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86
286화
EPILOGUE
【그렇게 마왕은 쓰러지고, 세상은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저잣거리에 나도는 동화나 오래된 용사 민담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결말이었다.
하지만…… 과연 세상은 평화를 되찾았을까?
그런 의문을 떠올리다 말고 휴버트가 가볍게 코웃음 쳤다.
‘현실성 없는, 아이들의 동화에나 어울릴 법한 결말이지.’
쓰러뜨린 것이 마왕은 아니었지만,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지금의 세상이 가장 잘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를 뒤로하며 시선을 움직이자, 마차의 창 너머로 엔디미온 왕도의 대로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아니, 이제는 황도(皇都)라고 불러야겠군.’
스스로를 블라드 드라쿨레아라고 칭하던 사교도와, 세상의 바깥에서 침입하려던 외신을 쓰러뜨린 지 일 년.
모든 위협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아직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럴 수밖에.
당시의 기억은 아직도 대륙인들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으니까.
해와 달이 뜨지 않고, 낮과 밤이 사라진…….
오로지 보랏빛만이 존재하던 하늘, 그리고 해와 달이 뜨는 일상을 되찾기 위해 외해(外海)로까지 나섰던 어떤 영웅의 이야기를…….
자신의 막내 사제, 러셀에 대한 과거를 떠올리며 휴버트가 작게 웃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용들의 주인이기도 하다지? 이야기만 놓고 보자니 모험가들 사이의 영웅담에서 튀어나온 인물 같군.’
소설 주인공보다도 더 소설 같은 삶이 아닌가.
물론 아직 세상이 혼란스러운 이유는 비단 그때의 기억만이 아니었다.
세상 바깥쪽에서 강림하려던 흉신을 쓰러뜨림으로써 마물과 언데드들을 일거에 소멸시키긴 했지만, 여타의 문제들이 남아 있었으므로.
‘제국의 멸망과 난민…… 투항한 귀족들에 이르기까지.’
창검으로 하는 전쟁은 끝났지만, 펜촉과 잉크로 벌여야 하는 사투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문제들이 해결되기에 일 년은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앞을 향해 나아갔다.
오늘 자신이 참석하는 행사 역시 그 모습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테고.
그때였다.
“워, 워─.”
말을 진정시키는 마부의 음성이 들려온 것은.
다그닥, 히이이잉-.
기다란 투레질 소리와 함께 움직이던 마차가 제자리에 멈춰 선다.
“도착했습니다.”
“수고했네. 이건 팁일세.”
이어 문을 열어주는 마부를 향해 은화 두 개를 건네준 휴버트가 슬쩍 눈을 움직였다.
마차의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흠흠.”
잘 다려진 연미복, 평소 입고 다니던─후줄근한 염탑의 로브와는 완전히 다른 차림이었다.
그럴 수밖에.
한동안 개인적인 연구에 매몰되어 살던 그였지만, 오늘만큼은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였으니까.
적당히 차림을 가다듬고, 마차를 보낸 후 몸을 돌리자 거대한 건물의 전경이 눈에 훤히 들어온다.
대리석을 깎아 만든 듯 온통 하얀 빛깔의 고급스러운 건물.
바로 웨딩홀이었다.
그것도 왕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규모의…….
‘황도(皇都)라는 명칭이 아직도 입에 붙지 않아서야.’
상념을 이어 나가다 말고 한차례 쓰게 웃은 휴버트가 자신의 단어 선택을 정정했다.
일 년 전까지는 왕국이었다지만, 제국이 멸망한 지금 엔디미온은 명실상부 대륙에서 유일한 패권국이 되었으므로.
국가의 시스템 역시 왕정(王廷)에서 황제국가(Imperium)로 변화하게 된 것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먼저 온 하객들이 홀의 복도를 따라 이리저리 흩어져 담소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직 식이 시작하기 전의 시간을 이용해 저마다 친목을 다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같이 유명한 면면들.
그들의 얼굴을 통해 이번 식의 주인공이 얼마나 대단한 이인지가 드러난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들 사이를 지나친 휴버트는 곧장 신랑대기실로 향했다.
다른 이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신랑과 친분이 있는 그는 신랑대기실에 들어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으므로.
똑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노크와 함께 정중하게 묻자 안쪽에서 답변이 들려왔다.
“들어오시게.”
문을 열자 신랑대기실을 꽉 메울 정도의 덩치를 지닌 사내가 신랑용 턱시도를 입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장인이 한 땀 한 땀 바느질해서 만든 턱시도라던가?
굴강함을 넘어 장대하기까지 한 신랑의 근육 때문이었는지, 바늘땀이 비명을 내지르는 것 같은 기괴한 모습.
“…….”
그 광경에 할 말을 잊은 휴버트가 멈칫했고 버밀리온이 껄껄 웃었다.
“왔는가. 사제. 그렇지 않아도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네.”
“어……음. 예.”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광경에 드물게 당황한 그가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 이번 결혼식의 주인은 바로 버밀리온이었다.
“설마하니 사형께서 사제보다 먼저 결혼을 하실 거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지.”
버밀리온이 쑥스러운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의 결혼 상대는 나제 연맹의 여기사단장이라던가?
마물과 전투를 벌이던 당시, 그녀와 그녀의 기사단을 구해준 것을 계기로 맺어지게 된 인연이었다.
“사제도 이제 슬슬 결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은 혼자가 조금 더 편하긴 합니다만…… 일단 좋은 사람이 있어야지 않겠습니까.”
“그러게 너무 골방에 틀어박혀 연구만 하지 말고, 밖을 좀 돌아다니든가 운동을 좀 더 빡세게 하라니까.”
건강을 위한 운동과 단련이라면 충분히 하고 있습니다─그렇게 답하려던 휴버트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이 운동과 근육에 미친 사람을 누가 데려갈까 싶었지만, 전에 한 번 만나 보니 상대 역시 비슷한 체형을 지니고 있는 것이 생각보다 잘 맞을 것 같아 보였다.
그때였다.
“사제나 막내 사제도 그렇지만, 스승님은 좀 어떠신가?”
돌연 버밀리온이 화제를 돌린 것은.
“스승님이라면…….”
“요즘 창탑주님과 종종 식사도 하시고 늦게까지 술도 드시는 것이 꽤 좋아 보이시던데, 어쩌면 사제보다 스승님 쪽에서 먼저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말을 마친 그가 새하얀 치아와 잇몸을 드러내며 웃으려는 찰나, 신랑대기실 밖에서 심통 난 답변이 들려왔다.
“흥. 소식은 무슨 소식이란 말이냐. 이것아.”
“스승님!”
다리아였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인데. 그렇게 숙맥이어서야…… 같이 디저트를 먹으러 가자는 이야기는 어떻게 꺼냈던 건지!”
그녀가 툴툴거리는 목소리를 내며 신랑대기실 안쪽으로 들어섰다.
평생동안 한 여인만을 바라본 노 대마법사. 당연하게도 연애 경험이 없는 헤밍웨이였기에 다리아는 그의 행동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도 저렇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에 휴버트가 미간을 찌푸리길 한 차례, 세 사람 사이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끼어든 것은 직후였다.
“이런, 제가 제일 늦었나 보군요.”
“사제!”
“사제!”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차린 휴버트와 버밀리온이 단박에 반응하고, 머쓱하게 대기실 안으로 들어온 그를 향해 다리아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가장 젊은 녀석이 발은 가장 늦구나. 그 대단한 마법 실력을 뒀다가 어디 쓰려는 것인지.”
“죄송합니다. 마지막 작업을 하다 보니 조금 늦어 버린지라…….”
“마지막 작업?”
예. 하고 고개를 끄덕인 러셀이 버밀리온에게 꺼내 놓은 것은 한 쌍의 반지였다.
백금을 이용해 모양을 잡고, 레드 다이아몬드를 뿌려 장식한 반지.
“결혼 선물입니다. 사형.”
9써클 마법사.
이 시대에 존재하는 유일한 초월자가 선물하는 반지였다. 기이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는 것이 평범한 물건은 아닐 터.
“사제가 직접 만든 겐가.”
“예. 재료를 구하고 마법을 세공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지만요.”
“귀한 선물을 받았군. 고맙네. 그런데…….”
조심스런 손길로 반지를 받아 든 버밀리온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거 내 손가락에 들어가긴 하는 건가?”
일반적인 사이즈로 만들어진 반지가 두툼한 그의 손가락엔 도무지 맞을 것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
그 물음에 러셀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대꾸했다.
“크기 조절 마법이 걸려있으니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 말대로 손가락을 향해 가져가자 반지의 크기가 쑥하고 늘어난다.
“허허. 이것 참. 이런 선물을 받아 버렸는데 나는 무엇을 해줘야 할지…….”
“사형께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내신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허허.”
감동한 듯 들리는 웃음소리, 직후 화제를 전환한 것은 다름 아닌 다리아였다.
“그래서 이놈아. 네 녀석은 언제까지 왕녀 전하를 기다리게 할 셈이냐?”
“기다리게 하다니요. 국정 업무가 바빠 조금 미뤄두고 있을 뿐…….”
“그래서 프러포즈는 했고?”
“…….”
변명 아닌 변명을 단칼에 끊어내며, 훅 치고 들어오는 다리아의 음성에 러셀이 입을 다물었다.
“에잉. 답답한 녀석. 아무리 국정 업무가 바쁘다 뭐다 해도 네가 먼저 나서 프러포즈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아니냐. 마법사라는 사내들은 어찌 이리도 답답한 것인지. 쯧쯧.”
그런 러셀의 모습에 누군가가 떠올라 속이 터진다는 듯, 다리아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려 댈 따름이었다.
.
.
식이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약 삼십 분 정도가 더 흐른 뒤였다.
주례를 본 것은 창탑의 탑주인 헤밍웨이 멜빌. 그가 주례자로 선정된 이유는 간단했다.
엔디미온 마법계에서 가장 큰 어른임과 동시에 무슨 발언을 던질지 모르는 다리아보다는 훨씬 주례자에 어울리는 성품을 지닌 인물이어서다.
“흥. 제 연애사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하면서 남의 주례는 무슨…….”
물론 헤밍웨이의 주례를 지켜보던 다리아는 팔짱을 낀 채 이렇게 투덜거렸지만.
러셀은 조금 떨어진 하객석의 뒤쪽에서 버밀리온의 결혼을 바라보고 있었다.
챙이 넓은 모자를 이용해 얼굴을 숨긴 누군가와 함께.
“버밀리온 경의 결혼이라…….”
당연하게도 여인의 정체는 바로 헤카테였다.
국정이 바쁜 와중에도 버밀리온의 결혼식이 있다는 말에 틈을 내어 잠시 빠져나왔던 것.
“결국 버밀리온 경도 결혼을 하긴 하시는구나. 그대여.”
스승, 다리아의 꾸중 아닌 꾸중을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오늘따라 헤카테의 음성에 은근한 부추김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식은 계속해서 진행되어 마침내 부케를 던지는 순간까지 이어지고.
새하얀 부케가 포물선을 그리며 웨딩홀을 가로지른다.
“어, 어어?”
“으음?”
그와 함께 부케를 잡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하객들의 사이에서 어리둥절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부케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포물선을 그리며 식장의 뒤쪽을 향해 날아갔던 것.
평범한 여인이 아닌, 기사단장의 자리에까지 오른 여인의 근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
덕분에 엉겁결에 부케를 받아 어리둥절해하는 러셀의 동공 위로 헤카테의 얼굴이 비쳤다.
“그대여.”
식을 치르는 신부만큼이나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완(完).
작가의 말.
용을 삼킨 마법사, 줄여서 ‘용삼마’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게 되었습니다.
연재를 하는 과정에서 참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어찌 보면 후련하면서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완결이라는 생각입니다.
독자 분들께서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용삼마는 기존의 제 글에서 변화를 주기 위해 이것저것을 많이 시도한 글입니다.
처음으로 적는 판타지, 처음으로 적는 마법사물 뿐만 아니라……기존에 쓰던 분량보다 약 50화 가량을 더 연재하기도 했으니까요.
다수의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전개 역시,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에 시도해본 이야기 중 하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배울 것도 많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머릿속에 있던 그림을 온전하게 그려내기에는 제 능력이 부족했던 탓일 겁니다.
어찌 되었건 간에 용삼마의 이야기는 이렇게 완결이 되었고,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현재 용삼마는 반 권에서 한권 분량 사이 외전을 계획하고 있지만, 지금으로썬 정확하게 언제 외전 연재를 시작한다고 확답을 드릴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아마도 용삼마를 이용해 진행 중인 또 하나의 소식이 확정될 때 쯤에야 외전 연재 계획 역시 공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저는 외전이 될지, 신작이 될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빨리 글로써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간 용을 삼킨 마법사가 세상에 나올 있도록 도와주신 스토리튠즈 임직원 분들.
글을 봐주신 담당자님.
그 외 함께 글을 쓰는 여러 동료 작가들…….
마지막으로 용을 삼킨 마법사를 읽어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그간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K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