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71
271화
EPISODE.136
러셀과 황제가 격전을 벌이고 있던 그 시각.
제국의 황도에서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구웅, 구웅, 구웅-.
황궁을 중심으로 흘러나온 기이한 파동이 황도를 휩쓸고, 그때마다 사람들이 픽픽 쓰러져갔다.
“어, 어어?”
“이봐 정신 차려!”
“우리 딸, 우리 딸이!”
처음에는 아이와 노인, 임산부 등 몸이 약한 자부터.
몇 번의 파동이 더 이어지자 건장한 사내들 역시 쓰러졌다.
“사, 사람이 쓰러진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누가 좀……컥, 커어억!”
살아남은 이들 역시 자신의 목을 부여잡으며 속속들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마법과 오러를 익힌 기사와 마법사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오랫동안 생존하긴 했지만 그뿐.
무언가에 전신의 생기가 빨려 나가기라도 한 듯, 미라마냥 삐쩍 말라붙으며 쓰러지고.
두웅-.
그 파동의 중심에서 타나토스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오소서. 이곳으로 오소서.”
한쪽 무릎을 꿇으며 경건한 자세로 기도를 올렸다.
“세상 바깥의 재앙이시여, 흉신(凶神)이라 기록될 임이시여. 이곳으로 오소서.”
사교도라기보다는 신관에게나 어울릴 법한 경건한 행위.
흑탑의 탑주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이곳에 남았던 이유가, 바로 이 의식을 진행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황도의 시민. 거기에 더해 언데드가 되어 죽어간 신민들과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까지 모두 합치면 족히 수천만에 달하는 생명을 제물로 바칠 수 있을 것인즉.
인신공양(人身供養).
그 제물을 탐낸 어떤 존재가 세상의 바깥에서, 이 물질계를 향해 흘러들고 있었다.
스르르륵-.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 * *
콰과과과과-!
마력과 마력이 맞부딪히며 폭음과 함께 다채로운 색상의 마력이 하늘을 수놓는다.
회색, 흑색, 회백색 등 무채색 마력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그를 잡아먹기라도 할 듯 붉은색 푸른색─총천연색의 마력이 쉬지 않고 으르렁거렸다.
극광(極光)의 오로라, 혹은 갖은 색의 장막과도 같은 마력이 드높은 천공을 덧칠하고, 그 장막을 찢어발기며 러셀이 손에든 불꽃의 창을 휘둘렀다.
『러셀 레이먼드, 결전기(決戰技).』
『화첨창(火尖槍).』
화르륵─.
고온고압의 불줄기.
그 경로에 놓인 구름이 일제히 증발하며 하늘이 붉게 물든다.
그에 대응이라도 하듯 허공에서 불쑥 생겨난 칠흑의 검이 기기묘묘한 궤적을 그리며 러셀을 향해 달려든다.
쐐애애애액-!
고작해야 십분 남짓의 싸움. 허나, 그동안 두 사람 사이에서 오고 간 공방의 숫자는 수백 합이 훌쩍 넘을 정도였다.
게이볼그, 헬 파이어, 케라우노스, 마나 밤 등…….
몇 개나 되는 마법이 반 호흡도 되지 않는 순간 완성되며 일제히 황제를 향해 덮쳐들고, 쾅!
이질적인 흑마력을 망토마냥 크게 부풀리는 것으로 공격들을 막아낸 황제가 그대로 러셀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다섯 개나 되는 손가락을 일제히 튕기며 황천살(黃泉殺)을 쏘아냈다.
따다다당-!
손끝이 허공을 때릴 때마다 강철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리며 검은 선이 러셀을 향해 쇄도한다.
‘위력보다는 수를 늘리는 방식인가!’
하나로 힘을 집중시키는 대신 여럿으로 쪼개 흩뿌리는!
꽈르르릉-!
러셀을 스쳐 지나간 황천살의 마력이 지면과 충돌하며 높은 먼지구름이 만들어졌다.
그와 함께 코와 눈을 맵게 하는 독연이 지상에서부터 위로 솟구쳐 올랐다.
황천살은 원념과 저주, 질병을 망라하여 쏘아내는 마법의 화살이었다.
그런 화살에 직격당한 대지가 멀쩡할 리가 없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부터 수십 년 정도는 저 땅에서 풀 한 포기 자라나는 것조차 쉽지 않을 테지.
그리 생각하며 러셀이 화첨창의 형태를 변화시켰다.
구룡신화조(九龙神火罩). 불꽃으로 이루어진 새장이 황제를 둘러싸고 그 내부에서 아홉 마리의 화룡이 광포하게 날뛰기 시작한다.
크르르르르-!
그 후 이어진 두 마법사의 싸움은 고작해야 몇 분 남짓. 허나, 그 사실은 아무래도 좋았다.
러셀과 황제.
두 명의 대마법사는 흘러가는 시간을 수십 수백으로 쪼개며 마법을 뿜어내고 있었으니까.
찰나와 찰나의 사이에서 서로를 노리는 싸움.
어지간한 소드 마스터나 탑주들로서는 두 사람의 싸움에 끼어들기는커녕 간섭조차 할 수 없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난데없이 나타난 용의 꼬리가 황제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쳤다.
쾅!
부분용화(部分龍化)를 응용한 일격. 하지만 황제 역시 넋 놓고 당해주지는 않았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당해줄 성싶으냐!”
처음 채찍처럼 휘둘러졌던 꼬리와, 완전한 용의 형상으로 변해 가했던 육탄돌격에 당했던 것이 못내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
쩍 하고 갈라진 어둠, 음차원으로부터 나타난 절망의 송곳 수십 개가 러셀의 복부를 벌집처럼 헤집었다.
눈앞이 하얗게 물드는 고통을 감내하며 그대로 내지른 찌르기가 황제의 오른쪽 어깨를 관통한다.
화첨창에 더해 라만차의 창술인 거신 죽이기를 더한 공격!
푸욱-!
핏물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창에 찔리는 순간 화첨창의 열기가 관통부 주변의 혈액을 모조리 증발시켜버렸기에.
마력으로 열기를 차단하지 않았다면 온몸의 혈액이 그대로 증발했을뿐더러, 전신이 불꽃에 휩싸여 죽음을 맞이했겠지.
“나약해진 시대의 하찮은 필멸자 따위가-!”
용제의 혈통을 이어받고, 초월자급의 마력을 지니고 있다 해도 러셀은 아직 필멸자.
이를 갈며 팔을 움직인 그가 검게 물든 팔로 자신의 어깨를 꿰뚫은 화첨창을 움켜쥐었다.
콰득-!
불길한 마력이 창대를 따라 노도처럼 밀려들었다. 창대를 움켜쥐고 있는 손아귀를 물들이며 러셀의 정신을 오염시키고자 했다.
‘큭…….’
기량(氣量)과 기량(伎倆)의 싸움.
마력양과 화력, 양(量)에서라면 모를까.
질적인 부분……마법사로서의 재주로는 아직 황제를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그렇기에 러셀은 먼저 화첨창을 해제했다. 이대로 간다면 자신에게 불리한 싸움이 될 것을 알았기에.
창대를 따라 흘러들던 흑마력 역시 빠른 속도로 허공중에 흩어지고, 파밧.
일순.
서로를 노려본 두 마법사가 다시금 충돌을 시작했다.
꽈르르릉!
.
.
격전(激戰)이었고, 접전(接戰)이었으며 혈전(血戰)이었다.
입고 있던 의복은 이미 넝마가 되어 찢어진 지 오래였으며, 흘러내린 피가 열기에 증발하여 온몸에 말라붙어 있었다.
“하악. 하악.”
그 속에서 러셀이 거친 숨을 토해냈다.
쉬지 않고 이어진 접전 끝에 피로와 상처가 누적되다 못해 누더기 꼴이 된 육신, 그 육신의 내부에서 거대한 마력이 계속해서 날뛰고 있기 때문이었다.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은 본인 스스로에게 있어서도 독이나 마찬가지라던가.
이렇게까지 그 말이 꼭 들어맞는 상황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쉬지 않고 몸을 놀렸다.
써클을 회전시키고, 마력을 휘돌렸으며 캐스팅과 함께 마법을 쏟아냈다.
잠시라도 손을 멈춘다면 황제의 마수가 그 틈을 파고들 것 같았기에.
그런 노력 덕분이었을까.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접전의 승자는 바로 러셀이었다.
쾅-!
화첨창의 마력이 황제의 방어를 찢어발겼다.
그의 복부를 꿰뚫는다.
이어 용인화(龍人化)한 러셀의 주먹이 황제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쩍-!
관자놀이를 후려치는 타격음이 선명하게 귓가를 파고들고, 러셀이 다시금 손을 뻗었다.
화첨창을 배에 처박아 놓은 상태로, 자르라니 드러난 용의 손톱을 마구잡이 휘둘렀다.
용의 이빨로 황제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콰득!
푸화악-!
입가에 피가 묻어 나오는 것과 동시에 황제의 목덜미를 따라 핏물이 높게 치솟아 오른다.
열기를 이용해 오장육부를 모조리 녹아내리게 했을 뿐만 아니라, 관자놀이를 때려 두개골을 부수고 손톱을 이용해 심장으로 이어지는 모든 혈맥을 끊어냈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목덜미를 삼분지 일(1/3)가량 뜯어내기도 했고.
아무리 황제라 해도, 인간의 피륙을 지니고 있는 이상 이만한 상처를 입고 살아남지는 못할 터.
“이겼……다.”
러셀이 간신히 승리를 선언했고, 황제가 핏물을 토했다.
“쿨럭…….”
허공에 뜬 채로, 그 몸을 비척거리며 황제가 입을 열었다.
“크흐. 크흐흐하하하핫!”
실성하기라도 한 것인지 연거푸 피를 토해내며 광소를 터뜨렸다.
“뭐가……웨에엑.”
그 광소에 뭔가를 말하려던 러셀이 죽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내상을 입기라도 한 것인지, 뱉어내는 핏물에 내장 조각이 드문드문 섞여 있는 것이 보인다.
스윽-.
흘러내리는 피를 훔치며 러셀이 말을 이었다.
“뭐가……그리 우습지?”
“어찌, 쿨럭. 어찌 우습지 않겠느냐?”
“……?”
“눈앞의 승리에만 눈이 멀어, 어떤 절망이 닥쳐오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으니. 초월자의 마력을 얻었다곤 하나 격은 얻지 못한 원숭이다운 재롱이로다.”
단숨에 거기까지 말한 그가 전보다 훨씬 창백해진 얼굴로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올려보며 말했다.
“보라. 재앙께서……흉신께서 물질계에 임하셨으니!”
쩍 하고 갈라진 하늘, 그 너머에서 무엇인가가 이쪽 세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일차원의 존재는 이차원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고, 이차원의 존재는 삼차원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다던가?
어느 고서에 기록된 문장이 사실이라고 가정할 때, 그것은 이 차원에 속한 존재가 아니었다.
보다 높은 고등차원에서 하위 차원을 내려다보는, 개념상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는 미지(未知)!
러셀이 분간할 수 있는 것이라곤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사념파와, 그 사이에 자리한 거대한 눈동자뿐이었으니.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찢어진 하늘 전체를 눈동자 하나가 내려 보고 있었다.
아니, 내려 보는 곳은 이곳이 아니었다.
놈이 내려 보는 곳은 제국의 황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덩치 때문에 이곳까지도 놈의 영역권에 들어왔을 뿐.
수백 킬로 이상, 눈동자 하나만으로 까마득한 거리를 영역하에 둘 수 있는 존재감이라니!
‘어떻게……저걸!’
눈치채지 못했단 말인가. 극광의 마력이 하늘을 물들였기 때문에?
그게 아니라면 황제와의 접전에 모든 심력을 소모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놈은 이미 이 물질계를 들여다볼 만큼 가까이 도달해 있었고 그 규모는 전날 정령계에서 마주했던 외신보다 훨씬 거대했으니까.
놈을 막지 못한다면 이 세상은 끝이다!
그리 생각한 러셀이 이를 악무는 순간, 두근!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큭-!”
타임리미트, 마구잡이로 날뛰어대던 마력에 육체가 비로소 한계에 달한 것이다.
이대로 둔다면 써클이 그대로 터져 나갈 뿐만 아니라, 심장 역시 정지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용을 써봤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심장의 고동과 고통만이 더욱 강해졌을 뿐.
“크흐흐!”
그 모습에 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황제가 비웃음을 흘렸다.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나눠진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꼴이 말이 아니구나. 이 시대의 용제여!”
마치 자신에게는, 다음 기회가 있기라도 한 양…….
“고작 한 번의, 이 알량하기만 한 승리라면 얼마든지 네놈에게 양보하마. 나는 오늘을 기점으로 전혀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날지니!”
그가 하늘을 바라보며 성치 않은 팔을 활짝 벌렸다.
“흉신이시여! 당신의 사도가 바로 이곳에 있나이다!”
그 외침과 함께 보랏빛 광채가 빛의 기둥으로 화하며 하늘에서부터 일직선으로 떨어져 내렸다.
불길한 빛을 발하는 거대한 광주가, 황제를 집어삼켰다.
콰과과과과과!
동시에 같은 빛이 제국의 황도 위로도 떨어져 내렸다.
정확하게 황제를 뒤덮었던 것처럼, 황도를 뒤덮을 만큼 거대하면서도 두꺼운 빛의 기둥.
두 개의 기둥이 쩍 벌려진 하늘을 지탱하고, 자광주(紫光柱) 속에서 의식이 흐려지는 러셀을 향해 황제가 일갈했다.
“물질계여! 종말을 맞이할 시간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아득한 마력의 폭풍이, 사방을 마구잡이로 휩쓸었다.
─────────콰과과과과!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