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73
273화
EPISODE.137
벌써 두 달 전의 일이다.
엔디미온의 왕도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 것은.
처음 긴장감이 생겨난 것은 제국과의 전쟁 직후였다.
불길한 보랏빛이 하늘을 덧칠하며 낮과 밤의 경계가 사라지게 되었으니, 긴장이 되지 않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허나, 지금의 긴장감은 당시와는 그 결이 조금 달랐다.
척, 척, 척-.
대륙 곳곳에서, 각국의 병력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지금의 긴장감은 그렇게 모여든 병력들이 엔디미온의 수도 외곽에 진지를 구축하며 생겨나는 긴장감이었다.
일곱 개 국가에서 모여든 병력의 숫자는 약 이십만가량. 엔디미온의 전체 병력에 비하면 그리 많은 수는 아니다.
하지만, 건국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외적의 침입을 수도까지 허용한 적이 없는 엔디미온이었다.
그런 나라에 타국의 병사들이 이십만이나 몰려들었으니, 자연스럽게 긴장감이 생길 수밖에.
물론 그 긴장감도 오늘까지였다.
오늘 출정식을 마치게 되면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던 군사들은 모두 수도를 빠져나가게 될 테니까.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폐하.”
시종장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국왕, 알폰소 라트모스가 천천히 걸음을 움직였다.
뚜벅, 뚜벅, 뚜벅-.
높게 마련된 단상, 그 위로 향하는 계단을 하나씩 밟을 때마다 알폰소 라트모스의 기세가 변해가기 시작한다.
오랜 회의와 스트레스에 지쳐 있던 노인은 간데없고, 엔디미온 왕가 특유의 사자와도 같은 기세가 웅혼하게 자리하기 시작한 것.
그 기세가 정점에 달한 것은 알폰소 라트모스의 걸음이 단상의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였다.
둥, 둥, 둥, 둥-.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북소리와 함께 일대가 쥐 죽은 듯 조용해진다.
그런 가운데 알폰소 라트모스는 단상 위에서 아래를 내려 보았다.
사열해 있는 이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모여 있는 병사들의 숫자는 아국과 타국을 합쳐 근 백만가량.
제국을 정벌하러 나섰을 때보다도 더욱 많은 수의 병력이 사태의 심각성을 대변한다.
휘오오오-.
불어온 바람에 각국의 군기(軍旗)가 한차례 크게 펄럭이는 것을 확인하며 국왕이 입을 열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요.”
우릉우릉-.
“대륙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자처하던 제국은 국가로서 기능을 상실했고, 그 광활하던 국토는 망자(亡者)와 마물들에게 유린당한 지 오래.”
마법으로 증폭된 음성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평원 전체를 뒤덮는다.
“망국의 백성들과 피난민들의 신음은 극에 달했고 그 여파는 제국만이 아니라 주변국들에게까지 뻗어나가고 있는 상황이오.”
가장 앞 열은 물론 가장 뒤 열에 위치한 병사에게까지 가 닿을 만큼 선명한 목소리.
“하여 아국은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제국의 영토를 점령한 망자와 마물들을 몰아내고, 그 근원이 되는 황도를 토벌하고자 함이니…….”
차앙-!
허리춤에서 뽑아 든 의장용 장검이 빛을 발하며 번쩍인다.
“우리 엔디미온과 뜻을 함께할 국가가 있는가!?”
그 말에 나서는 이들이 있었다.
“우리가 그 뜻을 함께 하겠습니다.”
척척-.
엔디미온의 외곽으로 모여든 타국의 병력들, 그중 은빛의 갑주를 걸친 기사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한 손에는 기사의 상징인 검을, 다른 한 손에는 녹색 사슴 문양이 새겨진 방패를 든 모습이었다.
“키옐 소속 비취사슴 기사단 외 총 10개 기사단, 2개 군단. 엔디미온과 함께하겠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나제 연맹 소속 빨간 수리 기사단 외 총 4개 기사단. 3개 군단 역시 엔디미온과 함께하겠습니다.”
“에르지앵 소속…….”
몰려든 일곱 국가의 대표들이 하나둘 앞으로 나서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은.
즉흥적으로 벌인 일이 아닌, 이미 한 달 전부터 이야기가 모두 끝나 있는 행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번거로운 행사를 거치는 이유는 간단했다.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생겨난 동맹임을 선포하고, 병사들로 하여금 소속감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버지니아 소속…….”
가장 약소국인 버지니아 왕국을 마지막으로 자리에 모인 모든 국가들이 뜻을 함께할 것을 천명하고.
그를 확인한 국왕, 알폰소 라트모스가 눈짓했다.
화악-!
그 신호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깃발 하나가 높게 솟구쳤다.
흑(黑)과 백(白).
둘로 나누어진 채, 각 색의 가운데 태양과 달이 떠 있는 형태의 깃발.
이 보랏빛 하늘을 몰아내고 낮과 밤을 되찾아 오겠다는 연합의 의지를 그림으로 표현한 깃발이라.
펄럭-.
백탑주, 아멜리아 머윈이 만들어낸 바람에 거대한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확인하며 국왕이 말을 이었다.
“좋소. 그대들의 뜻을 대표하여 나 엔디미온의 국왕. 알폰소 라트모스의 이름으로 ‘낮과 밤’ 연맹이 창설되었음을 밝히니!”
쿵-!
묵직한 발 구름, 사자 같은 기세로 공표했다.
“이 깃발 아래에 우리가 하나 되었음을 천명하는 바이오!”
기다렸다는 듯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낮과 밤 연맹!”
“낮과 밤 연맹 만세!”
군기(軍氣)가 심상치 않게 요동치며 각국의 군기(軍旗)가 바람에 펄럭인다.
그들 모두의 기세와 염원을 검 끝에 모으듯 국왕이 검을 단단히 움켜쥐었고, 단상 아래에서 대기하던 헤밍웨이가 남몰래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그러자 환한 검광(劍光)이 검신(劍身)을 타고 쏟아지기 시작한다.
흔하디흔한 연출이라, 허나 그렇기에 도리어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던바.
“전군─!”
제국이 있는 방향을 향해 검광이 쏟아지는 검을 겨누며, 국왕이 포효했다.
“─출정하라!”
근 한 달의 회의를 이어가고, 다시 한 달간의 조율을 거친 끝에 창설된, 망자와 마물들을 소탕하고 제국의 황도를 정화하기 위한 연맹.
낮과 밤 연맹의 출범이었다.
“와아아아아아-!!!”
.
.
국왕의 외침을 들으며 다리아가 고개를 휙 돌렸다.
러셀이 있을 방향을 일견하며, 한 달 전 국왕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경들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고 있는 건 알고 있으나, 달리 부탁할 곳이 없네.”
사지에서 살아 돌아온 지 고작해야 한 달.
아무리 임금이 신하에게 하는 말이지만, 그 한 달 만에 다시 전장으로 나서 달라는 말은 국왕 스스로도 염치가 없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물며 지금은 니콜로를 비롯해, 당시 전투에서 죽은 이들의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한 상황이 아니던가.
그런 국왕의 말에 헤밍웨이가 답했다.
“괜찮습니다. 폐하.”
“……?”
“제가 사자(死者)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니콜로 그 녀석도 저런 괴물들을 남겨둔 채 장례를 치르는 것은 원치 않을 겝니다.”
녀석이 편안히 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저놈들을 소탕해야겠지요.
헤밍웨이가 그렇게 대꾸했고,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그럼 다리아 경은…….”
“이 늙은이도 나서겠습니다.”
주먹을 꽉 말아 쥔 그녀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막내를 저렇게 만든 황제 놈과 관련이 있는 괴물들이 아닙니까. 단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두 눈 가득 귀화를 줄기줄기 불태우며 말했다.
“모조리 태워 죽여야 성이 풀리겠습니다.”
거의 한 달 동안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고 보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마력이었다.
진노(震怒)를 땔감 삼아 그녀의 마력이 불타오르고 있다는 증거라.
그 모습에 헤밍웨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법사에게 있어선 그리 좋지 못한 현상이었으므로. 허나 다리아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러셀을 저리 만든 놈에 대한 복수와, 저리될 때까지 무기력하게 있을 수밖에 없던 자신에 대한 증오뿐이었으므로…….
그 기억을 마지막으로 다리아의 의식이 다시금 현재로 돌아온다.
이어 그녀가 아득─ 입술을 짓씹었다.
이미 한 차례 자식을 잃은 그녀였다. 상실, 소실이라는 감정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비릿한 핏물이 입안으로 흘러드는 것을 느끼며 다리아가 몸을 틀었다.
“네 놈을 그렇게 만든 자를, 절대 용서하지 않으마. 막내야.”
이윽고 그녀가 사라지고.
자리에 남은 헤밍웨이만이 멀어지는 다리아의 등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우두커니,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그리고 그들은 알지 못했다.
왕도에 남은 러셀의 내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여기는 도대체?’
러셀의 의식이 어디에까지 도달해 있는지를…….
그들은 알지 못했다.
* * *
“으윽…….”
얼마나 오랫동안 의식을 잃고 있었던 것인지. 관자놀이 한쪽이 띵한 것을 느끼며 러셀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자신을 덮고 있던 새하얀 이불을 한켠으로 밀며, 푹신한 침대에서 일어났다.
낯선 천장이다.
아니, 낯선 방이었다.
대리석을 깎아 세운 기둥, 마찬가지로 반짝이는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바닥과 천장.
특이하게도 단 하나의 창문조차 존재하지 않는 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답하기는커녕 신성하게마저 느껴지니.
방 안에서 느껴지는 신성한 기운이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진다 생각하며 러셀이 침대 아래로 내려왔다.
‘어떻게 된 거지?’
이리저리 몸을 풀어가며 천천히 기억을 되짚었다.
왜 자신은 이곳에서 깨어나게 되었는가. 그에 대한 기억을 찬찬히 거슬러 올라갔다.
‘황제의 탈을 뒤집어쓴 사교도와 싸웠었고─.’
분명 화첨창을 이용해 황제의 몸을 꿰뚫었었는데……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벼락이라도 내리친 듯 짜릿한 전류가 온몸을 따라 번져 나간다.
그와 함께 떠오르는 마지막의 기억.
저주스런 말을 내뱉던 황제와 세상의 바깥에서 이 물질계를 들여다보던 외신의 존재에 이르기까지.
‘그 후, 그 후엔 어떻게 되었지?’
멀쩡하게 살아 있는 걸 보면 일이 어떻게든 진행되었음은 분명한데, 그리 생각하던 러셀은 문득 이상함을 느끼며 시선을 내렸다.
휙-.
자신의 몸 곳곳을 돌아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몸이 너무 멀쩡해.’
얼마나 오랫동안 누워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허나, 그만큼이나 격전을 치른 몸이다.
누워 있던 시간이 짧았다면 그 여파가 남아 있어야 하고, 길었다면 오래도록 몸을 움직이지 않은 후유증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와는 달리 그의 몸은 멀쩡하기만 했던 것이다.
‘일단 이곳이 어디인지 파악부터 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러셀이 걸음을 옮겼다.
방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새하얀 대리석을 깎아 만든 문을 열어젖혔다.
덜컹-.
그러자 드러난 문밖의 모습 역시 방 내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높게 뻗은 천장을 새하얀 팔각기둥들이 줄지어 떠받들고 있고, 좌우로 통로가 뻗어져 있는 회랑(回廊).
이건 마치…….
‘신전?’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했을 때, 복도의 한쪽 끝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오. 깨어난 거야?”
다른 점이 있다면 눈동자의 색이 검다는 점뿐.
흑발에 장신.
러셀과 꼭 닮은 얼굴을 한 청년이 회랑의 끝에서 그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