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80
280화
EPISODE.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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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에 힘을 좀 더 강하게 싣도록! 모든 힘은 허리에서 나온다, 그건 신성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야!”
거대한 곤봉을 움켜쥐고, 사자 가죽을 뒤집어쓴 사내. 열두 개의 시련을 통과하고 인간에서 최초로 신(神)이 된 사내의 조언이었다.
“너무 우직하게만 할 필욘 없어요. 조금은 돌아갈 필요도 있죠. 당신은 마법사라고 했던가요? 신성도 마법을 사용할 때처럼 다뤄보시겠어요?”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석화(石化)시키는 방패를 가진, 전쟁의 여신의 충고였다.
“강한 힘이라고 해도 변화무쌍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 내 벼락을 봐라! 이토록이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또한 이만큼이나 다채롭지 않은가?”
벼락을 줄기줄기 뿜어내는 망치를 든, 아스가르드 신의 말이었다.
“한계를 두지 마. 필요하다면 너 자신 역시 속이도록 해. 신성은 마력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힘. 하려고 한다면 할 수 있을 거야.”
키득거리는, 재기발랄하고 장난기 넘치는 웃음소리.
속임수를 제 장기로 삼는, 토르와 마찬가지로 아스가르드에 소속된 신의 조언이었다.
“바로 그 자세다. 자신감을 가지시게. 그대는 지금 빛과 같이 옳은 길을 걸어가고 있음이니.”
팔이 긴 아이(Lugh Lámhfhata)라는 이름을 지닌─다나 신족의 광명신(光明神)이 그의 자신감을 북돋아 주었다.
그 외에도 여럿.
여러 신들과 대련하며 그들에게서 받은 가르침이 머릿속을 휘돌고.
화르륵-.
그런 가운데 러셀을 둘러싼 신성(神性)의 불길이 거칠게 타올랐다.
화르르륵-!
신계 전체를 밝힐 듯 강렬하게 타오르는 신성이다. 하지만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신족들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가지런하지 못하군.”
“정제되지 못했어.”
“저렇게 밖으로 줄기줄기 뿜어내기만 하는 힘은 있어 보이긴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큼 강력하지는 않지.”
그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로키가 키득키득 웃었다.
“재능은 있어 보였는데, 오늘도 그른 건가.”
인계의 시간으로 한 달.
신계의 시간으론 꼭 다섯 달째가 되는 시점의 일이었다.
그때였다.
“잠깐만.”
김현성이 손을 뻗어 모두의 입을 다물게 만든 것은. 이내 러셀을 응시하는 그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는다.
그의 눈에 비친, 러셀을 둘러싼 신성의 불꽃이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거칠게 타오르던 규모를 줄이고 물 흐르듯 부드러운 형상으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다듬어 나간다.
하늘을 떠받들듯 충천했던 크기 역시 마찬가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 크기가 러셀의 몸에 꼭 알맞은 정도의 수준으로 줄어들고.
“호오?”
“으음?”
“거봐 내가 재능은 있어 보인다고 했잖아! 내 말 맞지? 세발낙지?”
중간에 이상한 말 하나가 끼어들자 여러 신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로키한테 저런 말 가르친 사람 누구야?”
“누구긴 누구겠어. 이계구원자지.”
한심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신들의 시선에 김현성이 멋쩍게 웃었다.
아직 미숙했던 학생 시절 이계로 소환된 탓에 달고 다니던 입버릇 중 하나가 바로 저것이었으므로.
“습, 어쨌든…….”
바람 새는 소리를 한번 낸 그가 서둘러 말을 돌렸다.
“이제 슬슬 돌려보내도 되지 않겠어?”
이어 에인헤랴르 저 바깥쪽 어딘가를 응시하듯, 시선을 먼 곳에 두며 중얼거렸다.
“물질계의 상황도 더 이상 버티지는 못할 것 같으니까.”
“왜, 왜, 왜!?”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로키가 다시 한번 튀어나왔다.
“주인공은 언제나 늦게 도착하는 법이라며. 조금 더 늦어도 되지 않을까?”
그 바람에 과거의 이계구원자가 달고 다니던 말버릇이 또 튀어나와 버리고 말았다.
“내 업보지. 어휴.”
김현성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러셀을 둘러싼 신성의 불꽃은 계속해서 안정되어간다.
그 광경을 보며 김현성이 중얼거렸다.
“장난은 그만 치고, 그럼 슬슬 준비들 하자고.”
그 음성에 다른 신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아군의 피해는 어떠한가…….”
그렇게 물어오는 헤밍웨이의 목소리가 힘없이 축 가라앉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눈두덩 인근을 따라 검정이 길게 늘어지고, 두 눈도 붉게 충혈된 것이 피로가 곳곳에 쌓인 모습.
그 물음에 부관 중 하나가 침통한 얼굴로 답변했다.
“아국의 피해는 ……만, 보고의 범위를 연합 전체로 확장한다면 피해의 숫자는 ……에 달할 정도입니다.”
“허.”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연합군의 삼분지 일이 넘어가는 숫자였다.
경상자는 제외하고, 사망자와 중상자, 그리고 실종자만 추려 합계를 냈을 뿐인데도 저만한 수라니.
고작 이주 만에 입은 피해라고 보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저 숫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사망자라는 점이다.
‘실종자도 사실상 사망자 처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
구(舊) 제국의 영토는 9할 이상이 급작스럽게 늘어난 마물들로 뒤덮여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저런 곳에 낙오되었다간 살아남는 것은 사실상 무리였던 까닭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피해가 이 정도 수준에서 그쳤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만한 피해를 다행이라고 말하는 상황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사실인 것을…….’
알껍데기를 깨고 나온 존재.
스스로를 재앙신, 흉신(凶神)의 사도 블라드 드라쿨레아라 소개한 그 괴물의 힘은 그야말로 파멸적이었다.
진짜로 재앙신의 사도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그에 준하는 존재인 것만은 사실이었으므로.
만약 놈이 이미 다 이긴 전쟁인 양 굴지 않았다면, 그로 인해 자신의 병력인 마물들을 느긋하게 움직이지 않았다면─.
사망자의 숫자가 지금보다 배 이상 늘어났을 것이 분명했다.
‘아마 놈의 정체는……황제의 모습을 하고 있던 놈과 동일할 것이야.’
그리 추측할 만한 점은 많았다.
일단 마력패턴이 비슷하다는 점부터 시작하여, 사용하는 마법들 역시 상당히 겹쳤다.
뿐만 아니라 알껍데기를 깨고 나온 순간, 러셀을 ‘용제(龍帝)’라고 부르기까지 했었고.
러셀을 의식하지 않았다면 결코 보일 리가 없는 행동.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던 헤밍웨이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러셀. 그 아이라도 좀 깨어난다면 답이 있을런가.’
이어 스스로의 중얼거림에 당황했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지으며 슬쩍 주변을 돌아보았다.
‘허허. 나도 늙었구먼. 무슨 생각을 하는 겐지…….’
러셀 레이먼드.
분명 대단한 재능을 지닌 아이이기는 했지만, 그의 능력은 자신과 같은 8써클 마스터였다.
그 정도 전력이 하나 보태진다고 해서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이 아님은, 블라드 드라쿨레아를 상대해본 자신이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신화 속에 나오는 9써클 대마도사가 아닌 이상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그만큼 러셀이라는 아이가 신비로운 힘을 많이 지니고 있었기 때문일 테지.
상념을 정리하며 헤밍웨이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고, 고개를 돌렸다.
지휘부의 가장 상석에 앉아있는 다리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하겠나.”
“…….”
잠시간의 침묵.
그 끝에 다리아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더 밀린다면, 그 피해는 민간인들이 받게 될 게야.”
힘은 없지만, 뼈있는 한마디였다.
그녀의 말대로, 한때 제국의 황도까지 진격했던 연합군은 어느새 제국의 경계까지 다시 밀려나 있었던 것이다.
“죽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이곳에서 버티는 수밖에.”
“2차 연합군이라도 도착해준다면 다행인 것을…….”
헤밍웨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2차 연합군이 도착한다 해도 마물들의 진격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곤 장담할 수 없었다.
허나, 적어도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인즉.
“기대하지 마. 할아범.”
지친 표정의 아멜리아 머윈이 그 말을 받았다.
“이제 막 출발했다고 했으니, 도착하려면 적어도 보름은 넘게 걸릴 거야.”
보름.
그 괴물과 저만한 숫자의 마물들을 상대로 버텨내기에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그것이 가능할 거라고는 자신할 수 없다.
하물며 인계최강이라 불리는 다리아 역시도…….
* * *
마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단 소식에 지휘부의 인물들이 빠르게 막사를 박차고 나갔다.
마법을 이용해 얼기설기 만들어낸 토벽 위로 날아오르며 몰려들던 마물들의 군세를 확인했다.
수십만…… 아니.
수백만의 마물들이 토성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개미 떼.
혹은 어두운 밤중에 밀려드는 밀물과도 같았던바.
바로 저곳 어딘가에 놈.
블라드 드라쿨레아 역시 있을 터.
“으, 으으…….”
누군가 내뱉은 침음이 절망이 되고, 절망은 곧 공포로 화(化)하며 병균처럼 주변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전염병이었다.
육체가 아닌, 마음을 좀먹고 자라나는 전염병.
내색은 하고 있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이들이 오늘 이곳이 자신들의 묫자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이었다.
파짓-.
그들의 뒤쪽에서 금빛 불똥과 함께 허공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일그러진 허공을 따라 불똥이 기다란 궤적을 남기며 금빛 원을 아로새기고.
“무, 무슨…….”
“또……?”
적의 마법이라고 생각한 병사들의 머리 위로 더한 절망이 퍼져나가려는 찰나, 화아악!
불똥 너머로 공간이 갈라지며 창검으로 무장한 수만의 병력이 토성의 안쪽으로 진군해 나오기 시작했다.
척, 척, 척-.
그들의 사이에서 휘날리고 있는 것, 그것은 엔디미온의 깃발과…….
“해, 해와 달이 그려진 깃발!”
“토벌군……2차 토벌군이 왔다!”
낮과 밤 연맹의 깃발이었던 바.
파짓, 파지직-.
주변의 공간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일그러졌다.
수십 개에 달하는 황금빛 원을 그려내며 2차 토벌군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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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대공 전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대공 전하만이 아닙니다. 무야호 백작과 이오 경도……!”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얼마나 놀랐었던지.
자리를 박차다시피 하고 뛰어갔을 땐 완전히 침착해 보이는 얼굴의 러셀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더라지.
그 광경을 회상하며 헤카테가 중얼거렸다.
“참으로……고약한 사내로다.”
그렇게 말한 것치곤 입가에 한 줄기 미소가 걸려있는 얼굴.
뒤이어 상황 설명을 들은 그가 자신에게 남겼던 마지막 음성이 떠오르고-.
“잠시 다녀올게요. 헤카테.”
슥─, 그녀가 시선을 돌렸다.
저 먼 곳.
동쪽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지금쯤 도착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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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수 개에 달하는 빛의 원이 계속해서 2차 토벌군을 쏟아낸다.
“히이이잉-!”
말을 탄 기마대가 쏟아져 나오는 곳도 있었고, 척척척.
갑옷을 입은 기사단이 발을 구르며 걸어 나오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생겨나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원.
파지지지짓-!
작은 원 너머에서도 이만큼이나 되는 병력이 쏟아져 나왔는데, 과연 저만큼이나 큰 원이라면!
모두의 기대와 시선이 그곳에 집중된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달리, 저벅. 저벅.
가장 큰 원을 통해 걸어 나온 것은 바로 두 명의 여인이었다.
초콜릿을 녹인 듯 가무잡잡한 피부와 잿빛의 머리칼을 지닌 수인족 여인.
그 옆에 선 것은 그녀와는 대비되는 피부색을 지닌 엘프족 여인이라.
우득, 우드득-.
주먹을 말아 쥐고 이리저리 뼈마디 푸는 소리를 내던 수인족 여인이 광소하며 소리쳤다.
“캬하하하. 완전히 새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야!”
엘프족 여인이 새침하게 그 말을 받았다.
“수왕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다니. 조금 미묘한 감정이지만……어쨌든 동감이에요.”
캬르르륵!
갸오오오오오!
두 여인의 뒤쪽으로 커다란 그림자가 어린다 싶더니, 이어 두 마리의 용이 튀어나오며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불꽃을 빚어 만든 듯 진홍색 빛깔을 자랑하는 용과, 얼음을 깎아 만든 듯 반투명한 몸체를 지닌 용!
얼음의 용은 날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하늘을 비행하고.
“이보게. 할멈. 저거……?!”
그나마 면식이 있던 헤밍웨이가 그들을 알아보며 중얼거렸다.
황급히 시선을 돌려 다리아를 확인했다.
그의 생각대로, 다리아 역시 놀란 듯 눈을 치켜뜬 채 쩍 벌어진 빛의 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저벅. 저벅-.
거대한 빛의 원 한 가운데에서 누구보다도 강렬한 존재감을 지닌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에게서 흘러나온 마력이 일대를 무자비하게 찍어 눌렀다.
쿠구구구구궁.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