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39
39화
EPISODE.20
점심 무렵.
엔디미온의 왕도 남쪽에 위치한 염탑 1층에선 가벼운 웅성거림이 끊이질 않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늘이 맞는 거겠지?”
“그렇다니까.”
화염 속성의 마법을 주력으로 삼는 마법사들이 모인 곳답게.
다른 곳에 비해 유독 호쾌하면서도 거침없는 성정을 지닌 이들이 많이 모이곤 하는 탑이었다.
그런 염탑이 소란스러운 것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긴 했다.
하지만 오늘의 소란은 여느 날과는 조금 달랐다.
자기들끼리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대던 평소와는 달리,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만 같은 느낌.
곳곳에 포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연신 탑 내로 들어오는 입구를 흘깃거리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오늘 점심 무렵 탑에 방문하기로 되어 있는 염탑의 신입이었다.
물론 평범한 신입 마법사였다면 이 정도까지 소란이 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호기심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한들 두셋 정도.
지금과 같이 스물이 넘는 인원들이 탑의 1층에 모여들 리가 없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탑주님이 새롭게 받아들이신 제자라. 벌써부터 궁금하네.”
상대가 소문을 몰고 다니는 마법사 계의 기린아라면 이야기가 또 달랐다.
“이제 막 아카데미를 졸업했을 뿐인데, 벌써 4써클이라지? 빨라도 너무 빨라.”
“내가 처음 4써클에 올라선 것이 서른 후반 무렵이었는데. 나보다 족히 이십 년은 빠르단 소리 아닌가?”
“그건 어디까지나 자네가 느린…….”
“그렇게 빨리 4써클이 된 사람이, 아직도 그대로 4써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겐가?”
왕도 사대 마탑.
그중에서도 쌍벽을 자랑한다는 염탑 소속의 마법사들이었다.
이 중 나고 자라면서 수재나 기재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이들은 없었다.
개중 몇몇은 천재 소리 역시 숱하게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는 그 염탑 소속의 마법사들마저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천재.
같은 마법사로서.
또한 염탑의 선배로서 얼굴을 봐두고 싶지 않다면 거짓이리라.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워, 워, 워-.”
히이이잉-!
마차를 멈춰 세우는 마부의 소리가 들려온다.
이어 덜커덩.
마탑의 문을 열며 십 대 후반의 청년 하나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저 나이대의 청년이 마탑을 방문하는 일이 그리 잦지는 않았던바.
마법사들은 단숨에 그의 정체를 파악했다.
저마다 눈을 빛내며, 들어선 청년의 얼굴을 비롯한 외형을 눈에 담았다.
‘저 청년이 우리의 새로운 후배.’
‘탑주님의 막내 제자란 말이지.’
180cm는 충분히 넘어 보이는 신장에, 이지를 머금은 듯 반짝이는 진홍색 눈동자와 흑발.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보기 드문 인상을 가진 청년이었다.
.
.
“스승님.”
낄낄.
“왔구나.”
탑의 꼭대기 층으로 올라서자, 이제는 익숙해진 웃음과 함께 다리아의 음성이 들려온다.
덜컹하며 탑주실의 문이 열렸다.
“1층이 조금 소란스럽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 안으로 들어서며 러셀이 중얼거렸다.
“무슨 일은 무슨. 새로 신입이 왔다니, 그치들도 한 번쯤은 봐두고 싶은 거겠지.”
어쩐지 자신을 바라보는 눈초리가 묘하더라니.
그들이 보낸 시선을 떠올리며 러셀이 납득했고, 다리아가 그를 반겼다.
“오랜만이로구나. 그렇지 않아도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기다리던 참이었거늘.”
‘듣고 싶은 이야기?’
고개를 갸웃하길 잠시간.
이내 러셀은 그녀가 휴버트와 먼저 만났다는 사실을 상기해냈다.
아마도 그에게서 올라오는 도중 일어난 습격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눈을 가늘게 뜬 다리아가 러셀의 전신을 요모조모 뜯어본다.
마치 물건을 품평이라도 하는 것 같으면서도, 애정이 담긴 눈동자.
그 모습에 러셀이 가볍게 웃었다.
‘변함이 없으시군.’
저 시선은 아마, 자신을 관찰하는 것일 터였다.
아카데미로 돌아가 있던 시간 동안, 혹여라도 게으름을 부리지는 않았는지.
그로 인해 정체되지는 않았는지.
그것을 확인하려 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흐으음. 그 사이 마력이 꽤 늘었구나, 그럼에도 써클은 전보다 안정되어 있어.”
러셀의 성장 폭은 다리아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아카데미로 돌아간 후 먹은 마석의 숫자만 하더라도 두 자릿수에 육박할 정도니까.’
마력이 늘지 않았다면 도리어 그게 이상한 일이겠지.
여기서 진정 놀라운 점은, 그렇게 짧은 시일 동안 마력이 대량으로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써클이 안정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써클링 작업을 소홀히 했었다면, 늘어난 마력이 이렇게 안정적이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흡족한 표정을 짓길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지만, 그 전에 먼저 절차적인 문제부터 처리하자꾸나.”
이내 그녀가 겉옷 하나를 꺼내 놓는다.
그녀가 감색의 망토 하나를 꺼내 손수 러셀의 목과 어깨 주변에 둘러주며 말했다.
“어디 한 번 마력을 불어 넣어 보겠느냐?”
그녀가 시키는 대로, 마력을 불어 넣자.
화아악-.
망토의 어깨 부분으로 마력이 빨려 들어갔다.
이내 플레어 로즈의 문양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마나에 반응해 모습을 드러낸 건가?’
왕국과 관련된 이런저런 일들을 하는 만큼, 항상 정체를 드러내 놓고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방법을 이용해 평소에는 장미문을 감춰두는 거고.’
필요한 순간에만 문양을 드러내고 정체를 내보일 수 있도록.
“지난번에 새겨준 플레어 로즈는 약식이었다면, 이번에는 진짜로구나.”
그 장미문을 보며 다리아가 빙긋 웃었고, 이런저런 행정절차를 이어나가길 약 십여 분.
탁-.
염탑의 인장이 찍힌 새로운 신분패를 건네주는 것으로 모든 절차를 마무리 지으며, 다리아가 낄낄 웃었다.
“이제 명실공히 염탑 소속이 되었으니, 마음 놓고 여기저기 써먹어도 되겠어.”
다분히 장난기가 느껴지는 그녀의 말에 러셀이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예. 마음껏 부려먹으셔도 됩니다. 스승님.”
그 대답에 다리아가 ‘어쭈?’ 하는 표정으로 그를 응시한다.
하지만 러셀의 대답이 마냥 농담이나 빈말은 아니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야.’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심장을 얻고 가문을 재건하기 위해선 공이 필요했다.
후자와 같은 이유로 돈 역시 벌어야 했다.
게다가 한편으론 아버지의 원수에 대한 단서 역시 찾아야 했으니.
‘쉬고 있을 시간은 없겠지. 차라리 일을 많이 시켜준다면 그게 나아.’
염탑의 워 메이지들이 제국과의 물밑싸움이나 국지전에 자주 참전하는 만큼.
전자는 물론 후자 쪽 역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각오를 다지는 모습이 보기 좋구나. 막내야.”
다리아가 러셀의 생각과 내막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속에 깃든 진심만큼은 읽어 낼 수 있었던바.
그녀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가볍게 손뼉을 쳤다.
짝-.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제 자리에 앉았다.
“자, 그럼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모처럼 네 이야기나 한번 들어보자꾸나.”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다는 말에 러셀이 의문을 표하는 것보다 먼저, 그녀의 음성이 앞질러 나왔다.
“올라오는 도중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말이다.”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어느새 치즈케이크와 홍차를 꺼내 놓은 것이 이야기를 듣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모두 마친 모습이었다.
* * *
러셀의 이야기가 시작됨에 따라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각양각색의 반응이 다리아에게서 쏟아져 나온다.
이야기의 서두 무렵.
반파된 마차 더미와 마주하고, 승객들을 인질로 잡혔을 때는 노기를 흘려보냈으며-.
“교활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놈들 탓에 무고한 시민들만 애꿎은 피해를 입었구나.”
러셀이 불의 벽을 친 후 요격에 나서는 부분에서는 그 판단을 칭찬했다.
“언데드와 불은 상극. 불꽃의 벽을 만들어 승객들의 안전을 확보한 후, 넘어오는 적들을 요격한다. 정석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선택이로구나.”
그중 그녀가 가장 놀란 부분은, 샐러맨더를 하늘 높게 날려 보낸 부분이었다.
“파이어 월을 높게 치고, 시야를 가린 후 정령을 이용해 적을 찾는다. 확실히, 어두운 숲속이라곤 하지만 하늘에서라면 술자를 찾기가 쉽지. 네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처로구나. 머리를 잘 썼어.”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치즈케이크의 마지막 한 조각을 입안에 쏙 집어넣은 그녀가, 손을 뻗었다.
“잘했다.”
기특하다는 듯 러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자국민을 보호하고 약자를 지킨다. 좋은 말이긴 하지만 그 말을 실천하는 녀석들은 많지 않거늘. 너는 그 어려운 것을 끝까지 해내었구나.”
다른 무엇보다도 그 부분을 진심으로 칭찬하마. 막내야.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푸근해지는 손길이다.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진 어머니. 당신께서 살아계셨다면 분명 이런 느낌이었겠지.
그 순간.
“허.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 이유가 뭔가 했더니.”
거대한 파도가 나타나 그 느낌을 통째로 쓸어버렸다.
전신에 소름이 돋고, 모든 감각을 전율케 만드는 느낌.
!!!
“늘그막에 새로 얻은 제자를 자랑하려고 그리했던 게로군.”
고개를 돌리자.
가뭄에 말라 죽은 고목과 같은 외견을 한 노인 하나가 서 있었다.
그런데 왜일까.
저렇게 마른 몸임에도 불구하고 충만한 수분감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 단순한 수분감이 아니었다.
해일, 혹은 홍수를 인간의 형상으로 빚어둔 것만 같은 착각.
그야말로 인간의 형상을 한 재해(人災)라.
대륙 전체를 통틀어 보더라도, 저 작고 마른 몸뚱이에 저토록 강력한 자연재해를 품을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물며 그것을 엔디미온 왕국 내로 한정한다면 더욱더.
더욱이 그 재해가 물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건-.
‘창탑주(蒼塔主)!’
창탑주, 헤밍웨이 멜빌.
다리아 스노우화이트의 아카데미 동기.
동시에 그녀와 같은 격을 지녔다는 왕국 내에 단둘밖에 없는 8써클의 대마법사.
그런 그의 등장에 다리아가 가볍게 콧방귀를 꼈다.
“흥. 자기도 몇 년 전에 막내 제자를 들였다며 세 시간 동안이나 쉬지 않고 자랑질을 해놓고는 핀잔을 주는 꼴이라니. 그리고-.”
그녀에게서 일어난 세찬 열기가 주변을 잠식하던 습기를 거세게 몰아낸다.
그 열기에 가볍게 젖어가던 주변의 물건들이 뽀송뽀송하게 변했다.
햇볕에 아래 오래 말린 빨랫감 같은 모습이었다.
“내 집에서 물비린내 퍼뜨리지 말라니까. 이 곰팡내 나는 영감탱이야?”
다리아의 응수에 헤밍웨이가 가볍게 콧방귀 꼈다.
“흥. 곰팡내라니. 나는 적어도 누구처럼 마법으로 젊은 모습을 해 보이지는 않네만.”
꽤 날카롭게 말이 오가는 것과 달리 두 사람의 표정은 평안하기만 했다.
아니, 장난이라도 치는 듯 각자의 얼굴에 작은 미소 역시 걸려있었다.
“그래. 어디 한 번 네가 자랑하고 싶은 막내 제자의 모습이나 한번 볼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창탑주가 시선을 움직였다.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리에서 일어난 러셀이 고개를 숙였다.
“후배, 러셀 레이먼드가 창탑주님을 뵙습니다.”
오냐.
짧은 답변이 흘러나오고, 직후 심해를 연상케 하는 검푸른 눈동자로 러셀의 전신을 쓸어내렸다.
“허. 과연. 저 나잇값 못하는 할멈이 자랑할 만한 후배로구나.”
나직한 감탄성과 함께 그의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근섬유로써 마나로드의 일부를 대체하는 방법이라, 원리는 알겠다만 방법은 모르겠군. 무슨 수를 썼는지 신기해. 게다가 마나는 나이에 맞지 않게 정순한 데다 쉬이 감을 잡기도 어려우니…….”
이런 느낌을 받은 마법사는 내 생전 처음이야.
창탑주 헤밍웨이가 그렇게 말했고, 다리아가 낄낄거렸다.
제 자식이 칭찬을 받은 것마냥 들뜬 표정으로 자랑을 쏟아냈다.
“거보라지. 내가 굉장한 녀석을 주웠다고 분명 말했거늘.”
“끙.”
다리아의 자랑에 창탑주가 입맛을 다시며 앓는 소리를 냈지만 잠시였을 뿐.
“이건 확실히 배가 좀 아프지만 어쩔 수 없지. 애초에 내 막내 제자 역시 재능만 놓고 보자면 그렇게 꿀릴 수준도 아니고 말이야.”
“영감의 막내 제자라면, 뒤에 서 있는 그 아해를 말하시는 겐가?”
다리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말끔한 로브 차림의 사내가 창탑주의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껏 창탑주의 존재감에 가려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사내의 등장.
“인사가 조금 늦었습니다. 염탑주님.”
나이는 러셀 보다 몇 살 정도 연상.
한껏 예의를 차려 인사하는 자세에 맞춰 쓰고 있던 안경이 잠시 삐뚤어졌다 돌아온다.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은 뜬 것인지 감은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실눈이었다.
‘잿빛 머리칼.’
러셀이 그의 이름을 떠올렸을 때, 사내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해왔다.
“근래 소문이 자자한 러셀 공을 이렇게 뵙게 되는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창탑주님의 막내 제자-.”
그가 자신을 소개하는 것보다 먼저. 러셀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앨런 페이지……공.”
진짜 천재가 바로 거기 있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