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61
261화
EPISODE.131
화아악!
세 개의 대군 마법이 각자의 방향에서 천지를 수놓는다.
그워어어어!
다리아가 소환한 거신이 팔을 휘두름에 따라 그 궤적에 놓인 공기가 일제히 불타올랐다.
화아아악!
칠백 칠십 칠.
소환 가능한 최대 마릿수의 난쟁이들을 하나로 집중시켜 만들어낸, 장작의 거인왕의 상위 호환 격인 마법!
한 번의 휘두름으로 수백의 적을 불사르고, 또 수십의 적을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증발시켜 버릴 수 있는 마법이었다.
허나, 그런 다리아의 마법은 적들에게 적중하지 않았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팔이 제국군을 쓸어내리는 것보다 먼저, 치솟아 오른 대지가 팔의 궤적을 막아낸 것.
콰과과과과과과과!
불꽃의 팔과 충돌한 대지의 벽이 무너져 내리며 흙먼지가 쏟아지고.
어쩐지 익숙하기까지 한 마법에 다리아의 눈썹이 샐쭉하게 치솟았다.
“이건…….”
장난기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그럴 수밖에.
자신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라면, 이 마력의 주인은 더 이상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어야 했으므로.
쿠구구구구구-.
떨어져 내린 바위 파편으로 인해 대지가 가볍게 떨린다.
그런 가운데 장대하게 솟아올랐던 모래 먼지를 가르며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삶의 완성이자 마침표는 죽음일지니, 죽음을 경배하라…….
휘오오오오-.
불어온 바람에 그가 두르고 있던 암갈색의 로브가 한차례 크게 휘날렸다.
“역시 영감이었나.”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은 것인지, 생전에도 두르고 있던 암갈색의 로브는 거의 누더기처럼 변한 지 오래라.
그 사이로 다 썩어 문드러져 가는 육신이 보인다.
텅 비어버린 눈동자를 따라 흘러나오는 것은 대지의 현자를 자처하던 시절의 정광이 아니다.
끔찍하게 변해버린 적색의 흉광.
그 눈빛을 마주하며 다리아가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로드릭 암스트롱.”
그 말대로, 모습을 보인 것은 아크 리치가 되어 버린 암탑주(巖塔主), 로드릭 암스트롱이었다.
아국(我國)이 보유한 창탑주, 헤밍웨이 멜빌이 등을 맞댈 수 있는 동지인 동시에 같은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경쟁자라면.
적국 소속인 로드릭 암스트롱은 언젠가 결판을 내어야 할 호적수(好敵手)였다.
그런 호적수가 흑탑(黑塔)을 받아들이겠다는 제국의 황제에 반기를 들다가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어쩐지 마음 한켠에 허전함을 느끼기도 했더랬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감과 이런 식으로 다시 마주치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젊은 시절, 수십 년 전의 전쟁에서도 몇 번이나 마주치고 싸운 적이 있는 두 사람이다.
그때마다 번번이 결판은 나지 않았었고, 두 사람 모두 언젠가는 승부를 결정짓겠다 다짐하며 물러났었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이렇게 마주친 이상 결판을 내야겠지.”
마음을 굳힌 다리아의 눈빛에 무정(無情)이 깃든다.
미운 정도 정이라지만 상대는 언데드, 그것도 고위의 불사자인 아크 리치로 변해 버린 지 오래.
“나중에 저승에 가거든, 그때 왜 언데드와 상극인 화(火) 속성 마법으로 싸웠냐고 내게 화나 내지 마시게.”
화르륵-!
그녀의 마력이 하늘 높게 충천하기 무섭게 기상변화가 일어났다.
쿠르르르르-.
먹구름이 몰려들며 두 사람의 주변을 뒤덮었다.
“원래부터 내가 이길 싸움이었으니 말이야.”
이어 생성된 구름으로부터 떨어져 내리는 것은 새하얀 눈발이라.
다리아 스노우화이트.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결전기(決戰技), 백설(白雪).』”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도 몰랐다.
화(火) 속성 마법인데, 어째서 눈이냐고. 허나, 그것은 『백설(白雪)』이란 마법이 가진 이름과 겉모습만을 보고, 본질은 보지 못한 자들의 물음이었다.
화아악-.
“눈 아니야 이거……?”
“그런데 어째서 온도가……?”
새하얀 눈이 떨어져 내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온도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어 그것이 인근에 있던 제국 측 기사의 갑옷 위에 떨어지는 순간.
치이이익!
“끄아아아악!”
눈이 떨어져 내린 자국 그대로 갑옷이 녹아내린다.
아니, 그것을 넘어 떨어진 싸라기눈이 살을 파고 들어가더니 지면에 닿았다.
고온고압, 떨어져 내리는 눈 모두가 극한까지 압축되어 높은 온도에서 타오르는 새하얀 불길이었던 것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 중 하나인 백린(白燐)의 특징을 마법으로써 재현해낸 것!
놀라운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리아의 백설은, 불인 동시에 눈의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마법적인 성격을 지닌 눈의 성질을…….
……?
이변을 감지한 것인지.
아크 리치, 로드릭 암스트롱의 눈구멍 속에서 타오르던 귀화(鬼火)가 한차례 크게 일렁였다.
다른 기사나 마법사들과는 달리, 로드릭 암스트롱은 강대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떨어져 내린 싸라기눈을 맞는다고 해서 몸이 녹아내리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마력의 움직임이 둔화되는 것처럼 느껴졌을 뿐.
마력과 감각의 결빙(結氷)을 통한 둔화(鈍化).
그것이 바로 다리아의 『결전기(決戰技)』, 백설이 지닌 능력이었다.
“처음 보는 마법이지?”
휘날리는 눈발 사이에서 다리아가 낄낄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럴 수밖에. 지난 전쟁 이후, 영감을 상대하기 위해 만든 마법이니까 말이야.”
평소와는 달리 어쩐지 조금 서글프게 들리기까지 하는 웃음소리로─.
“마지막 가는 길…….”
─다리아가 선언했다.
“남은 몸뚱이나마 어디 한 번 제대로 놀고 가보시게. 영감.”
* * *
도중에 가로막힌 다리아의 마법과는 달리, 다른 두 명의 8써클 마법사가 발휘한 대군 마법은 그대로 제국군의 측면을 후려쳤다.
폴링 썬.
문자 그대로 떨어져 내리는 태양이다.
모든 것을 태워 버리는 불덩어리가 제국군의 한복판에 떨어지며 불길이 사방을 휩쓸었다.
화르르륵!
해일처럼 쏟아져 나온 불길에 휩쓸린 제국군의 병사들이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증발해간다.
꽤 떨어진 거리에 있던 언데드들 역시 순식간에 탄화(炭化)하며 스러졌다.
헬 파이어를 익히며 러셀의 불길은 전보다 훨씬 뜨거운 온도를 지니게 된바.
그 앞에서 쇠를 두드려 만든 철갑옷은 운 좋게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만 배가시켰을 뿐.
무의미한 방어 수단이었다.
“으아아! 갑주가! 녹아내린다!”
“이것 좀 떼 줘! 창에서 손이 떨어지질 않아. 제발 떼 줘!”
아니, 운이 좋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증발해버렸다면 저 같은 고통을 느끼지는 않았을 테니까.
“와아아!”
“가자! 대공 전하를 도와라!”
“제국놈들을 짓밟아라!”
러셀의 초탄이 떨어지고 잠시 후, 그와 함께 좌현을 담당한 이들이 밀물마냥 몰려든다.
두두두두두-!
기다란 장창을 움켜쥔 기마대가 복사열로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땅을 우회하며 그대로 적진을 들이박았다.
쾅!
압도적인 기동력을 기반으로 훈련된 전마가 적들을 짓밟는다.
퍼석, 퍼석!
섬뜩한 소리와 함께 짓밟힌 언데드의 머리통이 밟혀나가고, 그 순간이었다.
그어어어어-!
좀비나 구울 등, 살점과 살가죽을 유지하고 있던 언데드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한데 뭉쳐 든 것은.
살점의 일부가 질퍽하게 녹아내리며 기분 나쁜 악취와 함께 녹색의 늪처럼 변하고, 그 속에서 무언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것은 생물의 가죽과 살점을 누더기처럼 기워 이어 붙인, 거대한 형체의 괴물이었다.
그 높이만 5미터.
“어, 어보미네이션이다───!”
그를 알아본 마법사 중 하나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아크 리치나 둠 나이트, 혹은 데스 나이트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진다곤 하나 어보미네이션 역시 꽤 고위에 속하는 언데드였으므로.
그렇게 솟아오른 어보미네이션의 숫자가 무려!
“이, 일곱 마리나……!”
순식간에 날아든 불꽃의 창 하나가 그대로 어보미네이션의 몸을 꿰뚫음과 동시에 폭발했다.
러셀의 오리지널리티 마법 중 하나인 게이볼그였다.
내부에서부터 일으킨 불꽃이 순식간에 놈의 거구를 살라 먹고.
“여, 여섯…….”
수를 세던 마법사가 조금 민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뒤이어 엔디미온의 워 메이지 중 몇이 나섰다.
“파이어 애로우!”
“플레어 스피어!”
화력이 부족한 마법사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뤄 놈을 공략하기 시작했으며, 화력이 충분한 마법사들은 단신으로 한 마리씩을 감당했다.
버밀리온이 그 예다.
퍼엉, 퍼엉!
“으하하, 덩치가 크니 때릴 곳도 많구나!”
전신에 불꽃을 두르고 달려들어 커다란 주먹으로 어보미네이션의 몸을 쉬지 않고 두드려 대는 모습이란!
마법사인지 무투가인지 헷갈리는 모습으로 주먹을 난타하고, 바깥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불꽃에 어보미네이션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어어어어-!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국군이 당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워 메이지들은 제국에도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이 틈이다! 마법을 퍼부어!”
“마법사부터 노린다!”
엔디미온의 마법사들이 어보미네이션에게 발이 묶인 틈을 타, 그들이 활개 치기 시작했던 것.
개중에는 새롭게 만들어진 흑탑 소속으로 보이는 사교도 놈들 역시 다량 섞여 있었다.
“이놈들을……!”
사교도의 등장에 어보미네이션을 후려갈기던 버밀리온이 전신의 근육을 울룩불룩 부풀리며 노성을 토해냈다.
전장의 광호(狂虎).
그 별명이 어울리는 표정으로 으르렁거리려는 찰나, 쾅!
폭음과 함께 버밀리온의 거구가 수 미터가량을 날아가 처박혔다.
……켁!
…그륵, ……거럭!
그 과정에서 버밀리온의 몸에 깔려 언데드 몇 구가 박살 난 건 덤이다.
“큭…….”
찰나의 순간 버밀리온의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이 스쳐 갔다.
6써클 마스터, 7써클을 바라보는 마법사가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한 공격이었다.
본능적으로 쉴드를 둘러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쐐애액!
다시 한번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며 반달 형태의 참격이 그를 향해 날아든다.
절망을 뭉뚱그려 만들기라도 한 것인지 칙칙한 무채색을 띠고 있는 오러 블레이드.
살아 있는 인간에게선 결코 발현되지 않는 색상의 오러가 무서운 속도로 버밀리온의 코앞까지 날아든 순간!
바닥을 타고 일어난 홍염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거센 불길이 날아들던 오러를 그대로 살라 먹었다.
화르륵!
“괜찮으십니까?”
곧이어 들려오는 목소리.
“사제……, 도움을 받아 버렸군,”
“일단 저놈은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그러니 사형께선─.”
“알겠네. 나는 다른 곳을 신경 쓰도록 하지.”
아무리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나다지만 사형으로써 사제에게 도움을 받은 상황이었다.
조금쯤은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하건만. 버밀리온은 군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그런 사소한 것에 연연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한 합을 받아낸 것만으로 자신을 공격한 적의 강함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고맙네.”
그 말을 남겨놓고 버밀리온이 자리를 뜨고, 이어 러셀이 형형하게 빛나는 눈으로 자신의 앞에 나타난 마물을 노려봤다.
카각, 가가각─.
붉게 녹슨 롱소드가 바닥에 질질 끌리고, 그 대검을 움켜쥐고 있는 것은 검은 뼈를 가진 언데드였다.
빛이 조금도 반사되지 않는 칙칙함을 넘어 불길하기까지 한 흑골(黑骨).
그 흑골을 따라 거대한 존재감이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둠 나이트(Doom Knight).”
데스 나이트를 넘어, 아크 리치에 필적한다는 초인 급 언데드가 바로 그곳에 서 있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