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9
29화
EPISODE.15
도대체 무슨 말을 하시려던 건지.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지우며 러셀이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지금은 면접에 집중하자.’
면접장 안으로 발을 디디며 천천히 심호흡했다.
‘후.’
안으로 들어서자 선별관들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들어오는 문을 둘러싸듯. 부채꼴의 형상으로 앉아 있는 선별관들.
면접을 직접 치러본 적은 없었지만, 그와 관련된 소문만큼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많이 들어온 그였다.
‘유급을 몇 년이나 했으면 그런 거라도 좀 남아야지.’
그리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런 이유로.
러셀은 오늘 면접이 일반적인 경우와는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면접이라고 하면 그 사람의 됨됨이나 인격, 인성 따위를 판단하기 위해 치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마탑의 마법사들 대부분은 마법에 미친 자들이지.’
그런 그들이 진정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은 인격이나 인성 따위가 아니다.
‘아카데미에서 쉽게 배우기 어려운 고위 이론들, 그리고 그것들을 이용해 도달할 수 있는 발상의 지향점 같은 것들.’
호흡을 바로잡는 것으로 긴장감을 해소한 러셀이, 한층 담담해진 눈빛으로 시험의 내용을 가늠했다.
‘그렇다고 해서 인성이나 인격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건 또 아닐 테지만-.’
짧은 순간 머릿속에 교차되는 생각을 정리하길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 선별관들이 말을 걸어온다.
“준비가 다 된 모양이군.”
“그럼 지금부터 면접을 시작해도 되겠지?”
이어 강렬한 마력이 러셀을 덮쳐왔다.
자리에 모인 선별관들이 면접자를 압박하기 위해 일부러 내뿜는 마력. 그 기세를 느낀 러셀이 작게 고소했다.
‘이래서 압박 면접이라는 얘기가 나왔던 거구나.’
선별관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마력의 소용돌이.
그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그들의 질문에 답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치 전방위에서 압박당하는 기분을 느꼈을 터.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아카데미 학생의 수준에서나 해당되는 문제일 뿐이었다.
이미 아카데미의 초임 교수와도 비슷한 실력을 가지게 된 그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었다.
지방의 작은 마탑에서 올라온 일부 선별관들 역시 그와 같은 네 개의 고리를 가지고 있기도 했고.
.
“그 문제의 경우 300년 전의 마법사. 오르겐 공이 만들어낸 공식을 사용하면…….”
“물질순환이라는 개념에 있어 공식 자체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수정을…….”
“이 성분대로 약을 조제한다면 어느 정도 원하는 효능을 발휘하긴 하겠지만, 가능하면 성분의 비율을 이렇게 수정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면 효율이 약 3할가량 올라간다는 논문을 얼마 전에 본 적이 있거든요.”
.
일반적인 마법 공식에 관한 질문은 물론이거니와 연금술과 마도약학까지 이어지는 폭넓은 질문들이다.
허나 그 중, 그가 답변하지 못할 만한 것은 없다.
자신의 마력으로 마력의 소용돌이를 흘려내며 러셀은 막힘없이 선별관들의 질문에 답해나갔다.
‘단순히 아카데미의 수업을 쫓아가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추가 학습을 하고 자료조사를 했다면 7할 정도는 충분히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이야.’
이미 학생용 서고가 아닌 교수용 서고에서 책을 읽고 있는 그로서는, 굳이 다리아에게 받은 가르침을 꺼낼 필요도 없었다.
“그 문제의 경우는…….”
질문이나 문제를 꺼내 놓는 즉시 술술 흘러나오는 답변.
그렇게 되자 도리어 놀란 것은 선별관들 쪽이었다.
.
‘허. 다리아 님께 가르침을 받았다더니, 과연.’
‘그리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력을 견뎌내면서 답하는데 한 점 흔들림조차 없이 의연하기만 하다니.’
‘탐이 나는구나. 탐이 나.’
‘어떻게든 우리 탑으로 데려오고 싶지만, 그건 힘들겠지.’
‘그렇다고 우리 탑주님께 염탑주님과 담판을 지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랬다간 분명 눈썹 대신 숯검정을 달고 돌아오시겠지. 끙.’
.
가장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 앞에 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입맛만을 다셔야 하는 상황이라니.
그중 가장 속이 쓰린 것은, 당연하게도 창탑(蒼塔)에서 나온 선별관이었다.
창탑과 염탑은 오랜 경쟁 관계.
이렇다 할 악연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서로가 서로를 신경 쓰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 입장에서 저런 인재를 염탑에 넘겨주게 되었으니.
속이 쓰리지 않을 리가 있나.
‘그렇다고 이미 다리아 님의 직전 제자가 된 녀석을 빼 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쉽구나. 아쉬워.’
우리 창탑 쪽에서 이 녀석을 먼저 만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럴 줄 알았으면 워커힐에 교수로 파견 가 있던 마법사를 다시 탑으로 불러들이는 게 아니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창탑의 선별관 만큼은 아니었지만, 다른 두 왕도 마탑의 선별관들 역시 배가 아프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그렇다고 ‘염탑의 미친 호랑이’ 앞에서 그런 감정을 내보일 수는 없는 일이라.
의연하게 제 감정을 추스른 왕도 백탑의 선별관이 제 옆에 앉은 버밀리온에게 말을 걸었다.
“저런 인재를 탑의 후배로 데려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막내 사제로까지 받아들이시다니. 오늘만큼은 공이 진심으로 부럽소이다.”
꽤 진심이 담긴 극찬.
그러나 정작 극찬을 전해 들은 버밀리온의 태도는 시큰둥하기만 했다.
“그렇소?”
낮지만 묵직한.
톤을 조금만 높였다면 호방하게도 들렸을 법한 목소리가 무겁게 울린다.
자리에 앉은 선별관들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 역시 그즈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버밀리온 울센. 이 사람…….’
‘이번 차례에만 아직 질문을 한 번도 하지 않았군.’
이전에 들어온 학생들에겐 짧게나마 근성이니 열정이니, 운동이니 하는 것들을 물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미 잡아둔 물고기라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린 창탑 선별관의 눈에 비친 것은-.
“…….”
-입을 꾹 다문 채.
무감각한 시선으로 러셀을 응시하고 있을 뿐인 울센의 얼굴이었다.
.
.
결국 면접이 끝날 때까지.
울센은 단 하나의 질문조차 러셀에게 던지지 않았다.
처음 들어왔을 때 그랬던 것처럼, 예의 무심한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을 뿐.
그 시선이 꽤 마음에 걸렸던지라, 면접장을 빠져나오던 러셀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
호랑이 같은 얼굴 위로 무신경한 눈동자가 더해지니, 제법 압박감이 느껴졌던 탓이다.
게다가 사적으로는 가장 큰, 첫째 사형이기도 했고.
덕분에 러셀이 받은 심적 부담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어쨌든, 면접이 끝나긴 했네.’
울센의 태도가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 외에 모든 질문에는 막힘없이 답변했으니까.
‘휴버트 교수님께 보고라도 해둘까?’
그렇게 생각하며, 면접장을 빠져나오던 러셀이 방향을 틀었다.
어쩌면 아까 미처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저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일단 첫날 일정은 이걸로 끝. 그리고 내일은…….’
이틀간 치러지는 탑의 선별, 그 마지막 시험이 있는 날이다.
마지막 시험의 내용은, 당연하게도 마법 전투.
‘앞의 두 시험이 이론적인 지식을 시험하는 거였다면, 마지막 시험은 실전에서의 역량을 확인해보려는 거겠지.’
내일 있을 마법 전투만 마친다면, 탑의 선별이 모두 끝난다.
선별관들이 돌아가는 것은 그다음 날.
‘결과가 나오는 건 언제쯤이었더라.’
이후의 일정들에 대해 가늠하길 얼마간, 어느새 러셀은 휴버트의 집무실 앞에 당도해 있었다.
하지만 휴버트를 만날 수는 없었다.
집무실 안쪽에서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그 이유.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문을 돌려보았지만, 찰칵찰칵.
잠긴 문은 낡은 쇳소리를 낼 뿐, 요지부동.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음, 잠시 자리를 비우신 거면 문 앞에 팻말이라도 걸어두셨을 텐데.’
그것도 아닌 걸 보니, 선약이 있었던 모양.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리며 러셀이 기숙사로 향했다.
그렇게, 탑의 선별.
그 첫째 날이 무사히 지나갔다.
* * *
둘째 날이자 마지막 시험이 치러지는 곳은, 아카데미 내부에 마련된 결투용 연무장.
중앙에는 커다란 연무장이 솟아 있었고, 그 주변을 따라 관람석처럼 보이는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는 것이 연무장의 특징이었다.
-.
그 공간에 앉아 있는 학생들 사이로 기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척.
장내로 들어선 러셀은 어렵지 않게 그 긴장감을 읽어 들였다.
‘그럴 만도 하지.’
이 자리는 스스로가 가진 ‘워 메이지’로서의 가치를 증명하는 자리였으니까.
몇 년 전, 제국과 평화협정을 맺었다곤 하나 여전히 곳곳에선 암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왕국의 현 상황이다.
그렇기에 ‘워 메이지’의 대우는 평범한 마법사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를 흘깃흘깃 바라보는 가운데, 이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연무장 안으로 들어선다.
저벅, 저벅.
안전을 위해 참석한 아카데미의 교사들과, 그 후로 뒤따라오는 일단의 무리.
선별관들이었다.
그들까지 모두 안으로 들어오자, 장내를 둘러보던 교수 중 하나가 입을 연다.
“자, 그럼 마지막 시험을 시작하기 전에…….”
러셀의 기억에도 있는, 전날 마법전투 교과목을 담당하던 교수 중 하나.
“일단 이것들부터 받게나.”
학생들을 둘러보던 그가 작은 보따리 하나를 풀더니 가볍게 허공에 던진다.
촤르르륵-
그러자 안쪽에 담겨 있던 물건들이 허공을 날아들어 학생들에게 흩뿌려졌다.
한 사람당 하나.
꽤 정교하다고 할 수 있는 바람 마법의 응용이라.
“47번?”
“나는 29번인데?”
저마다 받아 든 것을 확인하던 학생들에게서 웅성거림이 새어 나왔다.
날아든 것은 일종의 번호표였다.
‘나는 62번인가.’
러셀 역시 번호표에 적힌 숫자를 확인했다.
다른 교수 하나가 나선 것도 그 무렵이었다.
품에는 사람 머리통 두 개 정도 크기를 가진 상자를 안고 있는 모습.
안쪽에는 뭐가 들었는지, 움직일 때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이미 짐작한 이도 있겠지만, 자네들에게 나눠준 번호표는 상대가 될 사람을 정하기 위한 물건일세.”
상자 안에든 것은 나눠준 것과 똑같은 숫자가 적힌 공들.
그중 두 개의 공을 꺼내, 나온 숫자를 가진 인원 두 사람이 연무장 위에서 맞붙는 것이었다.
“승자의 경우는 잠시 휴식한 후, 다음 상대를 뽑아 대결을 이어나갈 것이고, 패자는 그 자리에서 탈락일세.”
두 번째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일견 가혹하다고도 할 수 있는 규칙.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자리는 워 메이지의 역량을 시험하는 자리.
워 메이지란 전쟁에 참여하는 이들, 늘 죽음을 곁에 둬야 하는 그들에게 두 번째 기회란 있을 수 없었다.
아이들의 얼굴 위로 비장함이 어리기 시작하고, 달그락.
교수가 상자 안에 손을 넣었다.
“먼저 항복하거나, 연무장 밖으로 밀려날 경우 패배일세. 그 외에도 우리가 판단하기에 더 이상 전투를 이어나갈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면 그걸로 끝이고.”
손아귀에 딸려 나온 두 개의 공을 확인하더니, 그 숫자를 호명했다.
“그럼 처음은 5번과 17번이로군. 연무장 위로 올라오게.”
.
.
성인 남성의 허리 정도 높이로 쌓아진 연무장.
그 위로 올라간 학생들이 마법을 펼칠 때마다, 쉬지 않고 빛이 번쩍이며 폭음이 울렸다.
쾅.
화르륵, 펑!
불꽃이 바람을 집어삼키고, 대지가 수분을 빨아들인다.
아카데미에서 보낸 지난 4년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만 같은 광경.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실력 차이는 분명히 존재했다.
같은 4년이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더 치열한 시간을 보냈으며 또 누군가는 그 시간 이상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벌써 몇 번이나 승자와 패자의 희비가 교차하고.
바깥쪽에 자리 잡은 학생들 역시 뚫어져라 그 광경을 응시했다.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셈하거나, 잠깐잠깐 생각에 잠기는 이 역시 있었다.
이번 전투에서 승리한 자가, 다음 자신의 상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
그렇게 또 한 번 승자와 패자의 운명이 교차되는 가운데.
“그럼 다음은 62번과-.”
러셀의 번호와.
“53번이로군.”
상대의 번호가 호명되었다.
이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상대로 추측되는 이가 몸을 일으켰다.
‘어디 보자…….’
고든 롤랑.
조금 눈에 익다 싶은 외견과 함께, 오래된 기억 두 개가 머릿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