘한 것을 확인하며 러셀이 가볍게 헛기침했다.
“흠흠.”
화제를 전환하듯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앞으로의 일에 대해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트리벤 성채를 점령한 것으로 제국의 국경을 넘어선 그들이다.
제국의 반격이 만만치 않을 것 역시 감안하여 미리 작전을 수립해 둬야 했다.
“제가 먼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참모진들을 대표해 입을 연 것은 가장 연장자인 도노반 남작이었다.
“지금까지 일어난 전쟁의 추세와, 첩보에 적힌 제국군의 움직임대로라면, 현재로서 대규모 회전(會戰)이 일어날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습니다.”
말을 하며 그가 지도 위에 놓여 있던 작은 깃발 모형들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깃발 하나에 병력이 500가량.
먼저 제국군을 의미하는 붉은 깃발이 선형 형태로 국경을 따라 넓게 배치되기 시작하고.
“힘을 집중시켜 한 곳을 뚫어내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이겠지만, 자칫 놈들의 중심부 깊숙이 들어갔다간 높은 확률로 후미가 포위될 것입니다. 그러니…….”
다음 차례로, 그에 맞대응하듯 푸른 깃발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차라리 이런 식으로 병력을 분산하여 배치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전하.”
“음…….”
러셀의 눈이 빠르게 지도 위를 훑었다.
단박에 진군하여 적의 수도를 짓밟는 것이 아닌, 넓게 흩어져 야금야금 땅을 점령해가는 방식의 전투에 어울릴 만한 군사 배치.
국토가 작은 국가였다면 전자 쪽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하지만 제국이 상대라면 확실히 이 방법이 훨씬 더 나아.’
러셀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 차례 빙긋 웃은 그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대공 전하께는 따로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따로 부탁하고 싶은 일?”
“예.”
이어 품속에서 그리 두껍지 않은 서류철 하나를 꺼내 러셀의 앞에 내밀었다.
“대공 전하께서는 별동대와 함께 움직여 주셨으면 합니다.”
첫 장을 펼치자, 제국의 지도 위 곳곳에 붉은색 점들이 칠해져 있는 것이 보인다.
“이건…….”
“제국군의 병참이 위치한 곳입니다. 전하께서 별동대를 이끌고 이곳들을 무력화시킨다면 놈들의 보급에도 문제가 생길 테지요.”
안정적이고 원활한 보급은 전쟁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를 끊어 놓을 수만 있다면 제국군의 군기(軍氣) 또한 크게 흔들릴 것이 분명했다.
물론 이 작전에는 그 이상의 노림수가 있는 것 같았지만.
“단순히 병참을 습격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들에게 불안감을 심을 수도 있겠군요.”
병참이 위치한 곳은 대부분이 제국의 깊숙한 곳이라. 별동대를 이용해 그곳을 휘젓고 다닌다면 제국군으로선 언제든 적이 뒤에서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전쟁에 임해야 할 터.
도노반 남작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예. 그것이 전하께 별동대를 부탁드린 이유이며…….”
아무도 모르게 적진으로 침투할 수 있으면서, 적진 한복판에 들어가서도 능히 살아 돌아올 수 있는 실력자.
“그 뒤쪽에는 전하와 함께할 만한 이들의 명단을 따로 추려봤습니다.”
이어진 남작의 말에 러셀이 무심코 서류를 다음 장으로 넘겼다.
말간 종이 위에 적혀 있는 명단의 숫자는 십여 명가량.
그중 최상단에 위치한 이름 하나가 러셀의 눈에 들었다.
─염탑 소속 워 메이지, 휴버트 막시말.
그에겐 더할 나위 없이 익숙한 이름이었다.
.
.
그로부터 며칠 후, 후방 지원 부대가 도착하기 전.
새벽의 어스름을 틈타 군영을 벗어나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하나같이 특별함 없는 잿빛의 로브를 전신에 걸친 모습.
휘오오-.
불어온 바람에 그들의 선두에 선 청년이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가 가볍게 젖혀졌다.
휘날리는 흑발, 그 사이로 흔들림 없는 눈동자가 동공으로부터 붉은 빛을 토해냈다.
* * *
어둠이 짙게 깔린 한밤중.
제국의 영토 내부, 수직으로 깎아지는 절벽.
일단의 무리가 그 절벽을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깎아지르는 절벽을 평지와도 다르지 않게 여기는 균형감각.
불어 닥치는 바람과 마력사(魔力絲)를 이용해 균형을 조절하고, 중력의 일부를 이지러뜨림으로써 보일 수 있는 마법의 극치라.
놀라운 점은 절벽을 기어 올라가고 있는 이들 모두가 어려움 없이 그와 같은 일을 해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럴 수밖에.
그들의 정체는 다른 이들도 아닌, 러셀을 필두로 한 엔디미온의 마법사단 별동대였으므로.
열 명에 달하는 이들 중 가장 약한 이가 4써클, 제 몫을 해내기에 충분한 역량을 지닌 마법사가 아니던가.
그렇게 빠른 속도로 절벽을 박차며 나아가는 가운데 외알 안경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전하와…….”
“임무 중이라곤 하지만 말을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그 말에 휴버트가 고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제와 함께 임무에 나서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군.”
“키옐 왕국 건 이후로 처음이니…… 그게 벌써 몇 년 전이군요.”
“키옐이라…….”
당시를 회상하던 휴버트의 눈이 절로 깊게 가라앉았다.
“몇 년이나 흘렀는데, 당시와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상황이라…….”
“……?”
“그때 임무를 떠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사제의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네.”
같은 5써클이라고는 하지만, 경륜도 경험도 자신 쪽이 월등히 많았으므로.
하지만, 당시 임무 내용을 확인해보면 정작 버팀목이 되었던 건 자기 자신이 아니라 러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처를 입어 도주하는데 주력했던 자신과는 달리, 러셀은 초인(超人) 중에 한 사람과 거의 대등하게 맞서 싸우기까지 했었으므로.
몇 년이 흐른 지금 역시 마찬가지.
‘사제는 초인(超人)의 경지에까지 올라섰거늘, 나는 거의 그대로인 답보 상태라…….’
6써클에 올라선 것이니 답보라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러셀의 성장세에 비하면 멈춰 있는 것과도 다르지 않았기에.
물론 그렇다고 해서 러셀을 질투하거나, 시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스스로에게 답답함을 느꼈을 뿐.
그런 휴버트의 마음을 이해한 것일까.
러셀이 입을 열었다.
“모르고 계셨겠지만, 사형은 제게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낮지만 분명한 음성.
고도가 높아지고, 칼바람이 웅웅 불어오는 와중에도 러셀의 목소리가 휴버트의 귀에 와 닿았다.
한 점 흔들림조차 없는 목소리.
“……?”
“만약 사형께서 안 계셨다면 저는 진작 아카데미에서 쫓겨났을 겁니다.”
아니, 설혹 쫓겨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제 발로 걸어 나왔을지도 몰랐다.
회귀 전, 일말의 재능조차 없던 그에게 아카데미에서 보낸 시간은 그만큼이나 혹독했었기에.
다만 가문의 부흥이라는 짐이 어깨 위에 놓여 있었기에 이를 악물고 매달렸던 것뿐.
그 세월을 버틸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바로 휴버트의 지도였다.
“사형은 제게 있어 은사(恩師)이기도 합니다.”
“그런가…….”
말꼬리를 늘어뜨리던 휴버트가 희미하게 웃었다.
사형이자 동시에 은사.
기묘하기까지 한 관계였지만 그 속에 깃든 러셀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기에.
그때였다.
척-.
가장 먼저 절벽의 꼭대기에 올라선 러셀이 반대편 아래쪽을 내려 보며 말한 것은.
“보이는군요.”
그 말대로.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이 협곡의 형태로 둘러싸며 만들어낸 지형, 짙게 깔린 어둠 사이로 희미하게 제국군의 병참기지가 보였다.
횃불은 물론 등불 하나 켜져 있지 않은 기지.
저래가지고 무슨 병참기지를 지키겠다는 건지…… 누군가 중얼거린 그 말과는 달리 휴버트와 러셀의 눈이 매처럼 번득였다.
어둠 너머도 명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마법.
호크아이(Hawk-Eye).
“불을 켜지 않는 이유가 있었군요.”
“이미 죽어 버린 시체들에게 빛의 존재는 있으나 마나 할 테지.”
놀랍게도 병참기지를 지키고 있는 것은 우글거리는 숫자의 언데드였다.
시각을 이용해 적을 찾는 놈들이 아니었으니, 횃불이 없어도 되었던 것이고.
“마침 빠져나갈 길목도 좁은 협곡의 안쪽, 지금 당장 화염계 마법을 퍼붓도록 하겠……?”
그런 휴버트를 러셀이 막아섰다.
여전히 매와 같이 빛나는 눈동자가 협곡의 아래쪽을 내려 보며 말했다.
“그래도 전쟁인 만큼……챙길 건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획(鹵獲)과 노략질. 하물며 물자를 지키고 있는 것이 언데드인 이상, 일말의 가책조차 들지 않을 것이다.
고위급 마법사들이 대부분인 만큼 대부분 아공간을 사용할 수 있을 터.
‘빼앗은 물건은 일단 그 속에 보관하면 되겠지. 그리고 이를 반복한다면 분명…….’
상념을 마무리하며 러셀이 희미하게 입꼬리를 샐쭉였다.
.
.
퍼석-.
내딛는 구둣발에 수북하게 쌓여 있던 뼈들이 부서져 내렸다.
방금 전까지 절그럭거리며 움직이던 언데드들의 잔해라.
퍼석, 퍼석-.
수북하게 쌓인 백골들이 뼈 무덤 마냥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그런 가운데 휴버트가 중얼거렸다.
“벌써 네 번째 병참이로군.”
아공간을 열어 주변에 놓여 있는 제국군의 물자를 챙기면서였다.
“그동안 노획한 물자만으로도 몇 개 사단을 한 달간 먹이고 입힐 수 있겠어.”
그 말에서 알 수 있듯, 러셀을 필두로 한 별동대가 제국군의 병참을 습격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
그 과정에서 획득한 노획물의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 양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아공간 내부의 공간 부족으로 인해 본대에 한 번 합류해야 하는 걸까─하고 고민하게 될 정도.
“문제는 제국군이 언제까지 이 수법에 당해 주는가겠군.”
“그럴 겁니다.”
벌써 네 번이나 이어진 습격이었다.
바보가 아니라면 제국군 역시 무언가 방비를 해두었을 터.
바로 그 순간이었다.
……………………………………….
……………………………………………꽈아악!
“─?!”
아공간 속으로 창검을 쓸어 담던 러셀이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방금 그건…….’
바람결에 들려온, 아주 미미한 소성(小聲).
‘마치 팽팽한 줄을 당기는 듯한……?!’
직후,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감각과 함께 일대의 마력이 하늘을 가득 뒤덮었다.
폭풍이라도 만들어내듯 크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오-!
.
.
그 장소로부터 꽤 떨어진 숲의 어둠 속.
기다란 로브로 전신을 뒤덮은 사내 하나가 거칠게 요동치는 하늘을 바라보며 뇌까렸다.
“그 자리에서 몰살시켜주마. 버러지 같은 엔디미온 놈들…….”
꽈아아악, 피잉────.
한껏 당겨졌던 빈 시위가, 그의 손을 떠나는 순간.
────────콰아아아아아!
하늘로부터 거대한 폭풍이 다발처럼 쏟아져 내렸다.
『천궁(天弓), 보레아스』
결코 빗나가지 않는 폭풍의 활이라는 이명을 지닌 신기(神器)가, 자신의 신력(神力)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콰아아아아!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