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63
263화
EPISODE.132
전대 레이먼드 가주……. 러셀이 아버지를 잃은 것은 제국과의 전쟁 와중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전(前) 대공이었던 비스마르크와 사교도가 판 함정이 주효한 역할을 했다지만, 어쨌건 간에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이들은 분명 제국의 병사들이었던바.
러셀 레이먼드.
─제국과의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아들.
메이슨 후작.
─그런 러셀에게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두 사내의 만남은 실로 공교로운 운명의 장난이었다.
“…….”
“…….”
두 사람 사이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챙, 차자장─.
서걱, 따다당, 푹푹!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마찰음, 날붙이가 사람의 살가죽을 파고드는 피륙음 등.
곳곳에선 여전히 요란하고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두 사람을 둘러싼 공간의 분위기는 고요하기만 했다.
마치 소리를 전달할 공기조차 사라진 듯한, 진공 상태와 같은 팽팽한 긴장감.
아마도 두 사내가 서로를 향해 모든 집중력을 오롯이 쏟아내고 있기 때문일 터.
화아악-!
마력과 마력이 격렬하게 엉겨 붙으며 공간의 일그러짐이 생겨나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메이슨 후작이었다.
“본래라면 이 전쟁엔 참전하지 않을 생각이었소.”
“……?”
“과정은 물론 시작부터 구린내가 나는 전쟁이었지. 그 뒤에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면서 한 손 거든다면, 그것이 물살에 그저 떠밀려 다닐 뿐인 부평초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소. 멍청한 일이지.”
이어 자신 덕에 목숨을 부지한 사교도 놈들을 응시하며 뇌까렸다.
“저 저열한 것들을 구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소.”
엔디미온과 제국.
적국의 귀족이라곤 하나, 소문으로 들려오는 메이슨 후작은 그야말로 귀족적인 인물의 표본이었다.
그런 만큼 사람의 생명을 희롱하고 죽은 이들을 조롱하는 사교도들을 좋게 볼 리가 없었고.
방금 전의 말투는 그 속내가 어느 정도 드러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허나 어쩌겠소.”
담담하게 이어지는 음성.
그 속에서 러셀이 느낀 것은 꾹 억눌러진 분노였다.
들끓어 오르고.
응어리진 채 아직 쏟아져 나오지 못한. 분출 직전의 마그마와도 같은 분노.
“아무리 못났다고 남들이 욕하고 손가락질해도, 내겐 하나뿐인 자식인 것을.”
그런 자식이 새로운 황제에게 잘 보이길 원했다.
그 목표를 위해 전장에 나가 공을 세우고자 했다.
가보이던 천궁(天弓), 보레아스를 아들의 손에 쥐여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자신이 직접적으로 전쟁에 참전할 생각은 없었지만, 아들은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아들이 엔디미온의 젊은 대공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는 비보를 들었을 땐 얼마나 가슴이 메어왔던지.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때문이었다.
황제의 분노를 살 것을 알면서도 참전하지 않고 뒷전에 물러나 있던 그가 비로소 전장에 서게 된 것은.
“이런, 내가 말이 길었군…….”
쯧─, 하고 혀를 찬 그가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던 활을 고쳐 잡았다.
꽈악-.
상아색의, 손때가 반질반질하게 묻은 낡은 활이다.
그 손때만큼이나 많은 사선을 함께 넘어온 활이기도 했다.
그 능력이 천궁(天弓), 보레아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쥐고 있으면 마음만큼은 안정되는…… 수많은 격전에서 그에게 승리를 가져다준 활.
세간의 말을 빌린다면 애병(愛兵), 혹은 애궁(愛弓)이라고 불러야 할 테지.
그런데 왜일까.
‘활의 시위가 오늘따라 유독 무겁게만 느껴지는 것은.’
그건 아마도 지금껏 만나온 그 어떤 강자들보다 눈앞의 청년이, 엔디미온의 젊은 대공이 위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공, 공에 대해선 내 좀 알아보았다오.”
엔디미온의 젊은 천재.
신대 이후, 마법계에 등장한 최고의 재능.
차후 제국을 위협할 가능성이 컸던 인물에서, 현재는 제국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인물에 이르기까지.
그의 뒤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수도 없이 많았다.
‘젊은 사자였지. 그것도 아주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가지고 있는 사자…….’
아들의 원수만 아니었다면 적국의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뛰어난 재능에 경탄했을 것이다.
왜 저런 인재가 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는지에 대해 한탄을 했을지도 몰랐다.
허나,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 수많은 수식어들 중 지금 그와 자신의 사이에 놓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기에.
둘 사이에 자리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
“본국과의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었다지?”
꽈아악─.
살(虄)을 걸고 시위를 당기기까지 걸린 시간은 1초 이하, 그야말로 콤마 몇 초다.
반 호흡도 되지 않는 찰나에 러셀을 겨눈 그가 단호한 목소리로 씹어 뱉었다.
“처음부터 대공과 나 사이에 오가야 할 건 대화가 아니었던 거요.”
────────────피잉!!!!
‘─큭!“
그야말로 섬전(閃電)!
시위를 당기는 순간 이미 코앞까지 도달해 있는 속도에 러셀이 본능적으로 쉴드를 펼쳤다.
위저드 바디와 오버로드.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펼치며 몸을 굳건히 했다.
순식간에 수백 장에 달하는 쉴드를 배치하며 만들어낸 육각 구조의 마력 방패.
그 마력 방패가 다시 다섯 겹씩 겹쳐지며 화살과 충돌한다.
─────────콰과과과과!
휘청하는 순간 폭음과 함께 러셀의 몸이 그 자리에서 쭉 밀려났다.
그렇게 밀려난 거리가 수백 미터를 넘어 킬로미터 단위에 육박할 정도.
밀려난 궤도상에 존재하던 모든 것들이 파괴되며 증발한다.
남은 것은 지표가 벗겨져 나가며 쩍 갈라져, 속살이 드러난 대지일 뿐.
쿠과과광!
수 킬로미터 밖에 있는 거대한 바위산과 충돌한 후에야 러셀은 비로소 튕겨 나가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쿠과과과과광-.
박살 난 바위 파편이, 톤 단위 질량의 낙하물이 떨어져 내리며 러셀의 머리 위를 쉬지 않고 위협했다.
‘무슨 화살이…….’
마력을 이용해 그것들을 밀어내며 러셀이 혀를 내둘렀다.
‘무겁다.’
한 대의 화살이 어지간한 소드 마스터의 일검(一劍)보다 무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메이슨 대공의 활은 단순히 무겁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피비비빙-!
그가 바위 잔해를 헤집으며 밖으로 튀어나온 순간, 쏘아낸 화살이 소낙비처럼 러셀을 향해 쏟아진 것!
쐐애애애액!
전 방위를 뒤덮는 화살비를 응시하며 러셀이 마법을 캐스팅했다.
초고속 속사.
벼락만큼이나 빠른 화살이었지만 러셀 역시 이번에는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벼락만큼 빠른 화살이라고 해도, 전투태세에 들어간 러셀의 캐스팅 속도 역시 그에 뒤지지 않았기에.
라이트닝 웹(Lightning Web).
파지지직!
푸른 마력광과 함께 손아귀를 펼치는 순간, 새파란 벼락이 그물처럼 튀어나왔다.
투드드득-!
일대의 모래에 섞여 있던 사철들이 그에 반응하며 자기장을 발생시킨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기장이 기묘한 파장을 만들어내며 날아들던 화살비를 그대로 끌어당겼다.
문자 그대로의 번개 그물.
퍼버버벅!
방향이 뒤틀어지고 빗나간 화살이 대지를 벌집마냥 헤집었다.
그 순간 러셀이 준비했던 또 다른 마법이 빛을 발한다.
박살 나 떨어졌던 바위산의 파편들이 공성병기마냥 일제히 쏘아지며 포물선을 그리고, 메이슨 후작이 서 있던 자리를 포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화르르륵!
거대한 불꽃의 고리를 통과하는 순간, 호선을 그리던 바위 파편들 위로 불꽃이 옮겨붙었다.
과거, 전설로 전해지는 9써클 마법!
미티어 샤워를 재현해 낸 듯한 광경과 함께 하늘을 따라 불꽃의 길이 아로새겨졌다.
위력은 부족할지 모르나 그 범위는 대군마법에 견줄 정도다!
콰과과과과!
낙석이 떨어지며 만든 충격으로 지면이 움푹움푹 내려앉고,
화산탄이 폭발하듯 불길이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그에 직격당한 제국군이 비명을 질러댔다.
“다, 다리가 깔렸어……!”
“하반신에 감각이…….”
“부, 불이야! 불!”
아비규환, 혹은 아수라장.
폴링 썬보다 위력이 조금 낮았던 탓에 오히려 목숨을 부지한 채 고통스러워하는 자들이 많았고, 그들로 인해 순식간에 한 폭의 지옥도가 그려진 것이다.
허나 이 정도 공격으로 메이슨 후작을 쓰러뜨릴 수는 없다.
아마도 터럭만한 상처조차 남길 수 없겠지. 러셀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두 번째 마법을 준비했던 것이고!
파지지!
조금 전 발동시켰던 마법, 라이트닝 웹.
그 잔재가, 자신의 임무를 끝내고 흩어진 줄 알았던 잔류 전격이 빠른 속도로 뭉쳐들며 전격의 검으로 화했다.
그 수가 두 자루!
순식간에 생겨난 푸른 검격이 순식간에 공간을 헤집는다.
콰드드득!
전격이 헤집고 지나간 일대가 삽시간에 베어져 나가며 체스판마냥 갈라진다.
콰과과과!
잘려 나간 대지의 일부가 폭발과 함께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7써클 대인 마법, 플라즈마 블레이드(Plasma Blade).
초고압의 전류, 사실상 플라즈마와 다를 바 없는 온도에 곳곳이 흉물스럽게 태워진 바윗덩이들과 모래 먼지가 흉물스럽게 솟아올랐다.
허나─.
‘놓쳤나?’
─당초 목적으로 했던 메이슨 후작은 그 자리를 유유히 빠져나간 후다.
‘화살을 쏘아내며 발생시킨 충격파, 그 충격파를 이용해 몸을 빼낸 건가?’
전혀 예상치도 못한 방법의 움직임이다.
초인의 경지에 오른 궁사(弓師)와 싸워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일까. 그 대처가 상경하기만 했다.
물론 놀란 것은 러셀만이 아니었다.
‘이 정도로 안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기껏해야 생채기 몇 개가 전부라…….’
고작 몇 합.
그 정도만을 겨뤄봤을 뿐이지만 러셀의 대처에 경악하고 있는 것은 메이슨 후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대처로군.’
스물 중반이라고 보기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유연하면서도 매끄러운 대처다.
단순히 뛰어난 재능만을 바탕으로 경지를 이룩한 것이 전부인, 온실 속 화초들에게선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능력이었다.
‘쉽지 않겠군.’
‘강적, 그리고 난적…….’
서로에 대한 평가를 읊조린 뒤, 러셀 쪽에서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클라우디 링(Cloudy Ring).
꽈르릉-!
벽력성과 함께 왼쪽 손가락에서 뻗어나간 전격이 하늘을 향해 일자로 충천한다.
솔로몬의 왕관
(Crown Of Solomon).
미리 비축해두었던 정신력이 쏟아지며 연이은 전투로 소모되었던 뇌력을 회복시키고.
‘결전기, 발현.’
화르르륵-!
화첨창까지 소환해낸 러셀이 오른손으로 불꽃의 창대를 그러쥐었다.
‘어쩌면……, 상황에 따라선 다른 형을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상대의 힘을 다시 한번 가늠하는 것으로 모든 태세를 마친 그가 입을 열었다.
“피차간에 탐색전은 이만하는 게 어떻습니까?”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