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6
26화
EPISODE.13
“어디 보자.”
미리 작성해둔 체크 리스트를 다시 한번 확인하며, 러셀이 배낭 속으로 자신의 물품들을 챙겨 넣었다.
늦여름의 더위가 한껏 기승을 부리는 것은 슬슬 개학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늦지 않으려면 지금쯤 출발을 해야겠지.’
물론 굳이 배낭을 쌀 필요는 없었다. 그에게는 인벤토리라고 이름 붙은 아공간이 있었으니까.
필요하다면 짐을 대폭 간소화하고, 홑겹의 옷만을 걸치고 떠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탑주님께 인벤토리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그것을 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 자신의 수준에서는 아공간 마법을 사용할 수도 없는 데다가, 아공간 마법이 걸린 주머니 역시 꽤 고가의 물품이었으니까.
‘마차에 타, 도시를 벗어난 후에. 배낭을 통째로 인벤토리에 넣어 버리는 수밖에.’
형식적으로나마 짐을 챙기고 있길 얼마간.
근처를 지나가던 다리아가 방안을 흘깃 보더니 중얼거린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구나.”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러셀이 지냈던 방을 돌아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흐음. 어찌한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러셀의 성장은 이제 막 탄력이 붙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작으나마 구멍이 뚫어지기 시작하는 시기라는 말이라.
저 구멍을 완전히 뚫고 물을 쏟아부을 수 있다면, 둑을 무너뜨리는 것 역시 가능할 것인즉.
그런 상황에서 러셀을 돌려보내야 한다는 사실은 그녀에게도 꽤 아쉽게 작용했다.
‘그건 러셀, 이 아이에게도 마찬가지겠지.’
본능적이나마, 스스로 역시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느끼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였다.
“아이…….”
짐을 싸던 러셀을 불러 세운 것은.
“아니, 막내야.”
언제부터였을까.
자신을 부르는 다리아의 호칭이, 아이야에서 막내야로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다리아의 마음속에서 자신을 정식 제자로 인정한 후부터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휴버트 교수님과는 사형제 간이 되는 건가?’
짧게 든 시답잖은 생각.
지금 중요한 것은 다리아의 부름에 답하는 것이었다.
“예. 스승님.”
탑주님이 아니라 냉큼 ‘스승님’하고 불러오는 러셀의 답변에 다리아가 ‘눈치 빠른 녀석 같으니라고.’ 중얼거리며 짧게 웃었다.
어디선가 호박 맛 사탕을 꺼내 자신의 입안으로 쏙 던져 넣었다.
“지금 네 상황에서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것은 아까우니, 차라리 한두 달이라도 내 아래에서 더 배운 후에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지만, 스승님.”
가문이 망한 러셀이 고가의 학비를 요하는 명문 아카데미에 다닐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러셀의 아버지인 레이먼드 백작이 받은 훈장의 힘이었다.
러셀의 학비는 왕실에서 내주고 있다는 이야기.
퇴학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졸업장을 따야 했다.
그런데 아카데미로 돌아가지 말라니.
자신의 걱정을 짧게 설명하자, 와그작.
입안의 호박 사탕을 깨부순 그녀가 말했다.
“그 문제라면 걱정하지 말거라.”
너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렇게 중얼거리던 다리아가 손끝을 가볍게 움직인다.
화악!
손끝을 따라 허공중에 빛의 문자가 아로새겨지고.
‘러셀, 이 아이는 내가 몇 달 정도 데리고 있으마.’
러셀의 두 눈이 그 문자를 좇았다.
‘알아서 잘 처리해줄 것이라 믿는……다?’
.
너의 스승.
다리아 스노우화이트가.
휴버트에게.
.
일말의 격식조차 갖춰지지 않은 파격적인 내용의 편지.
다른 누구도 아닌, 이 나라의 마법사들 중 정점에 올라선 인물 중 하나였기에 가능한 내용의 편지였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모든 부담을 효버트 교수님-.’
아니, 휴버트 사형이 혼자 짊어져야 할 텐데?
러셀이 그렇게 생각했고, 다리아가 손을 뻗었다.
빈 편지지를 불러와 빛의 문자를 위로 옮겨붙이는 것과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 러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안다만, 별일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직후 장난기 가득한 어조로 덧붙였다.
“아니지. 큰일이 나더라도 해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휴버트. 그 녀석의 몫 아니겠느냐?”
설마 하늘 같은 스승의 부탁을 무시하지는 않을 테고.
그렇게 말을 맺으며 낄낄대는 것이 영락없이 제자를 골리고 싶어 하는 스승의 모습이었던 지라, 러셀은 저도 모르게 고소(苦笑)하고 말았다.
.
.
그로부터 며칠 뒤.
워커힐 아카데미에서 다리아의 우편을 전달받은 휴버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러셀과 마찬가지로, 스승의 장난기를 확인한 웃음.
“결국 두 사람이 만났군.”
어쩐지 그렇게 될 것 같기도 하더라니, 혹시나 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질 줄이야.
들고 있던 찻물로 입안을 축였다.
스승이 보낸 편지의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자기 하고 싶은 말만을 짤막하게 적어 놓은 게 전부인 간략한 편지.
아카데미의 교수쯤 되는 이가 받기에는 지나치게 무례한 형식의 편지다.
그렇지만 정작 편지의 내용을 확인한 휴버트는 무례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깐깐한 얼굴 위로 어울리지 않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중얼거렸다.
“오히려, 이쪽이 스승님답다고 해야겠지.”
보나 마나 귀찮은 문제의 대부분을 자신에게 떠넘긴 후, 낄낄거리셨을 것이다.
하지만 다리아가 요청한 내용을 처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쉬운 편이야.’
현장 실습이건.
그렇지 않으면 마탑의 특별 파견 요청이건. 두 달 정도 출석 일수를 대체할 제도는 얼마든지 있었다.
거기에 더해 편지에는 염탑주의 직진이 찍혀있기도 했다.
‘장난기가 많으시지만, 의외로 이런 부분에 있어선 일 처리가 확실한 분이시란 말이지.’
다리아의 직인이 찍힌 편지를 품속으로 챙겨 넣으며 휴버트가 몸을 뒤로 기댔다.
뻐근한 목과 어깨를 의자 깊숙이 묻었다.
눈을 감자 아카데미를 떠나가던 러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담당 교수와 학생에서, 이제는 사형과 사제의 관계로.
학생을 빼앗겼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자신과 러셀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끊긴 것도 아니거니와, 그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더 잘된 일일 테니까.
마땅히 축하해주어야 하리라.
“늦은 나이에 막내 사제가 새로 생기다니.”
러셀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고작해야 반년이 조금 넘었을 뿐.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문자 그대로 폭발적인 성장 속도를 보여준 러셀의 잠재력이었다.
그리고 스승.
다리아 스노우화이트에겐 그 잠재력을 개화시켜줄 능력이 충분히 있었던바.
벌써부터 러셀, 아니.
‘막내 사제를 다시 만날 날이 기대되는군.’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는 휴버트의 입꼬리가, 익숙지 않은 움직임에 마치 경련이라도 난 듯.
작게 씰룩이고 있었다.
* * *
두 달.
지난 두 달 동안 이어진 다리아의 가르침은 엄격한 수준을 넘어 폭력적이기까지 했다.
가르침이 폭력적이라니.
어휘가 조금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
폭력적이라는 말 보다, 그녀의 가르침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러셀은 알지 못했다.
거기다, 그녀의 가르침은 깊을 뿐만이 아니라 폭 역시 넓었다.
단순히 이론에만 국한된 가르침이 아닌, 실전 역시 상정한 가르침.
그 증거가 바로 이것이라.
[미션]염탑주의 난쟁이 쓰러뜨리기.
염탑주, 다리아 스노우화이트가 소환한 불꽃의 난쟁이 7마리를 처리하세요.
1/7
처음 다리아와 실전을 시작했을 때부터 떠오른 미션이었다.
동시에 지난 두 달 동안, 러셀이 단 한 번도 클리어한 적이 없는 미션이기도 했다.
‘두세 마리 정도를 쓰러뜨리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후 일어난 변화 때문에, 일곱 마리 모두를 쓰러뜨린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화락, 화락!”
“화라라락!”
불꽃의 난쟁이들이 정신없이 사방을 쏘다니고, 콱!
신체 능력을 대폭 향상시킨 러셀이 바닥을 박찼다.
놈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화락!”
후끈한 열기와 함께 난쟁이 중 한 마리가 불꽃의 창을 찔러 넣는다.
콱!
바닥에 발을 꽂아 넣으며 러셀이 허리를 비틀었다.
꽂아 넣은 오른발을 축으로, 왼발을 채찍처럼 크게 휘둘렀다.
-!
‘불꽃으로 이루어진 몸이라지만, 그 근원은 마력.’
그렇다면 마력을 둘러 그 실체를 잡아내는 것 역시 가능할 터다.
쾅!
폭음과 함께 난쟁이 한 마리가 날아가 처박히며 바닥을 나뒹군다.
러셀의 돌려차기가 녀석의 가슴팍을 꿰뚫었음이라.
“화……락?”
가슴팍에 꿰뚫린 구멍을 회복하며 녀석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러셀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마력으로 사역한 바람을, 놈의 가슴팍 구멍. 그 한복판에서 폭발시켰다.
에어 밤(Air Bomb)
3써클 바람 계열 마법에 뒤섞인 마력이 폭발과 함께 녀석의 근원들 뒤흔들었다.
뻐엉!
풍선 터지는 소리.
놈의 몸을 이루고 있던 마력이 사방으로 터져간다.
“화락?”
“화라라락?”
터져 나가는 제 동료의 모습에 난쟁이들이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이걸로 두 마리.’
남은 놈들의 숫자는 다섯 마리.
“매번 여기까지는 잘 오는구나.”
박하사탕을 먹으며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다리아가 중얼거렸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화락.”
“화라락?”
주변의 온도가 들끓어 오른다 싶더니, 이내 다섯 마리의 난쟁이들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큭!”
그것을 막기 위해 러셀이 빠르게 몸을 움직였지만, 이미 늦어 버린 후였다.
“쿠오오오오!”
화염의 난쟁이, 아니 이제는 화염의 거인이 되어 버린 녀석이 한껏 거대해진 몸으로 포효를 터뜨린다.
이어 불꽃으로 이루어진 거인의 팔이 러셀을 향해 짓쳐 들고!
쾅!
불꽃이 사방으로 폭사했다.
그러고도 남은 충격이 러셀의 몸을 덮쳤다.
“컥!”
한순간 눈이 돌아갈 만큼의 충격.
찰나의 순간에 쉴드를 펼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상상. 물론 다리아가 정말로 거기까지 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이건 실전을 가정한 훈련이었다.
“쿠오오오오!”
이미 한 몸이 되어 버린 불꽃의 괴물을 보며 러셀이 천천히 호흡을 다스렸다.
“후우.”
지난 두 달간, 단 한 번도 미션을 달성하지 못했던 이유.
그 이유가 바로 저 불꽃의 거인이었기에.
‘오늘은 반드시.’
러셀이 투지를 불태웠다.
다리아의 가르침을 받으며, 쉬지 않고 나온 미션들을 해결한 덕분일까.
러셀의 마력양은 거의 4써클에 육박할 정도였다.
그 마력들이 러셀의 투지에 격렬하게 호응했다.
부글부글 끓으며 활화산의 마그마처럼 용솟음쳤다.
콰앙, 쾅!
불꽃 거인의 공세를 피해내며, 한껏 의식을 가속시킨다.
‘불꽃의 외형을 하고 있다고 해서, 굳이 물 속성 마법을 사용해 제압할 필요는 없다.’
두 달간의 경험을 통해, 놈들의 근원은 불꽃이 아니라 내재된 마력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 차였다.
‘그렇다면.’
놈을 이루고 있는 마력.
그 마력 자체를 불태워 버리면 될 뿐!
화아아아악!
러셀 레이먼드.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블레이즈 랜스.
불꽃 거인의 열기를 밀어내며, 열풍과 함께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최고 위력의 마법이 모습을 드러낸다.
“과연, 이번에도 그 마법이로구나.”
블레이즈 랜스를 응시하며 다리아가 중얼거렸다.
고작 3써클에 불과한 마법사가, 5써클에 육박하는 위력을 가진 마법을 오리지널리티로 내보였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지.
지금도 그때의 놀람과 희열이 생생하다만.
“분명 놀랄만한 마법이긴 한다만, 그걸로는 무리지.”
그게 가능했다면, 오래전에 불꽃 거인을 쓰러뜨렸을 테니까.
러셀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를 악물었다.
다시 한번 써클을 과열시켰다.
‘한 발로 안 된다면!’
두 발을!
휴버트에게서 온 답신에 의하면 출석 일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두 달 남짓.
그 기간도 슬슬 끝나가고 있는 와중이었다.
다리아가 힘을 쓴다면 날짜를 늘릴 수도 있겠지만, 그건 러셀 본인이 원하지 않았다.
원하는 것은, 제한된 날짜 안에 미션을 성공시키고 성장하는 것뿐.
“크윽-!”
한계까지 과열된 마나 써클 때문일까.
목구멍 안쪽이 불덩이가 치밀어 오르는 것마냥 뜨겁게 느껴진다.
비릿한 피 맛이 입안을 감돌고.
두 번째 블레이즈 랜스의 기척이 흐릿해지는 가운데, 러셀은 실패를 직감했다.
‘이번에도 안 되는…….’
그 순간.
“어?”
기묘한 감각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조금 더 넓어진 것 같은 감각.
방금 전까지 한껏 과열되었던 마나로드가 안정화되는 것이 느껴진다.
마치 또 하나의 원이 생겨나 끓어오르는 마나를 보듬은 것만 같은-.
‘4써클?’
의문보다 빠르게.
본능적으로 두 발째의 마법을 완성시킨 러셀이, 불꽃으로 이루어진 두 자루 창을 내던졌다.
거인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쐐애액, 꽝, 꽝!
화르르륵!
폭풍처럼 일어난 불길이, 거인의 마력을 살라 먹었다.
“쿠오오오오-!!”
.
2/7
7/7
.
[미션을 달성하셨습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 [보상으로…….]몇 개나 되는 알람,
그중 가장 마지막 알람들이 귓가에 또렷하게 울렸다.
[4써클을 달성하셨습니다.] [중급 마석(식용)x2, 하급 마석(식용)x3, 최하급 마석(식용)x5을 보상으로 지급합니다.] [4써클 달성 보상품을 지급합니다.]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