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4
4화
EPISODE.02
“지각이네. 러셀. 얼른 자리로 들어가 앉도록.”
어찌어찌해서 기억을 더듬고.
기절한 코마 패거리를 때려 깨운 덕에, 간신히 강의실을 찾아온 러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수업의 교수는 휴버트처럼 깐깐한 성격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온 러셀은 강의실 가장 뒤쪽 자리로 가 앉았다.
저벅, 저벅-.
강의실을 한 번 쭉 가로질렀지만, 그에게 눈길 하나 보내는 이가 없다.
‘그냥 코마 패거리에게 불려갔다가 늦은 거라고 생각하겠지.’
같은 이유로 녀석들이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것 역시 대수롭지 않게 여길 터였다.
놈들이 수업을 땡땡이치던 것이 한두 번도 아니고.
‘물론 내가 세 명을 때렸다는 건 모르겠지만.’
잡스러운 상념은 거기까지.
러셀이 품속에 손을 넣었다.
방금 전 손바닥 위로 떨어졌던 작은 붉은 돌조각 하나를 꺼내 들었다.
손톱보다도 작은 형태를 하고 있으나, 이건 분명한 마석이었다.
회귀 전, 아카데미를 다닐 당시 교보재로 본 적 있는 그것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진짜 마석이 보상으로 나왔다.’
그것도 허공에서.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과거로 돌아오면서 뭔가 특별한 힘이 자신에게 작용하게 된 것은 아닐까?
‘시간 회귀, 초록색의 반투명한 창, 미션과 보상…….’
이 모든 것들이 어머니가 유품으로 남겨주신 반지와, 박물관에서 보았던 용의 심장에 의해 생긴 일이었다.
‘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고, 왜 하필 어머니의 유품이 거기서 반응을 했던 걸까.’
워낙 어렸던 시절에 돌아가셨기 때문일까.
막상 생각해보니, 어머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몰락 귀족의 후손이라는 것 말고는…….’
그렇다고 왕도의 박물관을 찾아가 볼 수도 없었다.
지금은 보충수업 중일 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 박물관에 장식되어있는 용의 심장이 정말 같은 것인지.
진품인지, 가품인지 조차도 알 수 없으므로.
‘결국 심장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선, 전생과 같은 시기에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거네.’
더 이상 추측을 이어나갈 거리가 없었기에, 쯧.
러셀은 소리죽여 가볍게 혀를 차는 것으로 상념을 마무리했다.
직후, 줄곧 손아귀에서 굴리고 있던 마석을 바라보았다.
크기는 땅콩의 절반 정도.
‘최하급 마석, 그런데 식용이라.’
잠시 고민하던 러셀은 일단 마석을 입을 향해 가져갔다.
‘내가 생각해도 좀 미친 것 같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식용으로 쓰여있긴 하니,
일단 깨물어보고, 안 되면 그 후에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설마 이가 부러지지는 않겠지?’
희미한 걱정과 함께 입 안에 넣은 마석을 깨무는 순간, 으적!
입 안에 있던 마석이 그대로 으스러지며 뭉개졌다.
단단한 돌 조각이라기보다는, 뭔가 젤리나 육포 같은.
분명 먹어본 적이 있는 식감이다.
‘짐승의 고기, 그중에서도 심장이나 허파 같은…….’
짐승을 직접 사냥하는 사냥꾼들만이 맛볼 수 있는, 시중에 잘 유통되지 않는 부위들의 식감이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그런 식감이 마석에서?
의문이 머리를 드는 것과 동시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화악-.
화한 기운이 입 전체로 퍼져나간다 싶더니, 몸속으로 마력이 흘러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흘러든 마력은 순식간에 러셀의 전신을 순환했고, 심장까지 내달렸다.
동시에, 러셀 본인의 마력 위로 겹쳐졌다.
처음부터 하나였다는 듯 두 개의 마력은 아무런 이질감 없이 섞여들기 시작한다.
스으윽.
[최하급 마석(식용)을 섭취하였습니다.] [마나석 속 마력을 획득합니다.] [써클의 마나가 상승합니다.]그 후 느껴진 변화에 러셀은 그만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마력이……늘어났다!’
마력양이 분명 전보다 늘어나 있었다.
어느 정도 시점에서 거의 변화하지 않던 마력양이 단숨에 늘어난 것이 느껴졌다.
써클 하나가 단숨에 상승할 만큼 많은 양은 아니었으나 분명 눈에 띌 만한 변화.
‘이거라면-!’
러셀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완전히는 아니었지만, 일부나마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마력이 지나치게 느리게 쌓이던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겠어.’
여기에 전날 용병 생활을 하며 운 좋게 얻었던, 퇴학을 당한 후에나마-.
‘2써클을 달성하게 해주었던 그 방법을 더한다면?’
달라질 수 있다.
나아질 수 있다.
‘전생보다.’
이번 생에서 그려야 할, 앞으로의 청사진이 희미하게나마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 사실에 러셀이 희미하게 웃었다.
마침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댕, 댕, 댕, 댕-.
러셀의 귓가에는 그 소리가 마치 자신의 앞길을 축복해주는 소리와 같이 느껴졌다.
* * *
‘여기가…….’
반듯하게 깎여 나간 나무 문.
그 위에 새겨진 명패를 확인한 러셀이 헛기침을 한 후, 가볍게 노크했다.
똑똑.
“누구인가?”
안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러셀입니다.”
“들어오도록 하게.”
안으로 들어가자, 오래된 책들이 내는 냄새 사이로 휴버트 교수가 반듯하게 앉아있었다.
“앉게.”
러셀이 들어오자, 휴버트 교수가 방금 전까지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으며 자리를 권한다.
직후 그의 시선이 러셀을 향했다.
휴버트 교수.
깐깐하고 딱딱해 보이는 눈빛을 가지고 있기에,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것으로 유명한 교수였다.
하지만, 러셀은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교수님들이 나를 포기했을 때도, 나를 포기하지 않고 챙겨주었던 유일한 교수님이시지.’
저 깐깐한 눈매와 주름진 얼굴 너머에는, 누구보다도 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가 기억하는 휴버트 교수의 마지막 직급은 아카데미의 부학장.
어쩌면 휴버트 교수가 계속 아카데미에 남아 있었다면, 러셀은 퇴학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휴버트 교수는, 마나를 쌓고 발출하는데 재능이 부족할지언정, 쉬지 않고 노력하는 러셀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러셀이 퇴학을 당하기 1년 전.
휴버트 교수는 잠시 아카데미를 떠나 외유를 나섰었다.
그리고-.
‘그 연구의 도중에 사망하셨지.’
휴버트 교수가 여행 도중 어떤 일로 사망했는지까지는 전해 들은 바가 없었다.
그 여행이 개인적인 것이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그가 속한 마탑에서 내려온 임무였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정말 과거로 돌아왔다면.
‘그 일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휴버트 교수, 그에게 전생에 입었던 은혜를 이번 생에서라도 갚고 싶었다.
그렇게 러셀이 휴버트 교수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내가 왜 자네를 불렀는지는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네.”
그가 넌지시 질문을 건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전자에 찻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무슨 차인지는 냄새를 맡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페퍼민트.’
마음을 안정시켜준다며 휴버트 교수가 자주 마시던 차였다.
“네. 제가 수업 중에 졸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네.”
러셀의 답변에 휴버트 교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보충수업. 아무리 지난 학기에 들었던 내용이라곤 하나 항상 수업에 집중하던 자네답지 않은 모습이었지. 그보다-.”
교수의 눈초리가 날카롭게 변모했다.
“로브에 먼지가 많이 묻었군.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겐가?”
그제야 자신의 로브 꼴을 확인한 러셀이 작게 고소했다.
털어낸다고 털어내었건만, 여전히 싸움의 흔적이. 흙먼지가 남아 있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계단에서 굴러 넘어졌는데, 먼지가 다 털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계단이라…….”
휴버트 교수는 바보가 아니었다.
계단에서 굴러 생긴 흙먼지와 모래가 튀어 생겨난 흙먼지를 구별할 능력 정도는 얼마든지 있었다.
결정적으로-
‘저렇게 흙먼지가 로브 곳곳에 묻을 정도로 계단을 구른 것 치곤 상처가 너무 적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버트는 구태여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대신, 미묘하게 바뀐 러셀의 모습을 인지했다.
‘달라졌나?’
자신의 상황과 재능에 언제나 축 처져 보이던 전과는 달리, 눈빛에서는 생기가 넘쳐흘렀다.
뿐만 아니라 자신과 시선을 마주치고도 전혀 피하지 않는다.
하룻밤 사이에 사람이 완전히 달라진 것 같은 느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변화 자체만을 놓고 보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마시겠나?”
어느새 찻물이 끓어오르자, 휴버트 교수가 자신의 찻잔에 물을 채우며 물었다.
“주신다면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쪼르르륵-.
예상했던 대로, 진한 페퍼민트 향이 오래된 책 냄새 사이를 가르며 피어난다.
휴버트 교수의 영향으로 자주 접했던 차이기 때문일까.
향만으로도 금세 몸과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다만, 터진 입안이 문제였다.
뜨거운 찻물이 들어가자 입 안의 상처가 욱신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윽.’
아픈 고통을 참아내며 러셀은 첫 모금을 넘겼다.
“수업의 대부분을 졸았고, 나머지 대부분은 밖에 나가 벌을 섰으니……, 보충수업의 취지인 복습이 그리 충실하게 되지는 않았겠어.”
“…….”
마나 써클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을 뿐, 아카데미를 다니던 당시 러셀의 필기 성적은 꽤 우수한 편이었다.
사실상 복습을 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
물론 러셀은 굳이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휴버트 교수 역시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긴 했고.
“오늘 보충수업 당시 진도가 나간 부분은 사원소학(四元素學) 심화, 62p에서 74p까지일세. 3학년 때 한 번 들었다고 하여도, 쉽지 않은 부분이지.”
“교수님께 번거로움을 끼쳐드릴 수는 없으니, 혼자서 다시 한번 복습하면 되겠습니까?”
러셀의 물음에 휴버트가 고개를 젓는다.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한 제자에게, 다시 한번 알려주는 것도 스승의 책무일세. 허나…….”
흘깃, 집무실 벽에 있는 시계를 일견한 후 그가 말을 이었다.
“나 역시 한 사람을 위해 이 과정을 통으로 반복 하긴 시간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니…….”
휴버트 교수가 말꼬리를 흐리며 손을 뻗었다.
“내일 점심시간 전까지, 그 부분을 읽고 레포트를 써오도록 하게. 마지막에는 읽으면서 궁금했거나 이해가 잘되지 않는 부분도 추가하도록.”
자신의 옆에 놓여 있는 양피지 다섯 장을 집어 러셀에게 건네며 말했다.
“써온 레포트와 질문 내용을 읽고 자네가 그 부분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어느 부분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한지를 판단한 후 추가 설명을 해주겠네.”
그편이 서로에게 훨씬 좋겠지.
휴버트 교수는 그렇게 말을 맺었다.
띠링-.
그 순간, 알람과 함께 녹색의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미션]휴버트 교수의 과제 완수하기,
휴버트 교수가 낸 과제를 완수하세요. 과제의 완성도와 휴버트 교수의 만족도에 추가적인 보상이 지급됩니다.
[보상]최하급 마석(식용) + ???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녹색의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러셀의 두 눈이 무의식적으로 그 위에 쓰여진 글씨를 좇았다.
“왜 그러는가. 과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기 때문일까.
휴버트 교수가 아주 조금.
불편해진 심기를 숨기지 않으며 물었고, 그제야 창의 내용을 모두 확인한 러셀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입꼬리를 씩, 끌어 올리며 눈앞에 놓인 양피지 다섯 장을 집어 들었다.
“교수님의 과제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요.”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