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34
34화
EPISODE.17
“……이상, 졸업생 대표. 러셀 레이먼드.”
졸업 연설이 끝나기 무섭게 박수갈채가 사방에서 쏟아졌다.
짝짝짝짝짝-.
그와 함께 갖은 종류의 시선들이 그에게로 향한다.
단순히 뛰어난 졸업생을 바라보는 시선과, 졸업생 대표라는 자리에 올라선 자신을 선망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후배들의 시선.
‘그리고-.’
그들 사이에 섞여 있는, 다소 계산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시선들까지.
‘레이먼드. 설마 레이먼드가의 혈육이 아직 남아 있었던가.’
‘저 나이에 4써클, 이번 대의 레이먼드는 그야말로 걸물이로군.’
‘어쩌면, 무너져가던 레이먼드가가 다시 일어서게 될지도 모르겠어.’
‘한때 귀족이었다곤 하지만 몰락한 가문. 따로 미래를 약속한 이가 없다면…….’
자신에게로 향하는 후자의 눈빛들을 읽어내며 러셀이 조용히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역시.’
저들의 반응이야말로 러셀이 원하는 반응이었다.
아마도 오늘 이 일로 인해 귀족들의 사교계에선 레이먼드라는 이름이 다시 한번 회자 될 것이 분명했다.
물론 커다란 파급력은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며 단상을 내려온 러셀은 손에 쥐고 있던 졸업장을 아공간 속에 챙겨 넣었다.
‘졸업식 일정은 이걸로 끝.’
챙겨야 할 짐들은 어젯밤 모두 챙겨 아공간 속에 넣어 두었으니, 사실상 아카데미를 나서기만 하면 정말로 졸업인 것이다.
화악-.
밖으로 나서자, 겨울 분위기를 한껏 뽐내고 있는 교정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회귀 후 약 1년.’
아니.
회귀 전 유급을 했던 것까지 더하면 대충 8년 정도를 오간 교정이었다.
몇 개월 정도 오차가 있을 순 있겠지만, 어쨌건 남들의 두 배에 가까운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 셈이다.
때문이었을까.
막상 졸업장을 받아 아카데미를 떠난다고 하니, 어쩐지 기분이 미묘했다.
‘후련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막상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기분이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미 졸업은 했고, 오늘 떠나게 되면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아카데미로 돌아올 일은 없는 것을.
교정을 빠져나가며 8년간의 기억을 정리한 러셀이, 걸음을 재촉했다.
향하는 곳은 워커힐의 마차역. 왕도로 향하는 마차에 올라타기 위해서였다.
.
.
잠시 뒤.
러셀을 태운 마차가 왕도를 향해 출발하고, 덜커덩.
바퀴가 굴러가는 것을 확인하며, 마차역 안쪽에서 사내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잿빛의 로브로 전신을 가리고, 계속해서 러셀이 타고 있던 마차를 곁눈질로 응시하던 사내.
그는 러셀을 태운 마차가 출발하는 것을 확인한 직후,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날고 있는 새 한 마리를 응시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가서 전달하라.”
그 말에 호응이라도 하듯, 하늘을 날던 검은 빛의 새. 까마귀 한 마리가 불길한 울음을 토해냈다.
까악-.
직후.
마차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러셀이 출발한 방향을 따라 하늘을 가로질렀다.
까아아악-!
* * *
워커힐을 출발한 마차는 오래지 않아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마차 두 대가 빠듯하게 오갈 수 있을 정도의 폭을 가진 산길.
커다란 대로를 타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다.
산길을 닦아 대로로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런 식으로 마차가 오가는 길목은 아무리 좁은 곳이라 하더라도 철저하게 관리가 된다는 점이었다.
몬스터나 산적 따위를 마주칠 일은 없다는 이야기.
‘녀석들이 출몰하는 즉시 토벌대가 파견되고, 인근을 파헤쳐서 혹시 모를 불씨까지 완전히 제거해 버리니까.’
엔디미온 왕국이 자랑하는 마차역 제도는 그런 노력과 관리 아래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덕분에 여행객들은 이렇다 할 습격을 걱정하지 않고 편안하게 마차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산길 위를 내달리길 얼마간.
“으, 으앗!”
당혹스런 마부의 외침과 함께, 마차가 그 자리에서 급정거한다.
“으악!”
“악!”
그로 인해 안쪽에 타고 있던 이들이 관성을 이기지 못해 고꾸라지고.
척-.
마법을 이용해 균형을 잡은 러셀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갑작스럽게 정지한 마차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마차를 뒤덮고 있던 두터운 천막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꽤 어두워진 저녁 하늘.
거의 밤이 다되긴 했으나, 아직 수면을 위해 멈춰 서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무, 무슨 이런 일이…….”
이어 마부의 음성이 들려왔다.
겁을 먹은 것인지, 두려움에 오들오들 떨리는 목소리.
“무슨 일입니…….”
마차의 앞을 향해 다가가던 러셀이 그 자리에 멈춰서며 얼굴을 굳혔다.
마차의 진로를 가로막고 있는 것.
그것은 이미 박살 난 것으로 보이는 다른 마차들의 잔해였다.
부서진 바퀴가 바닥을 나뒹굴고, 한때 사람을 태웠던 것으로 보이는 뒷 칸은 완전히 반파된 지 오래.
추측건대 러셀이 탄 마차보다 앞서 같은 방향으로 출발했던 마차들인 것 같았다.
문제는 그런 마차의 형체가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소 여섯 채 이상.’
박살 난 바퀴의 개수로 그 수를 가늠하던 러셀이 주변을 둘러봤다.
‘몬스터나 산적의 습격?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일이 있었던 건가?’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그 마차를 향해 다가서려는 찰나, 러셀이 멈칫했다.
박살 난 마차의 잔해에서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사람이 보이지 않아.’
습격이나 그에 준하는 일이 있었다면, 마땅히 있어야 할 시체나 부상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사람이나 말의 시체만 모두 어딘가로 치운 것만 같은 광경.
그 광경에서 불안감을 느낀 러셀이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네 개의 써클이 회전하는 것과 무섭게 감각이 확장된다.
그와 함께 바람결에 섞인 불길한 냄새가 러셀의 코끝을 찔렀다.
‘이건-?’
용병 일을 하면서 몇 번이나 맞아 본 적이 있는 냄새, 시취(屍臭)였다.
‘멀지 않은 곳에 꽤 커다란 공동묘지가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냄새가 여기까지 올 리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화아악!
숲 그림자가 어지럽게 요동쳤다.
‘온다!’
마력의 파장을 통해 그를 어렵지 않게 감지해낸 러셀이 빠르게 경고했다.
마부와, 승객용 뒷칸에서 내리고 있던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지금 당장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예?”
“아니, 젊은이. 지금 그게 무슨…….”
“지금 당장!”
러셀이 다시 한번 경고를 터뜨리는 순간.
그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어어-.
으어어어어-.
“히, 히익!”
“언데드다!”
언데드(Undead).
강제로 안식을 빼앗기고, 죽음에서 되돌아온 사교도들의 체스 말.
놈들을 흑마법사가 아닌 사교도라 부르는 이유는 간단했다.
‘흑마법의 구현방식은, 마법이라기보다는 신성마법에 가까우니까.’
마왕, 혹은 마족과의 계약을 통해 그들의 힘을 이끌어 오는 그들의 방식은 마법이라기보다는 신앙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사교도(邪敎徒).
스스슷-.
풀숲, 나무 사이, 산길의 앞뒤 등.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낸 녀석들의 숫자가, 삽시간에 두 자릿수 중반에까지 치 닿는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언데드라고 보기에는 비이상적으로 많은 수치!
‘어디냐. 어디야.’
러셀이 빠르게 눈동자를 움직였다. 시선을 사방으로 뿌리며 술자의 모습을 찾았다.
허나, 어디에서도 놈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하긴, 사령술의 최대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술자가 그렇게 쉽게 모습을 드러낼 리가 있나.
‘무슨 목적으로 수도로 향하는 마차들을 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놈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신성 마법만큼은 아니었지만, 화염 마법 역시 언데드의 상극.
그리고 이곳에는, 화염계열 마법을 장기로 삼는 마법사가 있었으니까.
상념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러셀의 손가락은 이미 마법진을 그려내고 영창을 캐스팅하고 있었다.
“솟구쳐라, 불의 벽이여!”
4써클 화염 속성 마법, 파이어 월(Fire Wall).
영창과 함께 완성된 불기둥이 하늘 끝까지 솟구쳤다.
산의 어둠을 몰아냈다.
화르르르르륵!
이내 가라앉은 불길이 점차 벽의 형상으로 변모한다.
불꽃의 벽이 원을 그리며 마차의 주변을 휘감고, 미션창이 떠올랐다.
[미션]언데드의 공격.
갑작스럽게 공격해온 언데드들을 대상으로, 마차의 승객들을 지켜내세요.
언데드들이 더 이상 몰려오지 않는 순간을 미션 완료로 취급합니다.
[보상]하급 마석 x3.
미션의 내용을 보며 러셀이 속으로 짧게 대꾸했다.
‘원래부터 그럴 생각이었어.’
움직임이 느린 언데드들을 상대로 제 한 몸 빼내는 것이야 일도 아니겠지만.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마냥 내버려 두고만 있을 만큼 그의 성격은 모질지 못했다.
애초에 이 정도 숫자의 언데드들은 별문제도 아니었고.
“마, 마법사님이다!”
“마법사님이 있어, 우리는 살았다!”
파이어 월을 통해 러셀의 존재를 알아차린 승객들이 반 박자 늦게 환호성을 터뜨린다.
그런 그들을 향해 러셀이 짤막하게 지시했다.
“멀리 가지 말고, 마차 안에 뭉쳐 계십시오. 그쪽이 제가 더 움직이기 편합니다.”
러셀의 말과 불꽃의 온기에 정신을 추스른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뭣들 하는가. 어서 이쪽으로 모이지 않고?”
러셀의 말에 따라, 사람들이 승객용 뒷칸으로 들어가 똘똘 뭉쳤다.
그어어어-.
그우어-.
그 무렵이었다.
몇몇의 언데드들이 파이어 월의 안쪽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붙어 있던 살점이 녹아내리고, 드러난 뼈가 숯덩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괘념치 않은 태도라.
‘과연, 이미 죽은 자(死者)라는 건가.’
일말의 고통과 괴로움도 느끼지 못하고, 술자의 명령만을 충실히 수행하는-죽어서 살아난 괴물.
‘연사와 속사가 가능한 파이어 볼트를…….’
녀석들을 요격할 준비를 하길 잠시.
무언인가를 발견한 러셀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설마?’
언데드화 되었다곤 하지만,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외형.
입고 있는 옷들 역시 언데드 치고는 지나치게 깔끔하다.
그 모습에서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해낸 러셀이 치를 떨었다.
“이 개새끼가?”
설마 마차의 승객과 마부들을 이용해 언데드를 만들 줄이야!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살아 있던 사람들을!’
망자를 상대로 수작질을 부리는 것이 바로 사교도 놈들이다.
미친놈들이라는 것쯤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정도가 좀 심하지 않은가!
인간이라면 화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는 작태. 러셀이 이를 악물었다.
뿌드득-.
화는 나지만 일단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우선이었으므로.
“미안합니다.”
짧은 사과의 말과 함께, 러셀이 손가락을 튕겼다.
쐐애액, 퍼버버벙!
그와 함께, 십여 발에 달하는 불화살이 밤공기를 가르며 날아간다.
파이어 월과 충돌해 터져 나가며, 넓은 탄막을 형성했다.
퍼벙, 퍼버벙!
그어어어-!
몸의 이곳저곳이 터져 나가며 빠른 속도로 좀비들이 줄어들어 가는 가운데, 먼 곳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내 하나가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대단한걸? 과연 그 태워죽일 년이 제자로 받아들일 만한 실력이야.”
자신의 좀비들이 터져 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껏 여유를 부리는 태도.
그럴 만도 했다.
방금 러셀을 습격한 언데드들은, 그가 보유하고 있는 것들 중 일부에 불과했으니까.
‘네 녀석을 위해 인근의 공동묘지뿐만이 아니라, 꽤 떨어진 곳에 있는 몬스터 부락까지 모두 습격하며 시체를 모아왔다.’
그렇게 모아온 언데드의 숫자만 해도 거의 수백에 달할 정도.
“네가 과연 그 녀석들을 상대로,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볼까?”
사내의 중얼거림과 함께, 땅속에 묻어 두었던 또 다른 언데드들이 연달아 솟구쳐 올랐다.
쿠어-.
으어어어-.
인간은 물론이거니와 고블린이나 코볼트 등의 시체까지 섞여 있는 모습.
죽지 못한 자들의 밤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