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52
252화
EPISODE.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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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 말대로.
러셀이 적진 한복판에 난입한 것은 단순히 제국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무지성으로 달려든 것은 더더욱 아니었고.
오히려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
‘처음 전장에 도착했을 때부터 신경 쓰이는 존재감이 있었지.’
군단 단위의 병력, 그 이상을 한 사람의 몸에 압축해둔 것만 같은 마력.
초인(超人)의 존재감.
러셀이 적진 한복판에 난입한 이유는 바로 그 존재감의 주인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보라지.’
그가 노렸던 대로 헤이젠 백작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가.
도발적인 러셀의 언사에 일순 헤이젠 백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것도 잠시.
어금니를 지그시 깨무는 것으로 짐짓 침착을 가장한 그가 입을 열었다.
“뭐, 무슨 생각으로 나섰건 간에는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대공께선 한 가지를 간과하고 계셨던 듯하구려.”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를 숨기며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방금 전 그 계획은 대공께서 무사히 살아 돌아갈 수 있을 때나 통용되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오.”
대외적으로 알려진 러셀의 기량은 7써클 마스터에 준할 정도.
준할 정도라는 말은 견줄 수는 있지만, 아직 7써클을 마스터하지는 못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는 말이었다.
얼마 전 7서클 마스터에 오른 자신과 비교하면 반 수에서 한 수 정도 아래인 셈.
게다가 나이는 고작해야 스물 중반.
노회한 마법사들에게 있어 살아온 세월이란 경험과 경륜,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바.
헤이젠 백작이 생각하기에 러셀이 자신보다 앞서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십대의 나이에 그만한 경지에 오른 재능. 그 천재성만큼은 인정해주지.’
허나…….
‘그것도 여기까지다.’
그런 생각에서 내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러셀의 태도는 헤이젠 백작으로선 전혀 생각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묘하게 비틀린 입매 사이로 쿡쿡거리는 실소가 흘러나오고, 헤이젠 백작이 미간을 찌푸렸다.
“뭐가 그리 우습소?”
“글쎄?”
그의 물음에 러셀이 어깨를 으쓱했다.
“한 가지 묻겠는데…….”
이어 말했다.
“내가 정말 그 정도 생각도 없이 나섰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자신의 패배는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은 듯한 오만함. 그럴 수밖에.
러셀의 수준은 헤이젠 백작의 예상을 훨씬 웃돌고 있었으므로.
지니고 있는 마력량 만으로도 8써클 마스터와 견줄 수 있을 정도였다.
아니, 정순하기까지 한 마나였으니 어쩌면 그 이상일 터. 게다가 헬파이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8써클 마법에 대한 이해도마저 높아지기까지.
러셀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헤이젠 백작에게 질 이유가 없었다.
“이 오만한…….”
연이어 이어지는 도발적인 인사에 결국 참지 못한 헤이젠 백작의 노기가 폭발했다.
퓌엘 적탑의 마법은 마그마나 화산과 관련된 것이 많다던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
동시에 그의 발치 아래가 갈라지며 시뻘건 홍염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한다.
치이익-.
이어 바닥에 떨어져 내린 홍염이 땅을 타고 흐르며 그 영역을 넓혀 나간다.
“물러나! 물러나라!”
“퓌엘 마탑의 용암 마법……!”
“이, 이건 헤이젠 백작님의 결전기다!”
심상치 않은 열기와 치솟아 오르는 유황 가스에 제국 측 지휘관들이 앞다투어 소리쳤다.
어쩌다 보니 전열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 지금부터 시작될 두 사람의 전투에 감히 끼어들 자리가 없다는 것쯤이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병사들이 떼를 지어 물러난다.
“온몸의 뼈와 살이 녹아내린 후에도 그렇게 지껄일 수 있는지 한 번 보자꾸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 연못을 중심으로 일대가 거대한 산악마냥 치솟아 올랐다.
‘결전기라…….’
오리지널리티 마법들 중에서도, 『결전기(決戰技)』라 이름 붙인 마법은 특별했다.
그럴 수밖에.
경지에 오른 마법사들에게 있어 『결전기』란,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 올린 마법의 총아(寵兒)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으니까.
드랑 헤이젠.
결전기(決戰技).
네바도 델 루이스(Nevado Del Ruiz).
수십 년 전 대륙의 어떤 화산은 한 번의 폭발로 5만 명이 넘는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던가.
그 화산의 이름을 그대로 빼다 막은 이 마법은 문자 그대로 소규모의 화산을 만들어내는, 헤이젠 백작의 오리지널리티 마법이었다.
쿠과과과과과과!
높게 솟구쳐 오른 지면 안쪽으로 용암 호수가 우묵하게 담기며 단성화산(Monogenetic Volcano)을 만들어낸다.
그와 함께 땅이 갈라지며 화산성 지진이 일어났다.
마법이 구축되며 일어나는 여파만으로 진도 6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며 충격파가 일대를 쉬지 않고 후려친다.
쾅, 쩌저저저적!
그 진동의 한복판에서, 파도라도 타듯 용암 위를 거닐며 헤이젠 백작이 손을 내리뻗었다.
“어디 한번 받아 봐라!”
그 순간, 끓어오르던 용암 호수의 일부가 튀어 올랐다.
유성우와 같은 궤적을 그리며 러셀이 서 있는 자리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짓쳐 들었다.
쐐애액, 콰과과과과!
.
.
솟아오를 땐 액체 형태의 용암 덩어리였을지 모르지만, 땅에 떨어질 때는 겉이 굳어 만들어진 딱딱한 돌덩이라.
화산탄(火山彈)이 쉬지 않고 떨어져 내리며 지상을 포격했다.
쾅, 쾅, 쾅-!
묵직한 충격에 한껏 약해져 있던 지표가 움푹움푹 패여 들고, 땅에 추락한 화산탄이 터져 나가며 다시 한번 마그마와 함께 용암이 터져 나왔다.
진짜 화산폭발을 재현해낸 듯한 화산탄의 위력.
순식간에 수백 미터에 달하는 범위를 폭격한 그가 한 번 더 손을 휘둘렀다.
그때마다 용암 호수가 연이어 솟구쳐 오르며 거듭 화산탄으로 이루어진 유성우를 토해낸다.
저벅-.
마법을 펼친 러셀이 허공을 밟았다.
몇 걸음 공중에서 옆으로 이동하며 자신을 향해 떨어져 내리던 화산탄을 피해냈다.
그러자 목표가 사라진 화산탄들이 바닥에 떨어져 내리며 애꿎은 제국군의 진형을 덮쳤다.
“으아아악!”
“사, 살려줘!”
“촐랑촐랑 잘도 피하는구나!”
아비규환의 비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헤이젠이 수인을 맺었다.
“어디 한 번 이것도 피해 봐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량의 화산재와 가스가 해일마냥 밀려들었다.
누에 아르당뜨(Nuée ardente).
화산을 만들어내고 화산탄을 구현해 내었듯, 마법을 통해 화산쇄설류(火山碎屑流)마저 구현해 낸 것.
물론 단순한 화산쇄설류라면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온에 고속이긴 하지만, 산사태처럼 흘러내리기만 할 뿐인 마법이라면 허공으로 날아올라 피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누에 아르당뜨의 진정한 위협은 바로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콰아아아아아!
쏟아지던 화산쇄설류의 형태가 변화하더니 의지라도 가진 듯 하늘을 향해 거꾸로 치솟아 오르며 러셀을 덮치고자 했던 것.
‘의지를 이용해 조종하는 건가?’
자연적으로 발생한 화산쇄설류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렇기에 마법(魔法).
높게 솟구쳐 오른 화산쇄설류의 열기가 발치 아래를 스쳐 지나가고, 이어 그가 다른 한 손을 움직였다.
“가라!”
솟구쳐 오른 화산의 비탈을 따라 흘러내리던 또 하나의 재앙, 마그마를 움직였다.
꿀렁거리며 일어난 마그마가 마치 슬라임과 같은 형태로 러셀을 노려온다.
화산쇄설류와 마그마가 좌우를 모두 점하고 날아드는 공격.
고도를 높이는 것이 조금만 늦었더라도 양쪽에서 날아든 합공에 휩싸였을 터.
꽈릉!
화산쇄설류와 마그마가 충돌하며 강력한 충격파가 일었다.
철퍼벅, 철벅!
일부 마그마는 파편처럼 날아가며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제국군 중 일부를 덮치기까지.
“끄어억…….”
“으아아아악-!”
온몸의 뼈와 근육이 고열에 녹아내리는 고통에 병사들이 마구잡이로 비명을 내질렀다.
제정신이 박힌 이였다면 아군의 피해를 걱정해 그 범위를 제한했을 것이다.
허나, 헤이젠 백작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대신 오히려 마법의 범위를 확장시키며 러셀을 잡고자 했다.
이 자리에서 염탐주의 제자인 저 애송이를 죽여야만 하는 그에게 있어 평범한 병사들의 목숨은 언제든 보충할 수 있는 허수아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므로.
“이익!”
화산탄과 화산쇄설류, 거기에 더해 마그마까지 휘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잡히지 않는 러셀의 움직임에 화가 났던 것일까.
화산 위에 우뚝 선 채 마법을 통제하던 그가 효포(哮咆)를 토해낸다.
“잘만 떠들어 대더니, 결국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도망가는 게 고작이더냐!”
일대를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과 함께 그의 양팔이 거칠게 교차되며 휘둘러지는 순간.
콰과과과과!
마그마와 화산쇄설류의 움직임이 또다시 일변했다.
수십 갈래, 그 이상으로 갈라지며 채찍의 형태로 변모했고, 폭풍처럼 일대를 휩쓸었다.
콰과과과과과!
화산쇄설류의 무게에 짓눌린 대지가 그대로 박살 나며 내려앉고, 마그마가 그 위를 때리고 지나가며 지표가 녹아내린다.
수백 미터를 넘어, 킬로미터 단위를 뒤덮는 공격!
주변 일대는 이미 열사(熱砂)의 대지로 변한 지 오래였다.
그러건 말건 계속해서 폭풍 같은 연격이 쏟아지고, 재와 불꽃의 채찍이 계속해 러셀이 움직이는 범위를 좁혀왔다.
이렇게 된다면 러셀 역시 언제까지고 회피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사방이 재와 불꽃의 채찍으로 뒤덮인 것을 확인하며 러셀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는 오리지널리티를 넘어 결전기(決戰技)까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
가능하다면 그 형태와 마법 구조를 조금 더 눈에 담아두고 싶었거늘.
“……여기까진가.”
“뭐……?”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덤덤하면서도 흔들림 없는 음성.
그 음성에 도리어 놀란 헤이젠 백작이 저도 모르게 의문을 토하고, 그 순간.
화악!
러셀의 동공이 무섭게 확장되었다.
“잘 봤으니, 나도 보답으로 보여주도록 하지.”
세로로 길게 찢어지는 동공, 여덟 개에 달하는 써클이 일제히 회전하며 독특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우우우우웅-!
일어난 마력이 달려들던 헤이젠 백작의 마법을 밀어낸다.
콰과과과과!
사방을 짓누르는 무시무시한 마력의 격류. 마치 일대의 마력 전체가 러셀의 지배하에 놓인 듯한 착각 마저 일 정도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러셀을 둘러싼 마력이 극광(極光)마냥 빛을 발하며 붉은색의 형태를 갖춘다.
이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던진 초인, 그 초인의 벽마저 깨뜨린 강자들만이 보일 수 있는 위엄이었으니.
헤이젠 백작.
그도 마법사인 이상 이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를 수가 없었다.
“뭐, 뭣……?”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성을 토한 것은, 눈앞에 직면한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서였을 뿐.
그러건 말건, 차가운 눈으로 헤이젠 백작의 마법을 응시하며 러셀이 무감각하게 중얼거렸다.
“결전기…….”
헬파이어(Hell Fire).
복원해낸 로스트 매직에 자신의 심상을 덧대 만들어낸 그만의 새로운 마법.
러셀 레이먼드.
결전기(決戰技).
제2형, 화첨창(火尖槍)
홍염의 창이 손아귀 안쪽에서 타올랐다.
화르르르륵-.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