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40
40화
EPISODE.20
앨런 페이지.
러셀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던 마법사들 중,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과연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 만큼이나 앨런 페이지는 유명한 마법사였다.
‘그럴 수밖에.’
마법계에 앨런 페이지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은, 그가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약 1년 후.
지방의 마탑에서 창탑주의 막내 제자가 되어 창탑으로 불려 올라오면서부터였다.
여기까지는 러셀과 비슷한 케이스인 셈이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러셀보다 조금 늦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러셀이 다리아의 제자가 된 것은, 아카데미를 졸업도 하기 전이었으니까.
그의 천재성이 제대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정도가 흐른 후였다.
창탑주의 막내 제자라는 신분으로 혜성처럼 등장해 화제성을 모은 그는, 스스로의 천재성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최연소 6써클 마도사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것이다.
‘고작 서른의 나이에, 6써클에 올라선 창탑의 기린아.’
그만큼이나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를 모른다면 그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일 터.
그렇다고 해서 지금 그의 수준이 6써클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닐 것이다.
그가 6써클에 올랐던 것은 서른 살의 나이.
시간 회귀를 하여 과거로 돌아온 지금, 그 나이까지는 아직 몇 년가량의 세월이 남아 있었기에.
‘짐작하건데 4써클 후반. 시간이 조금 더 지난다면 5써클을 달성할 수 있는 상황이겠지.’
같은 4써클이라고는 해도 자신과는 실력의 차이가 꽤 있었다.
일반적인 동써클의 마법사라면 러셀 본인 역시 밀리지 않거나 압도할 것이라 자신했겠지만, 상대는 앨런 페이지.
소문의 그 천재였다.
그만큼이나 단단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진다.
‘마치 빙산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야.’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을 통해, 그의 강함을 미루어 짐작하길 잠시간.
일순 러셀의 얼굴이 긴장으로 가볍게 굳었다.
그에게 있어 앨런 페이지는 단순한 유명인이 아니었다.
직접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었지만, 앨런 페이지라는 마법사는 러셀에게 있어 동경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루하루 연명하기에 바빴던 나와는 달리, 이 사람은 하늘에서 찬란하게 반짝이는 별과도 같았지.’
그런 동경의 대상이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악수를 청하면서.
완전히 대등한 수준에 올라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무대 위에 올라섰다고는 할 수 있는 상황.
어쩐지 감회가 새로웠다.
그때였다.
러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자신의 이름에, 앨런 페이지가 반응한 것은.
“저를 아십니까?”
그 말에 아차 하길 잠시, 이내 러셀이 빙긋 웃었다.
그와 관련된 기억 중, 지금 상황에서 꽤 쓸 만한 정보 하나를 골라냈다.
“물론입니다. 선배님.”
“선배님?”
“네. 저도 선배님과 같은 워커힐 아카데미 출신이니까요. 같이 학교를 다닌 시기는 없지만, 교수님들께 선배님에 관련된 소문은 자주 들었습니다.”
워커힐 아카데미라는 말에 그가 ‘아-.’하며 반응했다.
두 눈이 실처럼 가는 탓에 정확한 감정을 읽기는 어려웠지만, 대충 납득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러셀 공도 워커힐 아카데미 출신이었지요.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후배님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마법사로서는 물론이거니와, 아카데미의 선배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공대.
그가 자신의 손바닥을 가볍게 흔들었다.
“창탑과 염탑이라고는 하지만 같은 왕도 마탑이니, 종종 마주칠지도 모르겠군요.”
악수를 위해 내밀었던 바로 그 손이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후배님.”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러셀이 그 손을 맞잡자, 앨런이 작게 웃었다. 낯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조금 섞여 있는 웃음.
얼굴을 대면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정확하게 판단 내릴 수는 없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은 인연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회귀 전에도 딱히 추문이 들려왔던 것도 없는 것 같고.’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로 인사를 마무리 짓는 둘과는 달리, 마치 앙숙이라도 된 양.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이들이 둘 있었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판단해보아도 내 제자의 실력이 위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인데, 그걸 인정하지 않을 줄이야, 못 본 사이에 많이 뻔뻔해졌군. 다리아.”
“흥. 말을 못 알아먹는 건 오히려 영감 쪽이겠지. 영감의 제자는 이십 대, 그에 비해 내 제자는 아직까지 십 대라고 몇 번이나 말했던 것 같은데?”
러셀의 스승인 다리아 스노우화이트와 앨런의 스승인 헤밍웨이 멜빌이 바로 그들이었다.
누구의 제자가 더 뛰어난 재능을 지녔는가- 라는.
다분히 팔불출 적인 주제로 시작된 두 사람의 대화는 이미 두 대마법사의 자존심 대결로 번진지 오래였다.
“이거 참. 죄송합니다. 후배님. 제 스승님이 평소에는 저런 분이 아니신데, 염탑주님만 만나면 저런 모습을 보이셔서.”
앨런이 난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익숙하게 답을 하는 것을 보니, 이런 상황이 한두 번은 아니었던 모양.
‘하긴, 창탑주님과 스승님 사이에 얽힌 일화가 어디 하나둘이어야지.’
아카데미를 다니던 시절부터 경쟁을 이어온 두 사람의 이야기는, 왕국 내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깃거리였다.
그렇게 한동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말다툼이 이어지고.
“좋아. 그럼 이렇게 하지.”
그 말다툼에 종지부를 찍듯 헤밍웨이가 제안했다.
“……?”
“7년. 7년 안에 그대의 제자가 내 제자를 완전히 따라잡는다면 그때는 내가 가지고 있는 신대(神代)의 유물 중 한 가지를 내놓겠네. 어떤가?”
신대의 유물이라는 말에, 러셀과 앨런이 동시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신대의 유물이라니.’
유물(遺物)
일반적으론 선대의 인류가 후대에게 남긴 오래된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단어다.
하지만, 마법사 계에서만큼은 이 단어가 조금 더 특별한 의미로 쓰이곤 했다.
대분류에서의 의미는 달라지지 않으나, 그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인-.
‘아티펙트(Artifact).’
선대 인류가 남긴 마법이 걸린 물품, 그것이 바로 유물이었다.
그중에서도 신대의 유물이라고 하면, 문자 그대로 신화시대(神話時代)의 물건을 말하는 것이었고.
‘신화의 시대.’
신들의 종말이라 불리는 황혼이 시작되기 전, 아직 이 대지 위를 신들과 초월자들이 걸어 다녔던 시대.
그 시대의 초월자들이 이 세상에 남겨놓은 흔적.
그것이 바로 신대의 유물이었다.
가장 작고 약한 것이라고 해도 7써클에 준하는 힘을 품고 있다고 하던가?
하나하나가 국보에 준하는 가치를 가진 물건들이었다.
고작 내기의 상품으로 내걸 기에는 지나치게 과한 감이 있다.
“스승님. 그러실 필요는…….”
그렇기에 앨런이 제 스승을 말리려는 찰나. 그보다 빠르게.
“영감 입에서 내 마음에 드는 제안이 나오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다리아가 낄낄거리며 맞불을 놓았다.
웃고 있는 입꼬리와는 달리 두 눈에서는 불꽃이 튀어 올랐다.
“나도 마찬가지로, 7년 안에 러셀이 영감의 제자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그땐 내가 신대의 유물 하나를 내놓으면 되는 거겠지?”
어느 쪽이건 쉽게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
러셀과 엘런이 서로를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건 말건, 두 스승의 내기는 이미 성립이 된 후였다.
“좋아. 나중에 가서 딴소리하지 말라고.”
그럼 결정되었다는 듯, 헤밍웨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자신의 할 말은 모두 끝났다는 양, 로브를 펄럭이며 다리아의 집무실을 빠져나갔고.
“뭐 하느냐. 너도 어서 나오지 않고?”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러셀과 다리아를 번갈아 보던 앨런을 재촉했다.
그 재촉에 앨런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염탑주님.”
다리아를 향해 인사를 해 보이며 몸을 돌렸다.
러셀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가볍게 중얼거렸다.
“앞으로도 종종 뵙기를 고대하겠습니다. 후배님.”
* * *
붉은 벽돌을 이용해 나선형으로 쌓아 올린 건축물, 염탑을 빠져나오며 헤밍웨이가 물었다.
“소문의 아이를 직접 보니 어떻더냐?”
스승의 물음에 앨런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답한다.
“강합니다.”
일말의 고민조차 깃들지 않은 진심.
하지만 그건 그의 스승이 원하던 바가 아니었던 듯했다.
“누가 강하고 약하고를 물었더냐.”
그런 스승의 진의에 대해 고민하길 잠시, 이내 생각을 다듬은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적이 되어 싸운다고 한다면 이기긴 하겠지만, 확신은 못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숨겨둔 수가 있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리고…….”
“그리고?”
“숨겨둔 수가 없다 하더라도 방심할 수 없는 상대인 것만큼은 분명했습니다.”
숨겨둔 수가 없다고 가정했을 때, 싸운다면 팔 대 이 정도의 확률로 자신이 승리하긴 할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전투에 들어간다고 하니 목덜미가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날카로운 송곳니 몇 개가 자신의 목 끝에 겨누어져 있는 느낌.
고작 몇 개라곤 하나, 어쨌건 간에 치명상을 야기할 수 있는 것은 분명했던바.
“방심하면 도리어 잡아먹힐 것 같습니다.”
러셀의 나이는 고작해야 열아홉, 자신보다 네 살은 어린 나이였다.
그런데 벌써 저 정도라니.
자신도 천재라고 불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 앨런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고목 같던 헤밍웨이의 얼굴 위로 한 줄기 미소가 스쳤다.
“그렇게 여겼다니 다행이로구나.”
“예?”
“경쟁상대가 없는 것보다는 경쟁상대가 있는 쪽이 더 좋을 테니 말이야. 속셈을 뻔히 알면서도 이 자리에 참석한 보람이 있었구나.”
“그 말씀은…….”
스승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앨런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해석하기에 따라선 자신의 스승이 오늘 이 자리를 이용했다고도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만약 저 발언이 염탑주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다면-.
‘분명 노하실 텐데.’
나이를 먹고 탑주라는 직위에 앉으며 기품을 갖추게 되었다곤 하지만, 젊은 시절의 그녀는 정말로 불꽃 같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던 이였으므로.
그런 제자의 걱정이 기우였다고 말해주듯 헤밍웨이가 혀를 찼다.
“쯧. 걱정하지 말거라. 그 할멈 역시 같은 생각으로 나를 부른 것이니.”
각자 서로의 제자를 위해 오늘 이 자리를 만들었다는 말.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앨런이 가볍게 탄성했다.
“아!”
허나 아직 스승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기는 내기. 단순히 자극제로 삼는 것이 아니라 따라 잡히지 않도록 무던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신대의 유물 하나를 아깝게 내줄 수는 없지 않느냐?
스승의 말에 앨런이 고개를 주억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
그 역시도 쉽게 따라잡힐 마음은 없었다.
내기로 걸린 신대의 유물이 탐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후배님에게 빠르게 따라 잡혀버려서야, 선배로서 체면이 서질 않을 테니.’
그렇게 생각하며 앨런이 고개를 돌렸다.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온 탓에, 조금 멀어진 염탑의 꼭대기 층을 응시했다.
‘러셀, 러셀 레이먼드.’
왕국의 건국신화와 관련이 있는, 이제는 반쯤 잊혀진 옛 명문에서 태어난 천재의 이름을.
몇 번이고 계속해서 곱씹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