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67
267화
EPISODE.134
멋쩍게 웃긴 했으나 결심이 확고히 선 눈빛이다. 가만히 러셀의 눈을 들여보던 다리아가 땅이 꺼질 듯한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이놈아. 한 가지만 약속하거라.”
“……?”
“반드시 살아 돌아가겠다고 말이야.”
다리아 스노우화이트.
그녀는 염탑의 탑주이자, 대륙 최강이라 자부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대마법사였다.
그런 그녀가 이리 말할 정도라면 분명 저 폭연 너머에 있는 제국의 신(新) 황제가, 말도 안 되는 괴물이라는 의미일 터.
다리아의 말에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뒤에 한마디를 더 보탰다.
“스승님과 함께 살아 돌아가겠습니다.”
“……!!”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는지 다리아의 눈빛이 한차례 크게 흔들린다.
뒤이어 그녀가 작게 실소하며 말했다.
“녀석,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는구나.”
아직 어리게만 보이는 제자의 말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그 제자의 말이 이토록 위안이 되고 안심이 되는 것은.
그때였다.
하늘 저 높은 곳에서부터, 러셀을 향해 염파가 흘러든 것은.
[훈훈한 분위기를 깰 생각은 없다만, 긴장을 놓지 마라. 반푼이.]‘질리언 리제스티?’
갑작스런 사념파에 러셀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줄곧 침묵하고 있던 놈이었다.
그런 녀석이 하필 지금 이 순간에 경고를 보내올 줄이야. 이걸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
[백발 늙은이의 공격은 분명히 강하다만, 저 괴물은 그 정도 공격에 죽지 않는다.]제국의 새로운 황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해 보이는 음성, 러셀이 고개를 갸웃하며 역으로 사념파를 날렸다.
‘그렇게 강한 적이면 내려와서 좀 도와주지 그래?’
타락했다곤 하나, 상대는 용이다.
그것도 거의 고룡(古龍)에 필적하는, 현시점에서 가장 긴 세월을 겪어온 용.
그런 질리언이 도와준다면 상당한 전력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럴 수 없다.]단호한 거절,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 사나운 음성이 이어진다.
[내 몸을 따라 흐르는 지배력의 절반이 네 녀석 것이라면…….]복잡한 감정이 묻어나는 음성이었지만, 그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은 깊은 증오와 원망이라.
뒷말은 듣지 않아도 예측할 수 있을 듯했지만, 러셀은 침착하게 다음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다른 절반은 바로 저놈의 것이니까.]‘그 말은…….’
러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질리언을 타락시킨 것은 신대 무렵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측되는 사교도였다.
그것도 초월자의 경지에 오른 사교도.
‘황제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자가 초월자라는 말인가?’
[정확하게는 초월자였던 이라고 해야겠지.]‘초월자였던?’
[한 차례 죽음을 경험한 뒤 추종자들의 손을 빌려 현세에 다시 부활한 놈은 아직 초월자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놈이 가지고 있는 힘은 이 시대의 마법사들을 아득히 넘어서는 수준이겠지.]한 번 초월자의 경지에 도달했던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의 ‘격(格)’의 차이라고, 질리언은 그렇게 설명했다.
‘어째서?’
[음?]‘네 말대로라면 그렇게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는 자가, 어째서 아직까지 옛적의 힘을 회복하지 못한 거지? 제물이 부족했기 때문에?’
[수십만의 피와 살이라면, 고위의 마족은 물론이거니와 하급 마왕까지도 강림시킬 수 있다. 제물이 부족하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그러면?’
[사교도가 초월에 이를 수 있는 통로가, 완전히 막혀 버렸기 때문이다.]‘초월에 이를 수 있는 통로?’
[사교(邪敎)란 이름 그대로 마족을 숭배하고 그들에게서 힘을 빌려오는 존재를 의미한다.]설명이 길어지기 때문인지, 잠시 끊어간 질리언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초월자란 마족을 넘어 마왕에게 선택받은 이들이야.]마왕(魔王).
약육강식인 마계의 정점에 위치한 지배자를 의미하는 단어로써, 소설 같은 이야기들에서는 흔히 용사의 손에 토벌당하는 존재들을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마왕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가 썼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허구적인 내용에 불과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왕이란, 마계를 지배하는 신족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아니, 수없이 많은 신과 신족이 존재했던 물질계에 비해 마계를 지배하는 마왕의 숫자는 고작해야 열 내외.
그런 점에서 볼 때, 마왕의 힘은 신족보다 훨씬 강력했다.
마왕 한 개체가 신화시대 신족 열을 능히 감당하고도 남을 정도.
[하지만 마계와의 연결이 완전히 단절되고, 통로가 무너진 지금 마왕을 통해 그 힘을 공급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마계와의 단절……?’
물질계에 마족이나 마왕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 벌써 수천 년째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마왕이니 뭐니 하며 자처하는 이들은 있었지만 진정한 마왕과 마족은 신화시대 이후 단 한 번도 현현한 적이 없었는데.
그 이유가 설마 마계와의 단절 때문이었을 줄이야.
[그렇기에 저놈은 자신이 잃어버린 힘을 되찾고자, 마계가 아닌 다른 곳의 존재와 계약했다.]‘다른 곳의 존재?’
[그래. 물질계의 바깥에 존재하는……, 세상을 포식하는 외(外)─.]그때.
혓바닥이 너무 길구나. 질리언.
[컥!]한순간, 심장을 꽉 움켜쥐는 감각에 질리언이 단말마를 토해낸다.
이어 높게 솟구친 폭연 사이로 보랏빛 안광이 치솟았다.
화악-.
흉흉하기까지 한 안광.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나 했더니, 설마 새 주인을 찾았을 줄이야.
싸늘한 안광이 단숨에 러셀을 향하고.
흑발,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하니 용제(龍帝)와 이계구원자의 핏줄이 작금의 시대까지 이어지고 있었더냐.
미리 알았더라면 수십 년간 복잡한 일을 꾸미는 것보다, 네 몸을 빼앗는 것이 나았을 터인데.
뭐, 아무래도 좋다. 모든 준비는 끝나고, 오늘의 일은 내가 완전한 존재로 거듭나기 전의 유흥에 불과할지니…….
이해 못 할 말을 연거푸 쏟아낸 그가 모래 먼지를 가르고 나오며 일갈했다.
어디 한 번 즐겨보자꾸나, 필멸자의 태조차 벗지 못한 애송이들아.
용제니 뭐니 하는, 자리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
하지만 그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직후의 순간, 황제의 등 뒤 공간이 쩍 하고 갈라졌다.
그 테두리를 둘러싼 어둠이 수십 마리의 뱀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하고.
갈라진 공간이 희번득거리는 흰자위를 만들어내고, 그 위에 방점을 찍듯 녹색의 눈동자가 생겨난다.
헬파이어와 마찬가지로, 사교도들에게 있어선 로스트 매직이라고 불리는 고대의 마법.
고르곤의 눈(Eye of Gorgon).
쩌정!
이제는 이름조차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그 마법에 시공간이 통째로 얼어붙는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고르곤의 눈이 지니고 있는 능력은 감각의 둔화와 정지라.
그 힘은 한순간이나마 초인급 전력의 발을 묶어 둘 수 있을 만큼 강력했으니.
“윽!”
“큭!”
곳곳에서 신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 히죽, 하고 웃으며 황제가 손끝을 튕겼다.
……그어어어어!
………갸으으으으으으!
그러자 순식간에 형체를 완성시킨 영체가 탄환마냥 사방으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영체를 이용해 만들어내는 폭풍 같은 공격!
마찬가지로 고위의 흑마법 중 하나인 원념(怨念)의 폭풍이었다.
직격당하게 된다면 영혼에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온갖 종류의 저주가 엄습하게 될 것인즉.
그 순간, 화르르륵!
곳곳에서 튀어 오른 불꽃의 나비들이 폭풍과 충돌하며 영혼을 요격한다.
차원좌표를 설정하고, 자신의 마력을 매개로 소환해낸 무스펠하임의 나비들!
다리아의 오리지널리티 마법인 화접(火蝶)이었다.
퍼버버벙!
화접과 충돌한 영혼이 그 자리에서 폭발하며 소멸해가고, 그러고도 남은 영혼들이 일행을 향해 질주하는 순간.
화르르륵!
화접보다 더욱 뜨거운 화마(火魔)가 불길의 장막을 형성했다.
영혼의 앞을 틀어막으며 그들을 살라 먹었다.
“허!”
공간을 통째로 일그러뜨리는 열기.
지옥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듯한 불길에 다리아가 경탄한 것은 물론 황제마저도 감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호오. 헬 파이어(Hell Fire). 이 시대엔 사라진 마법이라고 들었는데. 복원해낸 건가?]한차례 중얼거린 그가 흥미롭다는 듯 찬찬히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복원해낸 헬 파이어에 무스펠하임으로부터 불러들이는 불꽃이라. 이 시대의 마법사들치고는 제법이구나. 퍽 기억에 남는 여흥이 되겠어.]“뉘신지 모르겠다만, 괜찮다면 이쪽도 기억해 주겠소?”
[……?]찰나(刹那), 어느샌가 황제의 뒤쪽 측면을 점한 헤밍웨이가 손아귀 가득 움켜쥐었던 마력을 토해냈다.
콰아아아아!
일어나는 해일, 마력으로 만들어진 상어들이 파도라도 타듯 그와 함께 달려들며 황제의 측면을 덮친다.
물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펼쳐 냈다고 보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 규모의 수 속성 마법.
본래는 대군 마법이었지만, 헤밍웨이는 그 틀을 바꾸었다.
거대하고 길쭉한 해일을 종이처럼 말아 올리며 오로지 한 점을 집중적으로 타격하도록 수식 자체를 고쳐 쓴 것!
콰과과과!
몇 겹이나 되는 원을 그리며 쏟아진 해일의 격류가 거대한 물기둥을 만들어내며 하늘을 향해 충천했다.
바다 용오름이 지표 위에 재현된 것 같은 광경이 만들어지고, 그 순간!
화악-!
하늘을 따라 새 그림자 하나가 생겨났다.
“여기도 있다. 캬하하하하!”
아니, 새가 아니다. 그것은 양손으로 나선거창을 움켜쥔 무야호였다.
순식간에 하늘 높은 곳까지 뛰어오른 그녀가 지면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 것!
콰과과과과!
용오름의 정중앙을 따라 떨어져 내리는 무야호의 시선이 한줄기 유성(流星)으로 화했다.
지면에 직격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일대를 반파시켜 버릴 충격파를 발생시킬 것인즉.
그 순간.
[심히 하찮고 부질없다.]“……?!”
“……!!”
소용돌이치는 물의 격류 사이에서 황제의 음성이 들려왔다.
쾅!
어둠이 사방으로 팽창하며 그를 가두고 있던 물의 감옥을 찢어발긴다.
이어 뻗어 나온 어둠 자체가 하나의 차원으로 화하며 그 속에 담아내고 있던 것들을 토해냈다.
부우우웅-.
두두두두두두-.
곤충, 갑각류, 두족류 등.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태의 마물들이 날아오르며 기묘한 소음을 토해낸다.
이어 그것들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는 무야호를 향해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하나하나의 힘은 무야호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쏟아져 나온 마물의 숫자가 수천 이상!
아무리 무야호라 해도 저 모든 것들을 쳐낼 수는 없을 터!
그 순간.
“피해!”
“조심하세요!”
백탑주, 아멜리아 머윈의 바람마법과 이오가 소환한 바람의 정령이 동시에 무야호를 휘감았다.
강렬한 바람의 힘으로 떨어져 내리던 무야호의 궤도를 비틀고 안전한 곳까지 날려 보내기 위해 날갯짓했다.
콰과과과!
거기서 그치지 않고, 솟구쳐 오른 지면이 돔의 형태로 작은 마물의 군세를 틀어막는다.
황탑주인 니콜로의 원조!
쾅, 콰적, 콰저적!
하지만 마물의 군세는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 수천에 달하는 육탄 돌격으로 두꺼운 바위벽을 종잇장마냥 찢어 버리고, 이어 기기묘묘한 궤적을 남기며 바람에 날려가는 무야호의 뒤를 쫓기 시작한 것.
‘빨라……!’
‘이대로라면 따라잡힐 거야……!!’
무야호를 돕던 이오와 아멜리아 머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는 순간!
화르륵!
거대한 불꽃의 날개가 무야호의 앞을 틀어막았다.
동시에 러셀의 굴강한 팔이 무야호의 몸을 껴안으며 그대로 회전했다.
화르르르륵-!
불꽃의 날개가 만들어내는 화염의 폭풍에 달려들던 마물들이 일제히 소멸했다.
[헬파이어의 불꽃, 그걸 담아 변형시킨 마법인가?]콰아!
이어 폭풍을 잠재우며 러셀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괜찮으십니까?”
“수, 수컷…….”
품에는 무야호를 안고, 등 뒤에는 불꽃으로 이루어진 여섯 장의 날개를 펼친 모습.
그에 더해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을 밝히며 붉은색 달이 러셀의 등 뒤쪽으로 떠오른다.
화르르륵!
밤하늘의 어둠은 물론, 먹구름마저 증발시켜 버리는 열기.
『러셀 레이먼드, 결전기(決戰技).』
『제 1형, 홍월염천(紅月炎天)』
붉은 달과 함께 천지(天地)가 불타올랐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