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3
3화
EPISODE.02
“이제야 왔네.”
아카데미 구석에 위치한 화장실로 들어서자, 녀석들이 기다렸다는 듯 러셀을 둘러싼다.
“굼벵이 같은 게, 느려 터져서는.”
두 눈을 부라리며 러셀을 내려 봤다. 딴에는 한껏 위협적인 눈빛을 해 보인 거겠지.
하지만 정작 그 눈빛을 마주한 러셀의 얼굴은 심드렁하기만 했다.
‘흠.’
몇 년의 프리랜서 생활.
그 시간 동안 러셀이 단순히 잡무 따위나 처리하며 책상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용병 활동을 병행한 것만 해도 족히 세자릿수에 육박할 정도.
그리고 그중 절반 정도는 몬스터 토벌에 참가한 경험이었다.
‘그때 느꼈던 몬스터들과 용병들의 살의에 비하면…….’
이 녀석들의 위협은 도리어 귀여워 보일 정도다.
‘실전 경험조차 없는 꼬맹이들이 내뿜는, 단순히 위협에 가까운 표정에 겁을 먹을 리가.’
피식-.
웃음을 흘리자 양쪽에 서 있던 두 놈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진다.
“웃어?”
직후, 가장 중앙에 서 있던 녀석이 나섰다.
뒤통수를 후려쳤던 바로 그 녀석이었다.
“이봐. 러셀.”
“뭐.”
담담한 말투로 받아치자 녀석이 미간이 기묘한 곡선을 그리며 꿈틀거린다.
이어진 것은 좀 전보다 훨씬 더 으르렁거리는 목소리.
“내가 분명 수업 시간에 우리들 것까지 필기하라고 했을 텐데 감히 내 말을 무시하고 졸아?”
감히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졸았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느니 뭐라느니 등의. 뻔하고 상투적인 위협이 연달아 쏟아져 나온다.
그 위협에 러셀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고작 이런 녀석들에게 두려움을 느끼며 살았었다니.’
자신의 과거가 억울하다 못해 추하게까지 느껴질 지경이라.
‘우습지도 않아. 등신 같은 놈.’
결국 러셀은 과거의 자신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카데미에서 보낸 몇 번의 유급과, 그 후 몇 년의 삶은 그에게 독기를 심게 하기에 충분했으므로.
눈을 치켜뜨며, 여전히 일장 연설에 가까운 위협을 늘어놓는 놈을 응시했다.
“코마 프레드릭.”
그렇지 않아도 방금 막, 가장 중앙에 서 있는 녀석이 누구였는지를 정확하게 떠올린 참이었다.
꽤 커다란 덩치에 주근깨 가득한 얼굴. 물 빠진 연갈색의 머리카락.
“가문을 이어받는 첫째나 상단을 이어받는 쌍둥이 형과는 달리 아무것도 가지지 못할 반편이.”
“뭐, 뭐?”
자신의 아픈 곳을 찔러 오는 음성과, 사람이 바뀌기라도 한 듯 갑작스럽게 변모한 러셀의 분위기에 코마가 움찔, 몸을 떨었다.
하지만 러셀의 변화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고작 이런 놈들에게 당하고 살았었다는 기억 때문일까.
어쩐지 머릿속으로 열이 뻗치기 시작한다.
화악
그렇게 시작된 열이 손끝 발끝까지 내달렸다.
직후였다.
진홍색으로 빛나던 두 눈이, 호박색의 불길한 안광을 띄기 시작한 것은.
화아악-.
러셀 스스로는 알아차리지 못한 변화.
“너, 너-.”
너 눈이라고 말하는 것 보다, 러셀의 쏘아붙이는 것이 더 빨랐다.
“귀족위도, 그렇다고 상단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물려받지 못하는 주제에 아카데미에서 인생까지 낭비 중인 머저리.”
호박색 안광 안쪽에서,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이 모습을 드러내고.
화악!
이내 완연한 파충류의 눈을 개방한 러셀에게서 미증유의 기세가 일어났다.
“저보다 강하거나 작위가 높은 귀족의 자제들에게는 아무것도 못 하면서, 평민이나 저보다 약한 동기만을 골라 괴롭히는 전형적인 소인배.”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쉬지 않고 내뱉은 러셀이 ‘맞지?’하곤 놀리듯 되물었다.
신랄한 독설이라.
하지만 그 독설보다 훨씬 더 코마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러셀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세와 안광이었다.
“으, 으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을 벌벌 떨리게 하는 포식자의 눈동자.
거대한 무엇인가가 자신을 내려 보는 것만 같은 위압적인 감각.
그 감각의 끝에서 흘러나온 것. 그것은 공포였다.
인간의 본능 깊은 곳에 각인되어있는 강자에 대한 두려움.
고양이 앞에 놓인 쥐, 아니.
바실리스크 앞에 놓인 닭의 심정이 이런 것일지도.
찬물이라도 한 바가지 뒤집어쓴 듯한 오한과 공포심에, 세 놈의 몸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
이 새끼들이 갑자기 왜 이래?
그 이상 현상에 러셀이 의문을 가지는 순간.
“으아아아아!”
코마가 소리를 내질렀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잔뜩 자극을 해놓은 상황이니, 공격을 해올 것이다.
멧돼지 같은 놈이니 소리만 지르고 참아넘기지는 않겠지.
‘마법이 올까?’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학생들 간에 마법으로 다투는 일은 교칙으로 금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녀석들의 마법 수준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니까.’
돌아갈 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방학 중에 남아 보충수업을 듣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물론 세세하게 따져보자면 자신보다 조금 더 낫기는 할 것이다.
‘같은 1써클이라도 나는 고작해야 3개월 차, 그에 비해 이 녀석들은 1년이 다 되어 갈 거야.’
허나 그래봐야 1써클.
그것도 제대로 된 실전조차 겪어보지 못한 학생의 레벨이었다.
뿐만 아니라 마법과 공부, 양쪽 모두를 게을리하며 인생을 허비하는 놈이기도 했으니.
‘캐스팅 속도건, 그렇지 않으면 마법에 대한 숙련도건.’
어느 쪽이건 마법보다는 아직 주먹이 편할 것인즉.
아니나 다를까.
“이 괴물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결국 화를 참지 못한 코마의 주먹이 크게 내질러졌다.
예전이었다면 상당히 위협적이었을 주먹이다.
‘하지만-.’
몬스터 토벌을 하며 수없이 많은 난전을 겪은 그다.
그 난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부족한 마법 실력을 보완하기 위해, 일천하지만 박투술과 개싸움 기술도 익혔다.’
용병들에게 술이나 밥 따위를 사주고 익힌 기예들.
용병들이 사용하던 기술인 만큼, 그리 대단한 것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난전에 난전을 거듭할 때마다 기예들이 조금씩 몸에 익어갔던 즉.
그러니까.
‘이깟 주먹쯤이야.’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으로 녀석의 주먹을 피하고, 부웅- 소리가 귓전을 스치기 무섭게.
뻐억!
드러난 가슴 한복판에, 주먹을 때려 박았다.
“꺼억!”
갑작스럽게 치밀어 오르는 고통에 코마의 몸이 낫처럼 휘었다.
침을 한가득 쏟아내며 신음을 흘려댔다.
예상치 못한 러셀의 반항과, 강렬한 충격에 놀란 것은 물론 고통까지 느낀 탓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놀란 쪽이 있었다.
바로 공격을 성공시킨 러셀이었다.
‘이게 무슨?’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벼워진 몸과 함께 깔끔한 회피 동작.
물 흐르는 듯 이어진 공세까지.
도저히 이 시절의 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반응속도였다.
자신의 움직임에 스스로 놀라는 사이.
“이 새끼가?”
“오늘 진짜 미쳤나?”
코마의 외침에 두려움을 극복한 두 똘마니가 러셀을 향해 빠르게 뛰어들었다.
이어진 것은 개싸움…….
뻐억, 뻐억, 뻐억-!
‘-이 될 줄 알았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쉽게 느껴지는 상황에 러셀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수적으로도 체격적으로 밀리기에 진흙탕 싸움을 벌여야 할 줄 알았거늘.
‘공격이 훤하게 읽히는 건 물론이고,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이 정도라면 삼 대 일이라 하더라도 무리 없이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블린 무리 사이에 뛰어든 오우거-.
‘-는 아니더라도 트롤 정도는 될 것 같은데?’
시답잖은 생각까지 떠오를 정도로 여유로운 움직임이라.
게다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이 마주칠 때마다.
녀석들의 몸이 공포에 질리기라도 한 것처럼 움찔움찔 떨어대기까지 했으니.
뻑뻑-.
망치 같은 스트레이트가 관자놀이, 턱, 코 등. 급소 곳곳에 빨려 들어가듯 틀어박혔다.
그 연격을 견디지 못하고, 풀썩하며 코마의 몸이 허물어진다.
다른 두 놈은 먼저 쓰러져 바닥을 기고 있는 지 오래.
그래도 골목 놀이 대장이랍시고 가장 길게 버틴 것이다.
“너, 너……내가 감히 누구인지는 알고. 우리 아빠는 귀족이야. 귀…….”
“우습네.”
러셀이 손을 뻗었다.
꽈악.
한 손으로 코마의 머리칼을 우악스럽게 틀어쥐었고, 놈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괴롭힐 땐 신나서 하더니, 역으로 당하니 아버지를 찾는 꼴이라니. 네가 생각해도 좀 우습지 않아?”
예의 눈동자와 거기서 흘러드는 형언 할 수 없는 공포란!
호박색 안광이 마구잡이로 뇌 속을 헤집는 것만 같았다.
“으, 으으…….”
바실리스크의 앞에 놓인 쥐의 기분이 이러할까.
뭐라고 항변하고 싶어도, 나오는 것은 제대로 되지 않은 언어였을 뿐.
러셀이 놈에게 일갈했다.
여전히 자신에게 생긴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였다.
“그리고, 네 아버지가 귀족이라고 너까지 귀족인 건 아니잖아?”
프레드릭 남작가는 귀족으로서 그리 급이 높은 가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거대한 세를 가진 가문 역시 아니었고.
그런 프레드릭 남작가에서 귀족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것은 작위를 세습 받는 첫째뿐.
“그래서 네 쌍둥이 형과 네가 아카데미까지 와서 마법을 배우고 있는 거고. 이 멍청한 놈아.”
그 말을 마지막으로 러셀의 주먹이 놈의 관자놀이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뻐어억!
그 충격에 놈의 머리통이 화장실 바닥에 내려꽂히고, 쾅!
흘러나온 코피가 화장실 바닥을 적시는 것을 보며, 경고했다.
“이걸로 끝이다. 두 번 다시 눈앞에서 거치적거리지 마라.”
이어서 숙였던 몸을 다시 일으켰을 때, 러셀의 두 눈을 뒤덮었던 호박색 안광은 사라진 지 오래라.
“윽.”
직후, 갑자기 찾아온 현기증에 러셀이 비틀거렸다.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만 같은 감각이 엄습한 탓이라.
‘너무 흥분했었나?’
어쩌면 몸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잘 움직였던 것이 흥분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
러셀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댕댕댕댕-.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음 수업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종소리에 러셀이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아, 젠장.”
다음 수업이 뭐더라.
거기에 대한 고민을 이어 나갈 겨를도 없이.
화악.
[미션을 완수하였습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반투명한 녹색의 창이 눈 앞을 가렸다.
손톱보다 훨씬 작은 붉은 돌 조각 하나가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툭-.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