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58
258화
EPISODE.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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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질리언에게서 흘러나온 대답은 조금 의외의 것이었다.
“……말할 수 없다.”
“─?”
머릿속에서 고개를 든 의문부호가 ‘왜?’ 라는 말이 되어 나오기 전에 먼저 질리언이 입을 열었다.
“조금씩 씻겨 나가고 있다지만, 아직까진 ‘그자’의 지배력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심장 언저리를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꽉 눌렀다.
용의 그것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칙칙하면서도 음울한 마력을 품고 있는 심장이었다.
가슴을 가르고 꺼내 볼 수 있다면 흑색(黑色) 첨정석과도 같은 외견을 하고 있을 테지.
한 점의 반짝임조차 없이, 흘러드는 모든 빛을 흡수해버리는……용의 심장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추악하고 흉물스러운.
마음과 같아선 스스로 심장을 움켜쥐고 터뜨려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번져 나간 분노의 칼끝은 이내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겨누기에 이르렀다.
“네가 완전했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거다.”
그가 신성을 부분적으로 깨우친 게 아니라 완전히 각성하기만 했다면, 자신의 심장에 남아 있는 저주스런 잔재를 완전히 털어 낼 수 있었을 테니.
표독스럽기까지 한 질리언의 음성에 러셀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아. 예.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저리 노려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벌써 며칠이나 하늘에 뜬 채 시선으로 자신을 좇고 있었으니.
원치 않더라도 적응이 될 수밖에.
애당초 질리언이 저렇게 된 것이 자신의 탓도 아니지 않은가.
‘내가 책임감을 느낄 문제도 아니고.’
질리언의 시선을 무시하며 러셀이 샌드위치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래도 이번 대화를 통해 건진 것은 있었다.
‘사교도 중에……놈이 있다.’
질리언을 타락시킨 장본인이.
대답할 수 없다는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리 결론 날 수밖에 없었다.
‘그 옛날에도 용을 타락시킬 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던 초월자.’
어떻게 그 오랜 세월을 살아남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리 초월자라 해도 수천 년을 멀쩡히 사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다만 걱정되는 점은 그 강함이 어디까지 닿아있냐는 점이다.
그때였다.
러셀을 노려보던 질리언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
“아직 알량한 수준인 네 신성과 지배력으로도 그의 저주가 벗겨지고 있다는 점이겠군.”
지금이라면 쓰러뜨릴 수 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질리언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완전하지만은 않다는 건가?’
수천 년의 세월을 살아온 부작용?
그렇지 않으면 다른 문제라도 있는 걸까.
몇 가지 의문과 추측, 가능성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운데 질리언이 몸을 틀었다.
“흥.”
콧방귀를 끼며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로부터 잠시 후, 부스럭─.
질리언이 사라진 자리에는, 샌드위치를 싸고 있던 포장 종이만이 덩그러니 바닥을 뒹굴고 있을 따름이었다.
‘결국 먹을 거면서…….’
* * *
휘오오오-.
불어온 바람이 건조한 평원 위를 따라 내달렸다.
그와 함께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모래 먼지가 허공으로 떠오르고, 그 사이에서 휴버트가 입을 열었다.
“보이는군.”
손수건을 꺼내 끼고 있던 외알 안경을 닦으면서였다.
그 말대로.
올라서 있는 언덕에서 고개를 조금 내리자, 거대한 군영이 일대를 가득 채우며 들어차 있는 것이 보인다.
그 군영의 안쪽에서 펄럭이고 있는 것은 귀족과 마탑, 그리고 기사단의 상징들이 수놓인 깃발들.
그들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깃발 하나가 있었다.
다른 깃발들에 비해 크기도 배 이상 거대할뿐더러, 훨씬 높은 곳에 매달려 바람을 받아 펄럭이고 있는 깃발.
푸른 바탕에 하늘을 내달리는 말이 수놓아진 그것은 분명한 엔디미온의 국기(國旗)였으니.
‘천마기(天馬旗).’
언덕 아래에 있는 군영은 모두가 엔디미온 군이었다.
‘대략 삼십만 가량인가.’
과연 대륙에 단둘밖에 없다는 열강다운 군사력이다.
여간한 국가라면 이만한 군사가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겁을 먹을 것이었다.
문자 그대로 인근의 중소 규모 국가들을 모두 짓밟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준.
게다가 놀라운 점은, 지금 이곳에 모여 있는 병력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이 순간에도 전장 곳곳에 흩어져 있던 엔디미온의 병력이 이곳을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제국이지.’
이 정도에 겁을 먹을 리가 없었다.
대회전(大會戰).
‘으레 그래왔듯, 아국보다 더한 수의 병력을 이용해 맞부딪혀 올 테지.’
흑탑의 존재를 공인하는 것으로 사교도들까지 품게 된 제국이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언데드들이 병력에 더해지고, 그 규모는 전에 없이 거대할 것이 분명한즉.
휘오오오-.
불어오는 바람결에 죽음의 향취가 느껴지는 것도 자신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러셀이 입을 열었다.
“갑시다.”
짧게 말을 맺은 러셀이 언덕 아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에 발맞춰 휴버트와 도노반 남작이 뒤를 따랐다.
그들을 선두로 뒤에 서 있던 병력이 일제히 걸음을 옮긴다.
철제 갑옷으로 전신을 무장한 기사단과 로브로 몸을 두른 마법병단.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일반 정병들에 이르기까지.
척, 척, 척-.
물경 2만에 달하는 군사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군홧발 소리에 대지가 가볍게 진감했다.
본대와 합류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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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을 이끌고 언덕을 내려가 본대가 있는 방향으로 향하길 얼마간.
러셀의 걸음이 멈칫했다.
자신들이 향하고 있는 방향, 본대가 있는 군영에서부터 이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을 느껴서였다.
‘숫자는 백 이상, 보폭이 무겁고 쇳소리가 섞여 있는 걸로 봐서는 인원 구성의 대부분이 무장한 병사들이군.’
게다가 그 선두에 있는 이들의 존재감은 하나같이 만만치 않았다.
만약 다른 곳에서 이와 같은 기척을 마주쳤다면 당장 전투태세에 돌입했을 테지.
하지만 러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가오는 무리의 선두에서 느껴지는 기운들이 더할 나위 없이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선두에 있는 인물들의 기척은 바로 그의 스승인 다리아 스노우화이트와, 첫째 사형인 버밀리온 울센의 것이었으므로.
그 외에도 염탑 소속 마법사들로 보이는 익숙한 면면들이 여럿.
‘우리가 언덕에서 내려오는 걸 번을 서고 있던 병사들이 발견한 모양이군.’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두 무리가 어느새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서고─.
“스승님.”
“이야기는 들었다. 요놈아.”
─러셀이 먼저 말문을 열자 다리아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전장에서 아주 한바탕 제대로 날뛰어 줬다지?”
전쟁이 시작된 지 고작 하루 만에 난공불락이라고까지 불리던 성채를 혈혈단신으로 뚫어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제국 측의 용장들을 잇달아 격파하기까지.
그중에는 제국의 하얀 사신이라 불리는 6써클 마법사들은 물론, 7써클의 경지에 오른 초인 급 강자 역시 포함되어 있다던가?
“아주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더구나.”
툴툴거리며 말한 것과는 달리 입꼬리가 귀에 가 닿은 것이, 러셀이 세운 전공이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
그럴 수밖에.
전장에서 들리는 소식들 중, 공적과 무훈만큼 안심이 되는 것은 없었으므로.
물론 러셀을 위협할 만한 적이 몇 없다는 것쯤이야 잘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아이마냥 걱정이 드는 것이 스승의 마음이라.
연달아 들어왔던 보고들을 떠올리며 다리아가 말갛게 웃었다.
이어 러셀의 옆에 서 있던 휴버트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했다.
“보아하니 네 녀석 역시 뭔가를 깨달은 모양이구나.”
“허허.”
자신의 변화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스승의 모습에 휴버트가 멋쩍게 웃었다.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버밀리온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게 정말인가. 사제?”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제를 질시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경지에 대한 단초를 잡은 것을 반기는 모습.
“스승님의 눈은 도저히 속일 수가 없군요.”
휴버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사실을 인정하자 버밀리온이 환하게 웃으며 그를 향해 다가갔다.
솥뚜껑처럼 두텁고 거대한 손으로 그의 등판을 퍽퍽 두드리며 소리쳤다.
“하하하! 축하하네! 축하해! 이걸로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갈 동지가 하나 늘었군!”
6써클 마스터의 경지에서 정체된 지 수년, 그 역시도 조금이나마 7써클에 대한 실마리를 잡은 상황이었기에.
이제는 사제와 함께 그 길을 걸어 나갈 수 있게 되었으니, 버밀리온이 호탕하게 웃는 것도 이상하지만은 않았다.
퍽, 퍽!
약 십 년 전,
러셀과의 대화 이후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휴버트다.
뿐만 아니라 마법사로서의 단점을 줄이기 위해 체술을 익히기도 했다.
하지만─.
“윽…… 아, 아픕니다. 사형.”
그 모든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버밀리온의 손바닥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았다.
하기야, 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마음만 먹으면 주먹으로 바위조차 박살 낼 능력을 지니고 있는 버밀리온이지 않던가.
더욱이 드워프들에게서 배운 독특한 기술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단단하던 근육이 밀도 높게 압축되기까지.
“쯧쯧. 내가 어쩌자고 저 녀석을 제자로 받았는지…….”
마법사라기보다는 무투가.
뭔가 부작용을 지닌 비약이라도 들이킨 듯 우람한 모습의 버밀리온을 보며 혀를 차던 다리아가 돌연 러셀을 향해 물었다.
“오는 길에 특별한 일은 없었고?”
“예. 별일은…….”
의례적으로 답하려다 말고 러셀이 말꼬리를 늘였다.
“……?”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보고해 드려야 할 일은 있었습니다.”
“보고?”
고개를 끄덕인 뒤, 오는 길에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정령을 이용해 하늘을 탐색한 뒤, 언데드 무리를 찾아 격퇴한 일.
“음.”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가 끝나고.
“작은 공이라고 폄하하고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다만…….”
다리아의 의미심장한 음성이 이어졌다.
“……그리 유의미한 행동은 아니었던 것 같구나.”
말을 맺은 그녀의 시선은 더 이상 러셀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 러셀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움직였다.
스승과 같은 방향을 응시하며 말했다.
“예.”
아마도 저쪽 방향 어딘가에 제국군의 진형이 위치하고 있을 것이다.
어림짐작으로도 두 진영 사이의 거리는 십 킬로미터 이상.
마법을 이용해 안력을 돋우더라도 군영의 목책은커녕 깃발조차 보이지 않을 거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이 그곳에 제국군이 있다 확신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시취와 사기…….’
지독하리만큼 불길한 기운이 저쪽 방향, 지평선 너머 어딘가에서 풍겨오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수의 언데드가 있어야 저만한 사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적어도 수십만…….’
아니, 그만한 숫자의 망자로도 저만한 사기를 재현해내기는 쉽지 않을 듯했다.
또한 저들 섞여 있는 사교도와 고위의 언데드는 또 몇이나 될지.
단순히 묘지에 묻힌 시체들만 긁어모은다고 가능한 숫자가 아니다.
저만한 사기와 군세를 이루기 위해 죄 없는 목숨들 또한 수없이 희생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짐승만도 못한 놈들…….’
─꽉!
그들의 원통함을 느끼며 러셀이 으스러져라 주먹을 움켜쥐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죽음과 사회적인 통념만으로 적대하던 사교도였지만, 이제는 아니다.
물질계의 평화를 위해서도 놈들은 반드시 멸해야 할 존재라고,
과거에는 물질계의 수호자라고도 불렸던 드래곤, 그 정점에 위치한 용제로서의 신성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녀석…….’
그런 러셀의 모습을 보며 다리아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해온 막내 제자였다.
그 과정에서 힘에 취해 그릇된 길로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이겠지.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그녀의 막내 제자는 여전히 올바른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기특하기는.’
여전히 아웅다웅하고 있는 첫째와 둘째 제자의 모습을 한 번 일견하고선─.
“너희들도 병사들도, 먼 길 오느라 수고했을 테니…….”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예.”
말아 쥔 손아귀 안쪽으로 손톱이 파고드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숨 막히는 것을 넘어, 질식해버릴 것만 같은 사기를 계속해 눈에 담으면서.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