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85
285화
EPISODE.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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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어……?”
“대공, 전하?”
난데없는 러셀의 모습에 자리에 있던 이들 모두가 어리둥절하며 의문을 흘렸다.
러셀의 몸이 허공을 향해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빠르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속도로 허공을 향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르는 러셀의 모습.
그 모습에서 이유를 깨닫지 못할 바보는 하나도 없다.
“설마 대공 전하께서……?”
“저 외눈의 괴물을 막으러……?”
그 사이 서서히 속도를 높여나간 러셀의 신형은 순식간에 대기권을 돌파하며 세상의 바깥쪽까지 뻗어나간다.
화아아악-.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던 산소가 마지막 한 가닥까지 잦아들고.
직후 들어선 공간은 중력의 속박이 거의 사라진 특이한 장소였다.
주변이 온통 새카만 가운데, 곳곳에서 작은 빛들이 흘러드는…….
밤하늘을 장막으로 만들어 세계 전체를 뒤덮는다면 이런 모양이 나올 것이다.
현시대의 인류가 아직 발 닿지 못한, 심해(深海)보다 더 짙은 미지(未知)를 품고 있는 세계.
기록에서는 외해(外海)라고도 불리는 세상.
그 세상의 다른 이름을 러셀이 조용히 속삭였다.
‘우주(宇宙).’
광활한 미지(未知)가 바로 러셀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고개를 슬쩍 아래로 내리자, 방금 전 자신이 떠올랐던 세상이 눈에 들어온다.
동그란 세상 위로,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가 반짝거린다.
그 위에 범선처럼 위풍당당하게 솟아있는 대륙도 마찬가지다.
참으로 아름다운 별이다. 그렇다면 저 위에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반짝임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어쩌면 모든 일이 끝난 후에는, 서대륙을 벗어나 동대륙으로 향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자신이 방금까지 발 딛고 있던 세계와, 광활한 우주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노라니 그런 시답잖은 생각도 들었다.
‘중요한 시점에서 이런 생각이라니.’
정작 기분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는지, 키득─작게 웃은 러셀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우주 저편, 이곳을 향해 날아들며 막대한 사념파를 쏟아내고 있는 존재를 확인했다.
보랏빛 혜성이 공간을 통째로 일그러뜨리며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바로 저 혜성이 흉신(凶神)이라 불리는 놈의 알이자 진정한 정체였다.
이계구원자…….
‘선조님의 말씀대로라면 놈이 물질계에 충돌한 순간부터 재해가 시작된다던가.’
장대하게 솟아난 먼지가 태양빛을 가리고, 지상의 온기를 앗아갈 것이라고 했다.
냉기만이 남은 세계는 점점 얼어붙어 갈 것이며 그 속에서 저 혜성의 지표를 깨고 놈이 태어날 것이라고 했다.
세상 바깥에서 온 신격이자.
이미 멸망해 버린 다른 세상의 절망이 뭉쳐 만들어낸…… 부(不)의 에너지만으로 이루어진 집합무의식(集合無意識).
하나의 세상을 멸망시키고, 또 다른 세상으로 이동하여 멸망을 꾀하기만을 반복할 뿐인 무언가.
놈이 집어삼킨 세상만 해도 수백 이상이다.
그 과정에서 축적해온 부정적 에너지와 절망은 수천억 명분을 한참 넘어서고 있을 터.
팟-.
발끝이 허공을 박참과 동시에 러셀의 신형이 우주를 가로지른다.
물질계를 향해 날아드는 보랏빛 혜성을 향해 짓쳐들고, 아득하던 거리가 단박에 좁혀들며 막대한 사념파가 러셀을 향해 쏟아져 나왔다.
그 일부만으로 하늘을 뒤덮고 거대한 외안을 투영시킬 수 있는 사념파였다.
그것을 지근거리에서 직격당한 것이다.
‘큭…….’
좌절과 낙담, 질시와 고독 등.
다가가기 힘들 정도로 짙은 부의 감정들이 러셀의 정신을 오염시킨다.
다이아몬드만큼이나 단단한 초월자의 정신이라 하더라도 버텨내기 어려울 정도.
아직 이만큼이나 거리가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인데, 더 다가가면 어떻게 될는지.
아니, 더 다가갈 수는 있는지 자체도 의문스러웠다.
강력한 사념파는 그 자체로 공간을 일그러뜨릴 만큼의 물리력을 동반하고 있었기에.
그 순간이었다.
화아악-.
러셀의 전신을 따라 새하얀 빛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뒤이어 러셀의 머릿속에서 익숙한 이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신성(神性)을 갖췄다곤 하나, 놈은 다른 세상에서 온 신이다. 어지간한 대신격이라고 해도 홀로 놈을 상대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지. 그러니…….
거대한 망치를 이용해 벼락을 제 몸처럼 다루던 신이 러셀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가지고 가라. 우리 아스가르드 의 신성이다.
주먹을 마주치자 새하얀 신성이 러셀을 향해 흘러들기 시작한다.
토르와 로키를 시작으로 오딘과 헤임달 등…….
몇 번이고 이곳, 에인헤랴르에서 훈련을 도와줬던 이들의 신성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마음 같아선 곤봉과 사자 가죽도 빌려주고 싶지만, 둘 모두 네가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
─저도 마찬가지예요. 아이기스(Aegis)도 함께 보내고 싶지만……대신 이걸 드리겠어요.
다음은 올림피아였다.
─저희 올림피아의 신성이랍니다.
사자와 같은 용맹과, 전쟁신의 지혜, 가정신의 화목과 바다의 파도, 저승의 엄격함…… 신왕(神王)의 벼락 등.
그 말대로 올림피아의 힘이 깃들어 있는 신성이 악수를 통해 러셀의 손아귀로 흘러든다.
─다나 여신족의 힘이다. 가져가라.
에린의 신왕, 루 라와더가 러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마지막.
─나와 그녀의 힘이 담긴 신성이다. 소중하게 잘 사용해야 한다.
김현성과 용신왕의 힘.
용신계의 신성에 이르기까지. 만약 이 힘을 사용했더라면 블라드와의 싸움을 훨씬 손쉽게 끝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이유.
그것은 이 신성은 온전히 외신을 상대하기 위해 아껴놓고 싶었던 러셀의 욕심이었으니…….
화아악-.
전신을 따라 뿜어져 나온 빛들이 각기 다른 형상으로 화했다.
그것은 러셀에게 힘을 나누어준 신들의 형상이었다.
진신(眞身)으로 강림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식으로 러셀을 돕고자 했던 것.
벼락을 움켜쥔 사내와, 삼지창을 움켜쥔 사내.
곤봉과 사자 가죽을 든 사내 등을 필두로 올림피아 신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이후 여러 신들이 환영처럼 러셀의 주변을 둘러싼다.
가장 마지막 거대한 용을 탄 형상으로 나타난 김현성의 신성이 러셀을 향해 속삭였다.
“길을 열어주마. 따라오라고. 후손.”
이어 용신왕에게 연결된 안장을 고쳐 쥐는 순간, 콰아앙!
폭음과 함께 김현성과 용신왕의 신성이 쏟아지는 사념파를 향해 짓쳐들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올림피아의,
아스가르드의.
에린의 신들이 각자의 신성을 이용해 쏟아지는 사념파를 걷어내기 시작한 것은.
사념파가 갈라지며 그 사이로 길이 드러난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러셀이 신형을 날렸다.
갈라진 사념파 사이를 섬전처럼 내달려 놈에게까지 짓쳐들었다.
파바바밧-.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놈에게 무사히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신계에서 받아온 신성으로도 놈에게 도달하는 길은 완전히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큭-!”
입술 사이로 침음이 절로 흘러나온다.
가까이 다가섰기 때문인지, 전보다 훨씬 강력한 사념파가 그의 정신을 오염시켰다.
절망, 회한, 비탄, 비애 등…….
온갖 감정이 정신을 희롱해대고.
“정신 안…차리……나!”
뒤쪽에서 김현성이 악을 써댔지만,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대로 간다면 거대한 절망 앞에 무릎 꿇고 러셀 역시 저 집합무의식에 집어삼켜지고 말 것인즉.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 * *
지상에 이변이 일어난 것은 러셀이 하늘을 향해 치솟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보랏빛 구름 위로 러셀의 모습이 비치기 시작한 것.
마법을 이용해 영상을 영사하듯, 보랏빛 혜성을 향해 나아가는 러셀의 모습이 선명하게 비추어진다.
러셀의 몸에서 흘러나온 신성이 고문서에 기록된 신들의 형상으로 화(化)하는 것까지도.
지상에 있는 이들 모두가 그 광경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이 광경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흉신의 노림수였으니까.
물질계의 유일한 희망이라 할 수 있는 러셀이 자신의 절망 앞에 무릎 꿇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지상의 모든 희망을 앗아갈 계획이었으니까.
하지만…….
“제발.”
시작은 어느 한 사람이었다.
“대공 전하.”
양손을 그러모으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은 누군가. 그를 시작으로 지상의 병사들 사이로 기도가 퍼져나갔다.
“제발.”
“부디…….”
함께 싸워줄 수 없는, 지상에 있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게 전부였으므로.
그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비단 정벌군이 있는 곳뿐만이 아니었다.
러셀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흑발과 적안으로 인해 서대륙의 모든 사람들이 이미 러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헤카테가 손을 그러모았다.
하늘이 잘 보이는 테라스에서 난간에 몸을 기대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대여…….”
“걱정 말거라.”
그런 딸의 어깨를 엔디미온의 국왕, 알폰소 라트모스가 가볍게 두드리고.
“사제.”
“막내 사제!”
휴버트와 버밀리온이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다.
“……막내야.”
다리아가 중얼거림.
“은인!”
“은공!”
이오와 아레인을 비롯한 요정족들.
“수컷!”
무야호를 시작으로 수인족들 역시 러셀을 부른다.
보랏빛 하늘에 절망하던 아낙이, 품속의 아이를 더욱 꼭 껴안으며 중얼거렸다.
“아아. 부디…….”
푸른 하늘과 캄캄한 밤이 다시 찾아올 수 있기를.
마쉐린 상단의 이들이 제자리에 서서 하늘을 올려보며 소망했다.
“저건…….”
“은공이에요!”
부디 해가 뜨고, 달이 떠오르는 내일을 맞이할 수 있기를.
그런 소망과 기도가 물질계 곳곳으로 번져 나갔고, 기적이 일어났다.
* * *
신이란,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해주는 존재에 대한 믿음…….
혹은 인간의 몸으로 감당할 수 없는 관념이나 자연현상에 대한 경외로부터 태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벼락과 불꽃, 바다와 저승 등…….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마법사(魔法師)란 모두가 신으로서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존재와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렇다면 그렇게 태어난 신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기도와 소망(所望), 그로 인해 일어나는 경외야말로 신성(神性)과 신격(神格)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었으니…….
화아악-!
지상에서부터 시작된 기도가, 소망이, 경외가 보랏빛 하늘을 가르며 우주를 향해 치솟아 오른다.
개개인에게서 시작된, 그리 거대하지 않은 빛들.
그런 빛들이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이며 거대한 빛의 기둥을 만들어내고.
러셀에게 닿는 순간.
쾅!
러셀의 의식 저 너머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거대한 힘이 몸속에서 용솟음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건─!’
지상에서부터 올라온, 신성의 형태로 화한 모두의 소망. 그것을 느끼며 러셀이 이를 악물었다.
‘세상을 구한다거나, 신이 되고 싶은 거창한 욕망에서 시작한 일은 아니야.’
그저 가문을 되살리고 마법사로서 꿈을 이루고 싶었을 뿐이다.
허나, 그렇다고 하여 이런 상황에서 모두의 소망을 내팽개칠 만큼 러셀이 무책임한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던바.
이를 악문 러셀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발끝과 수평이 될 듯 구부려졌던 무릎을 들어 올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허공을 밟고 사념파를 가르며 놈을 향해 다가선다.
지상을 향해 추락하는 혜성.
놈을 막아내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담아낸다.’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마법과 신성.
결이 다른 두 개의 힘이 양손을 타고 흐르며 손아귀 안에 집중되었다.
당장 폭발해도 이상할 것 없는 거력(巨力)이 러셀의 손아귀 안쪽에서 휘몰아치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으드득-.”
으스러져라 이를 악문 러셀이 비로소 그 힘을 한 자루, 창의 형태로 벼려냈다.
콰아아아아-!
길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빛의 창이 쉬지 않고 명멸하며 흑백의 빛을 토해낸다.
한계 따위는 없다는 듯 끝을 모르고 치솟아 오르며 회전하는 거력에 러셀의 손아귀가 찢겨 나가며 핏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힘의 상승폭이 정점에 달하는 순간, 으득!
다시 한번 이를 악문 러셀이 몸을 움직였다.
왼발을 축으로 삼고 오른발을 내뻗으며 한 손으로 있는 힘껏 창을 내던졌다.
[라만차(La Mancha), 거신 죽이기]신마합격(神魔合激).
원포올(One For All).
모든 것을 위한 하나.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이 있을 수 있을까.
러셀의 손아귀에서부터 이어진 흑백, 빛의 궤적이 보랏빛 혜성을 꿰뚫었다.
─!!
별이 폭발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