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32
32화
EPISODE.16
버밀리온의 우악스런(?) 손길을 멈춰 세운 그가, 마른 숨을 뱉었다.
러셀을 향해 사과했다.
“미안하구나. 사형께서 워낙 장난이 심하신 분이라.”
“그럼 지난번에 하시려 했던 말씀은…….”
분명 ‘장-.’이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뒷말이 ‘난’이었다면 지금과 상황도 꼭 들어맞는다.
“그래. 직접 시험을 하시겠다고 한사코 고집을 부리시기에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하긴 했다만-.”
그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탁, 짚었다.
“사형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그 전에 무슨 일을 저지를 가능성 역시 있었으니 말이다.”
“너는 네 사형을 뭐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렇게 말하는 것과는 달리, 버밀리온의 기분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입가에 싱글벙글한 웃음까지 매달고 있었다.
미친 호랑이라는 별명보다는 ‘옆집 아저씨’의 이미지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전적이 한두 번이어야지 말입니다.”
익숙하다는 듯 핀잔을 주며, 휴버트가 겉옷처럼 걸치고 있던 자신의 로브를 그에게 건넸다.
“그보다는 일단 뭐라도 좀 걸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음.”
자신의 몰골을 돌아보던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로브를 받았다.
곧바로 두 남자에게서 동시에 앓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음.”
“끙.”
로브를 건넨 휴버트와, 그것을 받아 입은 버밀리온의 입에서 나는 소리였다.
몸집이 꽤 호리호리한 편인 휴버트의 로브를, 기골이 장대한 버밀리온이 받아 입으니 그 꼴이 꽤나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이라.
“좀 작은 것 같구나. 으하하!”
신축성이 있는 소재로 만들어진 로브였기에 망정이지.
휴버트가 건넨 로브가 터질 듯 부풀어 올라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곳곳의 실밥이 뜯겨져 나가 근육이 드러나 보이는 로브를 보며 버밀리온이 다시 한번 호쾌하게 웃었다.
그래도 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진 몰골이었기에, 휴버트가 고개를 저었다.
직후 러셀의 몸을 이모저모 쓸어보며 물었다.
“다친 곳은 없는 것 같고, 그보다 놀랐네.”
“……?”
“설마하니 러셀, 자네가 그런 식으로 사형을 도발할 줄이야.”
그에 대한 대답은 러셀이 아닌 버밀리온에게서 들려왔다.
“흥. 도발은 무슨. 저 녀석은 이미 모든 걸 다 눈치채고 있었다고.”
놀란 듯 자신을 바라보는 휴버트의 시선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기며, 버밀리온이 러셀을 응시했다.
직접 설명해보라는 눈초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추측할만한 근거가 몇 가지 있었지만, 크게는 둘. 확신을 한 건 시험을 치르면서였습니다.”
첫 번째는 열려 있는 연무장의 문이었다.
강제로 뜯겨져 나간 것도 아니고 자물쇠가 멀쩡하게 남아 있었다면 누군가가 문을 열어줬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지 않겠는가.
“그 열쇠를 관리하시는 건 분명, 아카데미의 교수님들이셨지요?”
휴버트를 바라보며 묻자 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문을 열어준 것은 분명 나일세. 그렇다면 두 번째는 무엇인가?”
“두 번째는 저를 자극하려는 게 너무 뻔하게 보이는 태도였습니다.”
말을 돌려서 하는 것도, 그렇다고 속을 살살 긁는 것도 아니고.
티 나게 자극을 해오면서도 또 선을 넘지는 않았으니.
“바보가 아니라면 ‘혹시?’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정도 알아차리라고 흘리기는 했다.
하지만 러셀이 그렇게 빨리 눈치를 채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게다가, 시험을 치르는 내내 제대로 된 공격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셨지요? 덕분에 확신했습니다.”
훈련용 허수아비도 아니고.
중간에 파이어 볼트로 가벼운 탄막을 만들어냈긴 했지만, 러셀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핸디캡이 있었다지만, 6써클 마법사가 제대로 나선다면-.
‘아무리 길어도 3분을 버티는 것조차 힘들었겠지.’
흔히들 탑주급이라고 불리는 그들의 실력은 소규모 자연재해에 비견될 정도였다.
왕국 내에 쉰 명 남짓 존재하는 그들이, 괜히 전술병기로 취급받는 것이 아니었다.
“눈치 빠른 꼬맹이 녀석.”
그가 러셀의 어깨를 퍽퍽 두드리더니 이내 묘한 눈길을 해 보인다.
“그보다, 마법사치고는 몸이 꽤 실한 편이더군. 평소에 운동을 좀 하는 편인가?”
“아? 예. 기초적인 근력운동과 체력 단련이라면 매일 같이 빼먹지 않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버밀리온이 호탕하게 웃었다.
“으하하하하! 마음에 드는군. 아주 마음에 들어!”
이어서 러셀의 팔뚝이나 어깨, 대흉근 따위를 툭툭 치더니 덧붙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네.”
“…….”
“나처럼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근육을 만들려면, 기초 근력훈련이 아닌 쇠질을 해야 한다네.”
“쇠, 질이요?”
난데없이 전문용어가 튀어나왔다.
“이런 거 말일세.”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해 보이자, 그가 팔을 움직였다.
무언가를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행동을 취하며 답했다.
“이런 거 말일세. 이런 거!”
물론 마법사라도 몸을 만들 필요성이 있다는 것쯤은 체감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근육과 자신이 추구하는 근육이 과연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기에, 마냥 긍정하는 대신.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
“아. 예.”
그 뒤 이어진 버밀리온의 제안만 아니었다면.
“좋아. 그럼 언제 한 번 이 사형과 함께 좋은 곳에서 쇠질을-.”
기겁하려는 순간.
“그보다 러셀. 놀랍군.”
그를 구해준 것은 다름 아닌 휴버트였다.
“그 짧은 시간에 4써클에 오른 것만 해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거늘.”
정령마법까지 익히다니.
휴버트의 중얼거림에, 러셀은 지난 방학 동안 있었던 일을 짤막하게 설명했다.
‘굳이 미션과 관련된 일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고.’
그렇게 했다간 괜히 설명해야 할 것만 늘어나게 될 터였다.
필요한 이야기는 다리아와 함께했던 해적선 토벌뿐.
“허어. 좁은 통로 안에서 소드 유저와 전투를 벌였을 뿐 아니라 엘프를 구해내기까지 하다니.”
“그러고 보니, 엘프를 호위할 인력이 필요 하신다며 스승님께서 호위대를 요청한 적이 있었지. 막내 사제가 진귀한 경험을 했군.”
“예. 정령 마법은 그때 엘프들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소위 정령술이라고 불리는.
정령 마법을 익히기 위해선 마법과는 별개의 재능을 타고나야 하는 법이었다.
문제는 이 정령술의 재능이라는 것이 극히 희귀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지금 현역으로 활동 중이라고 알려진 인간 정령사의 숫자는 0명.
“괜찮다면 정령이라는 존재를 다시 한번 보여주겠나. 러셀?”
휴버트의 부탁, 러셀이 그에 응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덕에, 소환에 필요한 마력 정도는 회복된 상태였다.
캬륵-.
정령계의 문이 열리고 페퍼가 러셀의 머리 위로 폴짝 내려앉는다.
전투가 끝났다는 걸 알아차린 것인지.
바로 전투태세에 돌입했던 전과는 달리 한껏 여유롭고 편안해진 표정.
러셀의 머리를 둥지 삼아 내려앉은 녀석이 날개로 제 몸을 감싸며 크게 하품했다.
갸르륵-.
벌려진 입을 따라 불티가 가볍게 피어올랐다.
“오오. 이게 정령이로구만.”
“그런데 생김새가 조금 특이하군. 책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데, 변종. 혹은 아종(亞種)인가?”
고위 마법사라 할지라도 정령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지라, 그들은 저마다 학구열을 불태웠다.
페퍼의 까끌거리는 피부를 손가락으로 쓰다듬거나, 날개의 피막을 만져보기도 했다.
물론 페퍼의 기분이 나쁘지 않을 선에서.
그들 역시 마법사였다.
정령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라지만, 마냥 문외한은 아니었다.
페퍼 역시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듯, 그들과 적당히 어울려 주었다.
그렇게 탑의 선별 마지막 날이 끝나갔다.
‘어쩐지 나 혼자서만 시험 4개를 치른 것 같은데.’
왠지 조금 억울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 * *
두 사람의 정령에 대한 학구열에 얼마 정도 어울려 준 후.
기숙사로 돌아온 러셀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늦은 시간.
게다가 써클이 텅텅 빌 정도로 마법을 사용하며 전투를 벌이기까지.
여러모로 피곤한 하루였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잠자리에 들고 싶었지만-.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게 있지.’
이번에 보상으로 받은 ‘???’의 정체를 확인할 차례였다.
물음표가 적힌 보상이 나온 것은 지금까지 총 두 번.
첫 번째는 지도가 그려진 양피지였으며 두 번째는-.
‘클라우디 링이였지.’
그렇다면 세 번째는 무엇일까.
호기심과 궁금증을 동시에 품고 아공간을 열었다.
으적, 으적.
먼저 이번에 받은 마석을 간식처럼 입안에 넣고 씹으며 보상품을 꺼내 들었다.
‘이건-.’
첫 번째와 똑같은 양피지 지도였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인식 불가 마법이 걸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미션-Ⅰ]지도에 표기된 위치까지 찾아가, 이어지는 미션을 해결하세요.
근처까지 다가간다면, 빛이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보상]???
중급 마석(식용)x2, 하급 마석(식용)x3
‘이번에도 지도.’
그렇다면 일단 이 지도에서 나타내고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
피곤함을 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난 러셀이 지난번 구매해 둔 지도책을 펼쳤다.
‘그래도 저번보다는 나은 편인가.’
운이 좋지 않았다면, 맨땅에 머리를 박는 수준과 다를 바 없었던 지난번의 지도와는 달리 이번에는 ‘섬’이라는 지형으로 국한되어 있었으니까.
물론 마냥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대륙에 섬의 종류가 하나둘도 아니고.’
그래도 내륙 하나하나를 뒤지는 것에 비해서는 훨씬 나았던바.
‘길어도 닷새 정도면 끝낼 수 있을 테지.’
사락, 사락-.
지도의 페이지가 넘어가고, 몇 시간 동안 공을 들인 반복 작업의 끝에.
결국 그 위치를 특정해낸 러셀이 깊은 한탄을 뱉었다.
“아…….”
양피지와 꼭 들어맞는 지형, 그곳은.
‘쿠릴 아일랜드.’
평범한 인간에겐 걸음이 허락되지 않는 ‘위역(危域)’ 중 하나였으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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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릴 아일랜드(Curil Island)는 어지간한 왕국과도 비견될 수 있는 크기를 가진 섬이다.
그런 쿠릴 아일랜드가 위역으로 불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강한 힘을 지닌 마물과, 수인족…….’
쿠릴 아일랜드에는 통상보다 월등한 힘을 가진 마물들이 다량 서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섬의 마물들이 왜 그런 식으로 진화했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당연하게도 평범한 사람은 그 섬에서 제대로 생활할 수 없었다.
섬에서 생활하는 것이 허락된 것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육체 능력을 지닌 수인족뿐.
‘일반적으로 인간이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은, 수인족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해안가의 도시 몇 개가 전부라고 하던가?’
언제고 들었던 소문을 떠올리며 러셀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도에 표기된 지역은 대충 봐도 섬의 내부가 분명했으니까.
‘문제는 마물만이 아니야.’
수인족 중에서도 인간을 무시하고 적대하는 부족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최소한으로 잡아도 6써클.
‘지방 마탑의 탑주급 실력은 되어야 한다는 말인데.’
어쩌면 그 이상이 필요할지도.
아직은 요원하기만 한 수준이었기에, 러셀이 한숨을 토하며 생각했다.
‘결국, 지금 당장 여길 찾아가는 건 무리겠군.’
아쉽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