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7
27화
EPISODE.14
“…….”
그야말로 창졸지간(倉卒之間)에 벌어진 일이었다.
별안간 자신이 벌였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멍하게 서 있는 러셀에게 다리아가 다가섰다.
손바닥을 뻗어 어깨를 두드렸다.
“……오늘은 축하 파티라도 벌여야겠구나. 4써클을 이룬 것을 축하한다. 막내야.”
그제야 의식이 현실로 불려오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더듬더듬 물었다.
“4써. 클. 요?”
“그래. 써클이 한계까지 과열, 증폭된 상태에서 무지막지한 수준으로 돌기 시작한 마력의 회전력이 새로운 원을 그려낸 것이겠지.”
4써클에 거의 근접한 마력양 역시 한몫했을 테고.
한순간 경지를 넘어선 성장.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여전히 현실감이 없다는 듯 러셀이 되물었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간혹 있긴 있는 일이란다.”
한순간 한계를 초월한 정도로 그칠지, 하나의 써클로 완성해 남겨질지.
그것은 오롯이 그간 쌓아온 마법사로서의 삶과 경험에 달린 것이지만.
“너는 후자로구나.”
“그렇군요.”
다리아의 설명에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실감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심장 한켠에서 느껴지는 네 번째 고리의 존재는 분명 현실이었다.
“그래. 그러니 오늘은 이쯤하고 쉬어도 되겠어.”
예정보다 조금 빠르긴 하지만, 방금 막 4써클을 이룬 참이니 휴식도 필요하겠지.
다리아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러셀의 생각은 달랐다. 4써클을 이룬 것과 다리아의 가르침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는 지금 이 시간을 조금도 허투루 모내고 싶지 않았다.
“저를 배려해주시는 거라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스승님. 저는 아직 조금 더 할 수 있…….”
말을 끝마치는 것보다 먼저, 아찔한 감각이 뇌리까지 치닿는다.
눈앞에 비친 세상이 핑핑 돌았다.
다리아가 그런 러셀을 부축했다.
“스스로의 한계를 강제로 열어젖히고, 새로운 써클에 올라선 참이다. 기분이 고양된 것은 인정하지만, 머리가 식기 시작하면 지금보다 더 지독한 피로감이 몰려올 것이야.”
가볍게 그의 등을 두드려준 후, 자세를 바로잡아 주었다.
“그러니 오늘은 무리할 생각하지 말고 방으로 돌아가 푹 쉬거라. 고용인들에겐 네 방에 달달한 것들을 좀 들여보내라고 말해두마.”
“알겠습니다.”
정신이 핑 도는 감각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스승님.”
그녀의 말에 수긍하며 수련을 위해 마련된 지하 연무장을 벗어났다.
멀어지는 러셀의 뒷모습을 보며, 다리아가 중얼거렸다.
“어찌어찌 시간을 맞추긴 했구나. 미리미리 침을 발라 놓길 잘했어.”
매해, 각 아카데미의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치러지는 연례행사를 떠올리며 웃었다.
저런 인재를 빼앗겼다는 걸 알게 되면, 그 늙은 영감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영감 표정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구만.”
예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장내 가득 울려 퍼졌다.
* * *
워커힐 아카데미에는.
아니, 엔디미온에 존재하는 모든 아카데미에는 과거부터 존재해온 오래된 전통이 하나 있었다.
흔히 ‘탑의 선별’이라고 불리는 전통.
“탑의 선별이 멀지 않았으니, 어서 일을 시작합시다.”
“올해 졸업생들 중에선 몇 명이나 탑에 불려가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되는군요.”
“일단 그 전에 낙제생들을 먼저 나누어야 할 겁니다. 사실상 우리 아카데미의 수치인 그들을 탑의 선별관들에게 보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탑의 선별.
이름 그대로, 마탑에서 나온 선별관들이 자신의 탑으로 영입하고 싶은 인재들을 선별하는 행사를 의미한다.
대상이 되는 것은 각 아카데미의 졸업생들.
사실상 이 선별에서 얼마나 많은 인원이 뽑혀가는지가, 그 아카데미가 명문인지 아닌지를 나타내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바.
교수들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동시에 선별관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나갔다.
워커힐 아카데미의 교수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개중에선 어떤 학생이 마탑에 뽑혀갈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 역시 왕왕 있었다.
“사실 이번에 우리 아카데미는 큰 걱정이 없지 않겠습니까?”
한 교수가 내뱉은 말에, 자리에 있던 모든 교직원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그 시선에 헛기침을 한번 내뱉은 그가 중얼거렸다.
“그게, 우리 아카데미에는 그 아이가 있지 않습니까. 그 아이가.”
“그 아이라면…….”
“러셀, 러셀 레이먼드 말입니다.”
“아!”
“그렇지요. 그 아이가 있었지요.”
러셀이라는 말에, 몇몇 교직원들이 대놓고 반색했다.
막 학기가 시작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평가라.
사실 1학기가 끝날 때까지만 하더라도 러셀에 대한 평가가 이 정도로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반년 만에 대단한 성장을 이룩했다곤 하나, 지난 3년간 열등생으로 보낸 과거가 있어서였다.
평가가 뒤집히게 된 것은, 불과 두 달 전 도착한 한 통의 편지 때문이었다.
다리아 스노우화이트
염탑주의 직인이 찍힌 편지는, 학생 하나의 평가를 바꾸기에는 차고 넘치는 힘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사도라를 비롯해, 평소 러셀을 대놓고 꺼려하던 몇몇 교수들 역시도 입을 다물 수밖에.
“아무렴요, 평범한 마탑에 보내는 다섯 명보다도, 이름 있는 마탑에 보내지는 한 명의 가치가 더 크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그곳이 평범한 마탑도 아니고, 왕도 사대 마탑 중 한 곳인 염탑임에야.
“담당 학생이 자신과 같은 탑에 가게 되다니. 기분 좋으시겠습니다. 휴버트 교수님.”
자신을 향해 던져오는 한 교수의 물음에 휴버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들고 있던 서류 뭉치 사이로 깊숙이 고개를 묻으며 생각했다.
‘한순간에 학생에 대한 판단을 뒤엎다니 갈대 같은 작자들.’
그간 뛰어난 성적을 보이지는 못했다지만, 근면 성실한 모습으로 꾸준히 노력해온 러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을 때는, 제대로 된 학생 취급도 하지 않던 작자들이 저들 사이에 몇 섞여 있었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건성건성 대하던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과연 저 치들을 교육자라고 불러도 될런지.’
답변이 돌아오지 않자, 질문을 던졌던 교수가 괜히 무안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흠흠.”
가볍게 헛기침했다.
그때였다.
벌컥-, 문이 열리며 또 다른 교수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 이보시게들. 이것 좀 보시오.”
교직원실로 들어온 그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편지 뭉텅이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이목을 끌어 모은다.
“각 마탑에서 보내올 선별관들의 명단이, 방금 막. 전부 도착했다오!”
“오오.”
“이게 그 선별관들의 명단이 적힌 편지로군.”
명단이 도착했다는 말에 교수들의 시선이 단박에 그쪽을 향해 넘어갔다.
선별관으로 누가 오게 될지는 교수들에게도 꽤 중요한 문제였다.
‘나와 친분이 있는 이가 선별관으로 오게 된다면-.’
‘내 담당 학생을 마탑에 보내는 것이 조금 더 편하겠지.’
그렇다고 해서 실력이 부족한 이들까지 마탑에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들여 키우고 있는 담당 학생 하나 정도는 누구에게나 있었다.
“어디보자, 우리 칼리번 황탑의 선별관은…….”
“오. 로엔 청탑의 선별관은 –로군.”
탑이 위치한 행정시의 이름을 앞에 붙여 구분 지으며 선별관들을 확인하길 얼마간.
-.
편지 봉투를 넘겨보던 교수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췄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장미문.
플레어 로즈의 직인이 찍힌 편지 한통을 앞에 두고서였다.
직인의 아래에 쓰여 있는 것은 발신인의 이름.
“크, 크흠.”
“이, 이분은 휴버트 교수의…….”
자신에게 날아와 꽂히는 여타 교수들의 시선을 느끼며, 휴버트가 묻었던 고개를 들었다.
흘깃.
겉봉투에 적힌 발신인의 이름을 확인하기 무섭게, 그의 얼굴 위로 음영이 드리어진다.
그렇지 않아도 깐깐하던 얼굴이 이제는 삭막해 보일 만큼, 짙은 그림자.
잠깐 사이 급격히 피로해진 그의 입술 사이로 숨길 수 없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왜인지.
“골치 아프게 되었군.”
없던 편두통이 생기는 것 같았다.
* * *
다리아에게 가르침 받았던 시간이 끝나고.
아카데미로 돌아온 러셀은 자신을 둘러싼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뀌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음.’
1학기가 끝나갈 무렵에도 이런 분위기가 없잖아 있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사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러셀이 특별 파견 요청을 받아 마탑에 나가 있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개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에 나오지 않는 이유가 학생들에겐 그리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물론 실제론 특별 파견요청이 아니라, 다리아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것이었지만.
그것은 오로지 교수들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을 뿐.
비록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하나, 마탑의 특별 파견 요청을 받았다는 사실 또한 아카데미의 학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던바.
그러한 반응이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러셀에게 호되게 당한 전적이 있는 알파와 베타 반의 학생들에게서였다.
‘러셀이 마탑의 특별 파견요청을…….’
‘그게 아니라도 그렇게 강했었는데, 마탑의 마법사들과 함께 생활까지 했다면.’
이제는 정말 손댈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간 탓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1학기에도 그랬던 것처럼.
러셀에게 당해본 전적이 없는 감마와 델타 반의 학생들 중 일부는 러셀을 저평가하기도 했다.
“흥. 운 좋게 마탑과 일을 진행할 상황이 있었나 보지.”
“무슨 일이 있어서 저 녀석이 마탑에 파견된 건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 자리에 내가 있었더라면…….”
2학기부터 시작되는 알파, 베타, 감마, 델타 반의 총괄 대결.
그 대결에서 높은 성적을 거둔 감마와 델타 반의 실력자들의 대화였다.
수군거림처럼 들려오는 낮게 깔보는 소리들.
하지만 러셀은 그 수군거림에 응하지 않았다.
단순히 나이 차가 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생의 제 나이와 비교해도 그들과 자신 사이의 나이 차는 고작해야 다섯, 여섯.
많아 봐야 일곱 정도다.
특별히 나이 차가 나고 말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서지 않은 이유.
그것은 러셀이 보는 세상이 그들보다 훨씬 더 높아졌기 때문이라.
‘4써클.’
아카데미의 초임 교수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은 경지다.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졸업 즉시 어느 아카데미에 교수로 부임할 수도 있었다.
그에 비해 수군거리는 이들의 수준은 아무리 높게 쳐줘도 학생 레벨.
저러한, 질 낮은 도발에 어울려줘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게다가…….
‘나를 드러내야 하는 무대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어.’
불과 이틀 앞으로 다가온 탑의 선별.
그곳이 자신을 드러내야 할 진짜 무대였다.
-가서 보여주고 오거라. 네가 누구의 제자인지를 말이야.
떠나오기 전, 스승이 장난스럽게 내뱉었던 말을 떠올리며 러셀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런 러셀의 옆으론, 미션창 하나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미션]탑의 선별.
압도적인 수준차를 보이고, 선별관들의 인정을 받아내세요.
[보상]하급 마석(식용)x3
다리아의 저택을 떠나오는 순간 생겨난 미션.
더 이상 그의 목표는 같은 동급생들이 될 수 없었다.
‘목표로 하는 것은-.’
선별관들의 인정.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