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48
248화
EPISODE.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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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궁(天弓) 보레아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천궁은 바람의 신 보레아스(Boreas)의 힘이 깃든 신기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상징하는 네 신, 아네모이(Άνεμοι). 그중 북풍이라는 어원을 지닌 보레아스.
그는 바람의 신인 동시에 ‘거친 폭력’을 상징하는 신이기도 하다던가.
그 상징대로 폭력적이기까지 한 용권풍이 쉬지 않고 지상을 내리찍었다.
그것도 하나둘이 아니다.
족히 수십이 넘는 용권풍들이 소나기라도 된 듯 협곡의 안쪽으로 원을 그리며 쏟아지고 있었다.
쾅, 콰릉, 콰과과과과!
작은 것은 손가락 마디만 한 두께부터 시작하여, 큰 것은 성인 장정의 허리통만하기까지.
어딜 봐도 용권풍이라고 불릴 만한 규모는 아니었다.
그럴 테지. 눈앞을 어지럽히는 바람의 소용돌이들은 용권풍이 한계까지 압축되며 만들어낸 결과였으므로.
일격에 성문을 돌파하는 것은 물론, 성벽까지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위력을 지닌 폭풍이었다.
그저 스치기만 하더라도, 휩쓸리는 것은 물론 갈가리 찢겨 나가 시체조차 건사하지 못할 터!
보레아스가 지닌 또 다른 이명.
【결코 빗나가지 않는 폭풍의 활】이라는 이름은 목표한 대상을 반드시 노려 맞춘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다만, 일대를 통째로 갈아엎음으로써 목표한 대상까지 휩쓸리게 만든다는 뜻이었지.
전혀 다른 의미에서의 필살(必殺).
대기가 쉬지 않고 울부짖으며 지상을 강타했다.
그때마다 양옆으로 펼쳐진 절벽들이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 크게 흔들리며 요동친다.
쾅쾅쾅!
퍼져나가는 충격파와 지면 위로 번져 나가는 실금.
잇따라 가해진 충격파에 지반이 약해지며 러셀 일행이 딛고 있던 대지가 움푹 내려앉기 시작했다.
‘일격 일격이 최소 6써클 이상의 수준인가…….’
개중 일부는 7써클 최상위 마법에 필적할 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쩍, 쩌저적-.
육각 구조와 입방체를 섞어 펼쳐낸 쉴드 위로 금이 번져 나가기 시작한다.
금 사이로 세찬 돌풍이 밀려드는 가운데 러셀이 미간을 찌푸렸다.
‘귀찮군.’
깨지기 시작한 쉴드 따위는 새로 치면 그만이었지만, 문제는 적의 위치였다.
어디서 공격하는지라도 안다면 반격을 가해보거나, 방법이라도 마련해 보일 텐데.
이만큼 강렬한 공격을 쉬지 않고 쏟아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술자의 모습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어디……어디냐.’
러셀의 눈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쉴드를 더욱 견고하게 형성하는 한번 감각을 끌어 올렸다.
화아악-.
8써클 대마법사의 마력 감지 영역이 직경 수 킬로미터 단위로 내뻗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
‘없다고?’
하지만 그 어디서도 술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압도적인 광경과는 달리, 이것은 마법을 이용한 공격이 아니었기에.
신기(神器)와 신력(神力)을 이용한 공격. 그 낌새라도 느껴졌다면 러셀 역시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천궁의 폭풍시(暴風矢) 속에는 신력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쏟아지는 폭풍을 노려보던 러셀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마력 구조와 회로를 역추적해 술자의 위치를 찾아낸다.’
폭풍을 만들어낸 것이 신력이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기에 가능한 판단. 페퍼를 밖으로 내보내 탐색시키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리 페퍼라 해도, 몸을 숨기고 있는 술자를 찾으려면 꽤 시간이 걸릴 테니까.’
그럴 바에는 이쪽이 훨씬 더 간단하지 않은가.
문제가 있다면…….
‘그동안 쉴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겠군.’
이만한 마법을 분석하고 역추적하기 위해선 적지 않은 심력이 필요로 할 터.
그때, 척-.
누군가 러셀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뭔가 방법이 떠오른 얼굴이군.”
휴버트였다.
“예.”
“그렇다면 해보게. 쉴드를 유지하는 게 걱정이라면 우리가 도울 테니.”
“우리라면…….”
의아해하는 목소리에 이어 휴버트의 뒤쪽에서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희들 역시 마법…….”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턱없이 부족할지 모르나…….”
“적어도 잠시 정도는…….”
웅웅거리는 바람 소리에 묻혀 정확하게 들리지 않는 음성들.
그럼에도 러셀은 작게 웃었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물론 이들의 힘만으로 저 폭풍을 완전히 막아 내기는 무리일 것이다.
허나, 적어도 자신에게 지워진 부담을 어느 정도는 덜어낼 수 있을 터.
“가세하지.”
휴버트의 음성을 시작으로, 러셀의 쉴드를 따라 각양각색의 마력이 덧씌워지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러셀에게 가해지던 부담 역시 상당히 줄어들고, 러셀이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스읍…….”
폐부 깊은 곳까지 끌어 당겨진 숨결.
감았던 눈을 부릅뜨는 순간,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보석처럼 빛나는 호박안(琥珀眼)을 번득이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용의 눈으로 하늘을 뒤덮은 폭풍을 응시했다.
‘간다…….’
손에서 뻗어나간 마력이 폭풍과 접촉하는 순간. 수십, 수백 갈래로 흩어지며 산개하기 시작한다.
파바바밧-.
러셀이 쫓고자 하는 것은 휘몰아치는 마력의 흐름, 그 너머에 존재하는 술자와의 연결고리.
흩어지는 마력을 따라 러셀의 의식 역시 빠른 속도로 확장된다.
어지럽게 소용돌이치는 마력의 폭풍우 속에서도 한 점의 흔들림조차 보이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
그리고 분석력.
모두가 헬파이어를 분석하며 많은 성장을 이뤄낸 덕이었다.
그렇게 얼마간 마력의 사이를 헤집었을까. 종극에 이르러 러셀의 의식이 마력의 흐름과 연결되어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하기에 이르고.
‘이건……!?’
그제야 이 거대한 공격의 정체를 파악한 러셀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신력(神力)-!’
평범하지 않은 마법이다 싶더니, 설마 마력이 아닌 신력으로 이루어진 공격이었을 줄이야!
‘큭-!’
그 진체를 깨닫고 러셀이 서둘러 의식을 회수하려는 순간이었다.
가느다랗게 연결된 끈으로부터 거대한 무엇인가가 흘러들기 시작한다.
콰과과과-.
그것은 천궁 속에 깃들어 있는 보레아스의 신력이었다.
북풍이자 폭력의 신이 남긴 신력이 거센 급류를 형성하며 러셀을 향해 달려들었다.
의식을 회수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 쾅!
러셀의 의식과 보레아스의 신력이 충돌하며 한순간 정신이 날아갈 것만 같은 고통이 러셀의 정신을 엄습했다.
이를 악물지 않았다면 의식체가 그대로 흩어져 소멸했을 터.
신력과의 충돌이 남긴 여파는 그뿐만이 아니다.
주르륵-.
“────웨엑!”
의식체를 넘어 본체에까지 전해진 타격에 핏물이 왈칵 토해졌다.
“사제!”
“전하!”
휴버트를 비롯한 마법사단이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거기까지 신경 쓸 만한 여유는 없다.
잠시라도 방심했다간 폭력적이기까지 한 신력에 의식이 난자될 것이었기에.
‘평범한 신기가 아니라는 건가?’
신격 자체도, 올림피아의 바람신이라 칭해졌을 만큼 꽤 고위의 신격이다.
게다가 신기 속에 깃들어 있는 신력 역시 범상치 않았다.
아라크네의 재봉기 따위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
‘이만한 신력에 대응하려면…….’
러셀 역시 전심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허나 그리했다간 쉴드가 사라지며 자신의 본신(本身)은 물론 주변에 있는 마법사단까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될 것인즉.
절체절명의 상황.
그러는 동안에도 보레아스의 신력이 러셀의 의식을 집어삼키기 위해 게걸스럽게 제 몸을 놀리고 있었다.
의지는 사라지고, 힘과 폭력만이 남은 신력. 그런 놈의 눈엔 8써클 마법사의 정신이 맛있는 먹잇감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러셀의 내면에 깃들어 있던 무엇인가가 눈을 떴다.
[???]보레아스의 신력에 자극이라도 받은 듯, 사납게 기지개 켜며 포효했다.
‘무슨?!’
러셀의 내면 밖으로 튀어나온 그것이, 커다랗게 입을 벌렸다.
보레아스의 신력을 베어 물었다.
─────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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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자신의 내면에서 튀어나온 힘이 보레아스의 신력을 베어 무는 순간, 러셀은 그 힘의 정체가 무엇인지 자각할 수 있었다.
‘신력……!’
그것은 신력이었다.
보레아스의 그것보다 훨씬 더 오만하면서도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는 신력.
하지만 그 오만함에는 근거가 있던 것이었을까.
──────콰적!
섬뜩한 피륙음과 함께 러셀의 몸에서 튀어나온 신력이 보레아스의 신력을 집어삼키고, 그와 함께 덩치를 부풀린다.
뛰쳐나갔던 신력이 다시 러셀의 내면으로 되돌아오고, 막 깨어난 신성(神聖)이 전신으로 뻗어나갔다.
화아악-.
황금빛의 서광이 러셀의 주위를 희미하게 맴돌다 사라진다.
전날 막사 위에 나타났던 용의 그것과 똑같은 서광. 그 속에서 러셀은 자신이 왜 신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추측하고 있었다.
‘용신왕(龍神王).’
모든 용들의 지배자이자, 동시에 경외를 받는 신(神).
그런 용신왕의 후예이자 후계가 바로 자신이다. 신성을 이어받았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계기는……그때인가.’
브라흐마스트라를 모방하고, 그 편린이라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
그 순간 일어났던 폭발.
아마도 이 신성은 그때부터 자신의 몸속에 있었을 테지.
그 증거로 [???]라고 표기되어 있던 문자가 일그러지며 새로운 알람이 떠올랐다.
[용제(龍帝)로서의 신성(神聖)을 각성합니다.]그런 가운데 러셀이 슬그머니 손가락을 움직였다.
고개를 들자, 협곡 위쪽의 하늘을 가득 뒤덮고 있던 폭풍이 사라진 것이 눈에 들어온다.
신성과 신력으로써 유지되고 있던 폭풍이다.
그런 신성이 뜯겨 나갔으니…….
‘폭풍이 남아 있을 리가 없지.’
자신의 몸속에 깃든 신성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는 알 수 없었다.
허나 지금 이 순간 해야 하는 일만큼은 분명했다.
슥-.
러셀이 고개를 돌렸다. 신성과 충돌이 일어나기 직전, 그 힘이 연결된 방향은 분명히 봐 두었던바.
“사……제?”
어쩐지 조금 달라진 듯한, 미묘하게 경외감까지 드는 러셀의 모습에 휴버트가 떨떠름한 음성으로 중얼거렸고.
“잠시 다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러셀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오겠습니다.”
메아리라도 울리듯, 러셀이 남기고 간 마지막 음성이 바람결에 흩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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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헉!”
난데없는 고통에 천궁을 움켜쥐고 있던 사내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사내의 이름은 필립 메이슨.
제국에서도 유명한 메이슨 궁술명가의 적장자였다.
아직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몇 년 안에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신흥강자.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제국에서도 단 한 명밖에 없다는 보우 마스터였고.
그가 천궁(天弓)이라 불리는 신기를 지니고 있는 이유 역시 바로 그 때문이 아니던가.
“도련님!”
“─도련님!”
그가 심장 어림을 움켜쥐며 허물어지자, 어둠 속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이들이 나타나며 그를 에워싼다.
그런 가운데 필립이 손끝을 덜덜 떨었다.
“도대체, 방금 그건……, 무슨…….”
엔디미온의 놈들이 오늘 이곳의 병참을 습격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공을 세우기 위해 신기까지 빌려 나온 셈이거늘.
“이게 대체…….”
횡설수설한 음성.
그럴 만도 했다.
한순간 보레아스로부터 전해져온 막대한 격통이 그의 심장은 물론 뇌리까지 사정없이 헤집은 참이었으니까.
뒤이어 찾아온 것은 영혼이 뜯겨 나가기라도 한 듯한 탈력감이라.
심령을 통해 보레아스와 연결되어 있던 그였다. 그런 보레아스의 신성이 무자비하게 뜯겨 나간 상황이니, 그의 심령이라고 해서 무사할 일은 없을 터.
그 순간이었다.
“도, 도련님. 천궁이?!”
한 수행원의 외침에 그가 입가로 침을 질질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처, 천궁이……천궁이 왜……?”
은을 빚어 만든 듯 거대하던 활이 검은 잿가루로 변하며 바스라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이럴 리가. 가문의 가보가……신기가 어째서……?!”
신기로서의 존재를 유지 시키던 신성이 사라진 결과였다.
“이럴 리가 없다. 이럴 리가 없어!”
혼비백산한 그가 다급하게 손을 움직였다.
흩어지는 잿가루를 쓸어 담기 위해 노력해봤지만, 그런다고 해서 뜯겨 나간 신성이 돌아올 리가 없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여기 있었군.”
바람을 가르며 스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